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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북한의 아들”을 얻다~~~```
(“제2회 북한이탈주민 성공비젼 캠프”를 통하여...)
안녕 하세요..?
맑게 심성기입니다.
2012년을 보내면서 많은 송년회들이 한해의 종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오늘(12월 29일/토요일) 아침은 유달리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어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섭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새벽길~~~
정해진 달리기 코스 가운데 “주변 아파트 단지”를 위주로한 코스를 선택하여 달리면서 제설작업 정도를 비교해 보니 내가 사는 단지가 다소 미흡한 듯 했습니다. 5km코스를 1회전하고는 “장릉산”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생각보다는 등산객들로 인하여 만들어진 길이라 달리기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저보다 이른 시간에 발자욱을 만들어 주신 인근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북한의 아들”과 처음 만나는 날입니다.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제2회 북한이탈주민 성공비젼 캠프”가 있는 날이며,
이 자리에서 새로운 “북한가족”과 결연을 맺는 날이며,
멘토와 멘티로서 “위촉장”을 받는 날이며,
성공적인 멘토역할에 대한 “강연”을 하는 날이며,
새로운 “북한의 아들”을 얻는 날입니다.
간단한 아침 운동을 마치고는 작은아이의 아르바이트 장소인 고촌소재 “파라바께뜨”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아내와 단둘이 식탁에 마주앉았습니다. 우리의 화재는 바로 새로운 북한가족의 이야기로 넘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겠지요..
아내왈 :“여보...괜히 북한가족 멘토를 추가로 승낙한건 아닐까..?”
나왈 :“그러게...다소 고민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는 말꼬리를 흐린다.
아내왈 :“당신 마음은 알겠는데...”
“은희네(현제 북한가족)에 더욱 충실하는것도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한다.
나왈 :“그래...당신 생각도 맞지..”한다.
아내왈 :“경기도청에 다시 이야기 할 수 는 없나..?”한다.
나왈 :“여보...당신 생각과 마음은 충분히 이해지만, 내 의견대로 하면 안될까..?”한다.
아내왈 :“주도면밀한 당신이 오죽 많이 생각과 계획하게 했겠어..”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리 해야지뭐..”한다.
나왈 :“여보...고마워...다 잘될거야...”한다.
마주보는 아내의 눈망울에는 그래도 걱정스러운 한줄기 빛이 지나가는 듯하다.
그래 걱정이 안된다면 그게 거짓말 일 것이다.
우리아이도 2명 인데, 북한의 아이들이 3명이나 되니~~~
물론 우리가족이 북한가족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한사회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지난 1년을 뒤돌아 보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의 진학 문제,..
아이들의 취업 문제...
아이들의 학교적응 문제...
아이들의 정서적인 적응 문제...
아이들의 직업교육 문제...
아이들의 취업상담 문제...
모친의 취업문제...
모친의 일상생활 적응 문제...등등~~~
작지만 나의 아니 우리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사소하지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걱정스럽지 않다면 말이 안되는 것이 맞기에 나는 조용히 마지막 남은 밥그릇을 비우고 설거지함에 더 조용히 내려 놓는다.
오늘의 행사는 의정부시에 위치한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열린다.
컴퓨터에서 강연내용 정리한 것을 출력하여 “북한의 아들”을 만나러 나서는데 울리는 전화소리~~~
나왈 :“여보세요...심성기입니다..”
북한아들왈 :“아버지...호림이에요..”한다.
나왈 :어~~그래 호림이구나..“
“어디야...벌써 도착한 것 아니겟지..?”
북한아들왈 :“도착 했습니다.”한다.
어이구 일찍도 왔구나 싶다.
나왈 :“그래 지금 나가는 중이니 서로 엇갈리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기다려..”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아내와의 식탁대화가 좀 길어지면서 시간이 10분정도 늦어진 것이다. 김포 지리도 잘 모르는 아이인데 걱정이 앞선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운전이 다소 빨라진다.
아내왈 :“여보,..좀 천천히..”한다,.
나왈 :“아참,,그래..내가 마음이 급한가 보네..”한다.
저멀리 약속된 장소에 서 있는 총각이 “북한의 아들”로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옆에 차를 정차하니~~~
북한아들왈 :“안녕 하세요..? 호림입니다..”
아내왈 :“어서타요...”
나왈 :“눈이와서 오래 걸리지 않았니..?”
북한아들왈 :“아닙니다...잘 왔습니다.”한다.
이렇게 우리3명은 김포시내를 벗어나 외곽순환도로와 39번 도로를 타고 의정부시에 접어들어 “경기도 북부청사”로 네비게이션에 안내해 주는대로 무사히 도착한다.
이미 눈은 쌓이기 시작하여 행사장에 도착할 즈음에는 신발이 눈속에 파묻힐 정도의 양이 우리의 마음을 정화 시키듯이 온천지를 하얗게 덥고 있었습니다.
오늘 행사장에 참여한 인원은 300여명~~~
행사 주요내용은~~~
우선,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한 백일장등 관련 시상식...
다음으로는, 지난 1년간 결연가족의 멘토활동 동영상 시청...
다음으로는, 북한이탈주민과의 결연을 위한 위촉장 수여식(5가족)...
다음으로는,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정착 성공사례발표(4명)...
다음으로는. 기업체 대표의 북한이탈주민 취업 성공사례발표...
다음으로는, 결연을 통한 멘토로서의 성공사례발표(심성기)...
다음으로는, 기념공연...
마지막으로는, 다과회로 오늘의 행사를 마치게 됩니다.
