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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2년 7월 24일 연중 17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함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월 26일)과 가까운 7월 넷째 주일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지낸다(주교회의 2021년 추계 정기 총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2022년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2022년 7월 24일)
“늙어서도 열매 맺으리라”(시편 92[91],15)
사랑하는 여러분,
“늙어서도 열매 맺으리라”(시편 92[91],15). 시편 저자의 이 말은 기쁜 소식, 곧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모든 이에게 선포할 수 있는 참된 ‘복음’입니다. 이 말은, 삶의 이 단계에 대하여 세상이 가지는 생각은 물론, 우리 노인들 가운데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도 품고 있지 않은 일부가 보여 주는 암울한 체념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피하면 좋을 일종의 질병으로 치부합니다. 사람들은, 노인들이 결코 자신들의 관심 대상도 아니고, 자신들이 노인들의 문제를 뒤치다꺼리하지 않도록 노인들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원이나 시설에 따로 떨어뜨려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버리는 문화’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취약함이 우리 마음에 와닿지 않게 하고, 우리가 ‘그들’과 그들의 어려움을 우리와 무관하다 여기며 그들을 우리와 어느 모로든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경의 관점은 다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오래도록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꺼려야 할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충만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징표입니다. 행복하여라, 노인과 함께 사는 집! 행복하여라, 노인을 공경하는 가정!
노년은, 이미 노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조차도 쉽게 깨닫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세월이 흘러 결국 노년을 맞이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노년을 대비하도록 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노년이 우리에게 별안간 찾아오는 듯합니다. 선진 사회에서는 삶의 이 단계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면서도 사람들이 노년을 이해하고 인정하도록 진정으로 돕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노인들을 위한 의료 복지 계획은 제안할지언정, 이 시기를 충만하게 사는 계획은 마련하지 않습니다.1) 이는 미래를 바라보고 가야 할 방향을 식별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한편, 주름을 가리고 언제나 젊은 척하면서 나이 드는 것을 뿌리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다른 한편 우리가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침울한 생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여깁니다.
우리의 은퇴와 장성한 자녀들은, 한때 우리가 시간과 힘을 쏟아부었던 많은 일을 더는 절박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기력이 쇠약해짐을 깨닫거나 병을 앓기 시작하면 우리의 확신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상의 빠른 속도는 우리에게 어떠한 대안도 주지 않고 우리가 쓸모없는 존재라고 암암리에 인정해 버리는 듯합니다. 우리는 시편 저자의 절절한 기도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저를 내던지지 마소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의 기운 다한 지금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70],9).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단계에 어떻게 현존하셨는지를 묵상하는 이 시편은 우리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나이 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도 끊임없이 생명의 선물을 주시고, 악에 굴복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시편 71[70],14-20 참조).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이 육체의 자연스러운 쇠함이나 피할 수 없는 세월이 아니라, 장수를 누리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이 드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노년에도 우리 자신을 돌보고 활동적으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는 영성적 관점에서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날마다 기도하며, 성사를 받고 전례에 참여하면서 우리 내면의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와 더불어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도 돈독히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 자녀, 손주들에게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고, 실질적인 도움과 기도로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주변의 삶들이 펼쳐지고 있을 때 우리가 대문 앞에 앉아 있거나 창문 밖이나 내다보고 있는 한낱 구경꾼처럼 느끼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모든 곳에서 주님의 현존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2) “하느님 집에 있는 푸른 올리브 나무”(시편 52[51],10)처럼 우리는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노년은 항해를 포기하고 돛을 접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 여전히 열매 맺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사명이 우리를 기다리며 미래를 바라보라고 부릅니다. “인간미가 흐르게 하는 관심과 생각과 사랑에 관한 우리 노인들의 특별한 감수성이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의 소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노인들의 젊은 세대들을 향한 사랑의 징표가 될 것입니다.”3) 이는 “온유함의 혁명”, 4) 곧 영적이고 비폭력적인 혁명을 위한 우리 노인들 나름의 헌신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조부모와 노인 여러분, 이러한 혁명 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십시오.
