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 十三 章
누가 血을 몰고 왔는가
혈운(血雲).
서서히, 아주 서서히
짙은 혈향(血香)을 동반한 피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하기만 하던 강호무림(江湖武林)!
한데, 그곳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누구도 작은 그 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나, 시간이 갈수록 한 사람 두 사람 촉각을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느닷없이 등장한 몇 명의 기이한 인물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었다.
파문의 서장은 바로 피의 상징인 야접(夜蝶)이 열었다.
야접(夜蝶).
짙은 적막 속에 홀연히 나타나는 피의 상징!
인면수심의 악인을 찾는다.
정(正)을 가장한 사인(邪人)을 찾는다.
아름다운 미(美)를 미끼로 세상을 희롱하는 여인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을 죽음으로 심판한다.
오늘밤엔 또 누가 팔랑이는 야접에 의해 생(生)을 마칠지 모른다.
그저, 스스로 자신이 야접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전전긍긍할 뿐이다.
야접!
악마의 손길과도 같은 새하얀 밤나비는 오늘도 밤을 가른다.
옥소공자!
하나의 피리와도 같은 옥소,
밝은 달빛 아래 아련히 들려오는 천상의 음률이 피를 부른다.
이유는 묻지 말라!
원한에 사무친 죽음의 음률이 오늘밤도 너를 찾는다.
십오야(十五夜)!
둥근 만월이 지기 전에 너의 피로써 원한의 대가를 받겠노라!
천하는 언제 자신에게 들려올지 모르는 죽음의 음률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천하는 밤을 두려워 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죄많은 인물들은
단 하루도 편하지 못했다.
언제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씌울지 모른다는 공포감!
그것은 피를 말리는 불면(不眠)의 고통이었다.
한데, 여기 또 하나의 파문이 있다.
야접과 옥소공자가 개개인을 찾아 추살(追殺)하고 있는데 반하여,
여기 전무림을 상대로 칼을 드리운 죽음의 사신(死神)이 있었다.
이름하여…
혈우사혼거(血雨死魂車).
그것은 한 대의 핏빛 마차다.
설백색(雪白色) 설리총 네 마리가 이끄는 사두마차(四頭馬車),
그 안에 누가 탔는지 모른다.
또, 어떠한 이유로 전무림을 피로 물들여 가는지도 모른다.
하나, 혈우사혼거가 중원의 북쪽 옥문관(玉門關)을 넘어드는 순간,
강호는 급기야 피의 수레를 굴려야만 했으니…
천산(天山)의 일맥(一脈)이던 천산파(天山派)가 어느날 무림에서 제명됐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피에 젖은 채 을씨년스럽게 잠들어 있는 천산파의 총본관!
그곳에 남겨진 섬뜩한 혈서(血書)가 피의 저주를 대신하고 있었다.
피는 피로써 갚는다.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다.
오오… 광오하고도 으스스한 경고문이던가?
그것이 피의 수레를 굴린 첫번째 외침이던가?
그로부터 나돌기 시작한 하나의 사혼첩(死魂帖)!
핏빛 종이 위에 적혀진 최명부(催命符)!
모월(某月) 모시(某時)에 그대들을 찾으리.
혈우사혼거주(血雨死魂車主).
그것은 죽음의 예고였으며 피의 소환이었다.
사혼첩(死魂帖),
오늘도 죽음의 최명부(催命符)는 어디엔가 전달되고 있으리라!
또 한 명의 인물, 그는 무림인이 아니라고 했다.
한때 항주오기 중 광서생(狂書生)으로 불리웠던 인물!
한데 어느날인가 그 이름이 전 무림에 파문을 일으키고 말았으니…
광서생,
그는 전설의 이대비궁(二大秘宮)의 하나인
천상미인궁(天上美人宮)에서 살아나온 유일한 인물이다.
천상미인궁의 신비를 캐려면 그를 찾아라!
그를 찾아라! 어쩌면 그는 천상미인궁에서 절세기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태양천부(太陽天府)와 태음지부(太陰地府)의 전설은
천상미인궁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광서생은 그것의 사실유무를 알고 있다.
수많은 소문들!
난비(亂飛)하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온 무림의 촉각이
이번에는 한 명의 미친서생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한데, 그것 또한 피를 몰고올 징조였으니…
강호는 급기야 거센 혈운(血雲)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 * *
개봉(開封), 전통의 오랜 고도(古都)다.
동정호와 숭산(崇山)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개봉은
개방의 총타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조용하고 아늑한 고도 개봉!
한데, 느닷없이 이 개봉에 피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사혼첩(死魂帖)이라는 섬뜩한 최명부가
개봉에 위치한 무림명문(武林名門) 신선부(神仙府)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신선부(神仙府).
귀라부(鬼羅府)와 더불어 무림이부(武林二府)로 불리는 신비의 집단,
장소도 인원도 알려지지 않았던 신선부가
어느날 무림에 적나라하게 알려지고 말았다.
놀라운 사실!
더더구나 그것이 바로 혈우사혼거의 최명부인
사혼첩에 의하여 밝혀진 것이었으니…
신선(神仙)의 피로써 가면의 흉심(兇心)을 만천하에 밝히리라.
십오야(十五夜)에 혈우사혼거는 개봉성 와호곡에 있는 신선부를 찾으리라!
죽음의 최명부 사혼첩!
그것이 드디어 무림의 명문에게까지 내리어진 것이다.
