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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夜蝶, 나타나다
밤[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천지간엔 온통 죽음의 심연 같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을 뿐,
깨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후,
그는 지금 악양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영빈객잔의 하나의 객실에 있었다.
창밖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천후의 모습은
언젠가 천상미인궁에서 보았던 그 무심한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인가 깊은 상념에 젖어있는 천후!
그의 모습은 악양루에서의 그와는 또 달랐다.
'남궁청운,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어
. 뛰어난 인내력과 통찰력, 그리고 범상하지 않은 풍도,
필경 가공할 무학을 지닌 일대고수이리라!
화미, 후후후… 피곤할 때, 또 삶의 염증을 느낄 때,
그녀는 내게 새로운 분위기를 주어 재생하게 해줄 것이다.그녀는 그런 여인이었어.
그래서 나는 다섯 번째 부인으로 삼았다.'
흐릿한 웃음!
너무나 쉽게 흘리는 웃음 같아 차라리 섬뜩해 보이는 그의 미소.
'화미, 그대는 낭군을 참 잘 얻은 거야.
무저갱의 한냉천에서도 보름이나 견디어 살아난 나다. 후후후…'
문득 천후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 스쳐갔다.
'운명은 나를 결국은 강호라는 곳에 들이밀어 놓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어쩌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무인(武人)이기를 바랬던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또다시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희미한 미소!
'나에게는 많은 일거리가 있다.
남들은 그것을 사명이니 의무니 하지만 내게는 그저 일거리일 뿐이야.
왠지 아나? 그런 것마저 없다면 인생을 무슨 맛으로 살겠는가?
더더구나 그것은 참 재미있는 일거리가 아닐 수 없지…'
문득, 흐릿한 그의 웃음 속에 떠오르는 음성이 있었다.
천후! 너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만통회에 전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만통회주의 신물(神物)이다.
가서 귀제갈에게 전해다오
. 아마도 현재 만통회는 귀제갈(鬼諸葛)이 맡고 있으리라.
그에게 전해다오.
하찮은 호기심이 끝내 나 기호랑을 죽음으로 인도해 버렸다고.
그리고 귀제갈이 회주가 되어 있으면 전하고 그렇지 않으면 귀제갈과 상의하도록…
그것은 천후가 무저갱을 떠날 때 기호랑이 전한 말이었다.
'기호랑께서는 이십 년 전 이대비궁의 신비를 자신의 손으로 캐겠다는 욕심으로 인해
결국 무저갱에 버려지게 되었다고 했었지.
사실 회주의 신분을 지닌 분으로서는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다.'
천후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옥패(玉牌)!
손바닥 크기만한 비취색 옥패였다.
양면에 각각 통(通)자가 양각되어 있는 신비한 옥패!
'이것이 만통회주를 상징하는 신패다.
나는 이것을 귀제갈이라는 인물에게 전해야 한다.
귀제갈,
그는 만통회의 제일통사(第一通士)로서 지모와 귀계에 달통한 기인이라고 했지!
궁금하군.'
문득, 천후의 두 눈에 흐릿한 빛이 스쳐갔다.
'월미옥…설매란…천상미인궁의 여인들,
나는 그들을 앞으로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후후…재미있군. 인생은 그래서 결코 지루하지는 않는 것이지.'
천후의 입가에 또다시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으응…? 이것은…?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열 명 이상이다.
발걸음이 무거운 걸 보면 몹시 격분하고 있다는 증거다!'
천후는 즉시 창가를 떠났다.
"으…응…!"
"후후후… 너의 솜씨가 점점 더 뛰어나니…!"
"아이…!"
벌거벗은 두 개의 동체가 침상에서 얽혀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춘사(春事)!
옥같이 투명한 여인의 피부는 이미 사내의 손길에 의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새하얀 두 팔과 상아 같은 그녀의 두 다리는 사내의 전신을 휘감고 흔들리고 있고,
사향 내음 물씬 풍기는 그녀의 입술은 이미 축축히 젖어 있었다.
뜨거운 밤의 정사(情事)였다.
여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서늘하면서도 요기(妖氣)가 서려 있는 두 눈!
오똑한 콧날과 붉은 입술은 너무나 유혹적이다.
특히, 입가에 박힌 작은 점은 폭발적인 그녀의 미(美)를 더욱 뇌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온몸 가득 절정의 환희를 담고 또아리 튼 뱀처럼 휘어지고 있었다.
