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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충 선생님 고맙습니다. 소생의 잡설에 이처럼 찾아 주셔서, 저에게 용기를 주신 것에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들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전공노는 원래 박 원순이가 참여연대를 조직하면서 만든 박 원순의 지휘 하에 있는 북괴 주사파의 교육을 전담하는 골수 발갱이들의 체계적인 조직단체입니다. 저들 단체들의 예하에 있는 공공기관의 민주노총이나 여성단체들 농민단체들도 거의 저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종 북 단체임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은 저가 무엇 때문에 전공노의 조직이 안동에서 만들어졌으며? 또한 저가 무엇 때문에 공기업 직원의 신분으로서
민노당과 참여연대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정치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는 60 년부터 농촌운동의 선봉인 4-H 구락부 회원으로 부터 시작하여, 마을 회장과 안동시 4-H 연합회장을 역임하면서 농촌 계몽활동에 전념하였고, 마을의 발전과 낙후된 우리지역을 위해서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4-H 회원으로서 연령도 지나가자, 안동시 이천동 새마을 지도자로 안동시 농촌지도자로 저의 젊은 시절은 마을과 지역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저와 같은 농촌 운동의 동지인 이 재오씨는
그 사람은 저와 같은 연배이고 4-H 활동은 저가 오히려 일직 시작 했지만, 4-H 연합 시군 회장은 저보다가 조금 빠를 것이고 저와는 한때 같은 흙의 동지로서 허물없이 농촌운동에 매진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농촌에 남아서 농촌지도자로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을 열심이 할 적에, 이 재오씨는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정치권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 당시 박정희 정권에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오래 지나고서 저가 알기론, 이 재오씨는 북한을 추종하는 공산사회주의계열의 주사파 집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반 체재 인사로
박 정권에 대하여 연일 시위를 하고 학생들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몇 년간 옥고를 치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 체재 인사로 박 정권의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농촌계몽운동을 하였지만, 그 사람과 저와는 가는 길이 애초에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47 년이 지난 2011년 가을에 저는 이재오 친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이 재오씨는 그 당시 이명박 정권당시에 나라가는 새도 그의 기침소리에 떨어질 정도의 끝 발이 센 특임장관시절이고, 그는 전국 4-H 후원회 총재로 있을 당시에 저의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길, 이 재오씨와 같은
시절에 활동을 한 4-H 연합 동기들이 모여서 지난 세월에 우리들이 농촌운동에서 활동한 우정을 나누기 위한 모임이라고 하면서, 안동 촌노를 보고서 꼭 참석해 달라는 전언을 받고서 경산 최 선배님 집에서 우리 동기들이 모인 것이고, 이 재오씨와 오랜 만에 우리는 해후를 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이명박 정권 말이지만, 그래도 막강한 권력실세 2 위인 그의 위상을 바라 볼 적에 감회가 새로 왔습니다. 같은 동기임에도 한 사람은 막강한 정권의 실세이고, 저희들은 그 당시 보잘 것 없는 촌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동기 중에서 출세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가슴 뿌듯했었고, 그의 지난 역경과 삶을 조명하여 볼 적에는 무언가 꺼림직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가 인사말을 하면서, 대권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말을 처음 우리에게 전달했고, 그의 속셈을 나는 간파를 하고서, 그의 사람됨이 사실 통수권자로서 넉넉한 성품을 가진지를 확인 하고 져, 그의 인사말이 끝난 후에 나 역시 정치권에 대한 섭섭한 감정과,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초심을 잃지 않고 성군의 길을 갈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한 적도 있습니다. 불과 47 년 만에 만난 친구이고, 한 때는 같은 흙의 동지를 단 2 시간 동안 만나고 돌아오면서, 왠지 저의 마음은 서글펐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젊은 시절에 나의 친구이고 동기라 하지만, 대한민국에 과연 이 재오 만한 인물의 대통령 감 밖에 없는지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금 것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저의 소신대로 글을 쓰고 있지만, 아닌 것은 분명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가 보기론, 이재오 그 친구는 절대 정치지도자 감이 되지 못합니다. 