무림은 일대 충격과 아울러 전율을 맛보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신비 속에 가리워진 신선부가
혈우사혼거에 의해 적나라하게 파헤쳐졌다는 당혹감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신선부!
혈우사혼거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는가?
공포는 더욱 심화되고, 그와 더불어 피바람은 더욱 거세어 지고 있었다.
개봉루(開封樓), 개봉 뿐만 아니라 전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누각의 이름이다.
개봉 특유의 술맛이 뛰어나 개봉에 들르는 모든 인물들이 반드시 찾아가는 개봉루!
삼층누각으로 된 개봉루는 오늘도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한데 개봉루의 삼층누각의 한구석에 기이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그가 기이하다 함은 오늘 아침 개봉루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나
해저물고 있는 석양까지 술을 퍼마셔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독한 명주(名酒)인 홍화취옥주를 무려 열 동이째 마셔대고 있는 인물!
새하얀 백의에 기다란 흰비단으로 싸맨 보퉁이 하나가 그가 지닌 전부다.
약간은 장난기스럽고, 또 어딘가 모르게 외롭게 보이기도 하는 백의미장부, 천후였다.
그가 이곳 개봉에 나타나 여전히 술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흐릿한 눈망울은 어딘가 모르게 광기가 어려있다.
취해 몸까지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데도 여전히 마셔 대고 있다.
그리고 천하의 술은 자신이 다 마시고 있다는 착각에서인가?
게걸스럽고 약간은 취기어린 트림을 연발하고 있었다.
"크으…!"
한데, 오늘따라 개봉루엔 기이한 인물들이 많았다.
천후를 비롯하여 세 사람!
그들도 천후처럼 개봉루를 열자마자 나타난 인물들이었다.
흑의인(黑衣人).
그에게 볼 수 있는 것은 턱밑까지 내리덮인 시커먼 죽림과 칠흑 같은 흑의,
그리고 역시 검은 기다란 묵도(墨刀)와
언뜻언뜻 보이는 죽림 속의 풀어 헤쳐진 긴 머리칼 뿐이었다.
그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새벽부터 그곳에 앉은 그는 단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시선은 죽림에 가리워져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나, 가끔씩 돌아가는 것으로 미루어 창밖을 향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좌우 옆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그의 옆에 가기를 꺼려하여 생겨난 빈자리였다.
아무리 복잡해도 그 빈자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이하게도 그 흑의인에게서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스스한 한기를 동반한 냄새,
그것은 결코 냄새가 아닌 분위기일 뿐이었다.
죽음의 분위기!
그렇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死香]를 동반한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그 또한 흑의인이었다.
칠흑 같은 흑의에 차갑고 파리한 목!
그리고 전혀 감정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자태, 여인인 듯했다.
왜냐하면,
가느다란 어깨와 약간 솟은 가슴,
그리고 가끔씩 탁자 위에 드러나 보이는 새하얀 손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새벽같이 개봉루에 나타나 흑의죽립인과 마찬가지로
창가에 앉아 말없이 있었다.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다.
침착하여 차라리 목석같아 보이는 자세는 결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굴곡과 새하얀 피부로 미루어 매우 뛰어난 미(美)를 소유한 여인이리라!
하나, 그것이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웬일일까?
면사, 턱밑까지 내리덮인 흑의면사 때문일까?
아니면, 이 여인은 원래가 자신의 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그런 여인일까?
또 한 사람!
그는 조금 전까지 천후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술을 마시다
급기야 탁자에 얼굴을 묻고 골아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독한 죽엽청을 열 한 통이나 비우고 끝내 픽 쓰러진 것이었다.
나이는 결코 천후보다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데, 문제는 행색에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거지였다.
봉두난발의 머리, 다 떨어진 의복, 새까만 때가 묻은 얼굴!
더더구나 치기어린 얼굴에 묻은 때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본래 검은 건지 아니면 때가 끼어 그런 건지,
아무튼 그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흘러나오고 말 것 같은 상거지였다.
드르릉 드르릉
코까지 골며 아주 푹 떨어져 버린 작은 거지는
지금쯤 공자(公子)를 만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괴이한 네 사람!
어쨌든 그들로 인해 개봉루의 삼층누각은 실로 흥미롭기만 했다.
한데, 그때였다.
요란한 음향과 함께 네 사람의 무림인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쿠 당 탕
하나같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 인상들!
그들은 다짜고짜 점소이를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
"이봐! 어르신네들이 왔으면 냉큼 자리를 만들어야 할 거 아냐!"
"너는 우리 신주사웅(神州四雄)이 눈에 차지도 않는단 말이냐?"
무섭게 닥달하는 네 사람!
그러자 사람 좋게만 보이는 점소이는 사색(死色)이 되어 읊조린다.
"나… 나으리,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점소이의 허리가 열댓 번은 굽혔다 펴졌다 한 후에
점소이는 급히 창가에 자리를 만든다.
한데… 자리는 쉽게 생겼다.
왜냐하면, 창가에 앉아 있던 주객들이 네 사람이 나타나자
앞을 다투어 자리를 뜬 것이다.
신주사웅이라고 자처하던 네 명은
그 모양을 보자 아주 흡족한 듯 자리에 앉았다.
이어, 최고급 요리와 술을 푸짐하게 시킨 후 자신들끼리 떠들어댔다.
점소이, 그는 비로소 얼굴색이 풀리며
급히 주방쪽으로 사라지며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제기랄! 신주사웅 좋아하네!
신주사견(神州四犬)이라 해도 시원찮을 도둑놈들이…"
신주사견들이 네 마리 아니던가?
