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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이 설교는 제 설교가 아니고 중국 한인교회를 시무하는 최민환 목사(제 친동생)가 저희교회에 와서 주일낮예배시 한 설교입니다.
하나님께 감동받는 인생
에스라1:1-6
2011년 8월 21일 주일 최민환 목사(심천 사랑의교회) 설교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설교:
이동명씨의 <멋진 사람 107인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산한 좌석버스에서 앉아 가는데 몸이 깡마르고 얼굴에 칼자국이 있어서 어쩐지 분위기가 험악한 남자가 올라 왔다.“선생님! 사모님들! 소란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소매치기 전과 8범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쳐서 평생 절반을 감방에서 보낸 불쌍한 인간입니다. 이제 여러 선생님 사모님들 앞에서 더 이상 소매치기를 하지 않고 선량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드리면서 평소 여러 선생님 사모님들이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모님들, 이렇게 어깨에 둘러메고 다니시는 핸드백은 이미 반쯤 저희들의 것입니다. 반드시 한 손으로 잡고 감싸 안으셔야 합니다. 돈이나 수표를 따로 넣은 지갑도 대부분의 경우 백을 열면 바로 꺼내 쓰기 편하시도록 앞에 넣고 계신 데 그것도 위험합니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가운데 칸 깊숙한 곳에 넣어 두십시오.
둘째로 선생님들 바지 뒤쪽 호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다니시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 지갑은 저희들의 것입니다. 윗옷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십시오. 그리고 지갑 넣은 호주머니에는 반드시 동전 세 개를 넣어 두십시오. 양복 안주머니 아래쪽 1cm 부분을 칼로 째는 것은 소매치기의 기초적인 기술입니다. 이때 동전 세 개가 먼저 떨어지며 이렇게 소리가 나게 됩니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그는 바닥에 동전 세 개를 떨어뜨렸고 바닥에 부딪치는 선명한 금속성 소리가 버스 안에 울렸습니다. 동전까지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시범까지 보이는 성실성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소매치기로 평생을 보낸 사람다운 전문기술과 주의사항 강의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슬쩍 본론을 꺼냈습니다.
“이 물건에 단돈 1,000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선생님 사모님들께서는 하나씩 팔아 주시면 저는 이제부터 제 손으로 떳떳이 번 돈으로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선생님들! 사모님들! 잠시 소란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그는 팔 물건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앞쪽의 신사 한 사람이 지갑을 열어 오천 원짜리를 꺼내 물건을 샀고, 모든 손님들이 줄줄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거스름돈도 돌려받지 않고 모두 물건을 사주었을까요? 감동받았기 때문입니다. 소매치기기술을 써서 돈을 벌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유익을 주며, 똑바로 살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놓은 것입니다.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오늘날 감동을 주는 방향으로 장사를 한다. “고객감동”이것이 기업의 핵심전략입니다. 감동받으면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지 않거든요.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것을 흉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교회 와서 받아야 하는 감동은 무엇인가? 멋진 건물을 가진 예배당? 멋진 예배스타일? 그것이 아니라, 성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국어사전에 감동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하나님이 숨을 불어넣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감동을 받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여기 나와 예배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감동받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야하나요?
1.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충동적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페르시아, 미디아,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터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러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니 왕의 힘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레스왕은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국가를 다스리는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는 한 나라의 생산노동력이자 국가재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레스왕은 자기 나라에 손해가 나는 불리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왜 그랬는가요? 그 이유는 고레스 왕이“하나님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시면, 이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살았던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미국 시애틀에 살았던 백인 게리 리지웨이는 1982년부터 1998년까지 48명의 여성을 강간한 후 죽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성경을 읽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어떻게 48명이나 죽이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도 유사한일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인 강호순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물론 교회를 다닌 목적은 불순합니다. 여자를 사귀기 위해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연쇄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게리리지웨이나 강호순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살인을 했습니다. 왜 그랬는가요?
그들이 감동이 아닌 충동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충동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자신과 주변에 피해줍니다.
