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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오래된 기도-이문재
기자명 동명 스님 입력 2023.03.06 13:45
모든 행위에 따뜻함 담는 게 수행
첫 문장으로 시는 이미 완성
모든 행위가 기도라는 의미
‘좋은 기도’ ‘나쁜 기도’ 있어
분노·탄식의 기도여선 안 돼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시는 이미 완성되었다. 이 말은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가 실질적으로 모두 기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행위는 다른 말로 업(業, 산스끄리뜨어 karma). 업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독립된 실체가 아니며, 항상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는다.
가만히 눈을 감는 것이 기도이듯이, 아주 사소한 행위도 기도이다. 예를 들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는 것,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는 것,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는 것,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는 것이 모두 기도이다.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과 같은, 프랑시스 잠이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서 노래한 ‘위대한 행위’일 필요가 없다. 나는 인간의 모든 위대한 일들을 포함하여, 심지어는 사악한 행위까지도 일종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금고털이가 금고의 비밀을 캐내어 금고를 열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순간, 그는 “이 금고가 잘 열리기를”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기도’와 ‘나쁜 기도’가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도를 올려야 하는데, 자칫 나와 세상을 해롭게 하는 기도를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나를 비판한 사람을 향해 “더럽게 재수 없네”라고 말했다면, 나는 내게도 해롭고 상대에게도 해로운 기도를 올린 셈이다. 화가 나서 남의 집에 불을 질렀다면, 내게도 해롭고 세상에도 해로운 무시무시한 기도를 올린 것이다.
이 시 속에서 묘사한 행위 중에는 나와 남과 인간과 세계를 해롭게 하려는 것은 없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들 마음을 쓰다듬는 아름다운 행위들이다.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는 사람,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는 사람, 그는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일 것 같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는 사람, 그가 누구든 이미 시인이다.
중요한 것은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진리를 인정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화가 나서 돌부리를 함부로 차거나, “아이, 힘들어 죽겠다” 같은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저주나 미움, 세상에 대한 분노, 힘들어서 내뱉는 탄식 등이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모든 행위가 곧 기도이므로 모든 행위에 따뜻한 마음이 함께할 수 있도록 정진하는 것, 그것이 곧 수행임을.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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