|
https://www.youtube.com/watch?v=Qj324mv1SXo
2024.5.19(주일) 주일설교 히브리서 12:1~13 ’믿음의 경주에 승리하려면‘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히브리서 12장 1-13절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의 경주에 승리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선 경주는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활동입니다. 경주자는 심혈관 건강, 근력, 지구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또한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유연성과 균형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경주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활동입니다. 경주자는 경기 중에 집중해야 하고 포기하고 싶은 압박감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경주자는 올바른 달리기 자세, 출발 및 피니쉬 기술, 그리고 코너링 기술 등을 몸에 배도록 익혀야 합니다. 경주 중에도 승리 전략을 세우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이 경주를 승리하는 데 필요합니다. 일반 경주도 그러한데, 믿음의 경주자도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과 훈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부분을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벗어버리고 바라보아야 합니다(1-3절).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죄를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경주자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1절). 경주자는 몸을 가볍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주자도 인생의 무거운 것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가볍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지 겉으로는 잘 모릅니다. 나라의 형편도 그렇습니다. 어떤 위기를 닥쳐보니까 실제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문제가 곪아있었는가 하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숨겨져 있던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은 나만 혼자서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는 수고하고 무거워하는 많은 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방법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가볍게 하시겠다는 주님을 영접하고 그 분께 나의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맡길 때 가능합니다(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15분]이란 연극이 있었습니다. 막이 오르자 희망과 환희와 행복으로 가득찬 젊은이가 나타납니다. 그때 의사 한 사람이 나와서 이 젊은이를 진찰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5분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순간 청년의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우편 배달부가 편지 한 통을 전해 주고 가는데 그것은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1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배달부가 또 다른 편지를 한 통 놓고 갑니다. 수 억대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이 5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편 배달부가 또 한 통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승낙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1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1분 동안 괴로워하다 쓰러져 죽음으로 연극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의 실체입니다. 명예도 재산도 사랑도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진학의 문제, 가정의 문제 등을 다 포함하지만 더 깊은 곳의 문제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쉼을 얻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에 우리의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게 됩니다.
2)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경주자는 십자가를 참으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2,3절). 성도는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3)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증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1절) 성도는 각자의 믿음의 경주에서 예수의 증인된 지체들의 증언을 들으며 위로와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이 경주의 가치와 완주해야 할 이유를 증명하며 우리들을 응원합니다.
[큐티인 간증] 슬기로운 채무생활(박열매님)
저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며 1년에 열두 번 제사를 지내는 불신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핍박을 받으며 홀로 하나님을 믿는 어머니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결혼을 하면 장남이 아닌 막내이자 믿는 사람을 만나야 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형제 중 막내이자 직업이 의사인 남자를 만나 ‘앞으로 돈 고난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술을 먹는 줄은 알았지만 술에 대한 경험이 없어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거의 매일 음주 가무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술에 빠져 사는 동안 저는 홀로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남편의 외박이 잦아지니 불안과 우울로 이혼과 죽음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남편 병원의 폐업으로 억대의 빚을 지고 10년간 기업 회생의 절차를 밟으면서 경제적인 고난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살 소망이 없어졌을 때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된 저는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의 간증을 들으며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편히 살려는 내 욕심과 교만에 주님이 속지 않으시고 저의 돈 우상을 회개하도록 남편으로 하여금 수고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남편을 무시하고 원망하던 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도대체 언제까지 빚을 갚아야 하나?’라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먼저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의 경주를 해온 지체들을 보면서 “저도 천국으로 부르실 때까지 빚을 갚으며 이 시간을 잘 통과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평생 남편을 미워하며 술 때문에 잔소리를 했는데, 이제는 내 힘으로 남편을 고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이 하실 것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피고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주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아내의 역할에 순종하고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기를 원합니다. 적용1) 남편을 술을 마셔도 잔소리 하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겠습니다. 적용2) 미혼모로 아픈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지체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이 시간을 잘 통과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적용) 요즘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나는 믿음의 증인들이 보여준 신앙의 증거를 바라봅니까? 나는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까?
2.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4-8절)
하나님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에게 징계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내 자아를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내가 대적해야 할 원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이웃이나 직장동료나 힘든 환경이 아니고, 나의 타락한 본성과 죄성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 받기를 꺼려하는 성도들을 향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4절)고 합니다. 믿음의 경주 중에 경주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은 그분의 자녀들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도록 이끄시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6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롬 8:28).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자인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때, 나를 자녀삼아주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며 아버지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온 환경과 인간관계의 징계가 곧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7,8절). 따라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는 것은 그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5절), 믿음의 경주를 중히 여기지 않는 아주 나쁜 태도입니다. 적용) 내가 당장 해결되기만 바라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의 징계가 나를 사랑하시는 자녀로 여겨 내 안의 죄와 싸우게 하시는 기회임을 믿습니까?