충동이란 말은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을 말합니다. 쇼핑중독, 마약중독, 인터넷 중독, 도박중독, 방화, 도벽 등은 충동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로또 살 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을 감동을 구해도 하나님은 감동을 주시지 않죠?
왜요? 복권은 도박충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충동이 아닌, 감동을 주십니다.
충동은 사탄마귀로부터 나옵니다.
차이가 무엇인가요? 충동에 사로잡히면 후회할 짓을 하게 됩니다. 충동구매는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분 있죠? 나중에 후회하잖아요?
혹시 충동적으로 결혼하신 분이 있는가요? 후회하고 있죠?
교회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없이 봉사하고, 기도도 안 해보고 충동적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감동으로 하는 헌신과 충동적으로 하는 헌신은 다릅니다. 금새 티가 납니다.
충동적으로 봉사를 시작한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다가 힘들면 바로 때려치웁니다. 옆 사람 인사하세요. “그러지 마세요.”
이스라엘 왕 다윗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으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살았을 때에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감동 따라 살았을 때에 그는 사람을 쉽게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충동 따라 살 때 많은 사람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가 충동적으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요? 그는 자신의 충동적 행동 때문에 충성된 신하를 잃었고,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들 암논과 압살롬을 잃었습니다. 한 번의 충동 때문에 가정도 흔들리고, 국가마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 번 더 충동대로 행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사단의 충동을 받았습니다.
역대상21:1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은 갑자기 충동적으로 자기나라의 국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자기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하가 말리는데도 사단의 충동질에 못 이겨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가요?
다윗의 충동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충동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충동으로 살면 사람을 잃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살면 많은 사람을 얻습니다. 가정도 살리고, 교회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동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우리의 의지로는 충동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딸이 둘인데, 그중 막내인 이슬이가 이제 5살이라 교회 유아부 어린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초청 잔치를 한다고 사탕을 나눠주면서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슬이가 그 사탕을 먹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탕은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주는 거야. 엄마가 그랬더니, 이슬이가 하는 말“나 예수님 몰라요.” 사탕 하나에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얼마 전 저희 가정이 교인들과 토요일에 해변에 가서 놀았는데, 둘째 아름이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밤에 집에 가자니까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주일이니까 교회 가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우리 딸이 하는 말 “예배 안 드리면 안 돼요?”
둘 다 목사 딸들이다. 먹고 싶고, 놀고 싶으니까 예수고 예배고 필요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5:16-17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은 성령이 때마다 깨닫해 주시는 감동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 즉 충동적으로 살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충동은 성령의 감동을 거스릅니다. 성령의 감동은 충동을 거스릅니다.
즉 서로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면 충동 따라 살지 않게 됩니다.
충동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야 육체의 탐심과 정욕을 이기게 됩니다. 옆 사람 인사합시다. “충동받지 말고, 감동받고 삽시다.”
2.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실 때, 좋은 일 두 가지가 생깁니다.
1)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자 그는 유태인에게 유리한 일을 했습니다. 포로도 풀어주고, 빼앗아왔던 것도 돌려주고, 챙겨주는 돕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시니,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 재물로 도왔습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시면 원수도 친구로 변합니다.
역대하 18장에 보면 재미있는 일이 나옵니다. 여호사밧왕과 아합왕이 함께 연합하여 전쟁하러 나갔습니다. 적군인 아람나라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인 줄 알고 좇아와서 죽이려고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게 하신지라”(대하18:3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자, 적들이 그를 죽이지 않고 떠나간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이게 말이 됩니까? 전쟁 중에 그러는 군인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감동이 임하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삼상19장에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는데, 사울 왕이 죽이러 왔다가 감동받고 칼을 내려놓습니다.
여러분, 교회 주일예배에 왜 1,2부 예배 왜 생겼는지 아나요? 교인끼리 서로 싸우고 나서 꼴 보기가 싫어서 따로 예배드리려고 1,2부 예배가 생겼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미운 사람이 예쁘게 보이고,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구하세요. 그러면 나와 불편한 관계의 사람이 나와 좋은 관계가 됩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 올해 표어는 “은혜 받고 회복되는 가정”입니다.
