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날씨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아산에서 일에 지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 와 방문을 여니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온다.
방을 비운 며칠 동안 옥상에서 달구어진 열기를 선풍기로 식혀주지 못해 그런지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방바닥은 마치 보일러를 켜 놓은 듯 따끈 따끈한데, 땀이 팥죽처럼 흐르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나의 업보인 것을...
알몸으로 버티며 칸칸이 누워있는 옆방 사람들을 보니 인간사육장 같은 비애감이 몰려왔다.
단지 부모를 잘 못 만났거나 돈을 벌지 못했을 뿐인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처참하게 목숨을 연명한단 말인가?
나야 아산 작업실도 있고 걱정해 주는 식구라도 있지만,
쪽방빈민들은 의지할 곳도 갈 곳도 없는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들이다.
고생스러운 삶의 환경이야 다를 바 없으나 심리적 패배감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똑 같은 처지에 살며 문제점을 말하려는 취지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빈민들의 비참한 삶과 달리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꾼들 보면 구역질이 난다.
주둥이론 민생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하나같이 도둑놈이고 위선자들이다.
이젠 친일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이어 광복절 경축식까지 반쪽으로 만든 지경에 이르렀는데,
친일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보수는 친일이라는 아주 나쁜 프레임으로 편 가르려는 짓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다.
다 같이 일어나 윤 정권부터 끌어내려야 한다.
지난 달에는 얍삽 빠른 한동훈이가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에 발 담그기 위해 쪽방촌을 찾아 왔다.
동자동 골목에 있는 동행식당 '완도집'에서 오세훈시장과 가진 회동은 잠룡 탐색전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쪽방주민에 한해 실시하는 ‘동행식당’을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길이었다.
'동행식당'은 쪽방촌에 한정할 사업이 아니라 전국 빈민에게 확대하라고 주장해 온 터라
사람은 미워도 정책적 시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쪽방에 있으려니 찜질방 같은 열기에다 속에서 열불이 터져 새꿈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쿨링포그’를 설치해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때 마침 김상진씨가 땀에 젖은 모습으로 나타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교회에서 빵과 생수를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더운데 무슨 놈의 기도를 그리 오래하는지 자선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
그 장면을 찍는 카메라까지 열 받았는지 찍히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먹는 것도 사람만나는 것도 귀찮아 더위나 식힐 겸 '남대문사우나'로 갔다.
카메라가 불덩이처럼 뜨거워 그 옆에 있는 '니콘 AS센터'부터 들렸다.
건전지부터 빼 내었으면 렌즈가 닫혔을 텐데, 더위 먹었는지 상식적인 것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접수대에서 수리비가 좀 많이 나올 것 같다며 며칠간 기다리란다.
카메라를 맡기고 사우나에 가서 에어컨 바람 나오는 시원한 방에 드러누워 낮잠이나 잤는데,
이보다 시원한 피서가 어디 있겠는가? 너무 오래 개겨 배가 고파 더 있을 수도 없었다.
동행식당 '김밥천국'에서 콩국수 한 그릇 마시고 방에 올라갔더니, 방의 열기는 그때까지 식지 않았다.
옥상으로 올라가보니, 옆방 종근이가 먼저 자리 잡아 끼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 씌며 내려다보는 동자동 야경은 쪽방의 비참함과 너무 대조적이다.
멀리는 남산타워가 보이고, 가까운 LG사옥은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은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것만 요지경이 아니라 서울 풍경도 요지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출처] 날씨가 사람 잡겠네.|작성자 인사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