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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와 취미 원문보기 글쓴이: 장세영
독도우표 계기로 본 우리 역사의 일부…'독도' 바로 알기
2004. 05. 19
출처:http://cafe.daum.net/wemerrymaker/By5l/652?docid=KzOz|By5l|652|20040519234829&q=1997%20%BF%EF%B8%AA%BF%EC%C3%BC%B1%B9
아래의 내용은 우리 땅 '독도'와 관련해서 과연 우리 땅이 맞는지, 어째서 우리 땅인지 그 근거를 알기 위해 국회도서관, 역사자료실, 대학서고 등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그 접근이 어려워 네이버(naver)의 '지식in'을 통해 모아 본 '독도'관련 자료입니다. 덕분에 앞서 나 자신을 짜증나게 했던 의문은 다소 풀렸습니다만 이러한 노력을 국민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풀려고 하지 말고 우선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그 정당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함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답답증은 남습니다)
일본이 독도우표를 발행하려는 이유?
일본도 독도의 모습을 담은 우표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과연 일본이 무슨 의도로 독도우표를 만들려고 하는지....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겁니다.
분쟁지역화 되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올릴수 있는데요.
독도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상정되면 일본이 대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독도 영유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이며, 영유권 확보가 불가능할 때에는 최소한 한국과 일본의 공동구역으로 삼으려는 것이죠.
(내용출처: 지식in)
일본이 독도 우표를 발행하려면, 우리 나라에 돈을 주어야 하나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에펠탑에 관한 걸 우표로 내고 싶으면 프랑스에 돈을 내야 해요? 랑 비슷한 질문입니다.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니까 상표 빌려쓸 때
상표값을 내는 것처럼 남의 땅 빌려서 우표를 만들면 그에 따른 돈을 내야 하나요?
아닌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먼저 독도 우표발행을 앞두고 있고 이미 2번정도 독도우표를
발행했다는데 그러면 왜 우리는 일본에 돈을 안 줘도 될까요? 일본이 발행한다고 돈을 줘야 된다? 물론 질문을 보니 독도를 우리 것으로 생각하고 쓴거 같은데요. 일본입장에서 본다면 님의 질문을 봤을때는 왜 한국은 일본에게 돈 안주나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표발행으로 일단 돈을 버는 것이니 외국 것을 주제로 쓸 때 일정액을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저도 생각해봤는데 굳이 주는 것은 아닐듯 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그 나라에게 승인이나 통보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 아시고 싶다면 인터넷 검색으로 우체국 찾으셔서 질문해 보세요. 저도 돈 내는 건 모르면서 질문내용상 몇마디 드리고자 쓴 것이니까요. 답변은 유기하셔도 됩니다. 원하시는 답변이 아니니 말이지요.
(내용출처: 지식in)
독도우표의 재질은 종이,스티커입니까?
독도우표는 종이, 스티커로 다 인쇄를 해요?
종이입니다.
지난해 190원 능금우표나 하늘메발톱 우표는 스티커형태로 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독도 우표는 스티커형태가 아닌 재질이 종이인 4종 연쇄 우표입니다. 용지는 그라비어 원지이며, 우표크기가 40mm * 30mm이고 천공은 13입니다.
(내용출처: 지식in)
독도 에대한 질문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와 독도를 지키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1. 독도에 관해서는 한일양국간에 아무런 조약이 없었다.
2. 시네마현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기 이전에 일본 어민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3.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체결된 이후인 1952년에 미.일안보합동위원회가 독도를 미공군의 폭격 연습지로 선정한 것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기초 위에서 취해진 조치이다.
위의 것은 독도가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일본측의 주장입니다.