한데, 신주사웅(神州四雄)이라 불리우는 네 인물은
그것도 모른 채 연신 흥분하여 떠들고 있었다.
"이봐, 넷째! 오늘 밤이지?
혈우사혼거가 와호곡에 있는 신선부에 나타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밤 삼경이죠.
한데 한가지, 소제는 오늘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뭔데…?"
"그것이 글쎄 조금 이상하기도 해서 선뜻…."
넷째라는 생쥐 눈을 가진 인물을 주위를 한 번 돌아본 후
약간 긴장한 모습을 했다.
자연히 나머지 세 사람도 따라서 긴장을 할 수밖에…
한데 그것이 좀 길어지는 듯하자
성질 급하게 생긴 털보대한이 버럭 소리친다.
"이봐, 빨리 말해라.
어떤 놈이건 우리말을 듣는다 해도 무서울건 없잖느냐?"
생쥐 눈의 넷째는 찔끔하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형님, 이건 보통 소문이 아닙니다."
"글쎄 빨리 아가리나 열라지 않느냐?"
"에이, 좋습니다. 말하죠.
형님들은 혹시 무림육대지보(武林六大之寶)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순간, 나머지 세 사람의 안색이 정말 단번에 굳어진다.
"유…육대지보… 알고 있다. 한데 그것이 어떻다는 말이냐?"
"형님들은 육대지보 중 천옥마상(千玉魔像)을 아실 겁니다."
"알지! 천 마리의 말이 새겨졌다는 천옥마상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 천 마리의 말이 비상(飛上)하는 형태로 조각된 형상의 보물이죠."
"그렇지. 전해지기론 그 안에는 절대신공이 감추어져 있다고도 하지.
한데 넷째, 그 천옥마상이 어떻다는 말이냐?"
"글쎄…오늘 이곳 개봉에 몰려든
수백 명의 무림고수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소문으로
그 천옥마상이 바로 와호곡의 와호담(臥虎潭)이라는
신비의 샘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뭣이? 와호담이라고? 와호곡에 그런 곳이 있었던가?"
첫째인 털보대한의 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나머지 두 사람도 고개를 갸웃한다.
"와호곡은 들었어도 와호담은 처음인데…?"
그러자 생쥐 눈의 넷째가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다 보더니 말소리를 낮춘다.
"들어보십시오. 형님들!
사실 오늘 개봉에선 열두 번의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와호담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원인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와호담의 비밀…?"
"신비한 살인사건…?"
넷째의 말소리가 더더욱 낮아졌다.
"글쎄…그렇다니까요.
소문으론 신선부가 와호곡에 자리잡은 것은
바로 그 와호담을 찾기 위해서 였답니다.
그리고 이번 혈우사혼거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 사실을 알고 사혼첩을 보냈고…"
"오오…그런 일이…?"
"그뿐인 줄 아십니까?
신선부는 사실 어떠한 세력의 주구라는 것입니다."
"뭣이…? 신선부가 어떠한 세력의 주구라고?
그럴 수가…도대체 어떠한 막강한 세력이길래 신선부를 종으로…?"
"그… 그 세력이 도대체 어디라더냐?"
놀라 까무러치듯 덤벼드는 세 사람!
사실 그것이 소문일지라도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무림이부의 하나인 신선부가 어떠한 세력의 주구라니…
도대체 얼마만한 가공할 세력이 있어
신선부를 종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인가?
실로 가공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생쥐 눈의 넷째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님들, 전설의 삼천(三天)을 아시지요?"
오오…삼천(三天)이라면?
"삼천(三天)? 알지! 한데 세 개의 하늘 중
천외천만 전설 속에 한 번 나타났을 뿐 나머지 이천(二天)은…"
"잘 들으십시오.
소문으로 나머지 이천(二天)은
바로 마중천(魔中天)과 사중천(邪中天)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마중천(魔中天)?"
"사중천(邪中天)?"
경악의 외침이 튀어나온다.
"그것의 실체에 대해서는 저도 모릅니다.
단지 이번 소문에서 신선부를 움직이는 것이 사…중… 크악!"
"크…윽!"
"아…악!"
이럴 수가!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명…그리고…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게 살아있던 신주사웅이
돌연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괴변(怪變)! 그렇다. 그것은 분명 괴변이자 공포의 순간이었다.
신주사웅, 그들은 모두 칠공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언제, 어느때, 누가 죽였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괴사(怪事)였으니…
누각 안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사…
살인이 났다!"
"신주사웅이 갑자기 죽었다!"
우르르르
겁먹은 주객들이 앞을 다투어 밀려나가고 거리는 순식간에 혼잡해졌다.
그때, 천후를 포함한 네 사람의 표정이 짧은 순간에 각기 변해갔다.
천후, 그는 술잔을 비우다 말고 흐릿하게 웃더니 다시 벌컥 술을 부어 넣었다.
'빠른 솜씨야. 내가강기(內家 氣)로 심맥을 끊어 죽였다.
하나 누군지는 모르겠다
. 주객들과 함께 묻혀 사라지는 뒷모습만 보았을 뿐.'
그는 봤는가?
흑의죽립인, 그는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묵도에 손을 얹었다.
하나, 결코 검을 빼지는 않았다.
흑의면사여인, 그녀의 면사가 짧은 순간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가벼운 외침이 일어났다.
"사… 중… 천!"
작은거지 그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비명소리와 함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 순간, 투명한 청광(靑光)이 번뜩 스쳐갔고,
다음 순간 작은거지가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그와 함께, 탁자에 놓인 오리고기 뼈다귀를 집어들어
홱 뿌리며 크게 떠들었다.