갑작스럽게 발생한 흉포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시작으로, 이에 이어진 전 세계 평화와 발전을 해치는 전쟁 때문에 우리 세상은 시련과 시험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이때에 유럽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크나큰 위기들로 우리는, 다른 ‘감염병의 유행들’ 그리고 인류 가족과 우리 공동의 집을 위협하는 또 다른 형태로 만연하는 폭력의 현실에 무감각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깊은 변화, 곧 우리 마음의 빗장을 풀고 다른 이들을 우리 형제자매로 바라보도록 하는 회개의 필요성을 가리킵니다. 조부모와 노인인 우리에게는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시대의 모든 이가, 우리가 우리 손주들을 대할 때 보이는 이해와 사랑의 눈길로 다른 이들을 대하도록 가르치는 책임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돌보며 우리의 인류애를 길러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가장 큰 역경 속에 있는 이들을 배려하고 평화롭게 사는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나약함이나 체념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결국 땅을 차지할 이들은 폭력을 일삼는 이들이나 부패를 저지르는 이들이 아니라, 온유한 이들일 것입니다(마태 5,5 참조).
우리가 맺으라고 부름받은 열매는 세상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부모님 품에 안기고 그 무릎에 앉았습니다.”5) 이제 우리가, 실질적인 지원이나 기도만으로라도, 우리 손주들뿐 아니라 만난 적은 없지만 전쟁 때문에 피난길에 오르거나 전쟁의 영향으로 고통받고 있는 겁에 질린 손주 같은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우리 무릎을 내어줄 때입니다. 사랑이 넘치고 관심이 많은 아버지였던 요셉 성인처럼 우리도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등에 있는 어린이들을 우리 마음으로 지켜줍시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우리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현명하고 겸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혼자서는 구원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우리가 함께 나누는 빵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갈등 안에서 개인의 성취와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는 이들 앞에서 이를 증언합시다. 이러한 증언은 모든 이가,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도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평화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조부모와 노인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유함의 혁명을 이루는 장인이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도구이며 참으로 우리 나이에 가장 어울리는 일인 기도를 더욱더 자주 언제나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배움으로써 이 혁명을 이루어 갑시다. “이를테면 기도의 시인이 됩시다. 우리 고유의 말을 찾아 나가는 데에 맛 들입시다. 하느님 말씀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잘 받아들입시다.”6) 우리가 신뢰로써 바치는 기도는 큰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그 아픔의 절규를 기도로 함께하고, 마음의 변화를 기도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탄원 기도와 찬미 노래로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애쓰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위대한 영적 지성소의 영원한 ‘성가대’”7)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 ‘장수를 누리게’ 해 주신 모든 이와 더불어 경축하고자 하는 교회의 바람을 다시 한번 기쁘게 선포하는 기회입니다. 이날을 함께 경축합시다! 여러분의 본당과 공동체에 이날을 알려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집에서든 요양원에서든 사무치는 외로움 안에 살고 계신 연로하신 분들을 찾아갑시다. 그 누구도 이날에 외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합시다. 누군가 찾아오리라는 기대감은, 우리 노인들이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다고 여기며 보내는 하루하루를 바꿀 수 있습니다. 첫 만남부터 새로운 우정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독거노인 방문은 우리 시대에 이루어지는 자비의 활동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 세상을 고독의 그늘과 전쟁의 마수에서 해방시킬 수 있도록, 온유한 사랑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우리 모두를 온유함의 혁명을 이루는 장인이 되게 해 달라고 청합시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소중한 이들에게 저의 사랑 어린 친밀함의 약속과 함께 교황 강복을 전합니다. 여러분도 부디 저를 위한 기도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2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프란치스코
1)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때의 노년에 관한 교리 교육 1 - 시간의 은총 그리고 세대 간 약속, 2022.2.23. 참조.
2)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때의 노년에 관한 교리 교육 5 – 하느님께서 다음 세대에 찾아오시리라는 믿음, 2022.3.30. 참조.
3)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때의 노년에 관한 교리 교육 3 - 노년, 근심 걱정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자원, 2022.3.16.
4)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때의 요셉 성인에 관한 교리 교육 8 - 성 요셉, 온유한 아버지, 2022.1.19.
5) 프란치스코,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미사 강론, 2021.7.25.
6)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때의 가정에 관한 교리 교육 7 – 조부모, 2015.3.11.
