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에 윗도리 춘추복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제법 살살거리며 엷은 빗물을 뿌려대는 초가을 대로길을 달랑 우산한개 의지하고 마음속으론 이미 결정한 시내 걷기를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 화 . 수요일까지 걷기를 소홀히 할수밖에 없었던것은 콜로라도 덴버에 살고있는 여동생이 3박 4일동안 부산누부와 함께 우리집에 와있었기 때문이다 그기에다 이틀째 되는날에는 서울에 살고있는 우리누부의 한평생 막역지기 친구 군자누부까지 청주 우리집으로 불러내려 아내와 내가 그들 셋을 섭섭챦게 대우하느라 걷기를 소홀히 할수밖에 없었다 올해 우리누부의 연세가 81세시다 하지만 누부친구군자누부의 올해나이는 우리누부와는 4살이나 적은 77세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둘이 부산 사대부중 . 부산여고 . 그리고 연세대학 국문과 동기인것은 우리누부의 호적 출생 누락에 기인된 것이라고 알고있을뿐 자세한 내용은 나도 잘모른다 군자누부는 지난번까지를 합해서 청주 우리집으로 내려온것이 벌써 3번째다 몇년전에는 이분 또한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누부의 막역지기 친구인데 순희 누부라는 분이시다 이분은 부산 남성여고 출신이어서 우리누부와는 출신학교가 다르면서도 평생친구로 연을 끊을수 없었던것은 중고등학교때 같은교회에 출석함으로 그기에다 주일학교 선생으로 훗날에는 교회성가대로 오랜세월 부산항서교회에서 젊은날 서로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기에다 우리 여동생이 남성여중 . 고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도 그렇고 순희누부도 그렇고 함께 한국에서 자리한적은 없었지만 어긋난 길일망정 몇년전 순희누부가 한국에 나왔을적에 군자누부와 역시나 우리누부가 청주 우리집으로 불러내려 우리동생의 안부를 물으며 서로가 타국인 미국생활을 물을수 있었던것은 동생과 나도 국민학교때 부터 항서교회의 주일학교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일학교 선생이었고 좌우지간에 실타래처럼 얽힌 교회생활이 이리저리로 연이되어 평생을 긴세월 띄엄띄엄 이긴 했지만 그 명줄을 놓지 못하고 가끔씩이나마 만나면서 살아 왔던것 같다 부산 항서교회의 믿음안에서의 인연은 사실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다 이들의 연결고리가 된것은 우리 어머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우리들이 흔히 신앙생활에 구슬수에 오르내리는 모태 신앙인이다 항서교회의 모든 인연은 우리 어머님의 신앙과 항서교회의 출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외에도 추자누부 . 영희누부 . 이번에 군자누부가 동생으로 인해 우리집에 와있던 몇일간에 나를 이쁘다고 바리바리 챙겨주셨던 옛날 옛적에 같은 교회에서의 누부들 이름으로 거들먹거리며 여동생과 함께 주일학교 학생으로 돌아가 이젠 찿아보기 어려운 초심에 믿음으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동생이 덴버로 돌아가기 하루전날 우리딸이 고모에게 출근관계로 미리 하직 인사를 왔었다 어릴때야 인사법이란게 고개숙여 안녕히가세요 정도로만으로 충분했지만 우리딸도 돈벌이하는 사회인이 아니던가 !! 잠시 식탁에 앉아서 과일 몇점을 줏어먹더니 둘고모 그리고 군자누부까지 거마비라며 봉투 3개를 식탁위에 올려놓곤 ~~ 저는 이만 가볼께요 ~~ 하면서 저거 집으로 돌아갔다 고모들이야 전날에도 가끔 우리집에 오면 우리딸이 교통비라며 봉투를 챙겨 드리곤 했지만 군자누부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 우야꼬 -- 내가 이걸 받아도 되냐 ? ~~ 하면서 말이다 우리 딸이지만 그순간 내 어깨가 어슥하였다 이와같은 행위는 자식들이 자라면서 우리 아내의 손님 접대법을 그데로 배운것이라 생각한다 나또한 옛날친구 혹은 나에게 외삼촌 외숙모 또는 살아생전 어머님이 계실때 우리집을 찿은 손님들에겐 항상 거마비 봉투를 잊지 않았다 우리가 시킨게 아니였지만 설령 시킨다 했던덜 그거야 본인이 금전문제라 하기싫으면 그만이지 않켔어 !! 자연스럽게 배운것이다 날 오줄없는 서람이라고 여겨도 좋다 나는 속내론 아내와 내자식들이 항상 자랑스럽다 이쯤에서 오늘 이야기 본론으로 돌아간다 본의 아니게 전편에서의 이야기가 길어졌기에 오늘 상황은 급마무리 한다 오늘 우중이었지만 빗줄기가 가랑비 수준이었고 때론 빗줄기가 멈추기도 하여 몇일 충분치 못했던 운동량 채우기엔 딱좋은 날씨였다 모충동 고개를 넘어갈 무렵엔 윗도리 벗어서 가방에 쑤셔 담았다 반팔이었지만 계속해서 모자 깔데기에는 땀방울이 스며들었다 육거리를 지나 영운교 개천을따라 올라 동부종점 우측으로 건설되는 아파트 대단지 산비탈 도로를 내려서 원봉중학교 지나 한참만에 용암동 1 . 2동 접경에 위치한 제법 큰교회 인듯한 은성교회를 돌아 아래로 내리던중 S 클라스에서 건설을 거의 마친듯한 대단위 아파트를 끼고 분평사거리로 진출 --- 남부정류소 대합실에서 잠시 퇴근길 객들에 틈속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충북대학교 병원으로 그리고 서남교회 . 개신동 홈푸러스를 지나 고속버스터미널로 마지막 저녁 7시경에 우리동네 조개탕 포차에 좌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