"에이! 잠도 못자겠네! 뭐야! 다나가서 좋아라 했더니
아직도 세 명씩이나 남아 있잖아!"
큰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으며 손을 휘젓는 소걸개.
기이하게도 그의 입속이 왜 저리도 깨끗하며 고운가?
또한 찡그린 표정과 투명한 눈망울은?
유난히도 새하얀 치아는
그의 얼굴이 때가 끼어 검게 보이기 때문에 더욱 빛나보이는가?
한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오리 뼈다귀!
소걸개가 아무렇게 내던진 그것들이 묘하게도 천후와 흑의죽립인,
그리고 흑의면사여인을 향해 날아가지 않는가?
피 웅
그것도 무서운 속도와 위력으로…
천후는 지금 막 발밑에 떨어진 술잔을 집으려고
몸을 탁자 밑으로 숙였다.
그 순간, 무엇인가 그의 머리 위를 휙 스쳐 벽에 탁 꽂혔다.
탁
오리뼈다귀였다.
우연스럽게도 오리뼈다귀를 피한 것이다.
흑의죽립인은 처음으로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하나의 물체가 술잔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팍
그것도 오리뼈다귀였다.
그것도 참으로 우연스럽게 잔으로 막은 것이다.
흑의면사여인,
그녀도 처음으로 머리를 매만지기 위해 손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하나의 물체가 그녀의 소매자락에 박혔다.
푹
물론 오리뼈다귀였다.
그녀도 우연스럽게 소매로 막아낸 것이다.
소걸개는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더욱 화를 냈다.
"에이! 재미없어! 도대체가 음흉해.
특히 고개숙인 저 사람은 더욱 음흉해.
생긴 것은 말쓱한 게 음흉하기는…에이! 오늘도 잡쳤다.
시비할 때가 없잖아!
두 사람은 돌멩이고 한 사람은 찰떡처럼 흐늘흐늘 하면서도 음흉하고… 에이!"
소걸개는 정말 인상을 박박 찡그리며 앞에 놓인 술잔을 벌컥 들이켰다.
그때였다.
하나의 인영이 창문을 넘어 누각 안으로 넘어 들어와 소걸개 앞에 부복했다.
휘 익
개방의 고수인 듯 허리엔 신분을 상징하는 새끼줄 여섯 개가 겹쳐 있었다.
육결제자!
그것은 당금 개방의 장로급 신분을 나타낸다.
"소사숙(小師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급히 제자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이럴 수가! 개방의 장로급 육결제자가 이 소걸개 보고 소사숙이라면?
소걸개는 여전히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그러다 힐끗 그를 쳐다본 후 다시 투덜거렸다.
"에이! 오늘은 정말 재미없네. 뭐야, 주전신개(酒箭神 )!
그대답지 않게 죽을 상을 해가지고… 에이!"
소걸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주전신개!
그렇다면 지금 이 늙은거지가 개방오로의 하나인 주전신개라는 말인가?
나이 팔십이 넘은 개방오로다!
주전신개!
그는 긴장한 얼굴로 소걸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걸개는 끝내 앞에 놓인 술을 다 비운 후에야 자리에서 떠났다.
한데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여보, 점소이! 죽엽청 한 동이를 저기 있는 술고래한테 갖다 주도록!
그리고 오늘 내가 먹은 모든 계산은 저 사람이 할 거다."
천후를 가리켜 저 사람이라고 했으니…이럴 수가…
결국 천후는 죽엽청 한 동이와 소걸개의 계산까지 떠맡은 것이 아닌가?
소걸개는 휘적휘적 사라졌다.
천후, 그는 그때 히죽 웃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해.
내가 한때 모든 계산을 죄없는 월미옥에게 씌웠더니,
이제 그 대가가 돌아오는군. 인과응보야."
체념이라면 어울릴 것 같았다.
지금 천후의 말은…
* * *
사당(祠堂).
대단히 넓은 빈터를 지닌 낡은 사당이었다.
석양은 저물어 이미 어두워진 사위는 약간은 스산한 밤임을 느끼게 한다.
을씨년스러운 사당은 한결 더 스산했다.
한데, 그 누구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이 사당에
지금 때아니게 많은 인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은 웬일인가?
줄잡아봐도 거의 이백여 명!
놀랍게도 그들은 전부 거지떼들이었다.
개방의 인물들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허리에는 각자의 신분고하를 나타내는 새끼줄이
모두 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대체 이 사당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개방의 인물들이 모였다는 말인가?
더구나, 저들의 지금 표정은...?
긴장감이 가득 배어있는 분위기다.
무엇인가 몹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 듯
이백여 명의 개방 인물들은 하나같이 침통하게 앉아있었다.
갑자기 일진 음풍(陰風)이 사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봄이라 해도 역시 밤바람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하나, 그런데도 개방의 인물들은 그 누구도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한곳을 주시하고 잇었다.
그곳은 바로 그들 전면(前面)에 위치한 사당이었다.
사당,
이백여 명의 침중한 시선을 받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저곳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당안(祠堂內), 그곳에 세 명의 늙은 거지들이 침중하게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허리에 육결의 새끼줄을 매단 것으로 미루어
개방의 장로급 인물들이리라!
그렇다! 그들은 바로 전무림에서도 위명이 쟁쟁한
개방오로 중 세 명이었다.
개방오로!
