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 명산 비슬산(琵瑟山), 일연스님의 자취가 깃든 참꽃의 군락지>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한시 5편 소개-
대구광역시는 1000m가 넘는 북쪽 팔공산(1,192m)과 남쪽 비슬산(1,084m)이 대구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대구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琵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각북면), 경상남도 창녕군에 걸쳐 있는 높이 1,084m의 산(천왕봉)이며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관기봉(觀機峰)·대견봉(1,065m)과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앞산과 이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무언가를) 싸고 있는 산" 일명 포산(苞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 『내고장 전통 가꾸기』(1981)에서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일컫는 말이며 중국어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도식 발음으로 비슬(琵瑟)이라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비슬산은 일연스님의 자취가 깃든 참꽃의 군락지로 유명하다.
◉ [비슬산의 사찰] 비슬산에는 유가사(瑜伽寺)·소재사(消災寺)·용연사·용문사(龍門寺)·임휴사(臨休寺)·용천사(湧泉寺)·대견사(大見寺) 등의 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다. 정상 등반시에 마주하는 대견사(大見寺)는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기 810년에 보당암으로 창건되어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께서 22세(1227년) 때 승과 시험에 장원급제 후, 첫 초임지 주지로 22년간 주석했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산 밑에는 소재사(消災寺)가 있고 한때 이 절은 비슬산의 중심 사찰이었다고 전한다.
○ 덧붙여, 대견봉 아래 ‘대견사(大見寺)’에 관한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2편 나온다. 먼저 태종 16년 병신(1416년) 2월 29일에 ‘경상도 현풍현(玄風縣) 대견사(大見寺)의 관음(觀音)이 땀을 흘렸다.’ 그리고 세종 5년 계묘(1423년) 11월 29일에 ‘경상도 현풍현(玄風縣) 비슬산(毗瑟山) 대현사(大見寺)의 석상(石像) 장륙관음(丈六觀音)에서 땀이 흘렀다’고 적혀있다.
○ 그리고 비슬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유가사(瑜伽寺)는 대구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흥덕왕 2년인 827년에 도선이 창건하였다. 비슬산의 사찰 중에 가장 큰 규모로, 그 아름다운 승경으로 유명하다.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일연스님도 한때 이곳에 기거하였다. ‘유가(瑜伽)’는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뜻이긴 하나, 본래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한 파(派)로, ≪유가경(瑜伽經)≫을 성전(聖典)을 삼는 종파이다. 다음으로 용천사(湧泉寺)는 청도군 각북면 헐티재 아래에 위치하고 있고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 [비슬산 산행] 대구시에 거주하는 이웃분이 대구 사람이 될려면 팔공산과 비슬산은 꼭 정상을 밟아 봐야 한다고 하기에, 선배들과 함께 비슬산 등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매년 열리는 참꽃축제 기간에 맞춰가면 인산인해를 이루어 주차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그렇긴 하지만 산 정상 평원에 펼쳐진 참꽃의 드넓은 군락지에서 참꽃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는 이번에 이미 참꽃의 절정기가 지나서, 참꽃 끝물 무렵에야 선배들과 등산을 했기 때문에, 발걸음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완연한 봄날이라 그런지 산 전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온통 초록과 연두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등산 코스] 보통 유가사와 휴양림 코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팀은 ‘비슬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차를 주차(무료)하고 산 정상 대견사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3차례나 쉬어가며 간식을 먹고 쉬엄쉬엄 대견봉(대견사)에 도착하니 2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여기서 다시 참꽃 군락지를 가로질러 최고봉 천왕봉 정상까지 가서 약30분간 더 노닐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서 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하니 왕복 총 6시간 20분 가량 소요[총 13Km]되었다. 그런데 사실 휴양림 주차장 바로 위 언덕길에서 출발하여 산정상 입구까지 운행하는 서너 대 작은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총 산행 시간을 2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차비가 왕복 만원(편도 오천원)을 줘야하고 또 천천히 비슬산 비경을 즐기면서 오르는 산행의 맛을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무조건 셔틀버스를 이용하시길 당부한다.[6시간 등반은 조금 힘들었음] 식사는 인근 산속 도로변에 식당도 많지만 현풍 시내로 내려와서 드시는 게 더 좋을 듯싶다.
● 다음 ‘灰’ 운의 칠언율시 <유비슬산(踰琵瑟山)>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이자 효자였던 송와(松窩) 안명하(安命夏 1682~1752)의 작품으로 측기식이다. 『송와문집(松窩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산 정상에서 보면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신선의 바둑판과 석가의 불조대(佛祖臺)가 있는데 조물주가 천지조화로써 기이한 모습을 만들었다. 범이 걸터앉은 듯, 용이 꽈리를 틀고 우뢰를 내뿜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유쾌해져 휘파람을 길게 불며 먼 하늘과 광활한 대지를 머리 들어 자꾸만 보게 된다고 읊었다.
