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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1 – 25:17 언약을 저버린 결과는 패망입니다
예루살렘 함락과 시드기야의 폐위 25:1~7
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 그 성이 시드기야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 그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25:8~17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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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2년간 포위합니다. 성벽이 파괴되자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도망치지만 곧 갈대아 군대에 잡힙니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죽임당하고 시드기야는 두 눈을 잃은 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성전과 왕궁이 파괴되고, 백성이 끌려가고, 성전 기구를 빼앗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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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함락과 시드기야의 폐위 25:1~7
유다의 멸망은 예루살렘성 함락으로 현실화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2년 가까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합니다. 오랜 포위로 성안의 식량이 바닥나고 기근이 극에 달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고 화살과 돌을 던지며 계속해서 공격했기에 결국 성벽이 뚫리고 맙니다. 한밤중에 왕이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도망하지만, 바벨론 군대의 추적으로 군사들은 흩어지고 시드기야와 왕족들은 사로잡힙니다. 바벨론을 배반한 시드기야는 눈앞에서 아들들의 죽음을 보고 또 그의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시드기야를 끝으로 언약을 깨뜨린 다윗 왕조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 왕조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겪은 일은 무엇인가요?
불순종과 악한 행실의 결말을 보며 내가 기억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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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25:8~17
예루살렘성을 함락한 바벨론 왕은 성을 파괴하도록 느부사라단을 보냅니다.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민가와 귀족의 집을 모두 태우고, 성벽도 헐어 버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예고하신 대로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됩니다(사 3:18~26; 겔 7장). 본문은 성전 파괴를 자세히 언급합니다(13~17절). 느부사라단은 야긴과 보아스, 두 놋 기둥을 비롯해 금과 은과 놋으로 된 모든 것을 깨뜨려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놋 기둥의 모양과 크기를 자세히 기록한 것은 솔로몬 시대의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부각하는 한편, 이제 그 영화가 사라지고 철저히 파괴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벨론의 성전 파괴에 담긴 하나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처참히 무너뜨리실 때 내가 기억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지난날 많은 은혜를 누렸고 하나님 백성이라 불렸어도, 그것이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비참함을 알고 돌이켜 하나님만 섬기게 하소서. 하나님 백성답게 믿음으로 무장하는 저와 가정과 교회 되도록 은혜로 이끄소서.
오늘의 찬송(새 400 험한 시험 물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고통과 고난, 시련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모든 포커스를 주님께 맞추고, 주님을 위해 드려진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과 더 깊은 관계 안에 거하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기꺼이 시련과 고통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자
항상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자녀로 바로 서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가장 큰 임무이고, 역할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열왕기하 25:1~17 무너진 예루살렘 사라진 영광
하나님이 택함을 받은 민족으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특권과 은혜를 입었던 이스라엘계속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축복은 지속적으로 받았겠지만
아버지의 은혜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 된 이후 지속적인 반역의 길을 걸어오다
분열 왕국 이후에는 공공연히 우상 숭배가 자행 되었고
왕국 말기에는 유다 왕들 마져도 앞장서서 하나님 앞에 범죄를 자행함으로
국가 전체가 몰락의 길로 치닷고있다.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말미암아(24:3)
유다의 18대왕 여호야김 때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처음으로 침입을 했었고
3년을 섬기다 바벨론을 배반 했고(24:1)
유다 19대왕 여호야긴 때에도 바벨론에 처들어 와서 포로로 잡혀가고(24:15)
유다 20대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도 바벨론에 배반을 하자(24:20)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직접 3차로 유다를 침입해 온다.(1)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 느브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 와서 예루살렘 성 주변에 토성을 쌓고 (1) 포위를 한다.
시드기야 11년 4월 9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고 양식이 다 떨어진다.(3)
꼭 1년 6개월 (18개월)을 버티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찾아가서 바벨론에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겠다.(렘38:17)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결국은 듣지를 아니하고 비극을 맞이한다.
시드기야가 밤중에 성벽에 구멍을 내고 도망을 간다.(4)
여리고 평지까지 도망을 가지만(5) 한 30km 도망 간 모양이다.
