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이나 사회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 같은 학교나 직장에 장애인이 있는지?
-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 바깥으로 드러난 장애와 내부 기관의 문제로 인한 장애를 구분할 수 있는지?
-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에티켓 등.
몇 년 전 장애인의 날, 나와 우리 기관에 관심이 많다는 어느 시민단체의 역량 강화 밤 모임에 초대받았다. 나는 장애인 당사자이면서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장애인단체에서 봉사하고 있었기에 위와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한 특강을 했다.
덧붙여, 선천성 장애인은 11%에 불과하고, 후천성 장애가 89%, 내 가족 중에 언제든지 장애인이 출현할 수 있다. 내 집안 3대에 장애인이 아직 없다면 장애인 가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은 어느 영역이 장애(결함, 부족, 불편)인 것만 빼고, 다른 대부분은 여러분과 아무 차이가 없다. 우리 각자가 친구 중 장애인 친구를 한 명 둔다면,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결론을 맺었다.
처음부터 관심을 끌 만한 주제가 아니어서 기대하지 않았으나, 나와 눈 맞추고 호응해 준 고마운 몇 사람들이 있어 강의할 수 있었다. 분위기도 바꿀 겸 주어진 시간보다 일찍 마무리한 후, 장애와 장애인시설 운영에 대해 평소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2부는 만찬이었는데,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어느 분이 “여러분 장애아동들을 격려하기 위해 후원금을 모읍시다.” 하고 호탕하게 외쳐댄다. 이어서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장애아동에 대한 동정심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진행은 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주변 사람들도 끼리 술을 권하며 담소하기에 바빴고 후원금을 걷자고 소리친 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초대한 지인이 택시를 불러주며 강사료 봉투를 주었는데, 재능기부라며 받았다가 다시 건네주었다. 당연한 수고의 댓가지만, 나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느끼며 객기를 부린 듯하다.
집에 가는 택시 속에서 잠시 조금 전의 모임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각은 대체로 처음엔 호기심, 두 번째는 동정심, 끝에는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정중하고 예의가 바른 비장애인들 모임에서도 자주 이런 개운치 못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이럴 때는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어제는 졸업한 지 50년이 넘은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함께 했다. 육십을 지나 칠십을 넘겼어도 고등학교 동창들 간의 모임은 항상 즐겁다. 언제나 그랬듯이 삶의 고통이나 지병 따위는 마주 잡은 손길과 부딪치는 술잔 소리에 다 날아가 버린다. 정겨운 욕 소리와 별명들이 난무하고 마치 고등학교 시절의 교실처럼 시끄럽다. 장애인을 친구로 둔 동창들은 심지어 나의 장애로 인한 핸디캡마저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일하게 결석하지 않고 참석하는 모임이다.
장애인을 친구로 둔 사람이나 장애인의 기족일 경우, 장애인이 소속된 비장애인들의 모임이나 단체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차별도, 구분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나에게뿐 아니라, 다른 장애인에게도 호기심으로, 동정심으로,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울프슨 버거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들이 어떻게 장애인을 정형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인간 이하의 동물, 두 번째 공포의 대상, 세 번째 조소의 표적, 네 번째 동정의 대상, 다섯 번째 자선의 짐, 여섯 번째 영원한 아이, 일곱 번째 환자, 여덟 번째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존재, 아홉 번째 위험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영원한 아이’라는 그것은 장애가 있는 사람은 항상 미약하고 덜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이 지닌 이미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개개인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무리 지어 이미지를 평가받을 때 그 중요함은 더 커진다. 이런 때는 흔히 장애인 각자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인격마저 평가절하된다.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장애인이다. 전국 장애아동 관련 협회장도, 한국 숲 교육 관련 협회장도 95% 이상 비장애인 회원들의 선출로 당선되어 단체를 운영해 보았다. 그러나, 내 버킷리스트 상위에 올라가 있었던 ‘천주교회 사목회장’은 30년 동안 이루지 못한 꿈이 되어 최근에 지웠다. 신심도 부족하지만, 내가 장애인이라는 편견과 인식이 그 이유인 듯해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약 5%(2023년 통계)가 등록된 장애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5%의 인간 10억 명(2011년 통계)을 장애인으로 본다.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직장이나 거리,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기회 균등과 사회적 약자 보호가 공정한 사회 기본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을 뿐이다. 점점 더 살기 어려운 7포 시대 사회, 우리나라를 잘못 이끌어 가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는 바깥으로 드러난 장애인이 아니라, 어딘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장애인이 아닌지 모른다.
우리가 모두 내 친구 중에 1명은 장애인, 장애아동이나 장애 청소년이었으면 좋겠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사라질 것이고, 장애인의 날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될테니까.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첫댓글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직장이나 거리,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기회 균등과 사회적 약자 보호가 공정한 사회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