그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거두(巨頭)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제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충실한 학자였다. 밀양 출신으로 밀양 광천서원(廣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스승 이현일이 거주하던 안동 임하현 금소리로 가던 중에 비슬산을 지나가며 지은 한시가 바로 <유비슬산(踰琵瑟山)>이다.
1) 유비슬산[踰琵瑟山] 비슬산을 지나가며 / 송와(松窩) 안명하(安命夏 1682~1752)
琵瑟山頭大洛隈 비슬산 꼭대기에서 보면 큰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데
何年造化此胚胎 어느 때에 조물주가 여기에 천지조화를 낳았더냐.
靈蹤尙指仙翁局 신령의 자취라고 가리키는 곳에 늙은 신선의 바둑판이 있고
奇址流傳佛祖臺 기이한 터는 석가의 불조대(佛祖臺)라고 널리 전해온다네.
虎踞已經千劫火 범이 걸터앉아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붉은 빛을 발하는 듯하고
龍盤爭噴九天雷 용이 꽈리를 틀고 다투듯 높은 하늘로 우뢰를 내뿜는 듯하다.
我來快覩憑長嘯 나는 (여기에)와서 기대어 휘파람을 길게 불며 유쾌히 보는데
萬里乾坤首幾擡 만 리 먼 하늘과 땅을 몇 번이나 머리 들어 보았던고.
● 다음 ‘質’ 운목(韻目)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유비슬산(遊琵瑟山)>은 근대시기 대구시 유학자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 1855~1933)의 작품으로 평기식이다. 이 글은 그의 문집 『후담문집(後潭文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자는 정여(定汝), 호는 후담(後潭),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근대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으로 활동한 유학자이다. 대구 상덕사에 문우관을 창건하여 봄가을로 강회를 열었다.
그는 급변하는 근대 시기에 대구에서 활동한 유학자로서, 어느 해 비슬산에서 벗들과 즐겁게 노닐다 보니 어느 듯 해가 중천에 떴다면서 비슬산 모습을 보고 ‘부처의 형상’ 같다고 한다. 그리곤 서구 문명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사변적인 허상만 추구하는 성리학의 맹점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이 짧은 시에서 봄바람도 더 이상 따뜻하게 불지 않는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성학(聖學) 천 년 동안에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다(聖學千年如有失)’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그는 대구시의 근대학교인 협성학교(協成學校)의 건립에 참여하였고, 1907년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선도적으로 참여한 애국지사가 되었다.
2) 유비슬산[遊琵瑟山] 비슬산에서 노닐다. / 채헌식(蔡憲植 1855~1933)
莊臺不復春風瑟 장대(莊臺)에 봄바람이 다시는 소슬하게 불지 않으니
聖學千年如有失 성학(聖學) 천 년 동안에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다.
今見靑山彷佛形 이제야 푸른 산을 바라보니 부처의 형상과 비슷한데
徘徊抵到三竿日 배회하며 도착해 보니 해가 중천에 높이 솟아 있네.
[주1] 장대(莊臺) : 잘 꾸며 놓은 돈대(별장).
[주2] 성학(聖學) : 성인(聖人)이 가르치거나 닦아 놓은 학문. 여기서는 성리학
[주3] 삼간일(三竿日) : 삼간(三竿)은 ‘해가 세 길이나 떠올랐다.’는 뜻으로, 날이 밝아 해가 벌써 높이 뜸을 이르는 말이고, 일출삼간(日出三竿)은 해가 장대(長-) 세 개(個)의 높이로 올랐다.’는 뜻으로, 해가 높이 솟아 있음을 이르는 말.
● 다음 ‘冬’ 운목(韻目)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 <유가사(瑜伽寺)>는 고려 후기 정당문학이부상서,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영헌(英憲) 김지대(金之岱)의 작품으로 『동문선(東文選)』 제14권에 수록되어 있다. 가을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초가을 저녁이다. 안개와 노을 속에 유가사(瑜伽寺)가 보인다. 구름 속에 산길이 뻗어있고 하늘 끝에 먼 산들이 천만 겹겹이다. 차 한잔 들고 나니 사찰 처마에 초승달 걸려 있고 때마침 서늘한 종소리 들려온다. 속세의 벼슬아치를 보고 시냇물도 웃길래, 씻고 또 씻어도 속세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다고 읊조렸다.
