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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물야? 그냥 '마을'인데..
곰달래는 곰과 관계 없고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가율리 가재울
-서울시 서대문구 가좌동 가재울
가율리(加栗里).
괄호 안 설명 글, 한자 등 표기 조판. 예 : 가율리加栗里.
연도 표시일 경우에는 예외로 괄호를 살려주세요. 예 : 세종 15년(1412)에)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가율리에 있는 ‘가재울’ 마을 앞에 있는 표석이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지나다 마을 입구에 내려 표석을 보았다.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동네 사람들에게 이 근처 마을들에 관해서 물었다. 가율리는 가재울, 밤골, 분토(분톳골)의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이 가재울이 40여 호로 가장 크다고 했다.
가율리는 본래 안성군 율동면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러 동네를 합해 ‘가율리’라 했다. ‘가율리’라는 이름은 가좌동(가재울)과 율동(밤골)을 병합하고 ‘가좌’와 ‘율동’의 이름을 각각 따와 지은 것이다. 가율리는 지금은 보개면에 속한다.
한 노인에게 이 마을에 가재가 많이 사냐고 물었다.
“허 참, 가재가 눈이 멀기라도 했나요?”
마을 앞의 작은 내를 찾아보니 가재가 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쪽 개울을 찾아가 한 마을 노인에게 물었다.
“가재요? 뭔 가재가 눈이 멀었다고 이런 개흙바닥 개굴창에서 산대요?”
마을 노인은 참 엉뚱한 질문을 하는구나 하는 말투였다.
● 가재는 주로 어디에서 살까?
땅이름을 보면 무엇이 많다고 해서 ‘~골’ ‘~울’ ‘~말’ 하는 식으로 붙은 것이 많다. 돌이 많다고 돌골, 모래가 많다고 모랫골, 갈나무가 많다고 갈골, 밤나무가 많다고 밤골, 뱀이 많다고 뱀골…….
그러나 이런 땅이름을 가진 마을 중에는 전혀 그와는 관계없는 곳도 무척 많다. ‘가잿골’, ‘가재울’과 같이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도 그 한 예인데, 이런 곳을 실제로 답사해 보면 정말로 이를 실감하게 된다. 대충 훑어보아도 한 시군에 보통 10개 이상의 가재울, 가잿골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로 가재가 그렇게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행정지명에 ‘가재’ 이름이 붙은 곳으로는 경기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佳才里),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가재월리(加在月里), 인천시 서구 가좌동(佳佐洞) 등이 있다. 가재는 주로 어디에서 살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어렸을 때 냇가에서 물 밑의 돌을 들춰 가며 가재를 잡던 생각이 난다. 가재는 아무 데서나 살지 않는다. 대개는 물이 그리 많지 않은 작은 골짜기의 밑바닥 돌 틈에 숨어 살고 있다. 그렇기에 가재를 잡으려면 돌이 많은 좁은 냇가로 가지, 모래나 개흙이 깔린 넓은 시내로 가지 않는다.
‘가잿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가재가 많아 붙은 것이라면, 이런 마을은 산골짜기 돌이 많은 냇가에 있어야 옳다. 그런데 가잿골의 분포 상태를 지역마다 살펴보면 가잿골은 그런 냇가에는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가재는 게 편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가재는 비슷한 종(種)인 게의 편을 든다는 뜻으로, 즉 자신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편을 들 때 쓰는 말이다. 서로 형편이 비슷하거나 인연 있는 사람끼리 서로 잘 어울리고 사정을 봐 주거나 감싸 준다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외형이나 형편이 비슷하고 인연이 있는 것끼리 서로 잘 어울리고 감싸 주는 모습을 비유할 때도 이 말을 쓴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 있을 때도 이 속담을 쓴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는 한자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있는데, 오늘날 정치 분야에서도 상대방을 헐뜯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끼리끼리’라는 말인데,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라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꿩 먹고 알 먹고’나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속담과도 거의 비슷하게 쓰인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속담과도 통한다. 이와 뜻이 통하는 사자성어로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있다.
이처럼 속담에 등장하는 ‘가재’가 땅이름에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다. 비슷한 동물에 새우도 있고 방게도 있는데 왜 그리 땅이름에 가재가 많은 걸까?