그림자, 열 개가 넘는 흑영(黑影)이 섬전처럼 날아내렸다.
영빈객잔의 후원, 이 층으로 된 객실이 있는 마당에 그림자가 내린 것이다.
민첩하면서도 살기가 물씬 풍겨오는 인물들,
그들의 양손엔 각각 보기에도 섬뜩한 병장기들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이 마침내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화화공자(花花公子)! 나 설백룡(雪白龍)이 왔다. 어서 그 화냥기 난 계집을 데리고 나와라!"
분노와 회의, 그리고 살기가 가득 서린 일갈이었다.
한데 화화공자라니…?
그렇다면 이 객잔에 지금 무림오공자 중의 하나인 화화공자가 있단 말인가?
설백룡이라는 인물!
그는 그의 외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의 수하들에게 싸늘하게 명을 내렸다.
"뒤져라!"
"예!"
대답과 동시, 열한 개의 신형이 각각 일 이 층 객실을 향해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우 당 탕!
그리고 곧,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비명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누… 누구시오?"
하나의 객실!
단아하게 꾸며진 객실에선 지금 두 명의 가인(佳人)들이 일어나 막 옷을 찾아입고 있었다.
지금 막 깨어난 듯, 투명한 나삼만을 걸친 빙기옥골의 여체(女體)는
어두운 공간에서 묘한 자극을 풍기고 있었다.
만지면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너무나도 매끄러운 여인의 피부,
가히 신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여인의 미체(美體)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남궁화미와 황보운향이었다.
그녀들은 지금 막 소란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있는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하나의 인영이 다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벼락같이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나 죽는다! 남궁형, 나좀 살려 주시오!"
"어머!"
"누… 누구…!"
두 여인은 미처 옷을 채 입기도 전이라 크게 당황하며 몸을 추스렸다.
하나, 인영은 너무나도 놀란 듯 이미 두 여인에게 쏜살같이 덤벼든 지 오래였다.
그리고 무작정 아무나 껴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멋!"
뾰족한 비명을 질러낸 것은 바로 남궁화미였다.
그녀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육체 한쪽을 점령 당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여인의 소중해야 할 옥봉(玉峰)을 말이다.
그녀는 수치스럽고 당황하며 급히 사내를 떨쳐냈다.
사내! 그도 그때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무작정 껴안은 물체가 여인이었으며
더구나 여인의 소중한 옥봉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남궁형이 아니구려… 아쿠!"
사내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남궁화미의 분노에 찬 일장을 맞고 벽에 가서 꽈당 부딪치고 말았다.
천후였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세게 충격을 받은 듯 입가에 피를 흘린 채 혼절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또 이자였다니…도대체…!"
남궁화미와 황보운향은 비로소 천후임을 알아본 듯했다.
분노와 수치에 의해 남궁화미의 옥용은 파랗게 물들여져 있었다.
"동생, 그는 기절해 버렸나봐!"
황보운향이 정신을 차린 후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흥! 죽지 않은 게 다행인 줄 알아야 할 거예요!"
남궁화미는 냉정하게 잘라 말한 후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가 버렸다.
황보운향은 일순 당황한 듯 보였다.
아마도 천후의 안위 때문이리라.
해서,
그녀가 막 쓰러져 있는 천후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너무나도 얼음 같은 남궁화미의 말에 그녀의 발걸음은 멈춰지고 말았다.
"언니, 그냥 놔두세요. 그런 불한당은 혼이 좀 나야해요."
"으… 아…악!"
"아…악…."
비명, 그것은 한 인간이 생(生)을 마칠 때 부르짖는 처절한 단말마였다.
피[血],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 쏟아지는 시뻘건 선혈이었다.
넓은 마당, 처절하고 잔혹한 살겁(殺 )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 전의 흑영(黑影)들과 웬 낯선 세 명의 여인과의 혈투였다.
하나, 너무나도 잔혹하고 신랄한 여인들의 손속 앞에 흑영들은 모조리 도륙당하고 있었다.
한 명의 여인이 손에 쥔 연검을 벼락처럼 하늘과 땅을 자르듯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들려오는 비명들!
"크…윽!"
댕강
목이 잘린 시신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남은 흑영의 최후였다.
미공자(美公子), 그야말로 천하에 다시 볼 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미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옆, 저 여인은?
