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캠퍼스 풍경은 변해 있었다.
친구들이 더는 당구장에 가지 않았고, 오락실에도 가지 않았다.
다들 PC방이라는 곳을 갔다.
스타그래프트를 하기 위해서.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지 않던 내 입장에서는 썩 반가운 변화는 아니었다.
더 절망스로웠던 것은 게임에서 최적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네랄이 얼마일 때 무엇을 건설해야 하나, 일수가 몇 마리일 때 무얼 해야 하는가,
외워야 할 긴 족보가 있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지원을 수급을 맞추지 못해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친구들의 조언이었다.
한 유명한 작가 분은 당시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가장 자본주의적인 게임이란 평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에는 외워야 할 긴 단축키 목록도 있었다.
놀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자니 이런 자괴감이 들었다.
낙담한 내게 친군느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 우리끼리 한판 뛸 테니까. 넌 인공지능이랑 연습하고 있어.' 그랬다.
그때 인공지능과 스타를 하라는 말은 네 실력이 그 정도로 형편없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 인공지능과 프로게이의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있었다.
결과는 10대 1로 인공지능의 승리였다.
알파고 이후 이런 일은 충격적인 사건도 되지 못한다.
물론 인공지능의 시야 문제가 있었다든가 프로 게이머가 최고 수준은 아니었든가 하는 이의 제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을 바로잡아 다음번 경기를 한다해도 인간 진영의 전망이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경쟁에서 인간이 당연히 이길 수 없는 싣가 오고 있다.
혹자는 노동에서 해방되는 장미빛 미래를, 혹자는 근로소득의 ㅈ오말로 인한 극심한 빈부의 격차와
소비 경제의 붕괴라는 디스토피아를 말한다.
아마 현실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분명 고통받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 고통을 보듬어 주는 것, 그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임상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