● 벌 가장자리에 있어 가재울(갖의울)
가재울 공원, 가재울 성당, 가재울 교회, 가재울 아파트, 가재울 찻집, 가재울 미용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이나 북가좌동에 가면 이런 이름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 동네는 온통 가재 천지인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의 가재울에 대하여 《한국지명총람》에서는 ‘가재’와 관련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재울(加佐里, 이계말). 경티말 너머에 있는 마을. 가재가 있고 산이 둘러쌌으므로 ‘가재울’ 또는 한자명으로 ‘가좌리(加佐里)’라고 하며, ‘이계말’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서울 사람들이 ‘모래내’라고 부르는 곳 근처인데, 이 동네가 과연 가재가 많아 ‘가재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산속도 아니고, 개천의 상류도 아니다. 북한산 쪽에서 홍제동을 거쳐 흘러오는 모래내(홍제천)가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니, 내의 위치로 봐서는 개천의 하류라 가재가 서식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또 ‘가재울’이란 이름이 가재 때문이라면 ‘모래내’란 이름과도 거리가 멀다. 모래가 많다는 모래내에 가재가 살 리도 없다.
“이 너머 개울에 가재가 많았다지요, 아마.”
마을 이름의 내력을 물으면 대개 이와 비슷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대개 ‘가재울’과 가재는 별로 관계가 없다. ‘가재울’은 주로 ‘가장자리’라는 뜻인 ‘갓(갖)’에서 나온 말인데, 이런 이름은 수도권에도 여러 곳 있다.
갖+(의)+울 > 갖애울 > 가재울
그렇다면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의 본래 이름인 ‘가재울’은 어떻게 해서 붙여진 것일까?
북가좌동 일대는 옛날 고양군 연희면 지역으로, 그 남쪽에는 ‘잔들(잔다리)’이라는 벌이 펼쳐져 있다. 언덕 쪽에 있는 이 마을이 벌 가장자리에 있어 ‘가재울(갖의울)’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그 벌 남쪽에 궁말(궁동, 宮洞)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궁동근린공원이 있다. 남쪽의 홍제천(弘濟川) 건너 쪽이 동교동·서교동이고, 다시 그 남쪽이 노고산과 와우산이다. 홍제천의 토박이 땅이름은 ‘모래내’인데, 서울 사람 중에는 지금도 이 이름을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 근처에는 전통 깊은 모래내시장이 있다.
모래내 물줄기가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 합류하는 지점에는 사천교(沙川橋)라는 다리가 있다. 여기에서의 ‘사천(沙川)’은 ‘모래내’의 의역 표기이다.
‘가장자리’의 사투리인 ‘가새’나 ‘가쟁이’를 뜻한다.
땅이름에서의 ‘가재’는 보통 ‘가장자리’의 사투리인 ‘가새’나 ‘가쟁이’를 뜻한다.
‘가장자리’란 뜻의 옛말은 원래 ‘ᄀᆞᆺ(ᄀᆞᇫ)’이었다. ‘ᄀᆞᆺ’은 오늘날 ‘물가’, ‘냇가’와 같은 복합어에만 남고, 단일어로서는 거의 접미사로만 쓰인다. 오늘날 우리가 표준말로 쓰고 있는 ‘가장자리’란 말도 ‘ᄀᆞᇫ’과 ‘자리’가 합쳐진 복합어 형태의 말이다.
ᄀᆞᇫ+자리 = ᄀᆞᇫᄋᆞ자리(ᄀᆞᇫ의 자리)
ᄀᆞᇫᄋᆞ자리 > ᄀᆞᅀᆞ자리 > 가사자리 > 가상자리 > 가장자리
‘가재’가 들어간 땅이름에서는 주로 ‘ᄀᆞᆺ’에서 나온 것이 많다. ‘가장자리’란 뜻의 ‘ᄀᆞᆺ’은 ‘가사’, ‘가자’, ‘가재’ 등으로 전음되어 전국에 매우 많은 관련 지명을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땅이름에 많은 ‘가재’라는 낱말에서 어떤 우리말 특히 친척말들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말이 ‘갓(갖)’의 뿌리를 두었다고 생각하면 관련 낱말들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관련 낱말을 생각할 때는 음운상으로 연철 관계, 모음 변화 관계, 자음 변화 관계 등을 살펴야 할 것이다..
