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9세까지 살기로 했다 / 김종호

작년 5월, 이모님의 부고(訃告)를 받고 서울에 문상(問喪)을 다녀왔다. 향년 98세다. 8남매의 자식들과 후손들이 45명이었다. 모두 호상(好喪)이라며 분위기도 밝고 즐기는 듯했고, 외할머니가 97세로 돌아가신 1996년을 회고하기도 했다. 친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86세까지 건강히 사시다가 돌아가셨고, 내 어머니는 95세로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신다. 조문을 마치고 고속열차로 내려오면서 ‘나는 몇 살까지 살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해 75세인데, 살아온 일생 중 절반인 37년을 하느님의 자비로, 덤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1986년 6월 29일, 교통사고를 당해 하루를 입원해 다친 곳을 찾았으나, 별다른 큰 부상은 없다며 퇴원했다. 장파열이 있었음에도 오진으로 인하여 40시간이 지난 후, 종합병원에 가서 알게 돼 10시간 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의사들은 내가 살 확률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배를 꿰매지 않고 두꺼운 철사로 일곱 군데 스테이플링 후, 큰 거즈와 타올을 덮어 중환자실로 옮겼다. 내 배를 25cm 정도 개복하여 부패한 창자들을 제거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2주간이 흘렀다. 수술 보름째 되는 날, 내 담당 의사(부원장)는 아내에게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임종(臨終)을 지키라고 했다. “현대 의학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고 덧붙이며 미안해 했다. 늦은 오후 시간에 신부님과 교우들이 방문, 환자를 위한 마지막 임종기도를 바쳤다. 신부님 임종기도 끝나는 즈음에 항문까지 열려있던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맞춘 친구에게 “너, 뭘~라고, 왔냐!” 첫마디를 내뱉었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내 임종을 지키는 가족과 지인들 20여명이 놀라서 환호하며,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일순간 난장 바닥이 된 것을! 다음 날 출근한 부원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도 조상님들이 돌봐주신 기적이라고 했다. 사실 의식이 없었지만,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려고 무진 애를 썼고 굴복하지 않으려 며칠을 싸운 후, 그 시간이 지나자 아무리 바라봐도 눈이 부시지 않는 황홀한 빛을 보았다. 나는 그 빛을 향하여 37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염치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살아온 만큼의 연수, 37년은 이타적으로 살아야 내 최후의 심판(죽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영(靈)이 내 육신을 내려다보았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기적의 사나이’ 후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겨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나는 이런 하느님의 자애와 은총으로 75세가 된 올해까지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덤으로 연장해 주신 그 수명이 다 되었음을 이모님의 죽음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올해가 바로 다시 연장될 제3의 인생(수명)을 그분께 간청드리는 기간이 아닌가.  궁(窮)하면 통(通)한다. 지난 6월, 내 서가에서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 번쩍 눈에 띄었다. 5년 전에 선물로 받았던 것을 잊고 살다가 책을 펼치자 놓을 수가 없어 3일 만에 모두 읽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남은 노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사색하고 설계할 수 있게 되었고, 놀라운 영감을 얻었다.  나는 99살까지 살기로, 나의 미래 25년을 설계하고 목표를 정했기 때문이다.  ‘무슨 노인 욕심이 그렇게 끝을 모르냐?’고 반문하거나 핀찬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멈추시라.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덤으로 살던 37년 동안 이타적으로 산다고 애를 썼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일평생을 위선으로 살아온 적이 너무 많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내 본래의 모습과 내면의 속생각을 무시하고 허세로 살아왔다. 앞으로의 삶은 내 운명의 주인이 되고 싶다. 지나온 세월같이 환경의 노예가 되어 살고 싶지 않다. 늦게야 알게 된 참된 행복으로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조하고 싶다. 수필집과 수상록도 한 권씩은 써야 한다. 버킷리스트에는 지워야 할 많은 소원이 남아 있다.  나는 다행히 장수(長壽)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 부모 세대보다 몇 살이라도 더 살 것 같다. 내 부모처럼 증손들도 보고 싶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서약한 후,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분에게 기도하며 맞갖게 살겠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얘기는 여기서부터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진 수명을 내년이든, 10년 후이든 허락받은 세월만큼 더 산다. 그러나, 내가 사는 동안 무얼 원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내 자유의지다.  내 제3의 인생을 아무런 목적 없이 허송세월할 것인지, 이런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하고 내가 디자인한 인생을 스스로 완성해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변화든 선택에서 시작된다. 내 자신의 성장과 성숙 그리고 완성에는 은퇴가 없다. 그분이 불러 내가 가는 날이 진정한 은퇴 일이다.  “정말 자유롭게 살고 싶은가? 그러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당신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것들로 둘러싸인 채 별다른 변화와 도전과 성장 없는 삶만 살다 가게 될지도 모른다.” 95세에 쓴 강석규 박사의 말씀이다. 캐서린 로빈슨 에베레트는 96세에 변호사 개업을 했고, 피아니스트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는 99세에 새 앨범을 냈다.   내 영혼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갖고 매일 창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예술가일 터다.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간다. 물론 신의 섭리 안에서!   나의 기본 중 기본은 자신의 건강, 행복, 평화를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약과 의사가 내 근력, 폐활량, 균형감각, 순발력, 면역력 같은 근본적인 건강까지 보장해 주지 않는다. 건강한 체력은 누구도 대신 키워줄 수 없다. 행복과 평화도 내가 만든다.  지금은 100세 시대, 나는 99세까지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