그들은 당금 개방의 방주( 主)인
자죽신개(紫竹神 )의 사제들인 장로급 기인들이다.
주전신개(酒箭神 ).
복마신개(伏魔神 ).
무영신개(無影神 ).
와룡신개(臥龍神 ).
화양신개(火陽神 ).
그들의 명망은 개방에서 뿐만 아니라, 전무림에서도 가히 초일류에 속한다.
개방의 십팔절기(十八絶技) 중 최소한 열 가지 이상을 익히고 있는 개방 기인들,
그들은 각기 독특한 특징을 지닌 기인들이다.
그리고 평소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기질과 부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일대기인들인 것이다.
한데, 오늘 이 사당안에 모인 세 사람은 평소의 그들과 전혀 달랐다.
게걸스런 해학과 사뭇 신랄한 풍자,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기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엇인가 몹시 심각한 안색으로 사당의 한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당의 제단 위!
그곳에 한 명의 걸인이 누워 있었다.
죽은 듯 미동도 않고 있는 인물!
한데 이럴 수가?
그는 개방오로 중의 하나인 와룡신개가 이닌가?
와룡신개!
개방 최고의 현자(賢者)이자 무림에서 지다성(知多星)으로 불리우는 책략가!
한데, 그가 저렇듯 심하게 중병을 앓고 있다니…
아니다. 그것은 결코 중병이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안색과 옆구리에 길게 그어진 검상(劍傷)!
팔과 허벅지에 남은 동그란 구멍!
그것으로 미루어 누군가에 의해 심한 상처를 입고 누워 있음에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누가 감히 개방최고의 현자이자 무림절정 고수인 와룡신개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었단 말인가?
또, 와룡신개는 무슨 일로 저렇듯 심하게 다쳤는가?
그때였다. 개방오로 중 화양신개가 성질 급한 성격을 못이겨 입을 열었다.
"소사숙을 모시러 간 주전신개는 어떻게 된 거야? 지금 한시가 급한데…"
개방오로 중 화양신개는 별호가 말하듯 성질이 불 같다.
"곧 올 거다. 좀 조용히 있어라.
지금은 소사숙이 문제가 아니다.
방주를 수행해 갔던 와룡이 저렇듯 다 죽어 나타난 걸 보아
방주님에게 더 급한 변(變)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복마신개.
성격이 침착하고 악(惡)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인물이다.
"아니야, 방주에게는 수신십팔개(水神十八個)가 있으니 비교적 안심이 된다.
문제는 조금 전 와룡이 남긴 마지막 말에 있다."
무영신개.
독특하게도 변장술과 신법에 능하고 매우 차가운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화양신개가 말을 받는다.
"그렇다. 와룡이 말하기를 와호곡에는 지금 괴이한 인물들로 구성된
천라지망(天羅之網)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와룡도 그들에게 당했다고 했다."
약간은 덤벙대는 화양신개의 말에 복마신개가 상을 찌푸렸다.
"와룡은 그냥 당한 게 아니야.
그들의 정체와 신선부와의 관계를 캐기 위해
방주와 헤어져 독단으로 행동하다 합공을 받은 거야."
"와룡은 전부터 신선부를 드나들곤 했다.
그것은 벌써 삼 년째 계속된 일이지.
결국에는 뭔가를 알아낸 후 이번 혈우사혼거의 혈운이 개봉에 몰려오자
일부러 신선부가 사중천과 관계가 있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거야."
무영신개의 말은 몹시 뜻밖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개봉성에 난비하는 모든 소문은
바로 와룡신개가 일부러 퍼뜨린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격장지계(激將之計)였어.
일부러 그런 소문을 퍼뜨린 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속셈이었다."
무영신개의 말에 나머지 복마와 화양신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그것은 최근 신비한 일단의 무리들이
신선부가 있는 와호곡에 출몰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지."
"그럼 정말 그들이 사중천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냐?"
화양신개의 물음에 무영신개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건 확실히 모른다.
와룡은 오늘 방주를 모시고 확실한 것을 캐기 위해 와호곡으로 갔는데,
결국 저렇게 다 죽어서 돌아왔으니…"
무영신개는 침중하면서도 사려깊은 눈으로 누워있는 와룡신개를 바라다 봤다.
"이런 제기랄! 그럼 결국 와룡만 손해본 것이 아니냐?"
화양신개는 분한 듯 부르르 떨며 그렇게 뇌까렸다.
그러자 무영신개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두 눈에는 일순 섬전 같은 광채가 스쳐가고 있었다.
"아니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와룡은 훌륭히 성공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내 생각인데 아마도 와호곡 근방에 출현한 일단의 신비인들은
틀림없이 사중천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선부도 와룡의 추측대로…"
한데 무영신개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지극히 음침하고 싸늘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크크크…냄새나는 거지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오싹하며 지극히 음침하고 싸늘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오싹한 한기가 공포감마저 느끼게 하는 섬뜩한 음성!
순간, 무영신개가 벼락같이 소리치며 소리나는 곳으로 몸을 튕겼다.
"누구냐?"
무영신개의 최고절기인 무영섬전보(無影閃電步)였다.
그야말로 빛살보다도 더 빠른 신법!
무영신개의 신형은 이미 사당의 지붕을 뚫고 솟구치고 있었다.
한데 지붕 위에 선 무영신개는 일순 싸늘한 한기를 느껴야 했다.
"이…이럴 수가…노부의 눈을 피하다니…"
무림에 그 누가 있어 무영신개의 신법을 따라오리!