*수정
<연철 관계>
갓>가새. 가생이, 가상이
갓>갖>. 가재. 가쟁이, 가주(가죽)
<모음 변화 관계>
갓>것. 것(겉)
갖>겆. 겆욱(거죽)
갖>겉. 겉(表)
갓>갓>긋>굿. 굿(구시,구석)
<자음 변화 관계>
갓>것>긋>끝
갓>것>껏. 껕(껍질)
<친척말>
가(邊), 가장자리, 가생이, 가죽, 살갗, 거죽, 겉, 겉질(껍질)
<친척 땅이름>
가재목(경북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
가재올(경기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고양시 일산구 가좌동,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 충북 청주시 남이면 가좌리)
가실(경남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 경기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충남 공주군 신풍면의 입동리)
갓골(각골, 경남 울산시 웅촌면 고연리, 강원 영월군 하동면 각동리, 인천 서구 백석동)
갑골(충북 청주시 오창면 각리, 대전시 중구 갑동)
갑곶(경기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 가재울 가잿골(가재골) 가좌동 가좌리 https://cafe.daum.net/name0900/baO6/284 https://cafe.daum.net/name0900/baO6/372
곰달래는 곰과 관계 없고
큰 들판의 내, ‘검달내’에서 ‘곰달내’가 되기까지
곰이 달렸다는 들판이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지역 이름이 생긴 유래를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달빛이 비친 내가 들을 지난다며 ‘고운 달빛이 비치는 내’라 하여 ‘곤달내’가 되고, ‘곰달래’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과연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곰달내(곰달래)’라는 이름은 앞에서 이야기한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큰 들판의 내’라는 뜻의 ‘검달내’가 ‘곰달내’로 변한 것이다. 일제가 1914년 만든 지도를 보면 이 지역 지명을 한자로 ‘고음월리(古音月里)’라고 써 놓고, 그 옆에 가타가나로 ‘고우무다루리’라고 적힌 것이 보인다. 이것은 ‘곰달리’를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검’, ‘감’, ‘곰’ 등은 땅이름에서 ‘큰’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옛 지도에서는 이곳의 곰달내가 한자로 ‘고음달내(古音達乃)’라고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곰’ 자를 한자로 적을 수 없어서 이를 ‘고음(古音)’이라고 적었다는 사실이다. ‘달내’는 그대로 음차해 ‘달내(達乃)’라고 적었다. 《대동여지도》 등 우리나라 옛 지도에서는 우리 소리를 그대로 적을 수 없는 것은 이처럼 글자를 조합해서 적는 일이 많았다.
땅이름 | 곰달내 신월동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 Daum 카페
꽃밭은 꽃과 관계 없고
곶(串)
<표준국어대사전>에 ‘곶’은 ‘바다로 뻗어나온 모양을 한 곳’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곶’은 해안에만 있는 땅이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갈곶’, ‘갈고지’, ‘돌곶’, ‘돌고지’ 등 바닷가가 아닌 곳에서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해안선이 긴 우리나라에서는 이 ‘곶’이 바닷가에 많을 수밖에 없다. 바닷가의 한 지역이 뾰족뾰족 튀어나가 있는 곳이 얼마나 많겠는가? 따라서 해선선이 복잡한 서해안이나 남해안에는 이 ‘곶’이 들어가 땅이름이 많다. 황해도 서해안의 '장산곶'이나 동해안이 ‘호미곶’이 다 그러한 곳이다.
인천 남동구 고잔동(高棧洞), 경기 안산시 고잔동(高棧洞), 평택시 청북면 고잔동(高棧洞), 전북 부안군 상서면 고잔리(高棧里) 등이 ‘곶안’을 바탕으로 한 이름이다.
곶의 안쪽이면 '곶안(高棧)', 곶의 바깥쪽이면 '곶밧'이 된다. '밧'은 '밖'의 옛말. '곶안(고잔)’은 '곶+안'이 구성인데, 이러한 땅이름은 서해안 일대에 무척 많다. '곶의 바깥쪽'이란 뜻의 '곶밧'은 경음화(硬音化)하여 '꽃밭'으로도 옮겨갔다. 의역되어 한자식 지명 '화전(花田)'이 되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 비금면 신원리와 도촌면 우이도리에 있는 '곶섬'도 바다쪽으로 땅의 한끝이 불쑥 취어나가 붙여진 땅이름이다.
'곶'은 '꽃'으로 변해 '곶나리', '곶내', '곶마'가 '꽃나리', '꽃내', '꽃마'로 옮겨가 한자로는 ‘화(花)’자로 의역된 것이 많다.