3. 하나님의 훈련의 결과를 바라보며 순종해야 합니다(9-13절)
경주 중 징계나 책망을 들을 때는 매우 고통스럽고 슬픕니다. 요한 계시록 2-3장은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사도요한의 편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100% 완전한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칭찬만 받았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받았으며,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보다 칭찬을 더 많이 받았고, 사데 교회는 칭찬보다 책망을 더 많이 받았으며, 버가모, 두아디라, 에베소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반반씩 받았습니다. 교회들마다 무엇이 칭찬 받을 만하고 무엇이 책망 받을 부분이었는지 우리로 배우게 하십니다. 교회를 성도로 볼 때 칭찬받는 성도도 있고, 책망받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듣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칭찬받는 일은 좋은 것인데, 우리는 칭찬 받을 때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올라가면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누가 좋은 일로 칭찬받는 것을 그냥 두고 못 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해코지를 합니다. 한국 귀신 중에 ‘손’이라는 귀신이 가장 성질이 나쁜 귀신인데 좋은 일을 그냥 두고 못 보는 귀신입니다. 그 귀신이 미국까지 따라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민간에는 ‘손’이라는 귀신의 피해를 예방하는 민간처방이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말조심 행동조심 출입조심을 하되 손이라는 귀신이 출몰하지 않는 날을 길일로 잡았고 그가 출몰하지 않는 장소로 다녀야 했습니다. 이사 날도 손 없는 날, 결혼식도 손 없는 날로 잡아야 했습니다. 그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불신자들은 손이라는 귀신을 이렇게 경계하는데 신자들은 마귀를 그렇게 경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성질 고약하기로 말하면 마귀도 손보다 결코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칭찬 받을 때 마귀를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은 칭찬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칭찬을 아기십니다. 우리도 칭찬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칭찬이 좋은 것이라고 해서 별별 소리를 다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칭찬은 우선 듣기는 좋지만 그것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그대로 믿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칭찬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은 속으로 칭찬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칭찬을 잘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칭찬 잘하는 사람은 돌아서서 비난도 잘합니다. 그래서 칭찬은 좋은 것이지만 칭찬 받을 때 경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칭찬도 잘 들어야 하고 조심해야 하지만, 오늘 본문에 말하는 책망도 잘 들어야 합니다.
현대인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가고 있는 까닭에 책망받기를 싫어 합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책망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책망은 잘못한 것을 돌이키기 위한 것입니다(잠1:23) 성도의 잘못은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책망하십니다(딤후3:16). 그러므로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려면 성령의 책망을 업신여겨서는 안되며(잠 1:30), 다시는 책망을 안받게 해야 하며 주님 앞에 설 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골1:12).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자에게 성령이 함께하며 말씀이 임하고 안연하고 평안히 살 수 있지만(잠1:33), 돌이키지 않는 자는 성령이 떠나가고 근심과 슬픔이 임하며 책망을 싫어하게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요일 3:20).
성경에는 많은 신앙인이 나오는데 책망을 듣고 돌이킨 자가 의인이 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킨 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다윗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자’ (행 13:21~23. 삼상 16:6~13)라고 했고,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에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은혜가 가득한 책망과 인자함이 넘치는 권고를 통하여 회개하고 돌이킬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책망과 권고를 듣고 돌이키는 자가 지혜로운자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입니다.
책망은 때로는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잠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 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시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잠 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 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전 7:5]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반대로 책망을 멸시하는 자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암 5: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그러나 징계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인 우리가 보일 태도는 ‘공경’과 ‘복종’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기 뜻대로 자녀를 훈계하고 책망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의와 평강의 열매’(11절)를 거두게 하시려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로부터 연단을 받은 자는 어그러진 부분을 고침받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을 때는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와 채찍질이 죄와 사망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곧은 길’(13절)로 돌리기에 하나님은 그 훈육을 건너뛰지 않으십니다. 13절에 나오는 "곧은 길"은 그리스어 원문 "트로피아" (τροπία)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방향이나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 자국처럼 뚜렷하고 평탄한 길을 의미합니다. 즉, 방해물 없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올바른 길이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면 새번역 성경에서는 ‘올바른 길’로, 쉬운말 성경에서는 ‘평탄한 길’로, 영어성경 niv에서는 평탄할 길로 Make level paths for your feet 킹제임스버전에서는 ‘곧은 길’(straight paths)로 번역합니다. 각 번역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뚜렷하고 안전하며 올바른 길’이라는 핵심적인 의미는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쉬운말 성경"에서는 "곧은 길" 대신 "평탄한 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트로피아"가 단순히 방향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12장 13절 "곧은 길"은 단순히 방향이나 목적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인해 얻는 영적인 성장과 발전의 길이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평화와 기쁨의 길입니다.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곧은 길’을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12,13절).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저는 다리로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아 ‘곧은 길’을 가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나의 태도를 어떻습니까? 일어날 힘 조차 없던 나를 교회 공동체로 인도해준 사람은 누구이며, 내가 곧은 길로 인도해야 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4.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육상 경주처럼 우리의 믿음 또한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배우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예화를 통해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깊은 산골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타고난 장애로 다리가 불편했지만,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어느 날 마을 운동회에서 100미터 달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소년은 참가하고 싶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의 불편한 다리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회 당일, 소년은 용기를 내어 출발선에 섰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다른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나갔습니다. 소년은 장애로 인해 천천히 걸으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뒤처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관람객들은 소년을 응원하며 그의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주가 끝났을 때, 소년은 마지막 주자가 되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의 노력과 끈기에 큰 감동을 받아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장애인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의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 또한 믿음의 길에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주자의 아름다움처럼, 우리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더 큰 영광과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믿음의 경주에 나선 마지막 주자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시다. 그리고 믿음에 처진 지체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힘든 순간에도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고 천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합시다. 저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믿음의 경주에서 아름다운 마지막 주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을 얻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