당금 무림의 최절정 고수인 구대문파나 이대세가의 우두머리들도
무영신개의 신법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데 오늘, 무영신개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인물이 있으니…
"크크크…무영신개, 네놈의 잘난 절기로 노부를 볼 수 있겠느냐?"
여전히 음산한 음성은 지금 무영신개를 철저히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파 팟
그때, 가벼운 음향과 함께 복마신개와 화양신개가 지붕 위에 나타났다.
"누구시오? 누가 본 방의 금지구역에 나타났단 말이오?"
복마신개가 침착한 음성으로 사방을 돌아다보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복마신개, 이 어린 놈아! 침착한 척 하지 마라.
그리고 이곳이 무슨 금지구역이냐!
이곳은 이미 본 좌의 손에 의해 곧 깔아 뭉게지고 말 것이다."
음성만 있고 형체는 없는 인물!
일순, 무영신개의 두 눈에 당혹감이 스쳐갔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의 수법이다.
누구인가? 무려 삼갑자의 내공이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육합전성술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갑자의 공력이라면, 당금무림의 최절정 기인들인 구대문파 장문인과
이대세가의 가주정도의 수준이 아닌가?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때, 성질 급한 화양신개가 버럭 고함을 쳤다.
"대체 어떤 말라빠진 작자냐? 나타나서 얘기하라.
본 방의 금지구역을 침입한 죄는 세 번 죽어도 면하지 못한다."
그의 두 눈에서는 지금 시뻘건 화염이 줄기줄기 솟구치고 있었다.
"크크크… 너희들은 본 좌를 마주할 자격이 없다.
대신 그냥 그대로 죽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음산한 음성이 다시 들려오자 무영신개가 침착하려고 애쓰며 묻는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오?"
"이유? 그것은 간단하다.
너희 개방이 너무 철없이 많은 것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것을…?"
"크크크… 그 본보기가 바로 되지 못한 와룡신개라는 놈이다."
순간, 무영신개 등의 신형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그럼… 당신들은 바로…사중…"
"닥쳐라! 말이 너무 쉬우면 죽음도 그만큼 쉬운 법이다.
자, 긴말하지 않겠다. 모두 자결해라!"
자결해라!
너무 광오하고 안하무인격인 언사였다.
누가 감히 개방오로 중의 세 사람에게 자결을 명할 수 있겠는가?
한데 그 순간, 무영신개 등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이 싸늘해 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공포인가, 아니면 낯선 상대에 대한 중압감인가?
그때, 화양신개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고함치며
소리나는 곳으로 무작정 신형을 날렸다.
"야… 앗!"
거대한 몸체를 지닌 화양신개, 거기에다 분노까지 내포되어 있으니
그 위세는 어떠하겠는가?
실로 산악이라도 뭉게 버릴 듯한 막강한 잠력이 사당 앞 수림으로 향해 간다.
꽈 꽈 꽝!
한데 한순간, 조소와도 같은 비양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크크크…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느냐?"
"으음…"
돌연 허공에 떠있던 화양신개가
비틀하며 지면으로 곧장 곤두박질 치는 것이 아닌가?
그대로 두면 그대로 피떡이 되어 즉사하고 말리라!
그때였다.
하나의 인영이 번뜩이다 싶었을 때
화양신개는 누군가에 의해 받쳐졌다.
번쩍!
무영신개였다.
그가 어느새 화양신개를 구한 것이다.
화양신개는 입가에 선혈을 흘린 채 혼절해 있었다.
'으…무서운 내가강기다. 화양의 이갑자 내공이 무색하게…'
무영신개의 안색이 일순 파리해졌다.
그때, 음산한 음성이 귀찮다는 듯 뇌까린 직후,
돌연 사당의 빈터에 여전히 정연하게 앉아 있던 개방제자들 사이에
괴변이 발생했다.
"크크크…시간이 없구나. 끝내 너희들이 죽음을 바라니 할 수 없다."
"크…악!"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삽시간에 대여섯 명의 개방제자가
피를 토하며 고꾸라진 것이다.
파 파 팟!
그와 동시, 어디서 나타났는지
거의 오십여 명은 넘어 보이는 혈의복면인들이 나타났다.
가슴에 핏빛 매화(梅花) 송이를 박은 인물들!
하나같이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무섭게 개방의 제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개방의 제자들,
그들은 너무나 급작스런 혈의복면인의 침입에 잠시 크게 혼란해져 있었다.
"적이닷!"
"막아랏!"
누구인가 큰 소리로 외치며 다른 제자들을 독려했다.
하나, 기습이란 상대의 혼란을 노려 졸지에 덮쳐 드는 것이 아니던가?
쐐 애 액
"크…악!"
혈의복면인들의 시퍼런 검날에 잘려지는 것은
개방제자들의 목과 사지 뿐이었다.
피[血]!
고즈넉하고 을씨년스러우나 고요하기만 하던 사당에
때아닌 혈우(血雨)가 쏟아졌다.
잘려나가며 벌어지는 사지육신(四肢六身)들, 처참하고 참담한 살풍경이었다.
그때였다.
제자들의 처참한 참상을 지켜보던 복마신개가 비통한 표정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개방의 제자들은 즉시 현기십팔죽절진(玄氣十八竹絶陣)을 펼쳐라!"
현기십팔죽절진(玄氣十八竹絶陣)!
개방의 십팔절예 중 세 번째 절학(絶學)이다.
열여덟 명이 일조가 되어 다시 열여덟 개의 원형진을 펼치는 가공할 죽진(竹陣)!