상생과 화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바닥에서 굴러먹는다고 나라가 발전될 일을 없다고 보여 집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 야를 통 털어서 가장 정치력을 발휘하는 인물 중에는 박지원이나 한 명숙 문재인 손학규 김무성 박 원순 같은 사람들 중에 절대로 대통령감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절이 불운하여 혹여 앞에 열거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저가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저가 무엇 때문에 민노당과 참여연대에 가입을 하고 저들의 종북 집단에서 삼년간 이름을 걸어두고 활동을 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997년 아이앰 에프가 발생되면서, 저는 안동시 위생환경사업소에 기능직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적에, 김 대중이가 이회창을 이기고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국민의 정부라고 명명을 했고, 아이앰 에프를 극복한다면서 기업들을 구조조정 했고, 수많은 기업들을 거의 구조개혁으로 손을 본 것이 3 만개의 크고 작은 대기업 중소기업이 문을 닫았고, 그 여파로 기업들의 도산으로 폐업을 한 기업들에 근무하던 350 만의 근로자들이 모두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입니다. 저 역시
공무원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그 당시 공무원 3 만 명을 구조 조정 할 당시에 힘없는 저의 기관이 거의 사퇴명령을 받았고, 그로 인해서 저는 우리직원들을 규합해서 상조회를 만들고 부당한 구조조정에 대하여 항의를 했지만, 김대중 정권의 강압에 결국은 저희들은 물러 설수밖에 없었고, 저가 앞장서서 그 당시 공무원 상조회를 만들고, 다른 환경업소와 제휴를 해서 우리 직원들을 모두[환경시설관리공단]그곳으로 전원 이직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본청에 남아있던 하위직 공무원들과 각 사업소 직원들이 저의 본을 보고서 직장 상조회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 그것을 재빠르게 박 원순 참여연대의 지휘 하에 있던 민주노총이 안동시청의 상조회를 접수한
것이 바로 공무원 노조인 전공노로 변질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 대중이가 정권을 잡으면서 죄 없고 힘없고 열심히 맡은 업무에 열 공하는 하위직 공무원을 구조조정 한 것이고, 그들은 살기위해서 만든 상조회 모임이 결국은 전공노란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나라의 근간을 송두리 체 뒤엎는 반 체재 인사들의 조직체인 오늘날 발갱이 전위대가 된 것입니다. 지금 전국에 저가 알기로는, 전공노 조직원들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 만 해도 8 만 명이 넘는 것으로 보여 지지만, 실제로는 음성적인 전공노조원이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김대중은 아이앰 에프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하위직 공무원 3 만 명을 모가지 날리면서
김대중은 그 당시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엘리트 대공 정보요원들 650 명을 모조리 옷을 벗기면서 아예 대공부서 자체를 없애고, 경찰서 대공 분실 요원들 2 천 4 백 명과 엘리트 대공 검찰 40 여명을 모조리 다른 부서로 전출시킨 것이고, 공석중인 자리에 김대중의 꼬붕들을 능력도 없는 무지랭이 정치깡패출신들을 모조리 요직에 앉혀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 재 관 언 종에 모두 틀어 박혀서 온 갓 반역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임기 말에 자기 수족들로 공무원을 특채 시킨 것이 무려 4 만 여 명에 달한다고 통계까지 나왔습니다. 역도 김 영삼이와 역적 김대중이 두 넘은 말짱한 우리경제를 도산케 하는 아이앰 에프를 합작으로 터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능력도 없는 놈들을 정부요직에다가 앉힌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김영삼 김대중의 은혜를 입은 놈들이 지금 정 재 관 언 종의 우두머리로서 저들 주군들에게 보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께 벌어진 서울 민란역시 김대중의 졸개들이 앞장선 것이고, 거기에 골수 발갱이들까지 합세한 것입니다. 더우 기 박 원순은 골수 발갱이 수령입니다. 즉 남한의 김일성 왕족의 수령이라고 바야 하겠지요. 저는 2003 년 노무현과 이회창이가 대선에서 맡 붙었을 적에 노무현 선거 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언론을 통해서 본,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말짱한 두 아들은 모두 군에서 면제가 되었고 자기 부친도 왜정당시에 일본 판사를
