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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재균의 세상사는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장재균
김대중의 亂 5.18 | |
“ 광주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 600명 투입" 에 관한 2007년 1월 20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 오전 11시30분의 기자회견을 되집퍼보자 | |
장재균 기자, wo5rbs@han mail.net |
등록일: 2009-03-12 오전 10:52:02 |
김대중의 亂“ 광주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 600명 투입" 에 관한 2007년 1월 20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 오전 11시30분의 기자회견을 되집퍼보자 이날 증언 80년 5.18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탈북군인의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은 광주에 북한의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이 1개 대대 이상 투입 됐었다고 증언했다. 前북한군 출신 모임 '자유북한 군인연합' 증언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투입된 정황을 증언하기 위해 모인 참석자들. 왼쪽부터 오복섭 애국청년연합 대표, 최중현 자유북한군인연합 공동대표, 임천용 공동대표, 요덕 스토리 안무가로 유명한 김용순 씨, 사회안전성 소속 특수부대 군관 출신 탈북자. 여기에 대해 특수부대 정치장교였던 최중현 대표가 김일성의 비밀 교시와 인민군 4군단 70정찰대대 출신인 이덕선씨로 부터 자세한 정황을 들었다고 했다. 최중현 대표에 따르면 김일성은 5.18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사북탄광 사태 당시 다음과 같은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빈민 등 각계 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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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주요 공공시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또 5.18 당시 군부의 실세로 진압을 지휘했던 사람은 임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결국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장갑차를 다루는 수법, 조직적인 총기탈취와 방송국 등 국가주요기관을 능숙하게 파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특수전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도 풀지못한 수수께끼"라며 당시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광주에 투입됐다 복귀해 현재 인민군 중장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봉기군의 3분의 1은 돌아오지 못했다. 각각 괴뢰군(진압군을 의미)과 봉기군으로 나뉘어 투입되었는데 괴뢰군에게 직접 맞아죽은 사람도 꽤 있을 거다. 괴뢰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임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처음으로 산 사람을 잡아봤다. 맨 정신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도망가는 여자 등 뒤에다 총을 쏘는 게 어려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올해 9월 또 다른 북한 특수부대 출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별도의 특수조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봉기 분위기를 조성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 대남사업부 관계자에 따르면 5.18 당시 투입된 북한군 특수부대는 모두 600명, 이중 1차로 300명이 귀환했고 2차로 생존자 70명이 사망한 40명의 유품을 가지고 복귀했다고 한다.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사람은 모두 90명. 이때 환송회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그 사진은 평양 대성구역 지하 2 전시실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임 대표와 최 대표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된 90명이 아직 남한 내에 살아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천용 대표가 한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속에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머리에 띠를 두른 군인들이 카빈 소총을 든채 시민들에게 벌을 주고 있다. 임 대표는 당시의 사진중 하나를 가리키며 "여기 사진을 보면 얼룩무늬 군복에 M-16을 들고 민간인들을 꿇어않혔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고 취재진들에게 물었다. 그는 당시 시신 사진 중 한 임산부의 목이 없는 사진, 전기톱으로 머리를 도려낸 사진 등을 보여주며 "진압군이 이렇게 했다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증언과 설명이 끝난 후 ▲5.18 광주항쟁 사망자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것 ▲김대중은 호남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햇볕정책을 중단할 것 ▲일심회 사건을 비롯 최근의 공안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참관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당시 육군본부 인사과에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 본부장은 "그때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군에서는 호남 출신 장교들로 진압군을 구성해 투입했었다"며 "그 당시 상황에서 사상범이 수감돼있는 교도소를 습격하고 관공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는 걸 순수한 의도를 가진 시민혁명이라고 볼 수 있겠나"고 말했다. 그는 또 "시민혁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볼 때 불순세력이 이용했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건 4.19나 부마항쟁과는 개념이 다르다"며 "결국 순수한 마음으로 시민혁명을 위해 애쓰던 사람들만 이용당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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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18은 분명하게 제조명 되어야 합니다. 광주시민들에 억울한 누명을 반드시 벗겨내야 합니다. 화려한 휴가 제작진에 대해서도 군차원에 명예회복에 관한 심리가 반듯이 열려 허위사실을 사실인양 왜도하며 선량한 광주시민과 대한민국에 국군을 모독한 행위에 대하여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5.18과 12.12에 대해서는 지만원 박사가 비교적 상세하게 구술하였습니다. <5.18과 12.12의 진실>총 4권...제가 허화평씨와 신윤희 헌병감(당시 수사 실무책임자), 박희도 장군 등을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역시나 좌파들이 말하는 내용은 악의에 찬 허구에 불과했습니다. 좌파들의 날조된 선동에 역사적 진실이 묻혀지고 있습니다. 요즘 5.18과 12.12에 대해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