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시국이 뒤숭숭하여 맘이 편하지 못한 시기이지만 가정사와 집 주변의 잡다한 일로 나라 돌아가는 상황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뉴스조차 변변히 접하지 못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소시쩍부터 서민으로서의 삶을 동경하고 이름없는 민초로 조용히 살다가리라 맘먹었지만, 그래서 초지일관 시골에 정착한 촌로로 묵묵히 살아가지만 빈번히 회자되는 기득권이라곤 전혀 접하지 못한 일개 서민으로서 세상일에 관심이 있어도 선거때마다 간간히 주어지는 투표권 행사로만 의사를 표현할 뿐 다른 방안을 갖지 못한 나로선 오히려 바쁜 일과가 즐겁다.
딸아이 월급쟁이생활이나마 편히 하라며 손주 돌봐주고 때때로 밭에 나가 김매고 비료 주고 푸성귀를 따는 일과 모아지는 분리수거용 재생자재를 재분류하고 처리해가면서 부수하여 일어나는 자자분한 일들을 하다 보면 책을 손에 잡아도 한 권의 책을 다 읽기까지는 한 주일 이상이 소요되는 일상이다.
네살배기 손주가 다소 과격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 원인이 무엇이며 이 아이가 무슨 까닭으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관찰하고 근저에 깔려있는 아이의 뜻과 동기를 파악하느라 애쓰다가 적절한 답을 찾기가 어려워 [민주적인 부모가 된다는 것]이란 재목의 책을 빌려왔는데 사흘 동안 겨우 50쪽을 읽었을 정도로 분주한 나날이다.
크게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가 연배에 어울리지 않게 병약해져서 일곱달만에 우리집에 세들어 경영하던 게란가게를 접고 천안으로 내려간 젋은 부부의 보증금을 빨리 돌려주고 싶어 운동하러 갈 때마다 방문한 10여 군데의 중개업소에 부탁을 넣은 결과 오늘 새로운 사람과 계약서를 쓰고 그 어머니를 비롯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느낀 뿌듯함,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이나 초면의 중개사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한 기쁨이 늦긴 했지만 일처리를 하면서 평온했던 하루를 감사하게 되는 동기가 됐다.
비록 운동하러 휘트니스에 가다가 또다시 하수구가 막혔다는 전화를 받고 황당한 기분으로 설비업자를 물색하고 세입자들을 방문해 양해를 구하느라 스윙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귀가하긴 했지만 맘이 불편하진 않다. 내일은 막힌 하수구를 뚫고 3층 세탁기의 배수 호스를 연장하다 보면 계란가게 엄마가 방문할 터이니 어쩌면 번잡한 하루가 될 수도 있겠지만 될수록 차분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가려한다.
젊을 때 설비 등 건축일에 관한 지식을 쌓지 않아 조그만 집 한 채 관리하기에도 힘이 부치지만 이제라도 자꾸 접하고 익히다 보면 언젠간 바쁨을 탓하지 않고 짜투리 시간이나마 최대한 즐기면서 나름대로 여유를 부려볼 수 있지 않겠나 하며 스스로를 달래본다.
나는 소시민으로 이처럼 자자분하게 살고 있지만 정치에 몸담고 지내는 이들은 자신의 본분을 되새기면서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활동을 해주기 바란다.
구름에 가려 기대했던 슈퍼문이 보이지 않아 아쉬운 밤이다. 어딘가에 슈퍼문이 업로드돼 있다면 영상으로나 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