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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칼럼] 재판비용 패소자 부담주의 당연한가?
김태현 변호사
최근 공익소송에 패소한 원고들이 상대방으로부터 4천만 원대 소송비용을 청구 당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원고들은 재작년 11월 치러진 초등교사 임용시험 1차 필기시험 응시자들이었고, 피고는 교육청이었다. 위 시험에서 몇몇 문항이 특정 교대의 모의고사 문제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응시자들 중 93명이 불공정한 시험인만큼 성적 발표를 취소해 달라면서 소송에 참여했으나 이들은 모두 패소했다. 교육청은 판결이 확정된 원고들에게 소송비용 4천여만 원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향후 임용시험이 더 공정해지기를 바라는 공익적인 목적에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처럼 ‘공익적 목적’의 소송에서도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한 쪽이 승소한 쪽의 변호사 비용 등 소송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패소자 부담주의’를 택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따르면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며, 변호사의 보수는 동법 제109조 1항에 따라 대법원 규칙이 정하는 금액 범위 안에서 소송비용으로 인정된다. 기본적으로는 소송의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지만 공익소송에서까지 위 패소자 부담주의를 그대로 관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공익소송 패소자부담주의
작년에 참여연대는 퇴직 공직자의 민간기업 등의 취업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한민국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패소하고 대한민국 인사혁신처로부터 소송비용 청구서를 받았다. 2015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 장애인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도, 2019년 휠체어 장애인 2명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어 큰 위험을 초래한다면서 제기했던 소송도 모두 패소 후 국가(법무부장관)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소송비용 청구서를 받았다.
패소자 부담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일본 중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송비용 각자 부담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도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 이전에는 소송비용 각자 부담이 원칙이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거기에 더해 공익소송의 경우 원고가 이겼을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원고가 졌을 때는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게 하는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공익소송의 원고들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를 택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우리처럼 패소자 부담주의를 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익소송의 경우에는 법원이 패소비용 부담을 판단하여 원고들의 비용 부담을 면제하고 있다.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 등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염전노예 장애인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10.17.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벌써 여러 해 전에 공익소송의 소송비용 분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의 논의는 진척이 없다. 민주당 양정숙 의원의 법률안도 마찬가지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어렴풋하여 명료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고 반박한다. 공익소송에 있어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를 인정할 경우 소위 ‘공익’이라는 이름 하에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법전 안에는 수많은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 공익 또는 공공의 이익은 법률가들에게 그다지 생소하거나 불명확한 용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정하고 있는 형법 310조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쓰여있다. 사실상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법률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어떤 법률보다도 더 명료해야만 하는 형법전에서.
그뿐 아니라 법문의 해석은 종종 판례를 통해 보충된다. 예를 들어 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도13425 판결은 다음과 같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는 것인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위 판결문 중)
그러므로 ‘공익소송’에서 ‘공익’이라는 개념이 명료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입법기술적으로 최대한 많은 예시와 열거를 통해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은 위 판결례처럼 법원의 해석을 통해서도 보충할 수 있다. 개정안에 ‘공익’의 예시로 열거될 수 있는 것들로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 국민의 건강과 안전, 소비자보호, 국가기관의 사무에 관한 감시 등이 있을 수 있다. 위와 같은 표현과 단어들은 이미 헌법전을 비롯한 많은 법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므로 어떤 소송의 원고가 그 사건을 공익소송이라 주장할 때, 법원이 그 소송이 정말로 위와 같은 ‘공익’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공익’의 개념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것은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에 관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패소자 부담주의 옹호하는 것은 사회 주류와 강자들
패소자 부담주의는 재판을 오로지 승패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패소자에게 ‘쓸데없는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한 응징을 가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재판에 오직 승패를 가리는 기능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도식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판은 때때로 사회적 약자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권력자는 약자에게 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거센 시위를 하고 민원을 제기해도 들을 수 없었던 권력자의 ‘성실한 답변’이 재판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되는 각종 서면들과 증거자료들 속에서 드러나곤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익소송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익사건은 기존의 판결례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건이고 그만큼 패소의 위험성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승소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새로운 사회 질서가 구축될 것이며 설사 패소하더라도 사회가 발전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공익소송을 가로막고 있는 패소자 부담주의라는 장애물을 치워버렸을 때 그 상황을 가장 불편해할 자들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사회의 주류와 강자, 그리고 다수이다. 사람들은 보통 ‘사법’과 ‘정의’를 함께 묶어 ‘사법정의’라는 표현을 쓰고는 하는데, 과연 무차별적인 패소자 부담주의가 추구하는 정의는 누구를 위한 정의인 것인지 이제는 다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출처 : 권력자의 ‘성실한 답변’ 요구하는 공익소송을 허하라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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