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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고난 2:13~16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복음 전도자의 영광과 기쁨 2:17~20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본문해설
[오늘의 말씀 요약]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고, 그 말씀은 실제 성도들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잠시 떠나 있으나 바울의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바울에게 자랑의 면류관, 영광과 기쁨은 곧 성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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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고난 2:13~16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았기에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었습니다(1:6~7). 그런데 말씀(복음)을 받은 이들의 삶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복음에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 고난당하듯,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신앙 때문에 동족에게 고난당합니다(14절). 그럼에도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승리한 이유는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많은 고난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는 자신의 수고나 노력이 아닌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한 일이라고 고백합니다(빌 4:13).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지만, 결국 복음(말씀) 때문에 고난을 이깁니다.
● 더 깊은 묵상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았나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머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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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자의 영광과 기쁨 2:17~20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그곳을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포기하고 자신이 때로는 유모같이, 때로는 아버지같이 돌보던 성도들을 떠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며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고백합니다. 다시 방문하기 위해 몇 차례 시도했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다시 보기 원하는 이유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그들이 사명의 결실인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되기 때문입니다(19절). 말씀으로 온전히 세워진 성도는 다시 오실 주님 앞에서 복음 전도자의 영광과 기쁨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후일 주님 앞에서 나의 기쁨이자 자랑의 면류관이 될 대상은 누구인가요?
한절묵상: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말씀이 역사하는 법: 성경은 생명의 능력이지만 이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역사한다'라는 말은 '지금도 변함없이 일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모든 것을 찔러 쪼개는 말씀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이 아무 능력 없는 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말씀은 어떤 힘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게 하신다면 이는 우리에게 크나큰 특권이 아닐 수 없다. - 찰스 스펄전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들었던 제 무지함, 그리고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고 삶으로 순종하여, 어떤 고난도 이기는 힘을 얻게 하소서. 섬김의 기쁨과 열정을 제게 부어 주소서.
오늘의 찬송(새 449 예수 따라가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했을 때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도록 하자
②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면서, 그 말씀의 삶으로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③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에만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분께서 주시는 소망을 품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서 그분이 주시는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자
데살로니가전서 2:13~20 나의 영광, 나의 기쁨은 무엇인가?
바울은 앞장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는데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다고 했다.(13) .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태도를 본받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자.
주일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도 동일한 태도를 갖자.
라디오나 TV를 통하여 들을때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갖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검 보다 예리하여
내 영혼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시는 능력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씨를 뿌리는 자도 마찬가지이지만 내 마음이 옥토가 되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도록 하자. 아멘.
말씀이 믿는자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13)
나는 음식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취하는가?
욥은 그랬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여겼구나.
음식보다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자.
나는 돈 보다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는가?
시편 기자는 그랬다.
사람이 재물이 많은 것을 좋아하듯 나는 주의 교훈을 따르기를 좋아 합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수천 개의 은, 금 보다 귀합니다.(시199:72)
내가 주의 계명을 금 보다, 순금 보다 더 사랑합니다.(시119:1270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자.
주의 말씀이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게 하자.
그런데 문제는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함으로 만사형통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14)
예루살렘 교회가 그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은 것 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 또한 동일한 것을 받았다고 하신다.(14)
나도 동일한 것을 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나의 태도를 바꾸어 주옵소서.
➲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역자로 살아가야 합니다(13~16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할 제목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13절).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 간에 공통점은 자기 동족에게 똑같은 핍박을 받고 있다(14절)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15절). 유대인들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16절). 즉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된 자들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영원한 파멸뿐입니다. 유대인 박해자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더욱더 반대함으로써 죄의 분량만을 채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은 생명을 주며, 그 생명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현재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가운데 있다면 그 고난이 나에게 시험이 아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요, 생명이 됩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 내 마음을 빼앗기거나 굴복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당당하게 그리고 힘 있게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의 그릇을 죄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채워 갈 수 있도록 더욱더 철저하게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그 말씀이 내 인생에 능력으로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서로서로 희생하고 나눌 때 기쁨이 찾아옵니다(17~20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다시금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피력되었습니다(17절). 이는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를 방문해서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방해로 인하여 바울의 그 소망은 현실화 될 수 없었습니다(18절). ‘방해(가로막다)’는 도로에 흠을 파서 말이나 수레의 통행을 금지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의 방해로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바울에게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바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19절). 진실로 그들은 바울과 그의 일행들에게 영광이요 기쁨이라 고백(20절)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견고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보이지 않는 바울의 기도와 응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희생적인 사랑으로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나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희생적이고 상호 헌신적인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사랑과 나눔이 있을 때, 교회와 우리 자신을 향한 사탄의 끈질긴 방해 속에서도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피상적이거나 맹목적인 교제가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막힘이 없는 영적인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은혜를 누리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진심으로 서로서로 희생하고 나눔이 실천 될 때에, 진정한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오늘도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섬김과 배려 그리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말씀의 능력이 나의 삶 가운데 나타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오늘 말씀을 통해 수없이 성경을 읽고 그 설명을 듣고도 그저 다른 귀로 흘려버리고, 주일 설교 조차 교회 주차장에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흔했던지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복음을 듣고 이제 갓 어린 신자가 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 들은 것들을 또 하나의 지혜 있는 사람의 말 중 하나로 받지 않았고, 그가 삶을 통해 직접 경험했던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 그 역사하심의 현장에 초대되었습니다.
