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부를 비하적으로 일컫는 말 중에 '갈보'라는 말이 있다. 갈보는 한때'창녀'와 더불어 널리 쓰이던 표현이었는데, 갈보라고 할 때가 좀더 상스러운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이유로 창녀보다 더 많이 애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 사용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최근에 와서는 어휘의 사멸화 단계를 코 앞에 둔 '관 속의 어휘'가 되고 말았다. 대신에 상대적으로 유순한(?) 느낌을 주는 한자어 '창녀(娼女)'가 오늘날 매춘부의 비칭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창녀'라는 어휘가 비교적 양지에 드러나 꾸준히 대중화되고 계승될 수 있었던 반면, '갈보'라는 어휘는 점점 음지화하여 결국 세력화하지 못하고 쇠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창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비하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창녀 이외의 비하적 표현들은 오히려 소통의 불편함만을 가져옴으로써 서서히 외면당했을 것이다.
음지의 어휘 '갈보'는 이런 이유로 해서 명맥이 끊어졌고, 그 어원도 확실치가 않은 정체불명의 단어가 되었다. 따라서 정체불명 어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오로지 상상력에 의존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갈보의 어원을 추측하기 위해 가지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는데, 몇가지 재밌는 어원설과 나름 설득력이 있는 어원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갈다 + 보지 설
위키백과에 올라온 갈보의 어원설에는 갈보를 동사 '갈다'와 명사 '보X'의 합성어로 추측하고 있다. 설명에 있는 '성관계를 마구 갈아 가며 한다'는 의미가 선뜻 이해되지 않다가도 어렴풋이 그 의미를 짐작하고 넌지시 웃음짓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동사 '갈다'의 의미를 grind의 의미로 해석해서 맷돌 가는 모습을 떠올리고 특정 성관계의 동작을 연상했을 것인데, 물론 그러한 발상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여기서 '갈다'의 의미는 change 즉, 남자를 바꿔 가며 성관계를 한다는 의미다. 매춘부는 여러 남자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2. 갈다 + 접미사 보 설
현재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원설 중 하나인데, 갈다의 의미는 1번과 마찬가지로 change의 의미로 쓰이지만, 뒤의 '보'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보X가 아니라 먹보, 울보의 경우처럼 "그러한 행위를 특성으로 지닌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접미사 '보'라는 것이다. 먹보, 울보와 같은 실제 용례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3.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기원설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한때 널리 대중에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졌던 어원설로는 미국 여배우였던 그레타 가르보에서 갈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었다. 그레타 가르보는 1920년대 활약하던 미국의 인기여배우였는데, 당시 보수적인 한국인들에게 서구 여인의 노출신은 충격적인 인상을 줬을 것이고 그런 인상이 그녀의 이름을 창녀의 대체어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갈보란 말은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활약한 여배우 가르보에서 갈보가 유래되었다는 설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4. 갈(蝎) + 접미사 보 설
갈(蝎)은 중국어로 '피를 빨아먹는 빈대'라는 뜻인데, 매춘부들을 이런 끔직한 벌레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춘부들이 사내의 돈을 빨아간다는 것을 '피를 빨아먹는' 빈대의 행위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매춘부와의 성관계를 통해 옴 또는 세면발이와 같은 기생충에 의한 성병이 옮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후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데, 접미사 보는 '털보', '떼보'처럼 명사와 결합해 사용된 용례가 있을 뿐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세면발이 같은 벌레가 많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써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생환경이 열악했을 과거 상황을 떠올려 보면, 매춘부와 성관계 후에 기생충에 전염되어 지옥 같은 가려움에 시달렸을 당시의 남자들이 이런 저주스러운 별명을 지었을 것이라는 것도 나름 수긍이 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설이 가장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5. "갈라진 보지" 설
한편, "갈라진 보X"에서 갈보가 나왔다는 설이 네이버 지식인에 떠돌고 있는데, '지못미', '닥본사'처럼 앞 글자만 따서 붙이는 현대식의 인터넷 신조어 방식을 역으로 유추해낸 어원설인 것으로 봐서 그다지 신빙성이 높은 어원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국어 민속학 쪽에서는 2번을 가장 설득력 있게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