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칠백아흔세 번째
고잔도古棧道의 교훈
중국 역사에 따르면 당나라 현종玄宗은 연호年號를 ‘개원開元’이라 하고 어진 인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국가를 안정시키고 3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이때를 “개원지치開元之治”라 했고, 태평성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개원 연간 동안 현종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의 상소가 올라오면,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 황금으로 장식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답니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신하 한휴를 다른 신하가 비난하자, 현종이 그랬답니다. “나는 한휴 때문에 나날이 야위어 간다고 해도, 백성들은 한휴 덕분에 나날이 살이 쪄간다. 그래서 나는 한휴가 필요하다.” 이렇게 성군이었던 그가 즉위한 지 30년이 되어 연호를 ‘천보天寶’로 바꾼 뒤로는 양귀비楊貴妃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국정을 멀리했습니다. 이 틈에 이임보李林甫, 양국충楊國忠과 같은 간신奸臣들이 국정을 농간하고, 양귀비의 양자養子가 되어 현종의 총애를 받던 절도사節度使 안녹산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순식간에 장안長安을 점령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종은 지금의 중국 성도成都인 서촉西蜀으로 허둥지둥 피난하고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때 현종의 피난길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험한 촉도’라고 이백이 읊었듯이 산이 험악하고 물살이 센 절벽에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 잔도棧道였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그린 그림을 고잔도古棧道라 하여 세종대왕은 이들을 모아 이를 거울로 삼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조선 왕조에서 손꼽는 현군이 된 이유였습니다. 왕은 야위고 백성은 살찌게 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시끄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