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은 아마 릴케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것을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다. ‘집을 짓지 않’는 사람이 쓴다는 ‘긴 편지’와 그가 헤맬 것이라던 ‘가로수 길’의 이미지가 오래 가슴에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을날’이 사람의 정서에 녹듯 스미는 것은 ‘지난여름’을 ‘위대’했다고 회고하는 서정적 자아의 경건한 태도에 담긴 진정성 때문이다. 시인은 ‘결실’과 ‘조락(凋落)’이라는 ‘역설’ 앞에 선 존재의 본질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계절이 가진 두 속성, ‘풍요’와 ‘적막’은 각각 세계와 인간의 내면적 고독과 조응된다. 가을이 되어도 ‘영혼의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을 맞이하면서 고독과 불안 속에 침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는 ‘읽고, 긴 편지’를 쓴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실존적인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가을의 속성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연관 지으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이 시가 노래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그 의미를 훨씬 더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성싶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는다는 진술 앞에서 우리는 이 고단하고 각박한 삶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릴케는 이 땅에서 가장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그의 시와 삶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두이노의 비가》를 그의 대표작으로 이르지만, 그 시를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흔히들 ‘장미를 사랑했고 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작 릴케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을날
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낭송 여운종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첫댓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한시인이죠
그의 시 거의다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