갈대아 군사에게 붙잡히고, 끌려가서, 심문을 당하고(6)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그의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7)
느브갓네살 왕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고(7),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에 끌고 갔다.(7)
죽을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 마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아니하고
밤중에 도망을 가더라도 남의 나라에 까지 살려고 도망을 가며
왕이 포로로 잡히고 아들이 보는 가운데 죽어서 멸문을 당하고
끔찍하게 불화살 등으로 눈에 찌찜을 당하고 결국 포로로 잡혀가는 꼴이 된다.
왕의 체면, 왕의 자존심, 왕의 권위, 아버지의 책임감, 아버지의 권위 뭐하나
제되로 지킨 것이 전혀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들어서 그렇다.
나의 체면 나의 자존심 내가 지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지 지킬 수 가 있는 것이다.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나의 마음인데 자존심 체면이 어디 있겠는가?
다 아버지의 보호하심과 도우시는 손길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사는 것이지
더욱 기가 막히는 일들이 일어난다.
왕이 끌려 갔을 지라도 성전은 남아 있었는데 그 성전 마져도 무참히 파괴된다.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8)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귀인의 집을 불태우고(9)
그의 부하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다 허물어 뜨려버렸다.(10)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중 쓸모가 있는 자는 다 포로로 잡아가고(11)
빈천한자, 즉 쓸모가 없는 자만 남겨주어 포도원과 농사를 짓게 했다.(12)
그래도 남은자를 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전의 두 놋 기둥 (보아스와 야긴), 받침, 놋바다를 깨뜨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13)
가마들, 부삽들, 집게들, 숟가락들, 모든 놋 그릇을 다~ 가져갔으며(14)
불 옮기는 그릇들, 주발들을 포함하여 금과 은으로 만든 성전 기구를 모조리 (15)
놋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다 가져 가버렸다.(16)
하나님께서 직접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왕상11:36)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왕하21:4) 하셨던 바로 그 예루살렘 성이
이렇게 철저히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참아 보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자존심 꾸기시면서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올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피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본다.
하나님이 이렇게 스타일 구기시면서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것은
결과적으로 70년 후에 스룹바벨을 통하여 붙잡혀 갔던 자들이 돌아오며
느헤미야에 의하여 무너진 성벽이 다시 수축되며
에스라를 통하여 말씀이 다시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돌아올 때에는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스1:1) 빼앗겼던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다 가지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 해 보면
모두 약탈 당하는 것도 오히려 은혜이다.
말씀을 보면서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것 안타깝지만
동시대의 선지자 하박국이 기도하는 것 처럼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3:2)
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비록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무엇하나
제되로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성전도 불타고 왕궁도 불타고
성벽도 다 무너지고 남은 것 하나없이 다 빼앗겼지만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7~18)
라고 하박국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처럼 나도 찬양하고 싶다.
모든 것을 다 잃는 다해도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해도 다시 돌려 주시며
회복시켜 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찬양을 드리자.
1. 멸망한 유다와 시드기야(1-8절)
예레미야는 게속해서 바벨론을 대적하지 말하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하였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습니다. 시드기야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시드기야의 눈을 뺀 후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역사를 뒤집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유다를 벌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아서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묵상하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사는가?
2.무너진 솔로몬의 영광(9-17절)
바벨론에서 온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국에 불을 지릅니다. 모든 집을 불태웁니다. 유다의 영광도 솔로몬의 영광도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비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사용했던 모든 것들은 이방 나라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더 이상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제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곳에서 제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사할 수 있을 때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소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큰 정성을 가지고 그곳에 가도 제사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다시는 그곳에서 제사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음이 기적임을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수 있을 때 소홀하게 여기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게 주어진 예배의 소중함을 항상 기억하는가?
