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2일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지난해에 비해 5~10점 올랐다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올랐다는 평균 점수만큼 점수가 오르지 않은 학생들은 “우리는 30~40점씩 오른 재수생들의 들러리”라고 푸념했다.
속칭 ‘장판’이라고 하는 유명 입시학원 성적 배치표를 펴 놓고 둘러모여 지원 가능한 대학을 꼽아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성적표를 받자마자 교실을 나섰다.
서울 강남의 휘문고 박모군은 “중위권에 워낙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어 일단 담임선생님께서 각종 통계자료를 뽑아 ‘교통정리’를 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입시에서는 ‘성적’보다 ‘눈치’가 당락의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중위권이 두터워진 것으로 나타나자 일선 교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도토리 키재기’식 입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수도권 중위권 대학을 둘러싼 ‘대혼전’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인창고 허상회(41) 교사는 “고3 담임으로서 관심사였던 수도권 내 중위권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중위권 학생들은 1~2점 차를 두고 박빙의 승부를 벌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1점’이 아쉽게 된 상황이 되자 복수정답이 인정된 데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학생도 있었다. 이화외고 이모양은 “복수정답이 인정된 언어영역 17번 문제에서 나는 ‘정답’인 3번을 썼고, 다른 친구들은 5번을 많이 썼다”며 “난데없이 5번까지 정답으로 인정해줘 안그래도 속상한데 전체적으로 성적이 올랐다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한 고3 담임교사는 “어떤 학생은 성적표를 보지도 않고 가방 속에 넣기도 했다”며 “요즘 학생들은 ‘내신 부풀리기’ 때문에 스스로를 과대 평가해 수능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로 재수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점수가 많이 오른 재수생들은 비교적 느긋한 표정이었다. 삼수 끝에 점수를 60점 올렸다는 연모(21)씨는 “지난해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수도권 대학도 이제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며 “입시전략만 잘 짜면 서울시내 대학 ‘입성’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내 대형 서점의 대학입시수험자료집 코너는 ‘오리무중(五里霧中)’ 상태가 돼버린 입시전략을 짜기 위해 몰려온 고3, 재수생들로 붐볐다. 서울 강남 코엑스 지하에 있는 대형 서점에서 만난 경기고 한모군은 “지난 1년간 헛고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군은 “평소 상위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5점이 떨어지고 중위권인 다른 친구들은 점수가 올라 변별력이 없어져버렸다”며 “내가 받은 점수를 보면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해 아리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