7) 수요 일반 알현 때의 가정에 관한 교리 교육 7 – 조부모.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축일7월 24일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볼세나(Bolsena)
활동 연도 :+연대미상
같은 이름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성녀 크리스티나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초기 순교자의 한 명으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아왔다. 1880년 볼세나 인근 성당의 기초를 발굴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한 대리석 항아리에 “Hic requiescit corpus Beatae Xristinae Martyris”(여기에 복된 크리스티나 순교자의 시신이 잠들어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마 순교록”의 기록과 전설적인 이야기들에 따르면, 그녀는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Latium)의 볼세나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교도였다. 그래서 황금과 은으로 된 많은 우상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딸에게도 우상 앞에서 향을 피우도록 강요했다. 어느 날 한 천사가 찾아와 그녀를 ‘그리스도의 신부’라 부르며 앞으로 겪게 될 고통에 대해 말해주었다. 천사의 방문으로 힘을 얻은 성녀 크리스티나는 비록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혀 금과 은으로 된 우상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성녀 크리스티나의 행동에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하인들을 시켜 채찍질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한 고통을 주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딸을 죽이려고 그녀의 목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매달아 볼세나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성녀 크리스티나는 천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수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 다른 재판관에 인계되어 끌려간 성녀 크리스티나는 계속해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참아냈다. 율리아누스 총독은 그녀를 불타는 가마 속에서 5일 동안 있도록 했으나 그녀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큰 뱀들에게 물린 상처도 바로 치유되었다.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잔인하게 혀가 잘리고 목에 화살을 맞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녀의 유해 일부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Palermo) 대성당에도 모셔졌고, 팔레르모의 4대 수호성인(성녀 아가타, 성녀 크리스티나, 성녀 님파, 성녀 올리바) 중 한 명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축일7월 24일 성녀 쿠네군다 (Cunegundes)
신분 :왕비, 수녀
활동 지역 :폴란드(Poland)
활동 연도 :1224/34-1292년
같은 이름 :구네군다, 구네군데스, 구네군디스, 쿠네군데스, 쿠네군디스, 킨가, 킹가
폴란드와 헝가리어로 킹가 또는 킨가(King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또는 구네군다)는 헝가리의 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나(Maria Laskarina)의 딸이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의 조카딸로 헝가리 북부 에스테르곰(Esztergo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1월 18일)과 폴란드의 복녀 욜렌타(Jolenta, 6월 11일)의 언니이기도 하다. 성녀 쿠네군다는 궁중에서 ‘라틴어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고, 16세 때 폴란드의 왕 볼레스와프 5세(Boleslaw V)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비록 결혼에는 동의하였으나 결혼한 밤에 왕에게 동정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아내의 소원을 물리치지 못한 왕은 1년 동안만 지키자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왕과 왕비는 평생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크라쿠프(Krakow)의 주교 앞에서 서약하였다.
성녀 쿠네군다 왕비는 궁중의상 안에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하고 엄격한 극기 생활을 실천했다. 수시로 병자와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자선사업에 왕실 재산을 기꺼이 사용했다. 1279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나라를 다스리라는 귀족들의 청을 물리치고, 자신이 스타리 사치(Stary Sacz)에 세운 클라라회 봉쇄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 들어간 뒤로도 여러 곳에 성당과 병원 등을 지었고, 터키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힌 그리스도인의 몸값을 대신 지불해 그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1287년 몽골 타타르족이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그녀는 수녀들을 이끌고 한 성으로 피신했다. 당시 몽골 타타르군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곳에 있는 모든 요새를 처참하게 파괴하고 학살했으나 성녀 쿠네군다와 수녀들이 피신한 성은 그녀의 기도 덕분에 백성들과 함께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그녀의 놀라운 기도의 힘과 성덕으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죽기 전부터 이미 성녀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수녀원에서 여생을 지낸 성녀 쿠네군다는 1292년 7월 24일 병환으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690년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허락되었고,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그녀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녀 쿠네군다는 또한 광부들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는 그녀가 약혼반지를 던져 다시 찾은 곳에서 암염 광산을 발견한 전설에서 기인한다. 그 후에 헝가리에서 광산 기술자들을 데려와 본격적으로 개발했는데, 이곳이 폴란드의 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 광산이다. 이렇게 13세기부터 암염 채굴이 시작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소금 광산이 되었다. 현재 비엘리치카와 인근의 보흐니아(Bochnia) 소금 광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하 깊숙이 여러 층으로 개발된 광산 내에는 19세기 말부터 광부 조각가들이 암염을 깎아 만든 성녀 킨가(쿠네군다) 경당을 비롯해 암염을 조각해 만든 성인상과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있다. 1998년 7월 3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성녀 쿠네군다를 복자품에 올렸고, 이듬해인 1999년 6월 16일 폴란드를 방문하여 그녀가 수녀로서 여생을 보낸 스타리 사치에서 시성식을 집전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녀의 축일을 7월 25일에 지내기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크리스티나와 쿠네쿤타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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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