‘곶’과 비슷한 지형으로 ‘구미’가 있다. 이 ‘구미’는 대개 ‘땅이 튀어나와 빙 돌아가는 자리’라는 뜻으로 붙는데, ‘곶’과 뜻이 비슷하다.
곶안과 곶밭 http://cafe.daum.net/name0900/baO6/575
노루목은 노루와 관계 없고
‘노루목’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부른다
‘노루목’이라는 땅이름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알아보기 전에 우선 이와 관련된 우리말을 살펴보자.
‘넓다’는 말을 전라도 지방에서는 ‘누릅다(노릅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느릅다’, 경상도나 강원도 지방에서는 ‘널따’라고 한다.
땅이름에서도 ‘넓다’는 뜻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넓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쪽으로 옮겨 간 것이 많다.
‘노루목’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노루목’이라고 그대로 부르는 곳이 많지만, ‘누르’가 되어 ‘누르목’이나 ‘눌목’처럼 ‘누렇다’는 뜻으로 변화된 이름으로 불리는 곳도 있고, ‘널’이 되어 ‘너르목’이나 ‘널목’으로 불리는 곳도 있으며, ‘나르목’이나 ‘날목’으로 불리는 곳도 있다. 어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노루의 털 빛깔을 ‘누런색’이라 부르는 것도 ‘노루’를 바탕으로 한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옮겨 간 뜻
다른 뜻으로 옮겨 간 땅이름
‘누렇다’는 뜻으로
누르목-누르실(황곡. 黃谷), 누르목(황항. 黃項)
‘느러짐’의 뜻으로
느리울(어곡. 於谷), 느르재(어현. 於峴)
‘넓다’는 뜻으로
너르골(광촌. 廣村), 너르실(광곡. 廣谷)
지방별로 대체로 크게 나누어 보면 ‘어’ 모음 발음권인 경상도 지방에서는 ‘너러목’, ‘널목’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오·이’ 모음 방언권인 전라도 지방에서는 ‘노리목’, ‘놀목’으로, ‘으’ 모음 방언권인 충청도 지방에서는 ‘느르목’, ‘늘목’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서울과 가까운 중부지방에서는 비교적 표준 발음이라 거의 원음에 가깝게 ‘노루목’으로 불리고, ‘아’ 발음을 비교적 편하게 하므로 ‘나르목’이나 ‘날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 노루목 https://cafe.daum.net/name0900/baO6/431
말무덤은 말과 관계 없고
'말', ‘마로’는 ‘높음’을 뜻해
한자가 보편화하지 않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사물의 이름이건 사람의 이름이건 당시의 우리말을 바탕으로 한 고유명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을 제대로 옮겨 적을 우리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자로 옷이 입혀진 채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역사책에는 삼국시대 초기의 인물들이 한자로 기록되어 오기는 하지만, 이를 잘 연구해 보면 우리말을 그렇게 한자로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어요.
한 예로, ‘술종(述宗)’이란 인물이 나오는데요, 이는 ‘’(술마로=수리마로)의 한자 표기로 보고 있어요. 신라 초나 중기의 인물 중에는 이처럼 ‘’를 ‘종(宗)’으로 취한 것이 많습니다.
또, 신라의 왕호 중에 ‘마립간’이 나오죠. 이는 ’으뜸 어른‘의 뜻으로 보입니다. 고구려 벼슬 중의 ‘막리지’도 나오는데, ‘치’(‘높은 이’의 뜻)로 보고 있어요. 고구려의 인명이나 관명 중에 ‘웃치’, ‘치’ 등 ‘치’가 많이 들어간 것을 보면, 당시에는 이것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사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벼슬아치’, ‘장사아치’ 등 ‘사람’의 뜻으로 ‘치’가 쓰이고 있죠.
‘’는 주로 ‘마로’로 불린 듯한데, 당시에는 이 말이 ‘으뜸’ 또는 ‘높음’의 뜻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을 호칭하는 접미사로 쓰여졌던 겁니다.
‘’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마로’, ‘마루’, ‘마리’, ‘모로’, ‘모루’, ‘모리’ 등 여러 갈래로 달리 불리면서 조금씩 뜻의 분화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마루’(꼭대기:산마루, 등성마루, 고개마루 등), ‘머리頭’, ‘뫼山’, ‘마리頭.首’(동물의 머리수를 셀 때의 단위)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이 말들은 원래 ‘’이라는 한 뿌리말에서 파생,분화하여 친척 무리를 이룬 것입니다.
