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동해 (20·끝) “동역자들과 시각장애인 돕는 빛의 여정 걸어갈 것”
이현성2026. 5. 8. 03:09
1등 한 적 없고 실패 거듭한 삶
꽃동네서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시력 찾아주는 의사 소명 품은 건
빛의 도구로 이끈 하나님의 큰 그림
김동해(왼쪽 두 번째) 비전케어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가나의 마가렛 말쿼트 가톨릭병원에서 395차 비전아이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반장이나 회장 같은 감투를 써본 적도 없다.
내 인생은 뜻대로 된 것보다 실패하고 돌아간 적이 훨씬 많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꿈도 의사가 아니라 천문학자나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내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갈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선생님의 권유로 의대에 지원했고 보기 좋게 낙방했다.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수해서 간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마친 뒤 내과나 정신과를 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안과가 좋다는 말에 휩쓸려 지원했다. 그러나 전공의 시험에서 다시 떨어졌다. 결국 군대(공중보건의)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 낙방 덕분에 나는 충북 음성의 꽃동네, 가장 낮고 소외된 곳으로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공동체의 삶을 배우고 안과 선생님들을 만나 각막 적출을 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력을 찾아주는 안과 의사의 소명을 갖게 됐다.
전문의가 된 뒤 대학교수에 지원했지만 또 떨어졌다. 다른 병원에 취업했지만 그마저 병원이 어려워져 나와야 했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서울 명동에 등 떠밀리듯 개업을 하게 됐다. 정말이지 세상 사는 게 내 뜻대로 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게 하나님 은혜였다. 만약 내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면, 내과나 정신과에 갔다면, 단번에 대학교수로 임용됐다면. 나도 모르게 남들이 좋다는 것을 무작정 따라갔다면 내 인생에 비전케어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파키스탄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환자와 현지 의사들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진정 원하는 일을 발견하게 했다.
어린 시절 한 선생님이 “세상에는 ‘없었으면 하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1등에서 밀려난 숱한 실패의 자리들은 결국 나를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도구로 빚어가시려는 하나님의 완벽한 ‘큰 그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
세상엔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이웃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비록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실패의 자리일지라도,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묵묵히 실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로 빚어내신다.
그런 여정엔 동역자가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비전케어가 전 세계 수십만 명의 눈을 밝힐 수 있었던 것도 결코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이름 없이 땀 흘려준 자원봉사자들과 척박한 오지를 지키는 현지 동역자들, 그리고 기도로 마음을 모아준 후원자들이 손을 맞잡았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시각장애로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끝까지 이 빛의 여정을 걸어가려 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보시며 함께 울며 웃고 기도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