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적부터 부친의 병세가 호락하니 낫을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수많은 부흥회를 다녔었다.
부친은 혼자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해서 하다못해 휴지나 물을 가져다 줄 정도의 잡다한 심부름이라도 할
손길이 필요했었고 부친과 단둘이 살았기에 그 일들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부흥회 기간동안 학교
수업을 빼먹더래도 부흥회는 반드시 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였다.
그 당시에 단연 병고침 은사의 최고로 치는 분이 ‘현신애 권사님’이셨다.
매달 7일부터 14일 일주간 부흥회를 하였는데 오전에 한차례 저녁에 한차례 하루에 두 번 부흥회를 했다.
부흥회 순서는 예배를 마친후 그리고는 ‘빈들에 마른풀 같이’ 찬송을 부르면서 병고침 안수가 시작된다.
주일에 보는 예배와 같은 형식으로 예배를 먼저 마친후에 권사님이 강단 앞에 앉아 있으면 병고침 안수를
받을 환자들이 길게 줄을서서 차례로 권사님 앞으로 오면 머리,가슴,등을 한번치면 다음 사람이 오는 이런
순서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다소 중환자는 특별히 더 기도해주고 안수도 몇차례 더해주긴 하지만 거의비슷한
형식으로 병고침 안수가 진행된다.
내가 설교를 듣기 시작한 것은(설교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점)초딩3학년 부터인 것 으로 기억된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설교를 일주일 동안 듣게 되므로 일주일에 14번의 설교를 듣는데 강사는 제법
많이 알려진 목사가 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에 권사님의 인기는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어서 부흥회를 하면 전국각지에서
환자란 환자는 모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교회를 꽉채울만큼 많이도 왔다.그러니 그 부흥회에
초청되어 오는 목사도 시시한? 목사는 오지도 못하고 나름대로는 할만큼 하는 목사들이 온 것으로
기억되어 진다. 그 목사들의 설교는 지금 생각해도 힘있고 생동감 있고 아멘 소리가 그치지 않을만큼
열정적이였던 것으로 어린 마음에도 기억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 곳에는 병고침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사람들과 그들 못지않게 간절한 마음을 가진 보호자들로
가득하였으니 목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집중하였으리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부흥회를 일주일간 하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일주일간 먹을 양식과 숙식에 필요한 여러 물품들도
챙겨오고 환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도 필히 함께 오므로 교회가 일주일간 발디딜 틈없이 가득찬다.
그 뿐만 아니라 가까운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오전,오후에도 오니까 예배때는 밖에 천막까지 칠 정도로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새벽예배도 있었는데 병고침 안수는 없었고 강사 목사의 짧은 설교와 찬송두어곡 부르고 개인기도를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부친의 병이 낫고 아니고는 내겐 그렇게 절실하게 와 닿은 것 같진 않았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더러는 부흥회 기간중에 암덩어리가 없어졌다는 사람도 있었고 팔이 펴지지 않던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잘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기뻐서 울고 감사한
마음에 소리치는 장면을 여러번 봤지만 부친만은 절대로 낫지를 않았기에 별로 낫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었던 것 같다.
부친보다는 오히려 내가 급성신부전 증세가 생겨서 온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병원에서도 고개짓을 했는데 권사님께 안수 한번 받고는 다음날로 부기가 빠지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므로 오히려 그 때의 병고침 부흥회의 수혜자는 나 였었지 부친과는 상관이 없는듯 생각 되었다.
사도바울도 그랬다던가 족하다는 말만 듣고 끝내는 순교할 때까지 병마를 지니고 있을 수 밖에 없었으니
부친도 병고침 부흥회를 많이 다녀서 그랬는지 동네에서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안수기도를 하니
병이 고쳐지고 소리없는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많은 교인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받는 것을 보았다.
하여튼 어릴적부터 설교를 많이 들었던 나는 설교에 귀가 트여서 설교의 내용이 귀에 너무나 잘들어왔다.