지방 사투리에 ‘마룻소(아주 큰 소)’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마루’도 ‘큰’의 뜻이니 결국 ‘큰 소’라는 뜻이죠. 자기 부인을 일컬을 때 쓰는 ‘마누라’는 원래 오랜 옛날에 노비가 상전을 부를 때 쓰던 말인 ‘하’의 변한 말이라고 해요. 궁중에서 ‘상감 마노라’. ‘곤전 마노라’ 식으로 임금이나 왕비를 아주 높여 부르던 말이었던 거죠. ‘하’의 ‘하’는 ‘선혈하’(선열이시여) 식의 높임 부름토(존칭 호격조사)입니다.
우리말의 평상적인 음운 변천과정에 따르면 ‘’의 갈래는 대충 다음과 같이 됩니다.
; 말 > 마리(頭.首) > 머리
; 말 > 마로.마루(宗)
; 몰 > 모로.모루(隅) (모리 > 모이 > 뫼(山)
※ 물 > 무루 (만주어의 mulu:산) 무레 (일본어의 mule:산)
^ 마리와 머리(마리산) https://cafe.daum.net/name0900/baO6/443
무수골은 무우와 관계 없고
땅이름과 우리말 / 강원도 원주 문막. 무수막이 변해 문막이 되고...
‘뭇’은 ‘물’의 뜻이어서 많은 변형 땅이름을 낳았다.
‘물’과 관련된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래서 ‘물’자가 들어간 땅이름이나 이의 옛말인 ‘뭇’, ‘무시’, ‘무수’ 등이 들어건 땅이름들도 많다. 전국에 많이 보이는 물골, 물말, 무수막, 무시막, 무쇠막, 뭇막. 무너미 등이 그러한 이름들이다.
물이 도는 곳에는 ‘물돌이(무돌이)’ 같은 이름들이 나왔고, ‘돈다(回)’는 뜻이 담긴 ‘도래말’, ‘돌내’ 같은 이름도 나왔다. 물말이나 물골은 한자로 수촌(水村)이나 수곡(水谷)이 된 것이 많다.
‘무수막’, ‘무시막’. ‘무쇠막’, ‘뭇막’ 등의 이름은 ‘물’의 옛말인 ‘뭇’이 바탕이 된 이름이다. 강원도 원주의 문막(文幕)은 원래 ‘뭇막’, ‘뭇으막’이 ‘문막’으로 불리다가 소리빌기로 한자가 옯겨간 경우다.
버드내(버들내)는 버들과 관계 없고
들이 길게 뻗어 버드내.
경기 이천 마옥산에서 발원, 여주시 가남면-세종대왕면을 관통하는 내도 버드내다.
양화천( (楊花川.버드내)은 )은 경기 이천시 설성면 대죽리 마옥산에서 발원하는 내이다.
양화나루로 유입하기 때문에 양화천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있으나 양화나루란 이름 자체가 양화천이 흘러드는 목이라고 해서 양화나루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 이름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다. 이 하천은 오랫동안 길천이라고 불러 왔다.
그 원류는 이천군 설봉면 남부에서 시작해서 관내 가남읍 상활리를 경유하는 물과 태평리, 신해리를 경유하는 물이 정단리와 양거리 사이에서 합류하여 대하천을 이루어 매류리와 용은리 사이, 구양리와 신근리 사이, 백석리와 율극리 사이, 상백리와 내양리 사이를 경유하여 세종대왕면 내장리와 홍천면 상백리 어름에서 양화진으로 유입한다.
남한강에 합류되는 이 하천은 많은 평야와 옥토를 조성해 주고 관수에 큰 힘이 되는 하천이다.
^ 버드내(양화천) 버들고지 양화진 https://cafe.daum.net/name0900/baO6/486
솔섬(송도)은 솔(소나무)과 관계 없고
전국에는 ‘송도(松島)’라는 이름이 무척 많다.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곳만 해도 부산과 인천에 송도해수욕장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인천 송도해수욕장은 없어졌다.
송도가 모두 소나무가 많아서 나온 이름일까?
