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흘 후면 정청래 전 의원의 책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 나옵니다.
출판기념회는
10월 15일. 토요일. 오후 3시. 마포구청에서 열립니다.
유별나게 아름다운 마포가을도 즐길 겸
출판기념회에 많이들 오셔서 축하해주세요.
정청래 전 의원은 제게 500명 손님을 책임지라고 합니다.ㅋ
책 뒤에 한꼭지 들어갈 제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네~ 책 사전광고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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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청래를 부탁합니다 >
나는 정청래가 누군지도 몰랐다.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 직을 수락했을 때 지인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정치권에 가시는 거, 말리고 싶지만 손 대표님 의지가 이토록 강하니 어쩔 수 없네요.
그러나 꼭 주의하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정청래 같은 인간하고는 절대 상종하시면 안 됩니다.”
2015년 7월 7일, 첫 출근날.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표 외에 내가 아는 얼굴은 한 사람도 없었다. 조심하려면 누군지는 알아야 하니 미리
인터넷에서 정청래 의원 사진을 찾아봤었다.
두리번거렸으나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안내하던 당직자에게 물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참석을 안 하셨네요?”
“아, 네……. 그 분은, 당분간 참석 안 하십니다.”
“왜요?”
“네……. 사정이 좀 있습니다.”
“무슨 사정이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매주 월, 수, 금 오전에 열리는 최고위원 회의에 이주일째 참석했으나 아무도 내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생활 잘하던 사람을 무엇하러 데려왔는지 의아했으나 일단 기다리며 ‘셀프디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하고 용감해서 했던 일이었다.
몇 사람 셀프디스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 더 이상 마땅한 대상이 안 보였다.
그래서 마침 징계 중이라니 반성할 내용도 있을 듯해 정청래 의원 방에 찾아갔다.
그날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지인의 충고대로 정청래 의원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첫 대면은 그야말로 ‘어이없음’ 그 자체였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셀프디스 따위에는 관심 없다며 일언지하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신기했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결국 빈손으로 나오는 내게 그는
두툼한 종이뭉치를 건넸다.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책 원고라며 제목을 생각해보고 알려달라고 했다.
셀프디스는 커녕 정치인 정청래가 누군지 아주 자세히 알 수 있는 책 원고만 받아온 셈이었다.
원고를 훑어보고 다음 날 내 의견을 전달했다.
1. 책 분량을 3백 쪽 이하로 줄일 것.
2. 책은 저자가 쓰지만 사는 사람은 독자라는 점을 잊지 말 것.
3. 저자와 독자의 관심사를 잘 조율하여 내용을 검토할 것.
4. 추천 제목 : ‘나는 왜 매 맞을 일을 자초하는가.’
물론 정청래 의원은 내 조언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책 분량 416쪽, 제목 《거침없이 정청래》)
정청래 의원과 두 번째 만남도 전혀 내 뜻이 아니었다.
2015년 11월, 우리 당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2에 진성준, 정청래 의원과 내가 전격 투입되었다.
싫으나 좋으나 매주 수요일 밤이면 그와 세 시간씩 얼굴을 맞대고 방송을 해야 했다.
지인의 충고는 어느새 잊고 나는 열 살 아래 동생 정청래와 친해졌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토대로 브랜드를 만들거나 개선하는 일을 평생 해온 내게 정청래 의원의 본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외모, 행동과 속마음이 너무나 달라서 평생 손해만 보고 살아온
그는 신기한 연구 대상이었다.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할 말 다하는 인간,
옳다고 생각하면 앞뒤 생각 않고 나서서 소리치는 인간,
당이 필요로 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앞서 나가 두드려 맞고
그래서 늘 손해 보고 온갖 총알은 다 맞는 인간.
SKY 출신도, 학생회장 출신도 아니어서
감옥까지 갔다오고 운동권 취급도 제대로 못 받는 인간.
강자 앞에서 더 강해지고 약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
‘어머니’,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 흘리는 인간,
이용만 당하고 상처는 혼자 입는 그런 어이없는 인간,
정청래는 그런 바보 같은 인간이었다.
나도 그런 정청래를 이용했다.
김종인 전 대표 영입 직후, 나는 최고위원들이 그를 기꺼이 맞아들이도록 내부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정청래 의원이 가장 먼저 최고위원 자리를 내놓으며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라고 외쳤다.
나는 속 깊은 정청래 의원이 내 뜻을 알아채고 그렇게 해주었다고 생각했고 많이 고마웠다.
그래서 공천탈락 당했다는 소식에 더욱더 분노했고 가장 먼저 김종인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그의 곁을 떠났다.
(나는 그때 정청래 의원이 내 뜻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아니면 누가 마포(을) 국회의원 후보로 나와도 도울 수 없다는
정청래 의원의 뜻을 전하는 전령이 찾아 왔다. 그는 여러 그럴듯한 이유들을 꼽으며 내게 마포(을) 출마를
종용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라고 소리치면서도 “물론 내가 나가면 당선되지!”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배경에는
정청래 의원이 나 혼자 뛰라고 내버려둘 리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별 고민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비례대표 1번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한 까닭도 있었지만
정청래 의원과 함께 비를 맞겠다는 각오가 더 컸다.
정청래 의원과 함께 25일 동안 어깨띠를 두르고 유세차를 탔다.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손혜원을 부탁합니다!’ 외치며 내 곁을 지켜준 정청래.
때로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얼싸안고 눈물 흘리면서도 끝까지 ‘손혜원을 부탁’하며 지역을 누볐다.
그는 여의도 의정활동도 잘했지만, 지역구 주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치룬 선거는 눈물 속 축제였고 축제의 피날레는 당연히 승리였다.
이제는 내가 그를 지킬 차례다.
나는 정청래 전 의원을 제 자리로 돌려보낼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그를 도울 것이다. 나는 정청래만의 본질을 찾아, ‘정청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들이 그의 장점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히트 브랜드,
정청래를 더욱 강력한 브랜드로 다듬어 다시 국민께 돌려드릴 생각이다.
앞으로 3년 9개월.
다시 올 축제의 그날,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유세차를 타고 외칠 것이다.
“정청래를 부탁합니다.”
2016년 9월
국회의원 손혜원
첫댓글 손혜원과 정청래의 콤비플레이를
국회에서보고싶다!!!
공감요. 손혜원은 비례 1순위로 해서, 같이 활동하면, 대한민국을 1등 코리아 브랜드로 가고, 통일도 빨리 되겠는데요. 화이팅
감동 한 아름 갖고 갑니다!!!
222
ㅠㅠ
눈물난다
울컥했네요. 아침부터 기분업!!
손고모님 글도 잘 쓰시네요...
향후 당의 큰 자산입니다...
SNS시대에 당의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고의원 선출시 잠시 해프닝은 지워버리시고...
당의 미래를 위해 더욱 헌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두분 멋진 감동을 주시네요.
와~~ 아침부터 훈훈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정청래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