바로 조금 전 격렬한 정사(情事)를 치루던 그 여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의 정사 상대자가 바로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공자란 말인가?
문득, 아름다운 미공자가 손에 쥔 황금빛 섭선을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약 삼 장 되는 거리에는 설백룡이라는 인물이 비통과 격분이 엇갈린 시선으로 서 있었다.
"후후후 설백룡, 보았나? 나 화화(花花)는 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를 죽일려면 먼저 이 여인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야…"
화화(花花)라고 스스로 부르는 자!
오오…그렇다면 그가 바로 무림오공자 중의 화화라는 말인가?
설백룡,
그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화화공자와 그 옆에 서 있는 입가에 점이 있는 여인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비통하게 입을 열었다.
"으으… 이 하늘도 용서 못할 간악(姦惡)한 년놈들!
지아비를 버리고 다른 자의 품에 안긴 년이나, 같이 놀아난 너 화화공자나…
모두 천벌(天罰)을 받아야 마땅하다. 으으…"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화화공자와 정사를 나누던 그 여인은 원래 설백룡의 아내란 말인가?
이런 일이…
한데 돌연, 화화공자가 크게 웃었다.
"후후후…너는 언제 화화공자가 간통했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느냐?"
"으으…이 간악한 놈! 이것이 간통이 아니고 무엇이냐?"
"으하하하… 너는 강호상에 떠도는 말도 듣지 못했느냐?
화화는 절대 여인을 먼저 취하지 않는다
. 대신 여인이 간청해 오면 그때는 서슴없이 여인을 취하지.
이번 진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진화는 먼저 나를 찾아와 나에게 간청했다
. 못 믿겠으면 진화에게 물어봐라."
"뭣이?"
설백룡의 두 눈에 시퍼런 독(毒)이 뿜어지며 시선이 진화에게 향해졌다.
한데, 진화는 요염하게 웃으며 화화공자의 어깨에 그녀의 가슴을 밀착하며 입을 열었다.
"오호호! 설백룡, 너와 내가 언제 정식으로 혼인했던 사이더냐?
나는 내 스스로 이분을 찾았다.
결국 자유로운 한 여인이 천하제일기남이신 이분께 몸을 맡긴 것이다.
그것은 이 세 분 낭자들도 마찬가지다."
"뭐…뭐라고? 네년…스스로…"
설백룡의 신형이 마침내 비틀하며 곧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남자에게 있어 이토록 참담한 패배가 있을까?
"후후후…이제 알겠느냐? 알았으면 돌아가라!
그대가 모르고 한 일이니 목숨만은 보존해 주겠다."
"아이…이렇게 좋은 밤에 무슨 그런 살벌한 말씀을…
이제 그만 저자를 놔두고 들어가요."
"후후후…너도 꽤나 질기구나. 그렇게 하고도…"
"아이…몰라요."
아…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찮을 노릇이 아닌가?
탕남탕녀(蕩男蕩女)의 음탕한 말은 설백룡을 거의 미치게 만들고야 말았다.
마침내 발악하듯 설백룡이 검을 미친 듯 휘두르며 화화공자에게 덤벼들고야 말았다.
"으으…아…"
하나, 화화공자의 옆에 있던 세 명의 여인 중 하나가
싸늘하게 비웃으며 설백룡을 향해 연검을 휘둘렀다.
"흥! 어리석은 놈!"
하나는 반 미친 상태의 광인, 하나는 신비한 여고수, 승부는 뻔했다.
마침내 여인의 연검이 싸늘하게 웃으며 설백룡의 목을 향해 폭사된 것이다.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순간,
돌연 마땅이 죽었어야 할 설백룡은 탈진한 듯 혼절해 있고,
대신 여인이 갑자기 두 눈을 싸감고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지 않는가?
"아… 악…"
화화공자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그것은 진화와 다른 두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한곳에 서서 사태의 추이를 관찰하던 남궁청운과 황보운향 등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
한데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의 탄성이 발해졌다.
"야… 야접(夜蝶)이다!"
오오… 야접(夜蝶)이라면…
그때였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 여인의 눈을 가린 손바닥 사이에서
무엇인가 흘러나와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팔랑팔랑
유유히 날개짓을 하며 떠도는 물체.
야접! 바로 야접이었다.