소림의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 무당의 태극오행검진(太極五行劍陣)과 함께
삼대절진(三大絶陣)으로 불리우는 현기십팔죽절진!
급기야, 그 진이 펼쳐졌다.
딱 따닥 딱!
딱 딱!
규칙적인 죽장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삽시간에 개방제자들은 원형을 형성해 갔다.
과연 명문정파답게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명쾌하고 가볍고 질서정연했다.
혈의복면인들, 그들은 일시에 크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처절하게 거꾸러지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열여덟 개의 죽장이 일제히 허공에 반원을 그었다고 생각이 들면,
혈의복면인들은 저마다 부서지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마지막 절규를 쏟아냈다.
"크… 아…악!"
"아…악!"
허연 뇌수는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 배어 나오고,
피는 또 왜 저리도 선연한지…
하나, 개방제자들은 조금 전에 당한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
더더욱 거세게 몰아부쳤다.
딱 딱 따닥!
경쾌한 죽장의 부딪침이 죽음을 재촉한다.
둥근 원형죽진의 위력은 실로 가공하리만큼 대단하기만 했다.
이제 전세는 개방제자들에게 훨씬 유리하게 변했다.
한데 그때였다
. 돌연 조금 전의 형체없는 음성이 단말마의 비명성을 뚫고 음산하게 들려왔다.
"크크크…현기십팔죽절진이군.
제법 위력이 있긴 하다만 그것으론 본 성(本成)의 힘을 막지 못한다."
그와 동시, 하나의 어른 주먹만한 물체가
현기십팔죽절진을 향해 섬전처럼 폭사되 갔다.
꽝 꽈르르 꽝!
오오! 천지번복(天地飜覆)이 일어나고야 말았는가?
"아…악!"
"크…아…악!"
처절한 저 비명성은 또 무엇인가?
삽시간에 열여덟 명의 개방제자가 화염에 휩싸여 타죽는다.
코를 찌르는 화약내음,
그리고 찢겨진 육신들의 잔해,
천지를 가르는 듯한 폭음소리는
삽시간에 사당 전체를 날려버릴 듯 기성을 부린다.
그때였다. 무영신개의 전신이 마치 폭풍을 만난 듯 부르르 떨렸다.
"아…벽력화염탄(霹靂火焰彈)!
그…그럼 당신은 백 년 전의 벽력신군(霹靂神君)?"
벽력신군, 그 얼마나 섬뜩한 이름인가?
단 한 개의 벽력화염탄만 가지고도 방원 십 장 안은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인물!
화기(火器)의 대가(大家)이자, 최대의 대마두(大魔頭)가 바로 그가 아니던가?
"크크크… 너무 늦게 본 좌를 알아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스스로 자신이 벽력신군이라고 시인하는 음성이 새나왔다.
"아… 아!"
"희대의 저 마두가 어떻게?"
무영신개와 복마신개의 안색은 이제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한데,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굉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은 계속되고 있었으니…
"크…악!"
꽝 꽈르르 꽝!
"아…아…악!"
벽력화염탄의 위력은 실로 가공하기만 했다.
개방제자들은 어떻게 해볼 사이도 없이
우왕좌왕 헤매이다 죽어가고 있었다.
"으… 으…안돼…안된다."
복마신개의 안색에 처절하고 비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해랏…."
무영신개는 제자들을 향해 피하라고 크게 외치고 있었다.
"크크크… 이미 늦었다.
본 좌는 여기 있는 거지떼들을 모조리 도륙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구나.
크크크…"
벽력신군의 음성은 마치 피를 즐기는 혈신(血神)과도 같았다.
오오…처절했다.
한갖 화기가 저토록 대개방을 무력(無力)하게 만들고 있다니…
한데 바로 그때였다. 돌연, 좌측 수림에서 커다란 장소성이 터져 나왔다.
"우…우…우…"
엄청난 내력이 담긴 사자후와도 같은 장소성!
그와 함께 두 줄기 신형이 번뜩이며,
그 중 앞선 신형이 이제 막 허공을 날던 벽력화염탄을 낚아 챘다.
그와 동시, 인영은 빙글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 가볍게 지면에 내려섰다.
순간, 무영신개와 복마신개가
가뭄에 단비를 만난 표정으로 급히 인영에게 다가갔다.
"오오…소사숙!"
"소사숙!"
개방오로가 소사숙으로 부르는 인물,
그는 다름 아닌 개봉루에서 본 소걸개였다.
소걸개, 그는 말없이 장내를 휘둘러 봤다.
그때의 그의 얼굴엔 치기나 취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섬뜩한 청광이 스쳐가는 두 눈은 이미 싸늘히 냉각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흐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벽력신군, 그대는 너무나 값없는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지극히 냉랭하여 차라리 오싹하게 들려오는 음성으로 말을 뱉은 소걸개!
그와 동시, 분노가 다분히 섞인 기합성을 토하며
그의 신형이 돌연 허공 위 오 장 가량 솟구쳤다.
뒤이어, 소걸개의 신형이 빙글 허공에서 좌로 꺾인 후
돌연 섬전처럼 좌측 송림의 한곳을 향해 양손을 쭉 뻗었다.
"자죽멸사파라기(紫竹滅死破羅氣)!"
뿐이랴, 그가 낚아챈 벽력신군의 벽력화염탄은
한곳에 몰려 있는 혈의복면인들을 향해서 쏘아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우우웅!