3) <유가사(瑜伽寺)> 김지대(金之岱) 13세기 초중기 때 문신
寺在煙霞無事中 안개와 노을이 고요한 속에 자리잡은 절,
亂山滴翠秋光濃 산엔 푸른빛이 점점이 들어 가을빛이 무르익고
雲間絶磴六七里 구름 사이 가파른 길이 6, 7리나 뻗었는데
天末遙岑千萬重 하늘 끝의 먼 산은 천만 겹이로다.
茶罷松簷掛微月 차 들고 나면 솔처마에 초승달 걸려 있고
講闌風榻搖殘鐘 설법이 끝나자 서늘한 탑에 종소리 울려오네.
溪流應笑玉腰客 나 같은 벼슬아치보고 시냇물이 응당 웃으렷다.
欲洗未洗紅塵蹤 씻고 싶어도 씻을 수 없는 속세의 흔적이여.
● 다음 ‘寒’ 운(韻)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평기식 <유가사(瑜伽寺)>는 개항기 공조판서, 이조참의,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유헌(遊軒) 장석룡(張錫龍 1823~19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문집(遊軒文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1857년 홍문관교리 등을 거쳐 현풍현감에 제수되어, 이때 유가사를 방문하고 이 시를 남겼다. 아름다운 사찰 유가사(瑜伽寺)가 뛰어난 경치 속에 있다. 깊은 산빛은 태고적 그대로이고, 승려와 흰 구름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소나무는 흐르는 세월 속에 또 어떤 세상을 보고 또 어떤 인연을 만날꼬. 여기는 남녘이라 음력 10월 겨울인데도 아직 춥지가 않다면서 마무리했다.
4) <유가사(瑜伽寺)> / 유헌(遊軒) 장석룡(張錫龍 1823~1908)
地勝瑜伽寺 승경에 자리 잡은 유가사(瑜伽寺)
西風暫駐鞍 서풍이 불어 잠시 말을 머물게 하네.
山深太古色 산이 깊어 태고의 빛 그대로이고
僧與白雲閒 승려는 흰구름과 더불어 한가하네.
松老知何世 소나무는 늙어가매 어떤 세상을 만나
仙緣在此間 신선과의 인연을 이 사이에서 맺으려나.
南來殊節候 남녘으로 오니 기후가 다른 까닭에
十月未全寒 10월인데도 아직 춥지 않구나.
● 다음 ‘微’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측기식 <유가사(瑜伽寺)>는 조선후기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했던 여항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작품으로, 『추재집(秋齋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 조수삼(趙秀三)이 언급하길, 가을비가 그치고 단풍이 물드는 어느 해, 구름 따라 유가사에 와서 스님들과 황국차를 마시는데 농가의 사람들이 가혹한 세금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또 그가 말하길,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여기 유가사에서 약 10일간 머물면서 ‘사찰이 너무 아름다워서 돌아갈 생각도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5) <유가사(瑜伽寺)> 조수삼(趙秀三 1762~1849)
松深餘雨滴人衣 솔숲에 내리던 여남은 비가 사람 옷을 적시는데
一夜秋泉幾寸肥 하룻밤 가을 샘물에 몇 치나 살이 쪘더냐?
磵底白雲隨客上 시냇물 속의 흰 구름은 길 가는 나그네를 따라가고
寺前楓葉過山飛 사찰 앞의 단풍은 산을 넘어 날아왔네.
延齡釋子餐黃菊 수명을 늘여가는 석가의 제자는 황국화 차를 마시는데
避稅農家入翠微 농가의 가족은 세금을 피해 푸른 산속으로 들어오네.
無恠檀園醉畵史 단원 김홍도(金弘道) 취화사(醉畵史)가 이상할 것이 없으니
來遊十日不言歸 10일 동안 와서 놀다가 돌아간다는 말도 못했다고 하네.
[주] 김홍도(金弘道 1745~1806) : 조선 영조 때의 화가.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史)·첩취옹(輒醉翁)이다. 이름 홍도(弘道)는 "도를 넓힌다"라는 뜻이고, 취화사(醉畵史)는 술 취한 환쟁이, 단원(檀園)은 명나라 문인화가 "단원 이유방(1575~1629)"의 고상한 인품을 사모하여 그의 호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고면거사(高眠居士)라는 호는 "베개를 높이하고 편히 자는 거사, 첩취옹(輒醉翁)이란 호는 ‘곧 취하는 늙은이’라는 뜻이고, 노년에는 단구(丹邱) 또는 단구(丹丘)라는 호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선인이 머물며, 밤낮으로 늘 밝은 곳"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