"오오…지난 육 개월 동안 사천(四川)땅을 초토화시켰던 야접이다."
"맞아! 어제도…
하북(河北)땅에서 하북제일의 마두(魔頭)인 하북쌍흉(河北雙兇)을 죽여버렸지."
어디선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인물들이 많은 듯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접(夜蝶)은 바로 너와 같은 인물들을 찾는다.
화화!
하나 아직까지는 모든 여인들이 너를 먼저 찾아 간청한 것은 사실이니,
오늘은 용서한다."
"하나, 만일 너의 그 관례가 깨뜨려 지는 날…
그날이 바로 네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될 것이다."
아… 음산하고 귀기(鬼氣)스런 음성이었다.
어디서 누가 말하는지 도대체가 알아 챌 수 없는 공포스런 음성이었다.
육합환청술(六合幻聽術)!
바로 그 음을 사방으로 분산시켜 자신의 위치를 가리는
전설 속의 비술(秘術)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용서해도, 저 계집들은 용서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이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는 쓰레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저들의 두 눈을 파헤쳐 앞으로 다시는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하게 하겠다."
아아…그 누가 이 음성에 공포를 느끼지 않으리오!
한데 다음 순간, 돌연 두 명의 여인이 두 눈을 감싸안고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아… 악…"
"악…내 눈!"
한데, 진화만은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말짱했다.
"호호호…색혼환형신법(色魂幻形身法)!
알고 보니 네년은 색혼전(色魂殿)의 계집이었구나."
오오…그렇다면?
한데, 마침내 진화도 두 눈을 감싸 안고 나뒹굴고 만다.
"아…악!"
한데, 한데 말이다. 이럴 수가!
"후후후…이제보니 색혼전(色魂殿)에서도 본 공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거였군. 후후후…"
화화공자의 말, 이게 무슨 뜻인가?
그렇다면 색혼전에서 일부러 진화라는 여인을 그에게 보냈었단 말인가?
한데 또다시 이어지는 그의 말!
"후후후…야접이라… 실로 공포스런 이름이지?
하나, 이건 잊지 마시오.
본 공자의 관례가 깨지는 날, 그날이 바로 천하가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는 것을…"
오오…화화공자, 그는 누구인가?
'무서운 인물이다. 강호의 풍운은 저자로 인해 일기 시작했다.'
남궁청운, 그는 어느새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있었다.
'야접… 신비한 인물… 공포의 대명사! 혈겁은 저 야접으로부터 시작인가?'
황보운향!
그녀의 잔잔한 두 눈이 그때만은 섬광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객실, 바로 천후가 쓰러져 있는 객실이다.
그때, 누군가 벼락같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꽈 당
남궁화미였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와 급히 뛰어온 것이다.
그 무엇인가, 그녀의 뇌리를 스쳐가는 한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그럼 야접이 이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오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럼 그녀는 천후를 야접으로 생각했단 말인가?
천후, 그는 아직도 입가에 붉은 선혈을 흘린 채 죽은 듯 누워 있는데…
드디어, 피를 쫓는다는 야접이 나타났다.
풍운(風雲), 거센 바람이 불 것 같다.
화화공자(花花公子)와 야접!
그리고…무림오공자와 무림오봉!
풍운은 바로 그들이 끌고 올 것만 같다.
피의 풍운을…
* * *
산중(山中), 짙은 야음(夜陰)이 짙게 드리워진 산중이었다.
고갯마루 외로운 산길, 천후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음산한 밤[夜], 곧 무슨 일인지 일어날 것만 같은 스산한 산중을 감싸고 있었다.
보름날인데도 만월(滿月)은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니 더욱 귀기스러웠다.
천후, 그는 계속 걷고 있었다.
'앞으로 백 리(百里)를 더 가면 항주(杭州)다.
경공을 발휘하면 단 몇 시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왠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가? 그래서 그는 터덜터덜 깊은 산중을 혼자서 걷는가?
'후후후…화미! 제법이었어.
나를 야접으로 의심한 것만 봐도 그녀는 단순히 천진무구한 여인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깊은 통찰력과 혜지가 없으면 그런 느낌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지.'
문득, 천후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후후후…한밤중에 도망나와 버렸으니 몹시도 기이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후후…그러나 이유가 있었어. 그것은 황보운향 때문이야.