저희쪽에서 내세워야할 반박에는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독도의 역사
512년(지증왕13년) 신라 이사부장군, 우산국 정벌 ( 독도, 우산국의 영토 )
1032년 계속되는 동북여진 해적의 침입으로 빈섬이 되다시피함
1417년(조선 태종) 주민들의 거주로 인한 왜구의 침략을 우려하여 무릉도(울릉도)·우산도(독도) 섬을 비우게 하는 공도정책 실시
1618년 일본 무라까와, 오타니 가문 불법 울릉도 출어,벌목채취시작
1693년(조선 숙종) 안용복, 두차례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 독도가 조선땅임을 일본막부로부터 인정하게 함
1697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 안용복의 활약으로 일본인의 울릉도. 독도 불법 출항을 금지하겠다는 문서를 보내옴
1882년 울릉도에 대한 조사결과, 공도정책 폐기. 당시 울릉도에는 조선인 140명(전라도 82%)가 거주하고 있었음
1900년(대한제국)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울릉도에 건너와 나무를 도벌하자, 강력한 행정집행을 위하여 행정구역 개편. 울릉도를 독립군으로 승격하고, 군청의 관할구역에 석도(독도)를 포함시킴
1905년 1월 러일전쟁 중 러시아 해군을 정찰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독도를 주인없는 섬으로 규정하고 일본 영토로 비밀스럽게 편입 조치함
1905.8.19 일본해군, 러시아 군함을 감시할 목적으로 독도에 망루 설치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부, SCAPIN 677호에서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지역에 리앙쿠르열암(독도) 포함시킴
1948년 6월 미군 독도폭격 양민학살사건. 당시 독도는 미군의 폭격연습장. 12대의 미군비행기가 양민 150명-320명 사상
19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 '인접해양에 관한 주권선언'(평화선)을 발표(1.18)하면서 한국의 영역내에 독도를 포함시킴. 1월 28일 일본정부 다께시마 영유권 주장.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 시작
1952.8.10 일본인. 독도에 상륙. '도근현 은기촌 죽도'라는 푯말 세움. 건립 즉시 제거시킴
1953.4 - 1956.12 울릉군 주민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 활약, 3년 8개월 동안 일본과 전투를 치르며 독도를 지켜냄
1954.9.15 체신부, 독도풍경 우표 발행 : 2환짜리 500만장, 5환짜리 2000만장, 10환짜리 500만장. 일본정부는 54.11.19일 독도 도안 우표가 부착된 한국 우편물을 반송하기로 의결
1956.12.25 독도의용수비대. 경북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수비 업무 인계
1981.10.4 독도1호 주민 최종덕씨 독도호적 이전. 65년부터 독도를 드나들며 전복, 해삼, 미역등을 채취
1982.11.16 독도해조류 번식지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 독도는 괭이갈매기, 슴새, 바다제비 등의 조류가 집단번식
1988.7~8 1차 울릉도~독도 뗏목탐사 성공 (한국외대 독도연구회)
1991.12.27 독도 일반전화 개통. 054-791-1991,1227(독도경비대 직통)
1996.6.27 경북경찰청, 울릉경비대 신설. 울릉경비대 산하의 독도경비대
1997.8 울릉도 약수공원에 독도박물관(관장 이종학) 개관
1997.11.24 동도에 접안시설 준공. 접안능력 500톤급. 총사업비 172억 4천3백만원. 면적 569평
1997.12 어업인숙소 1동을 서도에 준공. 35.97평에 2층건물로 수용인원 25명. 총사업비 4억8천만원
1997.12.13 법률 제5447호로 '독도등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존에 관한 특별법' 제정
1998.1 일본, 65년 한일어업협정 일방파기
1998.9 한국 일본 양국 외무부 장관, 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하는 '신한일어업협정'에 서명
1998.11 일본자위대, '동해의 한섬'을 가장한 적 점령섬 양륙훈련 실시
1999.11 일본인 독도로 호적이전 사실 뒤늦게 확인. 1997년 12월 현재 6가구 7명 확인
2000.1 새천년준비위원회, 울릉도. 독도가 아닌 포항 간절곶에서 해맞이
2000.4 울릉군 의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42~76번지에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번지'로 행정구역 변경
2000.8 제 2차 울릉도 독도 뗏목탐사 성공(독도수호대)
민간인이 실제거주한 내용입니다.
독도의 민간인 실제 거주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63번지(서도를 지칭)
- 1981.10.14. 울릉도 주민 최종덕(작고)옹 최초 독도주민으로 등록.
- 1986. 7. 8. 울릉도 주민 조준기씨 등 가족 3명 전입
- 1991.11.17. 울릉도 주민 김성도, 김신열 부부 전입
- 이후 근래들어 독도호적이전 국민 계속 증가(100명 이상)
- 1997.11.21 새 어민숙소(수용인원 25명) 준공.
삼국시대인 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어 그 일부가 된 때부터 우산국의 일분인 독도가 민족 고유영토로서 우리의 역사와 함께 숨을 쉬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에서 명확히 밝혀준다. 즉, 아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가야를 정복한 후 이어서 13년에 우산국을 병합하려고 출전해서 우산국을 신라에 병합하였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고 일본이 이의를 거는 부분은 우산국이 울릉도만을 지칭하는 것이지 독도는 제외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명백한 우리의 자료가 있다.
<만기요람> 군정편(1808년 편찬)에서는 '여지지(與地志)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1808년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죽도'라고, 독도를 '송도'라고 호칭하였다)'라 하였다. 뿐만아니라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맑은날이면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해상로를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어업을 최대의 생계수단으로 여겼을 고대시대에 울릉도인들이 육안으로 확인되는 우산도, 즉 독도를 우산국의 부속도서로서 여기고 있었음은 자명해지는 것이다. 바로 아래의 사진은 울릉도 산중턱에서 독도가 보이는 사진이다. 이것은 그 사실을 명백히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왕조의 울릉도-독도 영유와 통치
태조 13년(930) 9월, 울릉도 사람들은 백길과 토두를 사절로 보내 태조를 알현케 하고 이에 태조가 이들에게 관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려왕조의 옛 우산국에 대한 엄연한 통치권 행사로 볼 수 있다.
또, 1018년에 울릉도가 동북여진의 침략으로 황폐해지자 이에 대한 적극적 통치대책을 강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여진족의 횡포로 우산국의 많은 사람들은 섬을 떠나 육지에 정착, 1032년 무렵에는 거의 빈섬이 되었다.
