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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행복을 만드는 언어(마12장30-37)
성경본문:마태복음 12:30-37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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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말씀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한다.
▶ 하나는 로고스요,
▶ 또 하나는 레마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의 말씀은 (로고스)인데, 주로 사상을 나타낸다.
로고스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66권의 성경 말씀을 말한다.
반면 레마의 말씀은, 66권의 로고스의 말씀 가운데서, 특별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오늘 내가 꼭 들어야 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라고 하신 말씀은 (레마)인데, 입술을 통해 "말씀되어진 말"을 말한다. 능력을 지닌 말이 될 때, '레마'라고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4:4). 또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의 말씀은 레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여기의 말씀도 레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레마의 말씀을 들으면 담대해 지고, 삶이 풍성해 진다.
야곱이 정들었던 집을 떠나, 먼 타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의 마음은 허허벌판과 같았다.
무엇을 붙들어야 될 지 몰랐고, 어디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꼭 붙들 수 있는 레마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얼마나 단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든지, 야곱은 그때들은 말씀을 꼭 붙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레마의 말씀을 들었기에 지칠 줄 모르고 살았다.
80의 나이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야 했던 모세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을 듣고, 그 백성들을 이끌고 40년 광야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레마)을 듣고, 회개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레마)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눅5:5), 많은 고기를 잡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울었다.
로고스와 레마는 차이점이 있다.
생각이 소리를 입고 나오면 말이 되지만, 남에게 끼치는 파장은 다를 수 있다.
어떤 감정이나 의견이나 사상을, 그냥 생각 속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남에게 끼치는 파장은 없다.
생각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내 입에서 나간 말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나를 통해 나간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기에, 성도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하고,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
잠15:4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따뜻한 말은 생명을 주지만, 삐뚤어진 혀는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해 주는 말을 해야 한다.
사람은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죽음에 던지기도 한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와 '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아내의 짝은 남편이기에,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와 상대 관계에 있는 남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자녀의 짝은 부모이기에,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목사에게는 교인이요, 교인의 짝은 목사다. 그래서 서로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지 못하면 비참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짝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신다.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인정해드리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주님께서 앞길을 인도해 주신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려서, 눈멀고 벙어린 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 어떤 사람은 성령의 사건이라고 인정했지만, 똑같은 사건을 놓고, 다른 사람들,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마귀의 장난이라고 해석하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나쁘게 말했다.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사건을 놓고, 악령의 사건으로 해석하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고 성령의 사람인데도, 그들의 눈에는 죽여야 할 만큼, 나쁜 사람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셨다.
역사를 보면,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이렇게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초대 기독교인들을 처참하게 처형하였다. 중세 로마 카톨릭은, 종교개혁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근세의 공산주의는 교회를 파괴하고,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을 죽였다.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도, 이런 사건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비판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31-32). 왜 성령을 거부하면 용서받을 수 없나요?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쁜 감정을 버리고, 좋은 말을 하며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나쁜 감정을 버리지 못했기에, 좋은 말을 결코 할 수 없었고, 결국 예수님을 죽이게 되었다.
여러 가지 감정 때문에, 혹은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했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내일은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길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네 말들로 인하여 네가 의롭게 되고, 또 네 말들로 인하여 네가 정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도 하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말은 행복은 만드는 도구다. 그러므로 우리 공동체가 행복하려면, 말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
미국 존 홉킨스 대학병원에는 '신의 손'이란 별명을 가진 소아신경외과 과장 '벤 카슨' 박사가 있다. 그가 세계 최고의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게된 데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많은 의사들이 수술을 포기했던, 하루 120번씩 발작을 일으키던 4살짜리 악성뇌암 환자를 수술로 완치시켰고, 머리와 몸이 붙어서 태어난 '샴 쌍둥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수술을 통해 '벤 카슨'은,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신의 손을 가진 벤 카슨 박사도, 성장기를 아주 어두웠기에,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의사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나, 8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편모슬하에서 자라면서, 불량소년과 어울려 싸움질만 하는 불량소년에 불과했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백인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고, 산수시험을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는, 항상 꼴찌만 하는 지진아였다.