이상하게 그녀가 두렵더군. 그녀가 무서워서가 아니야
. 단지, 그녀와 가까이 지내게 되면 반드시 두 사람에게 불행이 찾아올 것만 같으니…
그건 나도 모르는 불길한 것이야. 세인들은 그런 것을 예감이라고도 하더군!'
아…그렇다면 천후는 일부러 황보운향을 피해 그들과 헤어져 버린 것인가?
한데, 예감이 또 무엇인가?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 불행이 찾아올 것 같다니 그거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의 예감이란 현실적으로도 무시만 할 수 없는 것이니…
천후는 이제 깊은 수림으로 뒤덮인 조그만 소로(小路)를 걷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아…제발…놔줘요! 집에선 늙으신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흐윽!"
이게 무슨 소리인가?
흐느끼듯 애원하는 여인의 음성이 아닌가?
이 깊은 산중에, 그것도 대낮이 아닌 한밤중에 말이다.
천후의 두 눈에 섬뜩한 섬광이 스쳐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급히 정신을 집중해 소리의 방향을 잡는 천후!
"흐흐흐… 앙탈하지 마라. 너는 곧 좋은 곳으로 가게 돼!"
굵은 남자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다.
'좌측… 산 너머다. 거리는 약 오 리(五里) 정도!'
천후는 드디어 소리의 발상지를 알아낸 듯 퍼뜩 신형을 날렸다.
실로 섬전 같은 신법! 천후의 신형은 거의 빛살과도 같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의 석실 앞, 두 명의 도인(道人) 복장의 사내가 석실 앞에 부복하며 입을 연다.
"관주(官主)님, 계집을 데려 왔습니다!"
석실에서 응답이 나왔다.
"들여 보내라. 한데 요사이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냐? 그사이 벌써 나태해졌느냐?"
음성! 막강한 공력의 소유자인 듯 목소리는 마치 웅후한 종(鐘)처럼 들려왔다.
그러자 두 명의 도인이 흠칫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닙니다. 요사이는 세간(世間)에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시끄럽다! 어떠한 이유이든 본 좌에겐 통하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이경이 지나기 전에 계집을 잡아 와야 한다."
"예… 예…!"
"좋다. 도관(道官)에 이곳에서 내보낸 계집들이 있다. 가서 즐기도록!"
"예엣! 가…감사합니다."
희열에 들뜬 채 두 눈 가득 색욕(色慾)을 담는 두 명의 도인들!
그들은 들뜬 모습으로 급히 석실 안으로 두 개의 포대를 집어 넣고는 벼락같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석실 안에서는 앳되 보이는 두 마디 음성이 들려왔다.
"흐흑…사…살려주세요!"
"제…제발…그것만은…!"
하나, 그 음성은 곧 다른 중후하면서도 축축한 그 무엇이 배인 음성에게 가려지고 만다.
"흐흐흐… 시키는 대로만 하면 죽지 않는다.
대신 무한한 복록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자, 이리와라…"
색마(色魔)!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육욕(肉慾)에 미친 색마의 음성이 분명하리라!
천후, 그는 웬 도관(道官) 앞에 이르렀다.
선도관(仙道官).
도관의 명칭은 바로 그것이었다.
제법 크고 오래된 것인 듯 심산유곡의 수도장(修道場)다운 외형(外形)이었다.
'이상한데… 분명히 이곳으로 소리가 이어졌는데…?
수도하는 도인이 여인을 데려 갈 리는 없고…그것 참 기이하군!'
천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돌렸다.
다른 곳을 찾아 보려는 의도이리라…
한데 그때, 천후의 귓가에 들려오는 음탕한 비음과 걸죽한 사내들의 음성이 있었다.
"흐흐흐… 고것…!"
"아… 아…!"
"이봐! 뭐하나? 어서 끝내라!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그래…어서 나와!"
순간 천후의 두 눈에 시퍼런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이다. 이럴 수가…수도하는 도관의 도인들이…?'
천후의 몸 전체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기운이 폭사되 나오기 시작했다.
살기(殺氣), 그렇다. 그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짙은 피의 살기였다.
그와 함께 천후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스슥
준수하던 그의 모습이 점점 창백하게 변해갔다.
그러던 한순간,
그의 얼굴은 마치 빙굴(氷窟)에서 곧 나온 사람같이 음산하고 냉막하게 변해져 있었다.
무면환형술(無面幻形術)!