“은혜 받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부부회복, 가정회복이 이루어집니다.
2) 어려운 일도 쉬워진다.
고레스 왕이 포로로 끌려와 있는 유태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살던 사람들이 돌아와 성전 건축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성전 건축에는 많은 인력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왕이 돌아가란다고 돌아가는 게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누가 갔는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일어나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성전 건축하라는 말씀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담으로 와 닿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으로 와 닿았습니다. 교회는 감동받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집니다.
그리고 성전을 세우는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나 많은가요? 푼돈으로 되는가요?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이 임했기에, 성전을 건축하기에 충분한 재물을 이방나라의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감동이 임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지고, 어려운 일도 쉬워집니다.
우리 교회에는 한국 분들과 결혼한 중국 여자분들이 교회를 따라 나옵니다.
한국국적을 소유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를 잘 알지 못하다보니, 말을 못 알아들어서, 설교시간에 제 얼굴만 보다가 가는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죠. 괴롭겠어요? 안 괴롭겠어요? 괴롭겠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은 커녕,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괴로울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중국어로 통역하는데 필요한 무선송수신기가 필요했습니다. 50만 원 정도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임대료 때문에 그걸 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요예배 광고시간에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와서 통역 무선송수신기가 한국 돈으로 50만원하는데, 찬조해달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예배 후 바로 한 여자집사님이 저를 찾아와 안 그래도 갑자기 50만원이 생겨서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마침 목사님 광고를 듣고 자기기 해야 하겠다는 감동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여자집사님이 찬조하시겠다고 해서, 그럼 이미 다른 분이 먼저 했으니, 우리교회에 빔 프로젝터가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해줄 수 있는가 했더니, 그분이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분 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주머니 속에서 돈이 나오겠는가요?
불가능하다고 안 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감동주시면 교회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됩니다.
모든 목사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은혜 받아 하나님의 일꾼이 될 것인가입니다. 답이 뭔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으면 됩니다. 감동받으면 뜯어말려도 전도하고, 기도하고, 예배 나오고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새벽기도 나가는 은천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전에 부목사로 있던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가 참 부족했답니다. 그래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설교를 하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부족해 보이는 설교에 감동받아 헌신한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분이 깨달은 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은 사람의 방법과 말이 아닌,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나 기술은 배우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구세주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박사학위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감동을 주고 깨닫게 해주어야만 가능합니다. 감동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신학대학 부총장이 수련회강사로 초빙 받았습니다. 그런데 매년 수련회에 참석하는 한 여성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 분은 상처도 많고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사람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집회를 마쳤을 때, 한 여자가 찾아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여자가 그 여자임을 알았지만 회피할 수 없어서 다음날 점심에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도랑에 감자튀김을 담은 그릇과 휴지와 컵이 버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마음의 감동이 왔습니다. “저 쓰레기를 주워라.”그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수련회 강사로 왔는데 어떻게 저 쓰레기를 줍습니까? 누가 보면 권위가 떨어져 말씀에 은혜가 안 될 겁니다.” 그때 또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도 주워라.” 그는 계속 항변했습니다. “하나님! 저건 환경 친화적 제품이니까 비만 내리면 다 녹아내려요.” 그때 또 감동이 왔습니다. “그래도 주워라.” 할 수 없이 그는 도랑으로 내려가 쓰레기를 줍고 근처의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침 집회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날 점심에 그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몇 마디 나누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산책길에서 우연히 목사님의 뒤를 따라 걷는데 그때 목사님이 도랑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결국 그의 순종은 상처로 인해 신음하던 여인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여인은 치유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음성에 순종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결론
1)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충동 따라 살지 않게 됩니다.
2)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풀어지고, 좋아진다.
▷어려운 일도 쉽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새벽기도와 금요기도회에 나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도록 노력하세요.
부르는 찬송과 외치는 기도를 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은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이 어려운 시기를 승리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