섬뜩한 자색 광망이 섬전처럼 송림 끝을 쏘아 가고,
뒤이어 혈의복면인들이 서 있던 곳에 엄청난 광음이 솟구쳤다.
꽈 꽈꽈 꽝!
"크… 아… 악!"
"크…으…윽!"
엄청난 위력의 굉음과 불꽃, 그리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비명, 비명들!
이번엔 혈의복면인들이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뒤미처, 좌측의 송림 끝에서도 맹렬한 폭음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묵직한 신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었다.
"으음…"
인영(人影), 일신에 화려한 금의(金衣)를 걸친 비대한 인물!
구렛나루가 사방 턱을 가득 덮은 시뻘건 안색의 인물!
그는 벽력신군이 틀림 없으리라!
벽력신군은 떨어지는 신형을 급히 안정시킨 후 가볍게 지면에 내려 섰다.
"이… 이런 애송이… 꼬마 놈에게…!"
회의와 불신, 그리고 경악이 그의 두 눈에 빠르게 스쳐가고 있었다.
소걸개!
그는 그런 벽력신군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서서히 다가갔다.
"벽력화염탄 하나로 가치없는 치졸한 위명을 얻은 자!
내 오늘 그 명성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한마디 한마디가 씹어 뱉 듯하면서도 결코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곧 그가 이미 심신을 최극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임을 나타내 주는 것.
"으으…이 꼬마놈이!"
겉으론 태연한 듯 말하나
이미 상대를 알아본 벽력신군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소걸개가 빙글 몸을 돌리며 양 손을 둥글게 휘저었다.
"유성회선강(流星廻旋 )!"
동시에, 둥글어 마치 유성환(流星環)을 보는 듯한 청색기류가
섬전처럼 벽력신군을 향해 쏘아갔다.
고 오 오
벽력신군의 두 눈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하나, 감히 지체할 수 있는가?
"벽력뇌전마강(霹靂雷電魔 )!"
그야말로 벽력 같은 고함과 함께 그도 양손을 마주 뻗어갔다.
우르르릉!
섬뜩한 뇌성을 동반한 번쩍이는 화광이
소걸개의 청색기류에 마주해서 쏘아갔다.
그리고 그 어느때 보다도 큰 폭음이 들려오고,
벽력신군은 일순 자신의 신형을 주체치 못하고 뒤로 주르르 밀려난다.
"으음…"
비틀 비틀
더더욱 경악의 빛이 그의 두 눈에 스쳐갔다.
'무…무서운 신공이다. 개방에… 언제 저런 고수가… 꼬마 놈인데…
대개, 사악(邪惡)한 자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 하는 법인가?
한동안 얼이 빠진 듯 눈알을 굴리던 벽력신군의 몸이 일순 뒤로 튕겨졌다.
그야말로 번개의 그것보다도 더 빠르게 몸을 피한 것이다.
"아… 앗…"
"저자가 도망을…"
무영신개와 복마신개가 크게 놀라며 외친다.
그때, 소걸개가 지극히 싸늘하게 냉소를 날린 후 급히 심지를 퉁겼다.
"흥! 씨는 뿌린 자가 거두어야 하는 법이지!"
"유성탈명지(流星奪命指)!"
섬뜩한 열 가닥 지풍이 막 수림 속으로 사라져 가는 벽력신군을 쫓아 튕겨졌다.
피 피 핑!
뒤이어, 벽력신군으로 여겨지는 비명성이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으윽!"
"저… 저럴 수가!"
"지력에 적중되고도 도망을…"
무영신개의 외침처럼 벽력신군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소걸개, 그는 일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수림을 살폈다.
"실수다! 너무 그자를 쉽게 생각했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던가?
소걸개의 두 눈은 자신을 자책하는 듯 보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무엇인가 수림 속에서 날아와 소걸개 앞에 탁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휘익
탁
소걸개와 무영신개 등은 흠칫하며 급히 떨어진 물체를 주시했다.
"아… 앗 저…저것은?"
"벽력신군의 팔이 아닌가?"
오오…그렇다. 떨어진 물체는 분명히 벽력신군의 팔이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듯 파닥거리는 섬뜩한 팔,
점점이 흩어져 뿌려지는 시뻘건 선혈!
한데, 그것은 누가 버린 것인가?
천하에 그 누가 있어
벽력신군의 팔을 소리도 없이 베어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수림 저쪽에서 돌연 영롱한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 외치지 않는가?
"으하하핫…작은 친구!
이것은 그대가 내 앞으로 달아논 술값에 대한 보답이야.
으하하핫…"
"오오…"
"누…누가…?"
무영신개와 복마신개 등은
갑자기 던진 호탕한 웃음소리에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한데 소걸개,
그가 돌연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갑자기 투덜대는 것이 아닌가?
"에이! 음흉한 자! 어느새…에이 재미없어.
왔으면서 왜 그냥 가? 음흉해… 찰떡처럼…"
이런… 이게 또 무슨 말인가?
소걸개의 돌연한 투정에 무영신개 등은 일순 멍해지고 만다.
"에이… 음흉해… 재미 없어. 오늘은 왜 이러지… 에이…"
소걸개의 묘한 투정은 한동안 계속되다 돌연 바뀌어졌다.
"뭐하나? 어서 정리하고 방주가 있는 와호곡으로 출동해야 하잖니?"
이건 또 웬 비상인가?
이상한 거지도 다 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ㅈㄷㄳ
소걸개, 재밌는 친구군. ㅎ
즐~!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즐감요!!!!!
잘봅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잘보았음니다
즐독요
즐독....감사...꾸벅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