천 개의 얼굴을 지녔다는 천면후의 변용술이 되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는 새하얀 물체가 앉아 있었다.
팔랑팔랑
유유한 날개짓을 하고 있는 물체!
오오… 야접!
그렇다. 그것은 바로 밤나비였다.
"야접은 혈화(血花)를 찾는다.
그것도 인면수심의 악인(惡人)들이 피우는 혈화를…!"
아…듣기에도 섬뜩한 음산한 음성!
그것은 피의 예고였으며 죽음의 향기였다.
"아…아…!"
"헉…!"
숨이 곧 넘어갈 듯한 비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 천지만물(天地萬物) 가운데 가장 음양(陰陽)이 잘 조화된 인간들!
그들은 하나로 합한 채 거세게 율동하고 있었다.
뜨거운 숨결과 환희, 그리고 쾌락을 교착시키고 있는 육체!
배암의 또아리마냥 사내의 몸에 엉켜있는 여인의 새하얀 속살이 차라리 서럽게 보인다.
단단해 보이는 사내의 등, 그 곳을 파내듯 후비고 있는 여인의 손톱!
환희이리라,
몸의 일부분이 급속도로 빨려드는 듯한 주체할 수 없는 쾌락의 순간이리라!
한순간, 여인의 두 다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활처럼 휘어지는 여인의 허리가 부러질 듯 위태롭다.
여인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원초적인 본능을 지닌 것이 틀림없으리라!
한데 한순간,
어디선가 처절한 단말마가 들려와 뜨거운 두 사람의 몸을 식혀버렸다.
"아… 아…악!"
"크… 아…악!"
"으응? 비명이 아닌가?"
사내는 무엇인가 느낀 듯 여인의 몸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쉬운 듯 그냥 죽은 듯 누워있는 여인의 몸을 힐끗 바라본 후
급히 의복을 찾아 입었다.
육십대쯤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도인이었다.
"아…악!"
"크…윽…"
피[血], 피가 난무한다.
짙은 혈향(血香)이 조용하던 밤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천후! 야접으로 변신한 그는 처음 한 명의 대살성(大殺星)이 되어 있었다.
번뜩이는 야도(夜刀)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섬뜩한 도기(刀氣)가 사방 삼백육십 방위로 빛살같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야접무!
공포의 절기 야접무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도인들, 무려 수십 명이 넘는 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천후를 둘러싸고 독사의 눈으로 천후를 잡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 그 눈빛 속에서도 도저히 가릴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死]에 대한 짙은 공포(恐怖)였다.
'야… 접…죽음의 사신 야접이다!'
그렇다! 그들은 지금 천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섬뜩한 한 마리의 야접을 발견한 후였던 것이다.
"크… 아…악!"
"아…악!"
"피하지 마라! 덤벼가라!"
순식간에 장내는 지옥도로 변해 버렸다.
누군가 억지로 용기를 내서 덤비라고 소리치는 자가 있었다.
하나, 그자도 곧 야도의 은빛도기 아래 목이 잘리고 말았다.
츠츠츠츠츠
섬뜩한 야도의 도기는 너무나 무자비했다.
이미 피맛을 봤기 때문인가?
악마의 미소 같은 야도의 도신은 이때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쐐 애 액!
슈 우 욱!
도인들의 가공할 공격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하는 도인들 답지 않게 그들의 무공도 가히 가공할 만큼 공포스러웠다.
하나, 혈화를 쫓는 야접의 무서운 기세는 도저히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죽어서는 그런 음행(淫行)을 잊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야접은 지옥(地獄) 끝까지 따른다!"
음산하고 냉막한 음성이 허공에 메아리쳐 가면,
처절한 단말마는 여지없이 밤의 적막을 가르곤 했다.
"크… 아…악!"
"아…윽!"
"끄…윽!
목이 댕강 잘려 나간 자,
배가 갈라져 흥건히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공포에 찬 눈으로 바라보다
고꾸라지는 자,
잘려나간 양팔을 바라보다 처절한 절규를 뿌리는 자,
가히 도살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처참한 지옥도는 그리 길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 죽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지옥으로 떠난 것이다.
도인(道人).
조금 전 격렬한 정사(情事)를 벌이던 우람한 그 도인이었다.
그는 보았다.
처참하게 사지가 잘려나간 도관의 앞뜰 한가운데 석상처럼 서 있는 한 인물을…
붉은 선혈은 마치 내[川]를 이룬 듯 흥건히 흐르고 있다.