지냈던 친일파의 집안이었기에, 저의 조부님은 독립투사집안인데 도저히 용납이 되질 않아서, 노 무현이를 부득이 선택한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우리들이 이회창을 지지해야 하지만 자기 아들과 자기 부친의 이력 때문에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고, 그 당시만 해도 노무현이 같으면 그래도 진성 발갱이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고, 노사모 집단 외곽에서 발갱이 소릴 들어가면서 저는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막상 2002 년에 저의 아내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정신지체장애자로 병원생활을 몇 년간 입원하면서, 저가 공무원 재임당시에 들어두었던 몇 개의 상해보험금 수령 때문에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보험사와 쟁의가
벌어지면서 재벌보험사의 횡포가 극심하였고, 당연히 우리들에게 지불되어야 할 보험금을 재벌회사들은 지불치 않기에, 하도 억울해서 저는 금감원과 감사원 정부부처 각 기관에 수많은 진정서를 내었지만, 어느 곳 하나도 우리의 편은 없었고 재벌들의 편이기에,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정서와 탄원서를 다섯 번이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었지만 소식이 없어서, 그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권 양숙 영부인에게 두 번에 걸쳐서 진정서를 보냈지만, 저에게는 2 년이 지나도 전혀 소식이 없어서 저가 직접 사행시를 자작해서, 에이쓰리 용지 2 만장을 인쇄하여 안동역과 서울 세종로 서울역 청와대 앞에서, 저의 억울한 사정을 담은 전단지 2 만장을 직접 저의 손으로 나누어주고
청와대 앞에서 재벌들을 옹호하는 노무현 정권은 퇴진하라고 일인시위를 합법적으로 했음에도 청와대의 오더가 떨어졌는지? 서울 넘버를 단 검정 승용차 여러 대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거기다가 저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저의 집에 가만히 들어와서 서류를 절취해 가고, 심지어는 검찰까지 동원해서 저의 가족들을 영장 없이 몇 시간 동안 불법 심문을 하는 등, 저의 가족에 대한 사찰과 불법도청이 이루어지고 저가 수없이 검찰과 경찰에 신고를 해도 저들은 일체 저의 신고조차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저들의 조직들을 이용해서 저를 죽일려고 수없는 테러를 밤 낯없이 시도를 했고, 저는 그로 인해서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를 당하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병원생활을 삼년이 넘게 했고 저가 얻은 병이 불치병인 희귀난치성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 2 로, 대학병원 여러 군대에서 확진이 났습니다. 저가 저들에게 테러를 당하 기 앞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저에 대한 신변보호를 한나라당에 요청 했더니, 한나라당에서는 저가 노무현이 선거 운동한 전력을 앞세워서 저의 신변보호를 아예 외면을 했고, 그래서 마지막에 참여연대와 민노당에서 저의 신변을 보호해주겠다고 해서, 저는 그 당시 박 원순이가 참여연대 수장으로 있을 당시에 참여연대에 가입한 것이고, 민노당에도 가입했지만 역시 저들은 모두 노무현과 한 통속이었다는 것이고, 오히려 박 원순이가 이끄는
참여연대 역시 발갱이의 진짜 소굴이란 것을 알고서 저는 가입한지 삼 년 만에 저들의 집단에서 몸이 좋지 못하다는 핑계로 저들의 소굴을 탈출한 것입니다. 저들의 교육은 공산사회주의 혁명과, 김일성 주체사상의 교육을 전담하는 것을 여러 번 보면서 저는 그곳을 탈퇴할 것을 마음을 먹고 자진사퇴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민주노총 산하의 교육을 전담하는 곳이 바로 전 민노당이고 통진당 아류들이고, 그것을 총괄하는 우두머리가 바로 참여연대의 박 원순이란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저가 저들의 집단에서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한 것을 글로 쓰면 어김없이 저에게 전화번호도 요상하게 숨기고서, 김 성복이 조심해라!
까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린다는 공갈 협박의 전화도 가끔 받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저들의 악랄한 종 북 집단들의 만행입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과 많은 국민들이 저의 글을 보고서 저들의 감언이설에 속지마시길 바랍니다. 그저께 시위현장에서 물대포에 맞은지는 몰라도, 늙은 사람이 쓰러진 것을 부축하는 척 오히려 그의 급소를 가격하는 장면이 상세히 밝혀진 것 만 보아도, 종 북들의 악랄함이 극에 달해 있고 저들의 전술 전략은 무궁무진 하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재충 선생님! 저의 오늘 답 글을 내일 저의 원 글에 올릴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고 만사가 형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경도 역술원 역학 심리상담사]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