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m봉 지난 헬기장에서, 왼쪽부터 도~자, 자연, 해마, 상고대, 메아리, 신가이버
早蛩啼復歇 새벽 귀뚜라미 울다가 그치고
殘燈滅又明 가물거리는 등잔불 꺼질 듯 다시 밝아지는데
隔窓知夜雨 창밖에 내리는 밤비
芭蕉先有聲 파초 잎에 먼저 뿌리네
――― 백거이(白居易), 『야우(夜雨)』
▶ 산행일시 : 2013년 7월 13일(토), 비, 오후에 그침, 안개
▶ 산행인원 : 8명(영희언니, 자연, 드류, 상고대, 메아리, 신가이버, 해마, 도자)
▶ 산행시간 : 8시간 12분
▶ 산행거리 : 도상 12.4㎞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시간별 구간
06 : 36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36 - 인제군 인제읍 가아리(加兒里) 새말 신천교 앞, 산행시작
09 : 30 - 헬기장
11 : 07 - 764m봉
11 : 42 ~ 12 : 10 - 926m봉, 점심
12 : 21 - 헬기장
13 : 05 - 군시설(철조망 보관막사)
13 : 44 - 도솔지맥 주릉 진입
13 : 58 - △902.4m봉
14 : 35 - 능선 분기봉
15 : 15 - 다시 능선 분기봉
16 : 48 - 양구군 남면 야촌리(野村里) 아랫광치, 산행종료
1. 등로
▶ 926m봉, 점심
간밤 내내 베란다의 쇠난간에 들이치는 금속성 빗소리로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비가 저리
퍼부어대는데 산행 오가는 도로가 온전할까로 시작하여 산사태, 급류 등 여러 기우(杞憂)로
뒤척였다. 날이 밝자 미구(未久)에 부닥치게 될 비치레가 어떠할지 오히려 기대가 자못 커 서
둘러 동서울터미널로 나간다. 여느 주말이면 원행하는 등산객들로 북적이는 터미널인데 오
늘 아침은 냉랭하다.
어제 시작한 세찬 빗줄기는 오늘 아침 인제 가는 동안에도 그 기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
는다. 춘천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 뒷바퀴 물고 이는 물보라가 볼만하다. 화양강휴게소
를 잠깐 들리고 나서 차안에서 산행준비하기 시작한다. 배낭 커버 씌우고, 카메라 비닐봉지에
넣고, 스패츠 매고, 비옷 걸친다. 비옷은 우비가 아니라 방한(防寒)을 위해서다. 인제에서 31
번 도로로 들고 이평리 돌아 대하로 흐르는 가아천(加兒川)을 거슬러 올라간다.
새말 신천교 앞에서 멈춘다. 우장 갖추고 차에서 우르르 내려 산속으로 가는 모습이 마치 미
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에서 작전에 투입되는 ‘이지(Easy)’ 중대의 용감무
쌍한 한 장면과 같다. 임도로 낸 들머리 성묫길은 능선 끝자락 개활지까지다. 여러 기의 무덤
이 개망초 풀숲에 덮여 있다. 무덤 위 덤불 뚫고 생사면 한 피치 오르면 능선 마루다. 참호 옆
소로는 군인의 길이기도 하다.
나지막한 첫 번째 봉우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왼쪽으로 방향 틀어 잘못 내렸다가 굉음 내는 계
류 물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어 아차 하고 뒤돈다. 일로서진. 긴 오름길이다. 안팎으로 젖는다.
안은 땀으로 젖고 밖은 비로 젖는다. 비가 그리 차갑지 않다. 이럴 바에는 비옷을 벗는 편이
낫다. 시원하다. 얼굴 들어 비 맞는다.
┣자 갈림길 봉우리. 너른 헬기장이다. 2008년판 영진지도에 아직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삼각
점이 있다. 인제 431, 2007 재설. 숫제 샤워하며 산길을 간다. 언제 어디서 우리가 이런 산길
을 갈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이런 비를 맞아 볼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우리가 이런 빗소리
를 들어볼 수 있을까? 대단한 호사(好事)가 아닐 수 없다. 참나무 활엽 두들기는 무수한 빗소
리를 칸타빌레 음악으로 듣는다. 바람 치고 뇌성 번개를 곁들인다면 이 산길이 사이키델릭의
환상적인 무대이겠는데……. 과욕일 터.
