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흔들리는 세상에 던지는 영원한 닻
히 12:25~29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성경을 읽다 보면 Ironical 하게 와닿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이끌었던 솔로몬 왕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은 지혜의 소유자였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오르기 전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였던 것은 백성을 잘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 즉,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잠언 3,000가지와 노래 1,005편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지혜와 동식물학에도 능통하여 열방의 왕들이 그에게 배움을 청할 정도로 지식으로도 탁월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다윗의 유업을 이어받아 7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완공했으며, 강력한 해상 무역과 외교를 통해 은(銀)을 돌처럼 흔하게 여길 만큼 엄청난 국력을 과시했습니다.
지혜와 지식 그리고 권세와 부귀를 모두 누리고 있었음에도 솔로몬이 노년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전도서(Ecclesiastes)에서 그는 고백하기를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누리고 소유하고 싶었던 모두를 가졌던 솔로몬이 인생을 헛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면 이 지구상에 있는 누구도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히브리 말로 ‘히블(Hevel)’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안개,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살피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결론은 없어질 것에 사로잡히면 결국, 그 인생도 그렇게 되더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암 말기로 다 죽어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사업이 형통하여 해외로 골프도 치러 다니면서 갖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그의 건강을 검진한 의사가 잘해야 3개월 정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자기 자신도 이제는 죽을 놈이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던 중 동네 교회의 목사님이 그를 향하여 환한 미소와 더불어 “살놈!”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죽을 놈이라고 하는데 이분은 자기를 향하여 확신하고 ‘살놈’이라고 말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분은 ‘살놈’의 희망을 지니고 교회의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가 간암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들었던 ‘살놈’은 ‘평화, 평안’을 말하는 ‘샬롬’인사말이었습니다. 사람의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말합니다. ‘플라세보(Placebo)’는 라틴어로 ‘기쁘게 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실제로는 의학적 효능이 전혀 없는 설탕물 또는 녹말을 환으로 만든 가짜 약으로 환자에게 주었을 때, 환자의 심리적 믿음 덕분에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신뢰감을 주는 의사가 환자에게 “이 약을 먹으면 나을 겁니다”라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뇌에 영향을 주고 긍정적인 믿음이 뇌에서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자연적인 통증 완화 물질을 분비하도록 자극하면서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쉬운말 성경에서는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디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옛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한 모세를 거역하고도 그 형벌을 피할 수 없었거늘, 하물며 오늘날 우리가 하늘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어찌 그 큰 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담아듣지 않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는 현실에 급급하였다는 것입니다.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배고픔, 목마름, 그리고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강력한 적군의 위협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현실의 고난: 은 생존의 공포를 자극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재의 빵과 물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위기가 닥치면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인간의 연약함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 4:2에서는 “듣는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을 때 마음이 굳어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거역으로 이어졌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몸은 광야에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애굽(이집트)의 종살이 시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자유를 위해 따르는 고통스러운 순종보다, 비록 종이었을지라도 ‘부추와 고기를 먹던’ 애굽의 안정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셨기에, 그들은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같은 형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대리자인 모세를 통해 나타나다 보니, 모세에 대한 불만이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라의 반역처럼 지도력에 도전하며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머리에는 있었으나, 그것이 ‘삶의 신뢰(Trust)’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시편 78:40-41)
이런 현상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불신앙의 길을 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런 백성을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진동’이라는 단어로 그들의 터전을 흔들어 버릴 것을 말합니다. 히 12: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때’는 과거의 시내 산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땅이 진동하였으며 그 위엄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삶의 터전을 흔들어 그들이 의지하였던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뿐 아니라 하늘까지 진동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땅’과 ‘하늘’은 시내 산에서의 계시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새 언약에 대한 상징이며 ‘진동’은 미래에 벌어질 세상의 변형 또는 긍극적인 파멸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주적 대변혁을 나타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은 새 언약의 공동체에게 임할 심판을 나타내어 하늘로부터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땅으로부터의 경고를 무시한 자와 마찬가지로 심판당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확신합니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과학을 맹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인류의 행복이 더 확실하게 나타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결코 장밋빛으로 드러난다고 보장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생산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 등을 도입하려는 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내일의 생존이 위협받고,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편한 세상, 로봇이 일해주고 인간은 쉬는 ‘안락한 미래’를 꿈꿉니다. 과연 그럴까요?
노동자들은 로봇이 자신의 자리를 뺏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더 무서운 재앙은 우리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눈에 보이는 안락함을 앉혀두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는 곡간을 크게 짓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창고의 가득함에서 안락함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안락함이 그의 영혼을 구원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쌓아 올린 안락함은 결국 모래성과 같습니다.
만약 이런 세상에 내 인생의 뿌리를 두고 있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견고해 보이고 좋아 보이더라도 우리의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는 인생은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말씀에 사로잡혀 살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생명의 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가 흔들리고, 자연환경이 요동치며, 영원할 것 같았던 가치관과 권력들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본문 26절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진동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진동'은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 하나님의 체질입니다. 결국, 피조된 모든 것은 흔들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 재물, 명예는 '진동하는 것들'입니다.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드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는 것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28절은 선포합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이 나라는 세상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도 흔들 수 없었던 그 나라가 지금 우리 안에 임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해안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한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이 거대한 파도와 바람이 두렵지 않습니까?" 등대지기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파도가 내 등대 벽을 때릴 때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내 발밑의 바위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바위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환난이라는 파도가 몰아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라 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가졌기에 두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은혜를 받자: 우리 힘으로는 거룩하게 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29절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심판의 불이기도 하지만,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정금처럼 만드시는 사랑의 불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가치 기준에 나의 삶의 닻을 내리면 언제나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보시고 그 분 안에 내 영혼의 닻을 내리면 나는 흔들리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견고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요란하고 거친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예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를 가슴에 품음과 전진하는 성도는 전혀 세상의 흔들림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은혜를 함께 누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