●조선왕조의 울릉도-독도 영유와 통치
이 시대의 울릉도, 독도정책은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대응이라는 것은 적극적이기 보다는 임시적으로 그것을 피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로써 채택된 정책이 이른바 공도정책이다. 즉, 울릉도와 독도의 섬을 비워 둠으로써 섬사람들의 외세로부터의 침략을 막고자 한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들어 일본은 이 것은 섬을 방기한 정책임으로 마땅히 독도를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러번 설명했듯이 비록 소극적이긴 했지만 이 역시 한 국가의 영토에 대한 관리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산무릉등처안무사'(한국의 고대 역사적 자료에 대하여 일본인이 반박하는 것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은 고대사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울릉도이지, 독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라는 것을 이 명칭으로도 밝힐 수가 있다. 그것은 '우산 무릉 등처 '라는 말 속에 있다. 는 우산도와 무릉도 두 가지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를 울릉도와 독도에 보내여 꾸준한 관리를 해왔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한국사이에 민감한 독도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기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용복사건'. 울릉도뿐 아니라 독도를 마치 자신들의 영토인양 탈취해온 일본인들에 대해 안용복이 이를 저지하려고 일본에 건너가 직접 담판을 내걸은 기록이다. 두 번의 도일활동을 통하여 안용복은 당당히 일본에 대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돌아왔다.
독도 문제를 우리나라가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는이유?
지금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확실시된 것은 아닙니다. 확실시된 사람도 몇 사람 있겠지만 좀 머리 딸린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정부랑 무슨 협상을 맺어서 공동으로 관리한다죠? 독도가 확실히 우리나라 땅이라면 도대체 확실하게 이 문제를 왜 매듭짓지 못합니까. 참으로 희귀한 일이군요...
저는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참 이거는 말도 안됩니다.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기록이 있고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멋대로 우기고 난리 브루스를 떠는지 512년부터 우리나라 땅이였는데, 그리고 이렇게 멍하니 그 일을 덮어두고 있다가 나중에 그러다 일본한테 뺏기지 그러지 말라는 보장 있습니까? 독도에는 미래의 대체자원 1순위인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고 뺏길 참입니까? 일본은 세계3위 하이드레이트 국가입니다. 30년전부터 알았다고 하더군요. 독도에 하이드레이트가 있는지를 우리나라는 그걸 안지 이제 4년입니다. 2000년도에 알았다죠. 하지만 확실한 탐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맨 처음 말했듯이 무슨 공동으로관리한다고... 일본허락맡으라는 군요. 어이가 없어서 우리땅 우리가 조사하는데 허락은 개뿔 웃겨죽겠습니다. 무슨 코메디합니까. 우리나라 정부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밥상을 차려줬으면 좀 먹으셈 구경만 하지 말고.. 그러니까 맨날 뒤쳐지지. 독도 문제를 우리나라가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는이유? 알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일본역사때문에 그런 답변 통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더 광대하기 때문에 밀고나가면 일본도 할말 없고 우리나라가 할 말 더 많습니다. 정말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뉴스 보니까 우리나라가 독도 우표 발행한다니까 일본도한다네.. ㅋㅋ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
앞의 분들이 워낙 자세하게 설명을 하셔서 그런 설명은 굳이 제가 할 필요가 없다고 보네요.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나라가 국력이 약해서! 라고 할수 있겠네요. 이미 일본의 경우 많은 나라에 알려져 있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 현재 국제재판소였던가 그런데에다가 독도 문제에 대해 심의를 부탁했다고 하네요. 아무리 역사서에서 독도가 우리나라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제 여론이 일본에 기운이상.. 우리 땅이라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는 힘들어요.
사실상 공동명의로 되어있는것도 위태롭다고 할수 있죠.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중국을 봐도 알수 있죠.
중국 역사의 경우 사실상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으며 유물도 많지 않은 은나라까지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지금은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는 헛소리마저 듣고 살아야하는...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독도 문제는 진짜 누구의 것인지 진위를 가리는 표면적 문제가 아닌 어느나라의 국력이 센지를 비교하는게 됩니다. 사실상 우리나라가 아직은 일본에 겜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멀쩡히 우리땅인데도.
증거자료도 너무나 많고 사료도 많음에도.
너무나 억울하지만 아직은 참아야겠어요
서명운동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거..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야한다는거..
쓸데없이 비자금이니 대선자금이니 이런데 신경 쓸 시간에 국회의원들이 정말 제대로된 국정을 해야 한다는거..
좀 빨리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독도에도 편지가 갈까요?
독도에 우편번호가 생긴건 들었습니다만... 보내면 .. 도착할까요?
그럼 편지에 우표는 어떤 걸 붙여야 할까요?
가여.
독도 수비대에게 위문편지라도 보내시게요?
우표는 편지한통은 전국 어디나 1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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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와 취미 원문보기 글쓴이: 장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