가까운 산릉이라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호수 격인 거목의 노송을 자주 만난다. 용
린(龍鱗)의 수피(樹皮)에서부터 위엄을 느낀다. 등로 주변 곳곳의 숱한 구덩이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이다. 그해 이맘때도 큰비가 내렸다. 2007년 7월 4일자 국방일보의 기사 일부분이
다.
“1951년 7월 한국전쟁 중반 인제지구의 한미합동작전 중이던 리빙스턴 중령(대대장)이 이끄
는 포병부대가 작전상 후퇴를 하게 됐다. 하지만 홍수로 범람하는 급류를 건너지 못하고 지체
하던 리빙스턴 중령의 부대는 적 기습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됐고 리빙스턴 중령 역시 중
상을 입었다.
급히 야전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받던 리빙스턴 중령은 치료 도중 사망하게 됐고 임종 직전 부
인에게 다리를 놓아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리빙스턴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다리를
만들었고 리빙스턴 중령의 이름을 따 ‘리빙스턴 교’라고 명명하게 됐다.”
우리 가는 산길이 대암산에서 뻗어 내린 주릉의 한갓 지릉이라고 얕잡아볼 것이 아니다. 비록
봉봉이 이름을 갖지 못했고 산행표지기 한 장 걸려 있지 않지만 봉마다 대차서 입안으로 연신
흘러드는 빗물 섞인 짭쓰름한 땀을 맛보며 오른다. 764m봉. 풀숲 헤쳐 깊은 교통호 넘고 올라
선 벙커 위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은 앙금받이로 내린다. 우리는 방향 꺾어 남서진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는 모자 벗고 얼굴 들어 줄기차게 내리는 비 맞아 열 식힌다. 간혹 더덕
더듬은 흙손은 물구덩이인 풀숲을 몇 번 휘저으면 깨끗이 씻긴다. 901m봉 가기 전 ┫자 능선
분기봉. 왼쪽은 인제의 진산이라는 기룡산(起龍山, 가아리봉, 940m)인데 거기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편도 3.2㎞나 된다.
901m봉 넘고 오르막은 잠잠해졌다. 잣나무 숲속이다. 926m봉 바로 아래다. 평평한 곳을 점
심자리로 골라 상고대 님이 준비해 온 타프 친다. 타프 아래에서 듣는 빗소리가 경쾌하다. 신
가이버 님은 라면을 끓인다. 식후 커피는 디폴트. 이 또한 산중 빗속의 우아한 정취다.
2. 화양강휴게소에서
3. 화양강휴게소에서
4. 화양강휴게소에서
5. 신천교 앞 산행 들머리
6. 첫 헬기장에서
7. 현 위치 파악 중
8. 타프 아래 점심을 마치고
9. 등로
10. 상고대 님
▶ △902.4m봉, 아랫광치
926m봉 정상에 서도 사방 조망은 안개에 가렸다. 군시설인 철조망 보관막사를 지나고 너른
헬기장이 나온다. 능선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 사면은 개벌(皆伐)하였다. 개벌한 사면 아래 깊
은 골 따라 힘겹게 오른 군사도로와 야트막한 안부에서 만나고 곧 도솔기맥 주릉에 올라선다.
남진하는 도솔지맥도 잡목 우거진 오지다.
비는 뚝 그쳤다. 아쉽다. 안개가 엄습한다. △902.4m봉.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맑은 날에는
대암산과 그에 이르는 도솔지맥이 훤히 보이는데 오늘은 안개로 가렸다. 삼각점은 2등 삼각
점이다. 인제 23, 2007 재설. 지지난주 문수봉 산행에서 다리 근육파열의 부상을 당한 도~자
님의 혹시 모를 탈출을 위해 두메 님 더러 광치령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
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무는가 보다.