이런 불량소년이 오늘날 어떻게, 세계 의학계에서 신의 손이라는 칭송을 듣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한 기자가 "무엇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나의 어머니, 쇼나 카슨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늘 꼴찌를 하고, 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할 때, '벤 너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하며, 끊임없이 용기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끊임없이 불어 넣어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 사로잡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결국 의대에 들어가 '신의 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성공하게 만들어주는 말이 있다.
행복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주는 말이 있다. 말은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력과 힘을 가진 인생 최대의 자산이다.
그래서 잠18:21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다. 사람은 말의 열매를 먹고산다. 독이 든 말을 먹으면 죽고, 생명이 들은 말을 먹으면 산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말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우리가 "죽겠다"고 말할 때, 어깨가 축 늘어짐을 느낀다.
"죽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죽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 수 있다. 나는 산다"고 말하면,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살 준비를 시작한다.
'에모또 마사루'가 쓴, '물로부터의 전언'을 보면,
바하의 감사곡 '골드베르그의 변주곡'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체는 선명한 6각형이 생긴다.
반면 쇼팽의 '이별곡'을 들려주면, 기본적인 6각의 결정체에서 멋지게 나누어져 있다.
한국민요 '아리랑'을 들려주면, 애절하게 가슴앓이를 하는 모습이 된다고 한다.
'너는 나를 괴롭게 해. 죽여버리겠어'를 들려주면, 물은 추하게 일그러지더니,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Heavy Metal' 곡을 들려주면, 6각 구조의 결정체가 산산조각이 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는 말을 했을 때는, 촬영반 일동은 감격을 넘어서 눈물이 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살 수 있다'는 환자들의 의지의 말을, 치료의 중요요인으로 생각한다.
살겠다고 말하면 살아나고, 죽겠다고 말하면, 말처럼 죽어가기 시작한다.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를 뿜어내는 왼쪽 심장에 문제가 많다.
오른쪽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 의대의 심장내과 전문의, '닥터 레빈'이라는 의사는, 어느 날 심장병을 갖고 있는 한 여인이 들어왔는데, 이 여인은 뜻밖에도 오른쪽 심방에 문제가 있었다.
닥터 레빈이 이 여인을 진찰하던 중, 응급환자가 들어왔다는 급한 연락이 왔다.
레빈 박사는 급히 학생들에게 "여기 TS 환자가 있으니 들어가 봐"하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몰려 들어가, 여인의 가슴에 저마다 청진기를 대어보면서 신기한 표정으로 "TS래, TS"하며, 수근거렸다. TS란 Tricuspid Stenosis의 약자로, 오른쪽 심방에 문제가 있다는 의학용어다.
응급실에서 돌아온 '레빈 박사'는, 특별히 심각하지 않은 증상이었으므로, 다음 날 다시 오라며, 그 여인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낮에 진료했던 그 여인이, 응급실에 한 여인이 실려왔다.
레빈 박사는 급히 응급처치를 한 뒤, 이튿날 이 여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제는 심장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요?"
그러나 여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레빈 박사가 계속 묻자, 이 여인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선생님이 더 잘 아실 거 아니예요?"
이 여인은 학생들이 "TS"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서, "TS가 도대체 뭘까? 왜 저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수근대나?" 생각했다.
의학용어를 모르는 여인은, TS가 무슨 약자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T=terminate끝, S=Situation상태, 끝장난 상태로 결론을 내렸다. TS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한 여인은 큰 충격을 받고, 심장에 급속한 이상을 일으키게 되었다.
레빈 박사가 아무리 TS가 우측 심방에 문제가 있는 의학용어라고 설명해줘도, 여인은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로 생각하고, 끝내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여인의 심장기능은 급속히 악화되어, 그녀의 생각과 말대로, 그녀의 생명을 끝장나고 말았다.
말의 위력은 무섭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명약'이 되지만 부정적인 저주의 말은 '독약'이 된다.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말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 못 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낫기를 원하나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시자, 병자는 일어나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