인천 앞바다에는 ‘송도’라는 이름의 섬이 없었다. 송도라는 이름은 러일전쟁(1904~1905) 때 일본의 군함 이름을 따 붙인 것이다. 러일전쟁에 참가한 군함 송도호는 1908년 4월 타이완 마공(馬公)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했다고 한다. ‘송도’라는 이름은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고국인 일본의 삼경(三景) 중의 하나인 미야기현의 ‘마쓰시마(松島)’를 떠올려 이를 인천의 능허대에 갖다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던 ‘송도호(松島號, 마츠시마)’라는 군함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인천의 송도 지역은 옥련(玉蓮), 한나루, 독바위(옹암.瓮岩)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자리잡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옥련동 지역에 ‘송도’와 ‘옥련’이라는 지명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송도라고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이 송도함을 기리는 의미로 해당 지역을 ‘송도’로 개명했고, 그 잔재가 송도역과 옛 송도 유원지에 남아 있었다.
인천의 송도 말고도 전국에 수많은 송도(松島)는 토박이 땅이름으로 ‘솔섬’이지만 ‘소나무섬’이라는 뜻이 아닌, ‘작은 섬’이라는 뜻의 것이 훨씬 많다.
서울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는 ‘솔샘’이라는 작은 샘이 있었다. 이 역시 소나무와는 관계없이 ‘작은 샘’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솔샘이 있던 이 지역은 ‘송천동(松川洞)’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 이 근처를 지나는 길 이름이 ‘솔샘로’이다. ‘솔샘’이란 이름은 이곳 말고도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경기도-포천군 소흘읍의 송우리(松隅里)는 ‘솔모루’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포천군 외소면 지역으로서 ‘솔모루’ 또는 ‘송우(松隅)’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동교리 일부를 병합해 ‘송우리’라 해서 소흘면에 편입되었던 곳이다.
솔모루는 ‘솔모퉁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솔’이 작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지, 소나무와 관련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솔섬(송도) https://cafe.daum.net/name0900/baO6/282
꿩말은 꿩과 관계 없고
꿩의 전설 때문에 치악산이라 한다지만
높이 1,282m.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차령산맥의 줄기로 영서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이다. 남북으로 웅장한 치악산맥과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중심으로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대체로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이 완경사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를 올렸다. 또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다. 단풍이 들면 산 전체가 붉게 변한다 하여 본디 적악산(赤岳山)이라 한 것인데 뱀에게 잡아먹히려던 꿩을 구해 준 나그네가 위험에 처하자 그 꿩이 자신을 구한 은혜를 갚아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 따라 치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꿩에 얽힌 전설 때문에 치악산이라 했다? 믿어질까? 우리 땅이름의 보편적 정착 과정으로 볼 때 이는 믿기지 않는다. 치악산이란 이름이 붙기 이전부터 또 적악산 이름 이전부터도 이 산은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반 평민들이 부르는 보통명사 형태의 일반적 이름일지도 모른다. 치악산의 ’치‘에 중점을 두고 짐작을 해 보면 ’꿩‘과 유사한 어떤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러한 종류의 토박이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살펴보니 ’꿩‘자가 붙은 땅이름들이 거의 ’구석‘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꿩‘과 ’구석‘ 두 말의 연관 관계를 따져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구석말, 구석매, 구석마루, 구석내...
이 이름들의 다른 이름들을 보니 다음과 같이 나왔다.
구억말, 구억매, 구억마루, 구억내...
여기서 ’구억‘은 ’구석‘의 방언이자 옛말이다.
그런데 ’구억말; 중에는 ‘구엉말’이나 ‘공말’인 것이 많고, 더 나아가 ‘공말’이나 ‘꽁말(꿩말)’인 것도 많았다. ‘구석말’의 변형이 ‘꿩말’까지 간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석(가장자리)에 있는 산이란 뜻에서 나온 ‘구억매(구엉매)’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꽁매(꿩매)’로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꿩매’를 한자로 의역하면 어떻게 될까? ‘치산(雉山)’이나 ‘치악(雉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원주 지방 사람들이 이 산의 이름을 많이 불렀을 터인데, 고을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 산을 ‘꽁매(꿩매)’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이를 한자 표기로 ‘치악’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 친척 땅이름
<구석-구억>
-꿩너미 【산】 전북 임실군 신덕면 조월리
-꿩논 【논】 광주시 광산구 연산동
-꿩마 【마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꿩매 [치산] 【산】 전남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꿩머리 【등】 전남 신안군 안좌면 한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