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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9.4.22.) 말씀/ 렘,32:40-41, 마태복음 22:1-14
하나님의 정성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지난 주 압해도로 해서 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를 다녀왔습니다. 그 때 지홍 집사님이 주신 마지막 1% 정성이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정성’ ‘감동’ 이란 주제는 제가 평상시 생각하고 중시하는 것이라 단어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의 예를 들어보며 다시 그 중요성을 생각하고, 또 정성이란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서 그날 저녁 해변에서 두어 시간 집중 카스토리를 글을 써서 올리고 나왔습니다. 사실 말이던, 글 이던, 음식 이던, 섬기는 일이던 그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정성, 영업하는 것도 정성, 선물도 정성입니다. 정성이 있는 것들만 남고 나머지는 다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제 카스토리 글을 읽고 “목사님 지금 제가 심고 있는 시간은 미래에 무엇으로 피어날까요?”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성을 심은 것은 정성으로 남고 대충으로 한 것은 대충으로 남을 겁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한 정성이 아니라 삶의 일상 철학이 되면 좋을 듯 합니다” 우리는 이런 글이나 책이 아니더라도 옛날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란’말도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옛 날 어머니들이 지성 수 떠놓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아 봤습니다. 지성이면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성은 방법적이나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성이 표현되려면 반드시 시간적 노력이 필요하고, 희생적 수고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에 불과 한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손님 대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날이 뜨거울 때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나그네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임에도 달려나가 몸을 굽혀 영접하고, 먼 길에 발을 생각해서 발 씻을 물을 떠다주고, 사라에게 지시하여 고운 가루로 떡을 굽고, 가축 떼에 가서 직접 기름지고 송아지를 잡아 하인들에게 요리하도록 합니다. 나그네 손님들이 미안 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이야기를 빗대서 어떤 이는 부지중에 손 대접하다 천사를 대접했다고 하였습니다. 실리를 따진다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3절을 보면 그가 손 대접하는 것을 오히려 큰 은혜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이 이런 정성을 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그네 셋 중에 한 분은 하나님 이셨는데 하나님은 떠나기 전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년 이맘 때에 자식을 주시겠다고 축복을 하십니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18:10) 그런데 롯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롯의 경우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아브라함보다도 더 풍요로운 소돔 고모라 땅에 살았지만 아주 인색하였습니다. 그도 손님을 청했지만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가 식탁을 베풀었는데 맛 없고 딱딱한 무교병 떡이 다였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인 냄새를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런 정성이 없는 손 대접은 금방 느끼고 머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기도로 인해서 간신히 소돔고모라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피하여 도망하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동굴에서 딸들과 불륜관계로 암몬과 모압 조상의 아식을 낳았습니다. 정성이 있는가 없는가는 미래의 열매로 들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1% 정성이란 책을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삶속에 보면 구별되는 것이 스펙이 아니라 삶의 태도 즉 마음가짐 이라 하였습니다. 청소 하나를 해도 마치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듯이 기쁨과 보람된 마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빗질 하는데도 걸레를 빠는데도 정성이 들어갑니다. 손님 고객을 대해도 내 가족처럼 정성을 다합니다. 1906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당시 매장 공간만 17만 8,500만 제곱미터로 세계 최대 백화점이 문을 열었는데 미국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직접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백화점을 통해 25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고, 우리나라에 ymc도 지어 주었습니다. 1900년 초에 이미 직원들을 위한 2주 유급 휴가를 도입하고, 옥상에 스포츠센터, 대학 도서관 의료보험, 복지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의 첫 수도 필라델피아 시청 입구에는 가장 위대한 시민의 모델로 그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백화점 50주년이 되는 날 세계 최대의 백화점을 개접하여 1만 3천명이 넘는 직원들에게서 감격적이 선물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땅 문서였습니다. 