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죄인으로서 고백하려 합니다
내가 지은 죄는 내 몸을 돌보지 않은 죄.
그리하여 내가 아이들과 약속한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실체를 분명히 보여주지 못하여
싹트기 힘든 희망의 얄팍한 씨앗만 뿌린 죄.
당장 입원하고 수술 받는 것이 좋다는
6월의 진단결과를 따르지 않고
이 아이들에게는 지금 내가 필요하다며
한 달을 더 버틴 내가 아이들에게 준 것은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힘들다 시간 없다 너무 바빴다 온갖 핑계로
결국엔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처럼
미련만 교실 구석구석 가득 쌓아놓고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슬픕니다.
난 오롯이 교사로서 아이들 가까이 있고 싶었고
일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항상 그들에게 흐뭇한 기쁨이고 따스한 사랑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내 아픔이 묻히지 않고 자꾸 드러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이건 기쁨도 사랑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 죄인이 되려 합니다.
몸이 아파오는 동안 난 내 일을 많이 포기하고
우리 아이들만 만났습니다.
일요일은 다음 주일을 위해 열심히 쉬었습니다.
때론 링거액도 맞아가며......
내가 죄인임은
3월, 담임이 되는 것은 일년을 책임지겠다는 뜻인데
결국 난 계약 위반자입니다.
어느 학년 보다 노랫소리가 높은 33명의 우리반 친구들.
5학년을 중임하며
아이들과 함께 온 학교를 노랫소리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2부 또는 3부합창으로...
그 전초전으로 4학년때까지 갈고닦은 리코더도 연마할 겸
리코더 중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어긋나는 박자,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따로 놀고
노래로 잘 접하지 않는 낮은 음은 가락마저 제멋대로,
그러나 한 곡 한 곡 박자를 익히고 리듬을 맞추어
화음을 느끼며 연주하기 시작! 빠라바라밤~
음악이 있는 반 탄생은 화랑문화제 군예선에서 그 성과가 나타났고,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영어교과에서도 특별해
영어시간이면 온 학교를 흔들어 놓곤 했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교과운영과
시범학교 운영으로 병행하여 실시해야하는 기초 기본 교육 시간들은
아이들과의 이런 정서적 교감의 시간마저 뺏아 버리고
동동거리며 일정 빠듯한 작업량만을 채우는 노동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업무로 바쁜 학년 초를 벗어나며
아이들과 모둠으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고
학예회 준비를 하며 참 즐거웠습니다.
개그꽁트로 꾸며진 남자 어린이들의 무대의 대본을 밤새워 쓰고,
토요일 오후에는 여자어린이들과 컵라면을 먹으며 부채춤을 추었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시고
최고의 무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칭찬해 주신 학부모님,
감사합니다.
학예회까지 무사히 치르고 다음은 야영훈련!
아이들이 야영장에 입소하는 것으로
담임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각 조원들끼리의 생활모습을 살펴야 하고
마음이 흐트러지면 야영장에서 갖춰야 할 자세를 일러주어야 하고
각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야 하고
취침시에는 잠자리를 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만큼 일렀건만 침구는 태부족이고,
잠들때 좀 후덥지근하나든 생각으로 아예 문까지 열어 두고 자거나,
텐트가 찢어져 황소바람이 드나드는 텐트도 있고.
양호실 담요를 나르고 찢어진 텐트를 묶고
종이 박스를 펼쳐 바람막이를 만들어 달고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면
어느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은 유난히 맑게 빛나며 텐트 속 아이들을 비추어 주었지요.
그렇다고 늘 순풍만 부는 것은 아니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이들끼리 반목하고 질시하고 편가르고
결국엔 왕따친구를 만들거나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하나 좋은 말로 달래어 주는 것은 교사로서 마땅한 일이나
참 힘든 일입니다.
특히 몸이 힘들어지면서 그런 일들은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아졌습니다.
순하고 푸근한 자세로 아이들을 대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지난 6월 10일 농번기 휴가를 빌어 진료를 받았더니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남은 일학기는
아이들에게 내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에
방학때 까지 참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신이 나서 공부를 할 때는
아픈 것도 잊어버리곤 하지만
통증은 더 오래 지속되고 몸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지난 주에는 일학기 동안 진행한 일기점수제와 독서급수제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낸 친구들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정말 신나고 재미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픈 몸이지만 사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한 노력이 아이들에게 좋은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