잘려나간 사지가 아직도 살아있는 듯 꿈틀대고 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
한데, 그런 곳에 우뚝 서 있는 사나이!
'으…으…엄청난 사기(邪氣)다…저런…공포스런 자가 강호에 있었다니…'
도인의 심장이 그 순간 파르르 떨렸다.
그는 느낀 것이다.
그가 보고 있는 사내의 몸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살기를…
"누… 누구시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묻는 도인!
한데, 사내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야접!"
"아…아…야…야접?"
공포에 의해 파랗게 질려버리는 도인의 얼굴이 애처롭다.
"그렇다. 너 같은 인면수심의 악인을 위해 존재하는 야접이다.
그냥 자결 하겠느냐? 내가 죽여주길 바라느냐?"
오오…음성!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음성이랴!
심혼(心魂)마저도 부르르 떨게 만드는 공포스런 그 음성,
아마도 그 음성을 들은 자는 구천지옥에 가서도 잊어버리지 못하리라.
그리고 지금, 그 음성은 도인에게 마지막 주문을 하고 있었다.
한데 인간의 생(生)에 대한 미련이 남달리 많은 탓일까?
"으…으… 네놈은 너무나…방자하구나…"
도인은 마지막 결심을 한 듯 그렇게 말한 후 벼락같이 덤벼들었다.
생사를 건 일장이라 그런지 그 기세는 가히 하늘을 덮을만 했다.
슈 우 욱!
주위엔 돌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도인의 장력에서는 핏빛기류가 함께 폭사되어 나갔다.
실로 가공할 위력!
하나, 그것은 너무 무가치했다.
왜냐하면, 천후의 야도가 짧게 반원을 그리는 순간,
도인은 목과 몸통이 이미 두 쪽으로 분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악!"
일 초(一招), 단 일 초에 가공하던 도인의 장력은 사라지고
대신 죽음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후! 그는 무표정하게 도인의 죽은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개…분수를 모르는 인간들은 너무나 허망하게 죽게 되는 법이다.
더구나, 그대는 나 야접을 만났으니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있었겠느냐?
야접은 절대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다."
음산한 음성!
천후의 음성이라곤 도저히 생각되어지지 않는 귀기스런 음성이었다.
천후는 잠시 허공을 향했다.
그러던 한순간, 그의 두 눈에 섬전 같은 기광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그는 무엇인가 느낀 듯 급히 조금 전의 도인의 몸을 뒤척였다.
그런 다음, 도인의 몸에서 하나의 패(牌)를 끄집어냈다.
'그래 이거였다.
조금 전 야도가 그의 목을 스쳐갈 때 느낄 수 있었던 금속성,
그는 이것을 목에 걸고 있었던 것이다.'
천후는 패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패는 동(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데 한순간, 동패의 앞뒷면에는 기호랑이 천후에게 주었던
그 패와 똑같이 통(通)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아…아니…이것은 만통회(萬通會)의…?'
오오… 이럴 수가…?
'이럴 수가…똑같다. 틀린 점이라곤 옥(玉)과 동(銅)의 차이가 있을 뿐…
또 이자의 신분을 표시한 듯한 이십 사(二十四)라는 숫자가 더 있을 뿐이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만통회의 인물 중 이런 산속의 도관에서 수도하는 도인이 있었다니!
천후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스쳐갔다.
그것은 만통회에 대한 의혹이었다.
'강호 최대의 신비방파…그냥 지나칠 곳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그때였다.
'으응…?'
천후의 발걸음이 일시에 우뚝 멈추어졌다.
아주 멀리서 은은한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퉁소소리다! 보통의 퉁소가 아니다. 내공을 주입하여 불고 있다.'
천후의 두 눈에 번뜩 기광이 스쳐갔다.
'호…혹시 보름날에만 나타난다는…?'
그의 뇌리에 퍼뜩 떠오르는 한 명의 인물!
옥소공자!
무림오공자 중의 하나인 옥소공자가 생각난 이유는
오늘밤이 보름날이기 때문이었다.
'비록…달은 구름에 가려졌으나…'
천후는 어느새 도관의 담장을 넘고 있었다.
* * *
하나의 장원, 세인들은 그곳을 은현장(銀睍壯)이라고 부른다.
