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 현실이 여실히 느껴지는 곳이다. 고성 읍내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도로에 자주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곳곳에 있는 검문소가 북녘이
코앞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고성 여행을 시작하는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조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망대 앞 10km 지점에 있는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청서를 접수하고, 안보 교육 영상을 시청한다. 이후 개인 차량으로 출발해 민통선 검문소에서 차량 출입증을 받으면 비로소 모든 절차가 끝난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풍경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 건물이 나온다. 새하얀 건물 옥상에는 태극기가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전망대 한쪽에는 공군351고지전투지원작전기념비, 351고지전투전적비 등
이 있다. 351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통일전망대 앞쪽에 있다. 원래
366m인 산이 대포와 함포 사격, 폭격 등으로 351m가 되었다니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전투기와 공군351고지전투지원작전기념비
전망대에 들어서면 1층 통일관에 북한 주민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생활용품과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통유리로 된 2층 전망대 외부에는 망원경이 있다.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전망대에 서면 북방한계선, 남방한계선,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진다.
2층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북녘을 바라보는 관람객
해금강도 보인다.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 크고 작은 섬이 기묘한 모습으로 떠 있다. 맑은
날이면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는 왼쪽부터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다. 북녘이 이렇게 가까웠나 싶다. 전망대 아래 휴전선 철책, 남북한을 잇는 동해선 도로와 철도가 보이고, 바다 쪽에는 통일미륵불과 성모마리아상이 섰다.
바다 쪽에 있는 통일미륵불
통일전망대에서 DMZ박물관이 가깝다. 최북단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자리한다. DMZ(
비무장지대)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며, 우리나라 DMZ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됐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 서해안 임진강 하구부터 동해안 고성 명호리까지 248km 지역이다.
민통선 내에 자리한 DMZ박물관 전경
DMZ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과 통일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3층 건물에는 전쟁·군사 자료와 유물을 비롯해 자연, 생태, 민속, 예술 등 한국전쟁과 DMZ에 관한 전시물이 있다.
DMZ박물관 내부 전시물과 영상
2층 전시실은 ‘축복받지 못한 탄생 DMZ’ ‘냉전의 유산은 이어진다’ ‘그러나 DMZ는 살아 있다’로
나뉘는데, 화살표를 따라 관람하면 된다. 3층에는 방문객이 평화 메시지를 적은 엽서로 만든 ‘평화의 나무가 자라는 DMZ’가 눈길을 끈다.
엽서로 만든 ‘평화의 나무가 자라는 DMZ’
화진포해변은 고성에서 겨울 바다의 낭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추운 날씨에도 서로 어깨를 꼭 껴안은 연인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을 거닐고, 아이들은 밀려드는 파도와 장난치느라 마냥 즐겁다.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화진포 백사장은 파도가 지날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소리를 낸다. 조선 시대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진포 백사장을 명사(鳴沙)라고
했다. 화진포는 드라마 <가을 동화>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은서(송혜교)와 준서(송승헌)가 어린 시절 모래에 그림을 그린 곳도, 준서가 싸늘히 식어가는 은서를 업고 하염없이 걸은 곳도 화진포해변이다.
겨울 바다의 낭만이 느껴지는 화진포해변
화진포해변 옆에 화진포의성이 있다.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인근 이승만·이기붕별장과
함께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단장되어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화진포의성은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 베버가 1938년 건축했다. 당시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삼팔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외국인 휴양촌의 귀빈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김경희 등 자녀를 데려와서 귀빈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성
화진포해변 뒤에는 화진포가 자리한다. 화진포는 넓이 2.3㎢, 둘레 16km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 호수로, 한쪽에 이승만별장이 있다.
얼어붙은 화진포
단층 슬래브 형태 건물은 현재 이 대통령 내외의 유품전시관으로 운영된다.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옛 모습대로 복원된 이승만별장 집무실
화진포에서 고성을 대표하는 거진항이 10분 거리다. 거진항의 아름다운 풍광은 항구 반대쪽 방파제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 쪽으로 불쑥 나온 방파제 끝에 서면 거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진항에 정박된 배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도 가볼 만한 곳이 있다. 송지호는 둘레 4km로 큰 편은 아니지만, 어느 석호보다 아름답다. 송지호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이국적인 자작나무와 울창한 갈대숲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탐방로가 마련되어 산책하기
좋다.
송지호를 한 바퀴 도는 탐방로
고성에 갔다면 막국수를 꼭 맛보자. 토성면에 자리한 ‘백촌막국수’는 먹는 방법이 독특하다. 막국수와 함께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가 나오는데, 이 국물을 붓고 취향에 따라 참기름과 설탕을 넣는다. 톡 쏘면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 한 숟가락 먹어보면 식도락가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동치미가 함께 나오는 ‘백촌막국수’의 막국수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통일전망대→DMZ박물관 둘째 날 / 거진항→화진포해변→송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