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못다했던 칼럼들을 찾아
현재 나는 대학로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 병원은 69년 전인 1950년 6.25 전쟁 당시 부상으로 치료를 받다가 북한군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하자, 무능한 정부와 군수뇌부의 미숙한 대처로 후방으로 후송되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한 국군용사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69년 전, 네 살이었던 나는 ‘엄마’, ‘아빠’, ‘밥 줘’, ‘태극기’, 이 네 마디 밖에 하지 못하였다. 그런 나를 데리고 어머니께서는 목숨을 걸고 피난을 떠나시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몸 상태로는, 국가에 변고가 발생하여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오른 팔도 점점 마비되어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음식을 삼킬 수도, 마실 수도 없어 언제까지 이 칼럼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상태로는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일이라도 나는 의식불명상태에 빠질 수 있기에 미리 몇 글자 적어 놓는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일들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생명컨설팅으로서의 고된 삶을 살아왔다. 사람들은 나를 ‘영혼을 부르는 사람’, ‘영혼의 한을 달래주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까치’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까치는 내 고향 전주의 상징이다. 까치는 길조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다. 나도 반가운 인연을 청명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까치처럼, 이승과 저승과의 인연을 잇는 사람이고 싶었다. 인연을 이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까치가 ‘지저귐’으로 인연을 알린다면 나는 ‘구명시식’으로 인연을 이어왔다. 구명시식은 불가의 구병시식에서 온 말이다. 병든 사람에게 법문을 해주고 병을 낫게 하는 의식인 구병시식(救病施食)에서 ‘병환 병(病)’ 자를 ‘목숨 명(命)’ 자로 바꾸어서 ‘목숨을 구해주는 의식’이라는 뜻을 가진 ‘구명시식(救命施食)’이라고 내가 직접 명명하였다.
1986년부터 34년 동안,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 구명시식을 올리면서 수많은 인연과 만났다. 최초의 구명시식은 어머니 무위심 보살님의 부탁이었다.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조카를 살려 달라 하시며 내게 처음으로 삼배(三拜)를 올리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89년 5월,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이 월간중앙 논픽션 공모 우수작으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나는, <하우스만 특별인터뷰-대한민국 창군비화>로 토요신문 특종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한 마리 까치 되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소설 <애정산맥>, <영혼의 목소리>, <영혼은 비자가 없다>, <영혼의 X파일>, <영혼산책>, <효자동 1번지> 등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칼럼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소통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
문득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1987년 11월, 서대문형무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형무소 건물이 철거 위기에 처하자,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온몸으로 막아내, 오늘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1992년 LA폭동 당시에는 재미교포들과 힘을 합쳐 자경단을 조직하여 LA 한인들의 생명을 지켜내기도 하였다. 1993년에는 고속도로 무인 단속 카메라를 만드는 벤처기업 오성INC를 경영하여 도로교통 안전을 위해 노력하였고, 2009년 9월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반환청구소송을 드라마틱하게 접수시키기도 하였다.
2007년 역사 왜곡을 바로 잡기를 위해 <동아삼국관계사료전집>을 기획‧출간하였다. 또한 일본 궁내성으로부터 입수한 영친왕의 유품들을 발굴하여 생모인 엄비가 세운 숙명여자대학교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의 최후를 찍은 역사적인 사진을 모 지인과 함께 발굴하는데 힘을 썼고,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인 에드워드 L.로우니 장군의 <운명의 1도> 한국어판을 출판, 이를 계기로 로우니 장군은 6.25전쟁 때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하였다.
나의 삶에서 엔터테인먼트도 빠질 수 없다. 종교보다 문화와 정서가 우선한다고 믿었기에 나는 과감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8년 IMF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생애를 담은 소설 <애정산맥>을 원안으로 한, 창작가극 <눈물의 여왕>을 예술의 전당에서 올려 관객 20만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시켰다.
이후 연극 <구명시식>, <눈 나리는 밤>, <충주시대> 등의 연극을 제작하였으며, 2012년에는 오페라 <카르마>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올려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14년에는 문화예술기획자로서 그동안의 공연문화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2008년 부친께서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자가 나란히 문화훈장을 받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2008년 7월 초에는 히어로즈 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야구광팬이었던 나는 오로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당시만 해도 히어로즈는 꼴찌 팀이었지만 나날이 성장해 포스트시즌에 5회 진출하였고, 2014년에는 정규리그 2위에 오르며 팀 창단 이후 최초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건강상의 이유로 구단주 대행으로서 예전처럼 경기장을 자주 가지 못하지만, 아직도 고척 스카이돔을 뒤흔들던 넥센 히어로즈 팬들의 뜨거운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음력 4월 초파일은 부처님의 생신이자 나의 생일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조직화된 교(敎)의 믿음 체계로서의 신으로 오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행복은 우리 밑바닥 바로 가까운 곳에 있으며, 깨달으면 자기가 곧 부처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셨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은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이었다. 즉, 어떠한 스승도 믿지 말라. 어떠한 종교가에 의해서도 세뇌되지 말라. 결국은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자신이 깨닫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셨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리는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티니의 님은 이태리.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라는 만해 한용운 시인의 말씀처럼, 항상 홀로 있음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홀로 가슴을 열어야 한다. 혼자 여는 가슴은 성스러운 한편의 시와 마찬가지이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조금도 외롭거나 쓸쓸하지가 않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전체와 하나이다. 한 생각이 있으면 이미 혼자가 아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하되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 그것은 의식이 있어야 하며, 살아있는 투철한 의식이 각성된 상태에서 비로소 사랑을 해야 한다. 집착하는 사랑, 집착하는 돈, 집착하는 인생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5년 69세의 나이로 떠나야할 사람이었지만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홀로 병마와 싸울 때가 된 것 같다. 남보다 영적인 능력이 남다르게 태어났지만 종교인보다는 벤처사업가, 야구구단주, 문화기획자,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인이자 작사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동안 본 칼럼을 사랑해준 독자 여러분들과 나와 인연 있는 분들을 위해서, 내가 작시한 오페라 《카르마》 중 <언제나>와 <당신의 체온만큼>의 가사로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인사는 드리지만 칼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이야기보다 예전에 사랑받았지만 못다했던 칼럼들을 찾아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앞으로도 차법사 칼럼을 사랑해주시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또 만날 겁니다.
언제나
- 차길진
그대는 기억하나요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을
그대는 아시잖아요
추억도 그 자리에 맴돈다는 걸
그대는 느끼잖아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속
사랑도 울고 있다는 걸
언제나 그대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
언제나 내 곁에는 그대가 웃고 있어요
언제나 그대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지나가도
그대 곁에는 내가 있어요
언제나 그대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지나가도
그대 곁에는 내가 있어요
그대 곁에는 내가 있어요
당신의 체온만큼
- 차길진
그대의 보고 싶다는 그 말에
내 마음 열었었고
죽도록 사랑한다는 그 말에
내 사랑도 보여줬네
그대의 보고 싶다는 그 말에
사랑을 믿었었고
죽도록 사랑한다는 그 말에
내 모든 것 다 주었네
그러나 사랑이 뜨거워질수록
온통 내 마음을 태워버리고
사랑이 식어서 차가워질수록
내 영혼도 식어버렸네
오~ 사랑에 병들어 지친
내 젊은 날의 방황이여
변하지 않을 사랑을 찾던
내 순수했던 영혼이여
나 이제 당신의 체온만큼
그만큼만 사랑하게 하소서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을
그런 사랑을 내게 주소서
당신의 체온만큼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의 체온만큼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