철수검협(鐵手劍俠) 황무현(黃武玄).
한때 한 자루 철검(鐵劍)으로 천하를 떨어 울렸던 인물,
그가 은거해 있는 곳이다.
항주 서쪽에 위치한 석화산(石花山)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은현장은 매우 조용한 곳이다.
세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주 황무현의 고아한 성품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 때문이기도 했다.
한데 오늘 밤,
삼경이 지나갈 무렵에 돌연 난데없는 퉁소소리가 은현장을 뒤덮었다.
필리리리 필리리!
애잔하고 음산한 퉁소소리!
한데…퉁소소리가 들린지 채 일각이 지나지 않아 돌연 괴변이 일어났으니…
"크…아…악…!"
"크…윽…!"
그것은 바로 폐부를 모두 입밖으로 토해내는 듯한 괴로운 비명소리였다.
그리고 그것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단 일각이 더 지나지 않아 다시 적막을 되찾은 것이다.
실로 괴이한 일이었다.
은현장의 정실, 그곳은 장주 황무현의 서재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으…으…나는 아니다. 나는 그저 한 장의 서신을 받고 그냥 참석했을 뿐이다.
크…으…"
한 노인이 거의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주 황무현! 바로 그가 분명하다.
칠십 정도 되보이는 인자한 노인 황무현!
한데 그가 지금 하는 말은…?
그때였다.
어디선가 지옥의 빙굴처럼 냉막학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끝내 그 서신을 보낸 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말이지?
흥, 좋다. 네가 말해주지 않아도 좋아.
나는 천하의 모든 인물을 다 죽여서라도 우리 가문을 짓밟은 놈을 찾아내고야 말테니까."
"으…으…그건 안된다. 우린 모두 협박에 못이겨…혈겁에 참여했다…
모두 죽이면… 안돼!"
"흥! 이유야 어떻든…너희들은 우리 가문의 이백여 식솔을 죽인 범죄자들이다.
피는 피로 갚는 법, 긴 말하기 싫다. 황무현, 자결해라."
"으으…노부는…죽어…마땅한 몸. 자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더 이상의 혈겁은…오리려 흉수를 이롭게 할 뿐이다."
"흥! 너는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으으… 인과(因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거늘…으윽…!"
팍
황무현의 두개골이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만다.
그가 스스로 자결한 것이다.
스스스슥
그러자, 하나의 몽영이 황무현의 옆에 나타났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인물!
조금 왜소해 보일 정도로 가냘픈 몸매를 지닌 서생차림의 공자였다.
그 손에는 길이 석 자쯤 되는 기이한 퉁소가 들려져 있었다.
퉁소, 기이한 형태에다 색깔마저 자색과 청색이 각각 반면을 차지한 퉁소였다.
옥(玉)으로 만든 것인 듯…
한데 한순간 음성!
나직하면서도 어딘가 비통해 보이는 음성이 그 인물에게서 나왔다.
"이것으로 열 한 명의 흉수를 처단했다.
하나…왜 복수를 했는데도 통쾌하지가 않는가?"
팍
그와 동시, 그의 신형은 어느새 창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천후, 그는 은현장의 장원 마당에 서 있었다.
지금 막 도착한 것이다.
한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처절한 참상이 있을 뿐이었으니…
시신(屍身)들, 대략 오십 명 가까이 되보이는 숫자!
칠공에서 검붉은 선혈을 흘린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처참한 시신들!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없었다.
그저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은 모조리 죽어있는 것이다.
혈향(血香),
구역질이 울컥 나올 것 같은 비릿한 선혈내음이 천지에 감돌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것은 음공(音功)에 의해 전신의 모든 혈맥(血脈)이 파열되어 죽은 것이다.
죽은 자들이 모두 대단한 무공과 내공을 지닌 듯하다.
한데…흉수는 옥소공자일까…
그가 이토록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이유가 있단 말인가?'
천후는 너무나도 처참한 참상을 더 볼 수 없어 몸을 돌렸다.
휘 이 잉
일진 음풍(陰風)이 피를 찾는 듯 장원에 휘몰아쳐 온다.
역한 피내음이 음풍을 따라 스산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옥소공자! 무슨 원한이 있길래?
즐감~!
감사해요~~~^~
ㅈㄷㄳ
ㅎㅎㅎ
감사드립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1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독...감사...꾸벅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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