같은 내용도 대표자가 직접 공식적으로 하는 말과 소속되지 않은 자들의 소문들에 의한 것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랬듯, 그들이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행함으로 그들의 전통사회 가운데 피할 수 없었던 고난과 핍박이 수반되었지만, 그들은 소망을 품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고 사랑으로 행하여 거룩한 교회의 본을 이어갔다고 바울이 직접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그곳을 다시 방문하여 그들을 권면하고 격려하고자 했을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사탄의 방해로 말미암아 그 길이 막혀, 눈물의 편지로 그 뜻을 전하면서, 그곳에 남겨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잠시의 발자취를 의미 있게 만든 소망과 기쁨이요,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허락한 면류관과 같다는 칭송을 보냅니다.
만약 믿음의 자녀로 말할 수 없는 헌신으로 믿음을 지키신 목회자나 장로님들께 이런 기쁨과 감사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면, 심령 가운데 넘치는 만족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능력을 체험하며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거룩한 군사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하나님의 말씀(13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도바울일행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태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바른 영적자세입니다.
성도가 믿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하여 가져야 하는 첫번째 영적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바른 영적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좋은 영적인 태도를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 있는가?
2.복음사역의 대적자(14-16절)
복음사역을 대적하는 자는 자신은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노하심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혹시 복음으로 인하여 받는 핍박을 받더라도 억울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힘이 없이 핍박을 받지만 그들의 그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끝까지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환란과 핍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항상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복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경험하며 사는가?
3.바울의 소망
바울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한 자들에게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선한 소식들을 들을 때에 자식을 보고싶어 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나아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을 참으로 사랑하며 그들과의 만남을 늘 소망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내가 복음을 전한 자들에게 끝까지 사랑의 마음으로 돌아보고 위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나에게 복음을 전한 자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영혼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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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의 대적으로 인한 고난이 심했습니다(행17:1~ 10) "유대인은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살전2:15~16) 그러나 사실 유대인은 표면상 보이는 대적일 뿐, 진짜 대적은 그들 배후에서 미혹하는 사탄입니다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2:17~18) 그렇다면 사탄은 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하게 막은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21일 동안 지체시켰던 것입니다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단10:12~14)
그렇다면 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은 사탄에게 항상 패배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검으로 사탄에게 어떤 패배를 안겨주었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1)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와 진실되게 그 말씀을 받는 자를 항상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살전2:13)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말씀을 무장하여 사탄을 대적하여 승리하기 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그리하면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서 역사하여 우리에게 승리와 평안을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고난이 있을지라도(2:13-20)
복음의 열매는 십자가라는 고난 속에서 영글어 갑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동족에게 핍박을 당합니다. 이는 유대에 있는 교회가 동족 유대인에게 핍박받은 것과 같습니다.
복음이 진리임을 아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비난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의 소망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게 되는 것이 우리가 자랑할 면류관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데살로니가 성도는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 적용 질문: 고난이 따를지라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과,
교회와 지체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열정을 부어 주소서.
오늘도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하는 말씀에 붙들려,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사랑으로 수고하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도 쉬이 넘어지고
늘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참 좋으신
아버지 이심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맡겨주신 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아비의 심령으로 낳고, 그 놀라운 은혜와 구원을
이 땅 가운데 그 호흡이 다할 때까지 선포하는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능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연약한 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