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사기꾼’이 판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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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학원가에 ‘가짜 족집게’ 수두룩…서울대 강사 사칭 조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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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
지난 11월14일 서울 강남 서초동에 있는 한 학원 강당에서 열린 대학 입시 설명회(위)에 수많은 수험생 부모가 몰려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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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서울 강남 지역 논술 시장이 급속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11월14일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ㄷ학원’. 전문 강사진 4개 팀을 갖추고 있다는 이 학원은 매주 화·목·토 요일마다 3시간씩 12회 논술 지도를 하는데 월 수강료가 58만원이었다. 서울대를 준비하는 심층면접 수강료는 보름 강의에만 1백26만원. ㄷ학원에서 한 수험생이 논술과 심층면접 강의를 다 듣는데 2백만원 가까이 필요한데도 상담원의 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서울 지역뿐만 아니라 지방 고등학교 상위권 학생들도 논술이나 심층면접 준비를 위해 대치동·방이동·서초동 등 강남으로 몰려들고 있다. 국내 논술 시장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강사 o씨는 11월 초부터 지방 명문 고교 학생 6명을 자기가 강의하는 학원에 등록하게 한 뒤 학교 교사를 대신해 논술과 심층면접을 지도하고 있다. 지방의 ㅎ고등학교 진학 지도 교사가 평소 알고 지내던 o씨에게 수능이 끝난 직후 3학년 전체 내신 석차 1위 학생을 맡기자 ㅎ고등학교 인근에 있는 ㅊ고등학교 교사도 서울대 준비생들을 함께 강남으로 올려보낸 것. 학교에서는 까다로운 서울대 심층면접 준비를 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교사나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상경’에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심층면접 전문 강사로 통하는 o씨는 “심층면접은 전문가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요즘 논술·심층면접 학원 강사가 학교로 초빙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공교육과 사교육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논술 학원의 강남 쏠림 현상은 올해 들어 더 심해졌다. 11월14일 서울 강남의 유명 인터넷 입시 학원인 ㅁ사가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주관한 ‘2004 대입 최종 전략 설명회’에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무려 6천5백명이나 몰렸다. 반면 같은 날 오후,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자리한 ㅎ학원이 연 논술 공개 강연회에는 수험생 30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강남 ㅁ학원 설명회가 인산인해를 이룬 데는 까닭이 있었다. ㅁ학원 인터넷 입시 사이트의 초빙 강사가 올해 수능 출제위원에 포함된 인물인 데다, 이 학원이 ‘칸트’에 대한 지문이 올해 수능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언어영역에서 비슷한 지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이같은 입소문이 퍼지면서 ‘족집게’ 기대 심리가 작용해 사람이 몰린 것이다.
ㅁ학원의 사례에는 국내 논술 학원 시장의 복마전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학원 강사들에 따르면, 학원마다 논술 수험생을 유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올해 수능시험 언어영역의 ‘칸트’ 관련 지문이 ㅁ학원의 인터넷 강의 때 예고되었다는 소문은, 수능 당일이던 11월5일, 언어영역 시험이 끝나자마자 학원가에 급속히 유포되었다. 이 날 언론은 학원의 주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여과 없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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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안희태 |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 주변 논술 학원들이 대목을 맞았다. 이곳에서는 서울대 심층면접 수강료로 보름에 1백20만원 가량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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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영역과 논술 학원 강사들에 따르면, 실제 ㅁ학원이 예고했다고 알려진 얘기는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한 논술 강사는 “실제 해당 문항의 지문은 지난해 ㅅ대학교 문제에도 나왔던 것이다. 학원 강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수험생들에게 강조하고 넘어갔을 터인데, ㅁ학원이 의도적으로 자기 학원만 예측했다고 퍼뜨렸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ㅁ학원 관련 회사는 11월에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문을 만들어내고 언론을 통해 이를 기정사실화해 학원을 홍보하려 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논술 강사들이 사기꾼을 ‘방치’하는 까닭
대학입시 철만 되면 논술 학원 주변에는 사기성 짙은 족집게 강사 파문이 일곤 한다. 논술 학원 강사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ㄴ강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베테랑 강사로 알려진 ㄴ씨는 한때 ㅈ일보 기자였다. 그는 자신의 언론계 인맥을 활용해 겨울 논술 시즌 때마다 특정 학원과 손잡고 수천만원대 홍보 전단을 뿌리고, 언론과 방송을 통해 광고를 집중한다. 그 뒤 1타(일류 실력을 갖춘 논술 강사)보다는 얼굴 괜찮고 말 주변 좋은 2타나 3타(2∼3류 논술 강사)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리고 고액 과외가 가능한 사람들만을 골라 집중 교육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챙긴다.
