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 유계자
철퍽철퍽
한나절 수차를 밟는 염부의 걸음이 방금 걷어 올린 미역처럼 후줄근하다
소금창고 가는 길, 짊어진 소금가마가 기우뚱
바닷물 저장고에 떨어져 버렸다
염천에 점심이나 먹고 건져야겠다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소금을 찾으러 갔더니
빈 가마만 동동
바닷물이 낳은 소금
서둘러 왔던 곳으로 돌아가 버리고
선술집에서 만난 소금꽃 같던 여자
날 못 믿느냐며
함초같이 붉은 입술로 평생 수차의 지팡이가 되어주겠다던 그 여자
소금처럼 짜디짠 눈물까지 저당 잡히고는 걸음을 지워버렸다
수차를 굴리다가
수차례 사금파리 같은 이름 다 잊었노라
염판에 엎드려 저녁노을에게 큰소리치다가
철벅철벅
세상은 잘도 돌아가는데
온종일 돌아도 염천은 염전
맨발의 염부는 딱 한 번 염천을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고
세상에서 건진 것은 어느새 세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폐염閉鹽을 지날 때마다 철퍽철퍽 쏟아지던 물소리를 받아내곤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반이성적인 동물이며 판단력의 어릿광대(백치)일는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이윽고 죽고, 그 다음에, 또다른 생명체들이 태어난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어떤 대답도 마련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탐욕을 낳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초고령화 사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초고령화 사회를 탄생시킨 것은 인간뿐이며,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유령들이 전체 인류의 복지비용을 다 소진시킨다. 이 무슨 자연의 이치에 대한 반역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생태환경을 파괴시키는 만행이란 말인가? 인간은 종의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며, 사는 법과 죽는 법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유계자 시인의 [물소리]에 의하면, 바다로부터 왔다가 바다로 돌아가는 염부에 지나지 않는다.“철퍽철퍽/ 한나절 수차를 밟는 염부의 걸음이 방금 걷어 올린 미역처럼 후줄근”하고,“소금창고 가는 길, 짊어진 소금가마가 기우뚱/ 바닷물 저장고에 떨어져 버렸다/ 염천에 점심이나 먹고 건져야겠다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소금을 찾으러 갔더니/ 빈 가마만 동동// 바닷물이 낳은 소금/ 서둘러 왔던 곳으로 돌아가”버린다. 소금은 최고급의 조미료이자 방부제이며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무기물질이지만, 그러나 이 소금은 하나의 환영이며,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도 한나절 수차를 돌리는 염부에 지나지 않으며,“선술집에서 만난 소금꽃 같던 여자/ 날 못 믿느냐며/ 함초같이 붉은 입술로 평생 수차의 지팡이가 되어주겠다던 그 여자”처럼, 처자식과 부모형제들과 그의 이웃들에게 온갖 공약을 남발하고“소금처럼 짜디짠 눈물”만 남기고 떠나가는 하루살이 나그네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수차를 굴리다가/ 수차례 사금파리 같은 이름 다 잊었노라/ 염판에 엎드려 저녁노을에게 큰소리치다가// 철벅철벅/ 세상은 잘도 돌아”가지만, “온종일 돌아도 염천은 염전”일 뿐이었던 것이다.“맨발의 염부는 딱 한 번 염천을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고/ 세상에서 건진 것은 어느새 세상으로 돌아간다.”
젊음은 아름답고, 좀비같은 유령들의 삶은 추하다. 사는 의미와 살 권리를 다 잃어버리고 돈과 약과 타인들의 병간호에 의지하며 사는 것보다 더 더럽고 추한 것은 없다. 소와 호랑이와 늑대와 개가, 나무와 풀이, 고래가, 상어가, 사는 의미와 살 권리를 다 잃어버리고 그 어디 돈과 약과 타자의 병간호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인간의 생명공학은 반자연과학이며, 자연의 이치와 생명질서를 교란시키는 반이성적인 테러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염부가 염천과 싸우며 소금꽃을 피우고 돌아갔듯이, 우리 인간들 역시도 염천(삶)과 싸우며 소금꽃을 피우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금꽃, 바닷물에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소금꽃----.
소금꽃으로 피어났다가 소금꽃으로 사라지는 인생----.
물소리가 물소리로 돌린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그의 인식과 성찰의 결과라면 유계자 시인의 [물소리] 역시도 그의 인식과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유계자 시인의 [물소리]는 “철퍽철퍽/ 한나절 수차를 밟는 염부의 걸음이 방금 걷어 올린 미역처럼 후줄근하다”, “소금창고 가는 길, 짊어진 소금가마가 기우뚱/ 바닷물 저장고에 떨어져 버렸다/ 염천에 점심이나 먹고 건져야겠다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소금을 찾으러 갔더니/ 빈 가마만 동동”,“선술집에서 만난 소금꽃 같던 여자/ 날 못 믿느냐며/ 함초같이 붉은 입술로 평생 수차의 지팡이가 되어주겠다던 그 여자/ 소금처럼 짜디짠 눈물까지 저당 잡히고는 걸음을 지워버렸다”,“수차를 굴리다가/ 수차례 사금파리 같은 이름 다 잊었노라/ 염판에 엎드려 저녁노을에게 큰소리치다가// 철벅철벅/ 세상은 잘도 돌아가는데/ 온종일 돌아도 염천은 염전”,“맨발의 염부는 딱 한 번 염천을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고/ 세상에서 건진 것은 어느새 세상으로 돌아간다”,“나는 폐염閉鹽을 지날 때마다 철퍽철퍽 쏟아지던 물소리를 받아내곤 한다”라는 시구처럼, 우리 말과 우리 말가락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시이며, 이 서사성 짙은 극적인 이야기로 어느 염부의 소금꽃 같은 생애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능력과 그 쓰임새에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다만 문자가 아닌 생명이며, 언어와 생명이 하나가 될 때, 그 아름다움이 탄생하게 된다. 시인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그 언어의 삶을 산다. 언어로 밥 먹고 언어로 싸우며, 언어의 소금꽃을 피우며, 언어로 죽어간다. [물소리]의 아름다움은 유계자 시인의 천재성의 보증수표이며, 그의 인식과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소금꽃으로 피었다가 소금꽃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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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물소리/ 유계자
철퍽철퍽
한나절 수차를 밟는 염부의 걸음이 방금 걷어 올린 미역처럼 후줄근하다
(중략)
철벅철벅
세상은 잘도 돌아가는데
온종일 돌아도 염천은 염전
맨발의 염부는 딱 한 번 염천을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고
세상에서 건진 것은 어느새 세상으로 돌아간다
*잘 짜여진 좋은 ㅅ시
나는 폐염閉鹽을 지날 때마다 철퍽철퍽 쏟아지던 물소리를 받아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