제가 참여하는 부분은~~~
북한이탈주민과의 “위촉장 수여식”과 결연을 통한 멘토로서의 “성공사례발표”~~~
나와 결연하는 가족은 52세의 어머님과 27세의 아들(27세)로서 남한에 도착한지 4개월되는 “북한이탈주민”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사례발표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발표하는 내내 300여 북한이탈주민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으며...
기업체 대표와 저의 성공사례발표에서는 “박수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의 첫 번째 성공사례는~~~
“묘향산 한의원”원장을 하고있는 38세의 노총각입니다.
23살에 남한에 넘어와 북한에서의 고교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하여 “한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한의사가 되기까지의 10년은 “눈물없이는 말하지 못하고”, “들을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 였습니다. 경기도청의 관계자, 남한의 참가자 그리고 북한이탈주민 모두는 한마음이되어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평범한 글귀를 다시 되뇌이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마음 이었습니다.
두 번째 성공사례는~~~
“동탄 숲속세탁소”를 운영하시는 48세의 가장입니다.
10여년전에 남한으로 넘어와 세탁업을 하기로 정하고 “세탁학원”과 “세탁관련 공장”에서 이론과 실무를 습득한후 처음으로 경기도 평택시에 문을연 세탁소는 “경매”로 건물이 넘어가 일푼도 건지지 못하고, 다시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화재”로 다시 무일푼으로 전락 하였으나 어차피 맨몸으로 남한에 왔으므로 미찌지는 않았다는 마음으로 동탄신도시에 3번째 개업하여 온가족이 새벽4시부터 “찌라시 배포하고”, “세탁물 수거하고”, “세탁물 배달”하면서 지낸 7년동안의 이야기 역시 눈물없이는 함께할 수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현재는 동탄신도시에 “33평형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구입하고...
아파트 “상가의 세탁소”는 아내 명의로 구입하여 꿈결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세 번째 성공사례는~~~
노인 요양병원에서 “조리사”를 하시는 50세의 가장(여)입니다.
4명의 딸과 함께 10여년전에 넘어 왔으며, 여자로서 아이들 가리키며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않 그러 하셨겠습니까..?
딸들을 거명하면서 이야기 할때는 펑펑우시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한몸, 한마음이되어 함께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하나된 모습이었습니다.
남한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사회생활하다 혼자되신 미망인 분들도 어린 4명의 딸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생활이거늘 하물며 북한에서 넘어와 낯설고 물설은 이곳 남한에서의 생활은 보지않고, 듣지 않아도 얼마나 고달팠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 자격과 “한식 조리사” “양식 조리사”자격을 취득하여~~~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강의를 하고, 노인요양시설의 “조리사”로 일하시며..
현재는 4명의 딸들과 행복 만땅인 삶을 이루고 계시답니다.
네 번째 성공사례는~~~
“경기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여학생입니다.
26섯살에 대학교에 입학하다보니 나이차로 인하여 “왕따 아닌 왕따”로 지낸시간의 아픔을 극복한 이야기는 젊은 이들의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은 내용이었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사회적 구조만을 원망할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현재는 학과의 과대표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알찬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답니다.
남한기업체의 성공사례는~~~
전체 종업원수 150여명의 회사에 북한이탈주민을 항상 20여명을 채용하고 유지하면서 이들의 남한생활 적응에 사운을 걸다시피한 회사대표의 강연을 통하여 나눔의 소중함이 이리도 대단한 위력을 갖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느끼는 아름다운 강연 이었습니다.
마지막 성공사례 발표는 제가 하게 되었으며~~~
결연을 통한 “멘토”로서 북한가족의 적응을 원만하게 이룬 경우로서 강연을 하였습니다.
앞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한 관계로 짧게 해달라는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준비한 9꼭지 가운데 2꼭지만을 강연하게 되었습니다.
성공사례발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찾아가는 서비스”와 “다문화가정, 사할린 고국동포” 와 “북한이탈주민”과의 국가적, 지방자체적 지원을 통한 사회적 배려“등 에서의 형평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을 북한이탈주민을 대신하여 관계자 여러분께 간곡하게 부탁 드렸습니다.
이 행사의 마지막은~~~
“다과회”였습니다, 역시 먹는 시간이 최상의 행복한 시간임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뷔페식으로 준비되어진 메뉴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내용이 아니었지만 나와 결연을 맺은 “북한의 아들”에게는 산해진미 였다고 합니다.
우선 이렇게 많은 음식종류를 한번에 눈앞에 놓고 본적이 없을뿐더러, 직접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더군다나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남한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특히 뷔페는 더욱이 낯설은 지라 마음편하게 먹도록 도와주는것도 나름의 힘든 역할 이었답니다.
이제 나의 또 다른 “북한가족”에 대한 남한에서의 적응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접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지인들께서도 큰 관심가져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또한 주변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접하게 되시면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보내주실 것을 재삼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북한이탈주민”중 한가족의 “결연가족”으로서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것을 여러분들게 약속 드립니다.
지난 한해동안 제가 활동하는 내용을 통하여 혹시 작더라도 마음의 상처을 받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행사를 마치고 다시 김포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었으며 2012년의 마지막 송년회인 “인천교구 김포시 풍무동성당 토마(10)구역” 송년회를 주임신부님을 모시고 예정되어 있기에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도착하여 행사를 마치고 신부님의 “축성”을 마지막으로 2012년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형님, 또 좋은 일에 동참하셨군요. 나중에 만나면 얘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십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