입시가 끝난 뒤에는 학부모들의 항의를 의식해 한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지방에 ‘잠수’해 있다가 이듬해 강북 지역으로 옮겨 똑같은 수법으로 수험생을 모집한다. 대치동의 한 강사는 “한동안 ㄴ씨가 서울에 보이지 않더니 올해 강남 반포 쪽에 다시 나타났다. 수년 동안 논술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ㄴ씨 사례는 사기 행위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족집게 강사’라고 자처하는 논술 사기단은 또 있다. 2001년 겨울, 서울대 주변에서 논술 강사 사기단이 서울대와 수험생까지 속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대 주변 학원가에서 서울대 현역 강사 출신들이 족집게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몰려들었고, 서울대도 예상 문제 유출을 우려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서울대 드림팀’은 사기였다. 논술 강사는 서울대가 아니라 ㅇ대학 등 지방 대학 출신 뜨내기 강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직은 올해도 서울대 근처 낙성대역 대로변에 둥지를 틀고 학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다. 서울대 강사 사칭 조직이 이처럼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다른 논술 강사들은 논술 시장이 위축될까 봐 쉬쉬하는 실정이다.
논술 학원과 과외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11월12일 ㅈ일보는 ‘강남 ㅇ논술 학원 전체 수강생 250명 가운데 80%가 지방 학생이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논술 강사들은 ㅈ일보 기사를 ‘팩트’가 약한 왜곡 보도라고 주장했다. 한 강사는 “기사가 나온 시점은 재학생들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아 재수생 수험생만 모집할 때다. 학원이 홍보를 위해 부풀리는 말만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결국 수험생과 학부모를 속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돈벌이만을 겨냥한 학원들은 강남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부산에서 성장해 서울에 입성한 ㅋ학원은 대치역 주변 ㅇ빌딩에 새로 입주하고 11월12일 입시설명회를 열었다. ㅋ학원 심층면접 실습 강의실은 학생들이 실제 면접관과 모의 면접을 보는 모습을 촬영한 뒤 강사가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최신 시스템을 자랑했다.
“스타 강사에게 배워도 점수 안 올라간다”
‘논술의 혁명’이라는 화려한 제목을 단 홍보 전단에는 ‘7년 동안 대치동에서 논술 신화를 창조한 ㅈ선생’이라는 소개 글이 붙어 있었다. ㅋ학원 ‘드림팀’에 대해 같은 빌딩에 입주해있는 ㄱ논술 학원 강사 길 아무개씨는 “스타 강사에게 배운다고 논술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상호 토론을 유도해 조리 있게 글쓰고 말하는 훈련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논술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학원 강사 ㅁ씨는 “논술이나 심층면접 질문 사항을 족집게처럼 맞춰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족집게 과외로 점수 올려주겠다, 드림팀 강사로 합격시켜 주겠다는 말은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라며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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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올리는 데 1천만원
논술·심층면접 고액 과외 성업…유명 강사, 3개월에 수억 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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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향란 |
논술·심층면접 과외는 대치동 상가에 입주한 과외방이나 강사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위는 논술 교재 판매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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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주변에서 전문 강사와 학부모 들이 만나 은밀하게 팀을 구성해 운영하는 논술 과외 시장도 대목을 맞고 있다. 교육부가 11월24일부터 학부모 단체와 공동으로 밤 10시 이후 논술 학원들의 학습과 불법 과외를 단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이미 대치동 논술 시장에서는 과외 드림팀들이 꾸려졌다. 대치동의 한 학원 강사는 “타워팰리스 안에도 유명 논술과 구술 강사 몇 팀이 들어갔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과외 강사들도 정부의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대치동 지하철역 주변 정류장과 골목길에는 고액 논술 과외를 권유하는 유인물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고3 심층면접·논술 과외지도’라는 한 유인물에는, 강사 자신이 서울대 서양사학과 출신으로서 수능 점수 380점 이상 최상위권만 중점 지도해 왔다는 경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 강사는 ‘2002년 논술을 6개월 지도해 경기대 재학생을 중앙대 정경학부로 진학시켰고, 올해 수시 모집 때 수험생을 중대 사회복지학과로 진학시켰다’는 경력도 덧붙여 놓았다.
기자가 유인물에 딸려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20대 중반 여성이 받았다. 이 강사는 수험생이 재학하고 있는 학교와 희망 학교, 수능 점수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자가 ‘논술 과외를 받으려면 얼마를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자 “논술이나 심층면접은 수험생과 직접 만나서 인성이나 성격을 파악해 본 뒤 액수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부모와 직접 만나 액수를 담판짓겠다는 말이었다.
논술·심층면접 과외는 대치동 주변 상가에 입주한 과외방이나 유명 강사의 아파트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ㅎ학원 국어강사 ㅁ씨는 “수능이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비슷한 수능점수대에 수험생들이 몰려 논술이나 면접에서 1∼2점이 당락을 결정한다. 재수생들도 1점 올리는 데 평균 1천만원을 쓰는 판인데 다급한 재학생 학부모들도 강사가 요구하면 돈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흔히 논술·심층면접 전문 강사들은 겨울 한철에 1년 장사를 다 한다고 한다. 국내에서 ‘1타’로 꼽히는 10명 안팎의 유명 강사들은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개월 동안 학원 강의로만 억대 현금을 벌어들인다. 일부 강사들은 ‘학부모의 성화’를 핑계로 개인 지도를 통해 학원 수강료 외에 음성으로 고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한 강사는 순전히 논술 하나만으로 최근 대치동에서 5층 빌딩 소유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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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권일 nafree@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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