도솔기맥 주릉을 경계로 인제에서 양구로 넘어간다. 데자뷰가 아니다. 예전에 지나왔다는 기
억만으로 낯익은 길이다. 교통호 넘고 넘는다. 안개 자욱한 숲속 농담의 수묵화 감상하며 간
다. 능선이 세 줄기로 갈라지는 곳. 맨 왼쪽은 713m봉 넘어 청리나 용하리로 내리고, 가운데
능선이 우리가 내리려는 아랫광치로 간다.
맨 오른쪽 능선은 골로 가서 가오작교(佳伍作橋) 윗광치로 떨어진다. 어제 도상산행 시 각별
히 유념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 길이 험하다고 했더니 다수에 휩쓸려 골로 간다. 가파른 사면
뚝뚝 떨어지다 골에 가까워서야 도~자 님이 GPS 꺼내 알바임을 선언한다. 트래버스 할 요량
으로 왼쪽 사면을 빙 돌았더니만 눈앞의 깊디깊은 골짜기에 지레 놀라 내렸던 봉우리를 다시
오른다(GPS로 무장한 상고대 님과 도~자 님을 비롯한 4명은 골을 횡단하여 건너편 능선을
올랐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여기다. 고도 230m를 도상거리 430m로 오른다. 수적(獸
跡)조차 없는 거의 수직사면이다. 오지(五指)로 풀뿌리 나무뿌리 돌부리 움켜쥐며 기어오른
다. 한편으로 이 알바 덕에 일당(8시간 산행)을 건지게 되었다. 힘들게 가운데 능선을 붙잡는
다. 이제라도 지도 손에 꼭 들고 그에 눈 박고 간다.
잔매에 골병든다고 했다. 나지막하지만 제법 실한 봉봉을 오르내린다. 벙커가 지키는 군인의
길을 따른다. 고도 50m 오른 삼지(三指) 능선 분기봉에서는 맨 오른쪽 능선, 쭈욱 내린 그 다
음 Y자 능선 분기봉에서는 왼쪽 능선으로 간다. 산기슭 덤불 헤쳐 콩밭으로 떨어지고 밭두렁
돌아 아랫광치다. 여태 빗물에 젖고 땀에 절어 뜨뜻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나니 개운하기
이를 데 없다.
11. 926m봉 지난 헬기장에서, 흰 점점은 빗방울
12. 등로
13. 등로
14. 도솔지맥 주릉이 가까웠다
15. 으아리(Clematis mandshurica), 미나리아재빗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
16. △902.4m봉에서
17. 등로, 비 그치자 안개가 물씬 일기 시작하였다
18. 노랑망태버섯
19. 아랫광치 가는 길
20. 아랫광치 가는 길
21. 구글어스로 내려다 본 산행로
첫댓글 장대비 맞으며 한발한발 내딛는 오지길.... 시원하고 개운하셨겠습니다.^^ 수고하셨슴돠^^
그쪽은 비가 많이 왔나 보군요, 이쪽은 새벽에 좀 폭우가 쏟아지고 오전에는 조금씩 오다가 오후에는 그쳤는데, 우중에 수고하셨습니다.......
모처럼 시원한 날씨속에 션한 산행이었습니다^^
비가오면 비가와서 좋고~~
땡볕이면 땡볕이라 좋고~~
알바하면 알바해서 좋고~~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좋은 오지 산행이네요~~
전 이렇게 책상에 앉아 댓글만 달고 있으니,
나오는게 똥배뿐이 없습니다.
복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직 다리가 낳지 않았습니까 일단 나오셔서 인해 보시라니까요^^
얼마만에 맞아 본 비였는지...
시원하다 못해 개운한 느낌이였습니다.
첫 번째 사진에서 뭐 때문에 웃었는지 빗속에서 웃는 모습이 보기 좋내요^^
수고하셨습니다
늠름한 오지인의 아우라 넘치는 첫번째 사진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몽환적 분위기의 두번째 사진 아주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