좋은 설교, 잘하는 설교, 아닌 설교, 못하는 설교를 크면서 점점 분간하게 되었고 민감한 성격에다
감성이 예민한 탓에 감지해 내는 귀만 발달해서 나스스로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잘하고 못하고를 꼬집어내는 데에만 점점 숙련되어지는 것 같았다.
요즘은 설교를 들으면 아예 눈을 감게 된다.귀를 일부러 막을 수는 없으니 눈이라도 감을 수
밖에 없는데 눈을 감는다고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리는 없는 탓에 매번 비슷한 설교를 듣는것이
고역중에 고역이요 괴로움중에도 그 같은 괴로움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목사도 아니요 서로 마지못해 보는 사이고 요즘은 그러진 않지만 설교중에 눈을 부릅뜨고
목사의 말에 반대하는 자는 사탄이며 이단자고 사이비라고 사정없이 몰아 부치는데 그런 목사를 좋아할리
만무하고 사탄이라고 공격했던 그날의 설교를 교회 홈페이지에서 찾아서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집사가
목사는 또 얼마나 괘씸하고 얄미울 것인가.
그런 관계의 목사설교가 무슨 은혜가 되겠으며 단 한마딘들 수긍할 수 있겠는가.그러니 설교시간만 되면
눈을 감아 버리고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도 너무나 비슷한 줄거리의 설교가 귀에 거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 비슷한 설교를 대충 적어보자. 설교는 대체로 복 이 중심이 된다.
목사:여러분, 복받고 싶습니까?
교인들:아멘~!( 여기저기서)
목사:그러면 복 받을 짓을 해야 합니다.복받을 짓은 하지 않고 복을 달라하는 것은 도둑놈 심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도 없으면서 달라고 달라고만 하면 그게 어디 도둑심보 아닙니까?
먼저 여러분이 드려 보십시오,먼저 여러분이 바쳐 보십시오,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세요, 그러면 쌓을곳이 없도록 붓나 아니붓나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라니까요?
목사:(교인들이 머뭇거리자 장단 맞출때를 잘알아서)아멘입니까?
교인들:(이때다 싶어서) 아멘~!(또 누군가는)아~~멘!
목사:나는 우리교회에 의사도 여럿 있고 판,검사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아멘입니까?
교인들:(조금 불만스럽게)아멘....
목사:(눈치빠르게)그래서 우리교인들 중에 아프거나 법률적인 문제가 생기면 얼마나 수월하게 잘 해결할수
있겠습니까?
교인들(그제서야 얼굴을 조금풀고) 아 멘!
아! 정말 듣고 있자니 이게 예배시간의 설교인지 도대체가 이런 설교를 들어야 하는 나는 뭔 죄가 많은지!
설교의 주제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내용인데 복이 왜나오고 의사 판,검사는 왜 나오는지...
설교가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반사요 끝무렵에는 복과 자기 신세타령이니 이런 쓰레기 같은 설교를
하는 목사도 문제인데 그런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인들은 얼마나 한심한지.
문제는 한 교회에서만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와 유사한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극동방송을 들어보면 아침일찍부터 시작해서 예닐곱정도의 설교가 나오는데 들어보면 거의가 동일한 내용
비슷한 방향의 설교를 하고 있다. 이런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고 방송선교헌금을 하는 교인도 있고
하루종일 극동방송만 듣는다는 교인들이 있으니 어떻게 교회가,교인이 올바른 믿음위에 설 수 있을까.
지금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특히 개독교라는 심각한 오명으로 불리워지는 것은 일반교인들의
잘못 된 삶으로 인해서 보다는 목사들이 생활속에서 성직자로서의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세속적이고 저속한 물질숭상과 사람차별을 노골적으로 하는 잘못 된 모습을 보인 탓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인들을 잘못 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어줍잖은 설교 때문이라 생각된다.
설교가 바르지 못하면 교인들의 삶도 바르지 못하며 목사자신도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른 설교가 그립다.바른 설교가 아쉽다. 강단에서 개그를 그치고 예화도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진실한,
순수한 성경말씀만을 갖고 참 예배를 해야한다. 그럴때 교회는 다시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목사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떳떳하게 전하여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전하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