시드기야 십일년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함락되었고, 성전은 파괴되고 모든 기구들은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로 사슬에 결박되어 남은 자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사실 율법으로 세운 성전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고, 율법의 백성은 결국 세상의 포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롬4:15)
율법은 결국 아무 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히7:19)
따라서 율법 아래 있는 성전이 무너진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소망을 줍니다
첫 번째 것이 무너져야 그 다음 것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러나 첫 번째 것을 허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큰 고통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증서를 지우시고
첫 번째 것을 허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2:14)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사심으로 온전하고 영원한 새 성전, 유월절 어린 양의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그러므로 우리도 주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본받아
옛 사람을 자기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6~7)
그래야 예수님의 부활하심과도 연합한 자가 되어 새 성전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6:5)
이렇게 우리가 복음에 의해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오직 위의 것을 찾기 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1~3)
인생의 패망을 막는 길 (열왕기하 25장 1-17절)
1. 온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왜 유다가 멸망했습니까? 근본적인 원인은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특히 유다가 멸망할 때 큰 기근이 동반된 것은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었음을 더욱 잘 나타냅니다. 아합의 우상숭배로 3년 6개월 동안 심한 흉년이 든 것처럼 흉년과 전쟁으로 인한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의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흉년과 전쟁과 기근을 당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회개입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패망이 가까울수록 “내 탓이요!”란 말은 줄어들고 “네 탓이요!”란 말은 늘어납니다. 그런 현상을 되돌리기 위해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려고 해야 합니다. 힘을 키울 때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힘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힘만 의지하면 결국 세상의 힘에 의해 패망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연대기>를 보면 그는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위대한 정복자로 묘사됩니다. 전쟁으로 다수를 죽이면 위대한 정복자로 칭송되고 주변의 한 사람을 죽이면 나쁜 살인자로 여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결국 무력을 내세워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따릅니다. 인간의 무력은 반드시 무력해집니다. 힘을 의지하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서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 패망을 막는 길입니다.
2.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흉년과 기근은 말세의 제일 뚜렷한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마가복음 13장 8절을 보면 예수님이 종말에 관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런 말세를 대비해서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종말의 날과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면서 오늘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깨어있으라고 했지만 그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막 14:37).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새벽에 드리는 한 시간 이상의 기도를 요구하셨습니다. ‘새벽의 한 시간’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혼의 패망을 막는 가장 위대한 무기입니다. 그 한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면 그 몇 십 배의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계속 말씀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일보다 기도하는 일에 바빠야 합니다. 바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은 자신이 이 땅에 있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항상 그 생각을 떠올리며 깨어 근신하고 기도해야 인생의 패망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경제 정의가 왜곡되면 하나님이 흉년으로 심판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흉년과 패망의 제일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왜 말세가 되면 과학발전으로 흉년과 기근 문제가 해결될 텐데 성경은 왜 마지막 때 오히려 흉년과 기근이 심해진다고 언급합니까? 사람들의 죄와 탐욕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흉년과 기근과 패망을 이겨내는 제일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입니다.
흉년과 기근을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눔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큰 흉년으로 어려워지자 마게도냐 교회가 힘써 헌금을 보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습니다. 당시 마게도냐 교인들은 복음을 전해준 예루살렘 교회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흉년 때 물질로 갚은 것입니다. 그처럼 인생의 흉년을 극복하려면 더욱 나눔을 다짐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육신의 기갈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해서 생기는 영혼의 기갈입니다.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영혼의 내면세계는 텅텅 비어서 빈자의 물질적인 빈곤보다 부자의 정신적인 빈곤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최대 실체는 무엇입니까? 은밀한 나눔입니다. 사람은 나눌수록 내면세계가 풍성해집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는 대개 배고픈 문제보다 영혼 고픈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눔을 통해 누군가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할 때 자신의 영혼 고픈 문제가 해결되고 그런 삶이 인생과 영혼의 패망을 막는 철벽능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유다에 대한 심판과 징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고 믿는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만 아니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간 말씀의 편식과 자의적 해석 속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저희의 영적 해이와
그로 인해 낮아졌던 우리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심판하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하므로 영적·도덕적 안일함에서 벗어나
말씀을 따라 신실하고 진실하고 충성되게 이 한날을 살아가므로
이후 있을 주님의 심판의 자리가 수치의 자리가 아닌 상급의 자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