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라
수필가 임현제 님
정선 골짜기로 부임하게 된 부부교사와 나는 잘 아는 사이다. 그곳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가슴이 콱 막혀왔다.
전교생이 12명인데 하나같이 생활 형편이 어렵다고 한다.
머리카락은 있는대로 흘러내리고 되는대로 묶고 버려도 오래전에 버렸을 낡은 옷을 입고
어머니의 긴 치마를 허리에 둘러 허리에 끈으로 질끈 동여맨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일상의 그림이란다.
멋이라고는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다는 산촌의 아이들!
어떤 사실을 접했을 때 첫번째로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은과 생각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두번째로 나 자신의 마음이요, 세번째는 악마의 마음이란다.
생각해보면 그럴듯하여 인정하고 만다.
나는 산촌마을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를 지배한 첫번째 마음에 실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전교회장이 된 아들에게 숙제 하나를 주었다.
전교생과 함께 마음과 손을 펼쳤다.
못입을 정도의 낡은 옷은 안된다는 원칙을 지니고 작아져서 안입는 옷들을 구했다.
내가 보아도 탐나는 옷들이 많았다.
25인치 텔레비전 박스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내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무엇인가 내가 해야할 일이 더 있다는 것을 심중으로 들으며 생활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은 서쪽하늘을 향해 늘 열려 있음을 나는 느낀다.
나는 또 첫번째 마음에 충실하기로 하고 그 아이들의 일에 발벗고 나섰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은 수상소식과 상금 몇 십만원이 활짝 웃으며 내 주머니로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좋은데 쓰라고 보내 주셨나보다.
5내지 10밀리미터 정도 크거나 작은 신발은 당연한듯 신고 다닌다는
산촌 아이들에게 신발을 보내주고 싶었다.
어디에 가면 값싸고 세련되고 튼튼한 신발을 구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신발 가게를 기웃거렸다.
신발을 들고 이것 저것 살핀다.
토라질 때 드러나는 아들 녀석의 툭 튀어나온 입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막내 녀석이 신발 타령을 했다.
그러나 아직 신발이 신을만하다고 말도 못 꺼내게 했던 일이 내 마음의 벽으로 다가왔다.
나의 의지는 그 벽을 뛰어 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엔 또 어머니의 뚱한 얼굴이 나타난다.
좋은 일이기는 하다. 내 자식에게 만원 조금 넘는 아들 녀석의 체육복도 돈을 주고 구입하기 아까와
졸업생에게 부탁해서 얻어 입히면서 그 아이들에게 새 신발을 사 준다고?
이렇게 말하시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벽을
이번에도 장대 높이뛰기 선수처럼 훌쩍 뛰어 넘으며 생각에서 떠나 보냈다.
산촌으로 전화를 넣어 일일이 신발 치수를 알아내고는 가게를 찾았다.
학교까지 왕복 두 시간을 걸어 다닌다는 그 아이들을 위해 튼튼하고 모양새도 좋은 신발을 고른다.
많은 신발을 구입하자, 주인이 사연을 알아내고는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면서 아주
저렴하게 계산을 하는것이 아닌다
이익을 포기하는 가게 주인의 얼굴이 늘 마주치던 사람들의 얼굴보다 더 반짝 빛이 났다.
생각은 모든 것을 바꾼다고
내 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무도 그 푸르름이 너무나 곱게 물들어 보였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난 뒤보시기 좋았더라 하셨는데 그 마음이 처음이 순간 내 마음일성 싶다.
양말까지 넣어 포장을 한 신발은 기차 꽁무니에 매달려 칙칙폭폭 노래를 부르며 손을 길게 흔들며 떠났다.
신발이 지나간 기찻길은 반듯이 누워 오랫동안 따스한 온기를 안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위해 역을 나오는데 어디서 날아 왔는지 역 마당엔 비둘기 떼가 평화롭게 모이를 줍고 있었다.
그 사이를 노닐다가 빠져나온 평화 한 자락이 내 마음에 들어와 오랜 친구처럼 금방 어울렸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다.
작기만 한 그 일로 얻어진 즐거움은 오랫동안 내 생활을 이끌며 삶 속에 기쁨을 토해내고 있었다.
남에게 계산없이 무조건 준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산촌으로부터 편지꾸러미가 날아왔다.
그 속에는 전교생의 편지가 소복 들어 있었다. 한꺼번에 12통의 편지를 받았다는 것에 감동했지만
그 편지에 정성으로 적힌 아이들의 깨알같은 글자에
우리 네 식구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큰 감동을 받았다.
읽고 또 읽는 우리 아이들의 눈에도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우리는 찬바람이 불면 보낼 방한화를 계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