그가 바로 백화점의 왕으로 불리우 는 워너 메이커 라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가 최고의 모델 시민 상을 받을 수 있고, 직원들에게 애정 어린 선물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의 가족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업가는 봉급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는 안전한 사업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직원을 가족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들과 모든 혜택을 나눌 때 가능해집니다." 가족처럼, 그리고 혜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오너의 정성이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는 돈을 위한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모든 직원을 가족처럼 정성것 대하는 가부장적 사업가였던 것입니다. 그런 정성을 모든 사람도 알고 그렇게 그를 정성것 대하며 존경 하였던 것입니다. 응암동 여동생은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식당을 하지만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섬깁니다. 미원 안 넣기, 국산 농협 고기 쓰기, 손님 건강을 생각하여 기름을 철저히 빼기, 김치는 직접 담그고 가정식 백반도 싸고 맛있게 매일 메뉴를 바꿉니다. 그리고 숭늉을 언제나 준비합니다. 그리고 과일이나 무엇을 보내면 특별히 서비스로 맛보도록 합니다. 손님들을 가족처럼 대하니 손님들도 그 마음을 다 압니다. 그래서 단 골이 생기고 전국에서 찾아옵니다. 이번에도 TV방송사에서 나왔는데 벌써 네 번째 출연 입니다. 그 유명한 개그프로 '맛있는 녀석들'도 와서 촬영을 끝냈습니다. 5월에 방영된다고 합니다. 이곳이 아니어도 겉으로 별것 없는데 특별한 일, 특별한 음식으로 사람들을 끄는 곳을 보면 공통점이 정성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화분을 키워보면 알지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키우지 못 합니다. 겨울에 얼어 죽거나 여름에 말라죽습니다. 사진도 정성것 찍지 않으면 백 장 천 장 찍어도 건질게 없습니다. 음식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맛이 안 납니다. 공장에서 기계정밀 공작도 정성을 다 하지 않으면 섬세한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게장 맛있다고 하는데...ㅋ 얼마나 정성이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시장에 가서 꽃게를 좋은 놈으로 골라 사는 것으로부터 소스 준비, 배율, 숙성 등 설령 그대로 했더라도 맛이 잘 안 납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게 되는 노하우라는 것도 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도 그렇습니다. 학생들도 교사가 얼마나 자신들을 얼마나 생각해주는가 다 압니다. 인내와 장기적인 관심, 사랑 돌봄이 없이 올바른 교육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영업에서 고객들도 두말 할 필요 없다. 어떤 기업 회장은 어떤 영업사원과 큰 거래 금액을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 어떤 이유로 그렇게 큰 금액을 이 영업사원하고 지속적으로 계약하십니까? ”그 친구요? 그 친구는 영업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친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제 멘토에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진실한 친구는 본적이 없어요. 가족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그 친구에게는 마음 놓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와는 인생을 함께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고객을 섬겼길레 나중에는 영업사원이 회장이 멘토가 되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상이 되고 큰 거래 금액을 지속적으로 거래하게 되었겠습니까? 한 고객을 왕처럼 정성것 섬긴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비밀도 철저히 지키고... 교회 양들도 똑같습니다. 저절로 크지 않습니다. 건물이 화려하고 좋다고 크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0 보세요. 목자가 앞서 가면 그 양들이 그 음성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위해서 평상시 정성을 다하는 목자를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도둑들은 금방 낌새로 알고 경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는 좀 다르더라고요. 세퍼트라고 하는 개도 도둑이 고기 던져주니까 덥석 받아먹고 깽 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중국어 한 마디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겠습니까? 마음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영어도 못하면서 Ujjuall 형제 한 사람을 공부하는데 그냥 성경만 가지고 공부 못합니다. 실력도 없는데 계속 하면 뽀록날 것 아닙니까? 한 사람 잘 섬기고자 마음먹고 시작한 영어공부... 1년반에 영어 NIV성경을 두 번 읽고, 한번, 히어링을 하고, 영어 회화교제 8번째 읽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족해도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가는 겁니다. 크고 작던, 큰 자이건 작은 자 이건 정성이 란 동등한 것이며 말하지 않아도 깊이 통하는 세계 공통 언어이며 하늘도 감동시키는 마음입니다.
저는 정성이란 단어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묵상해보았습니다. 그 냥 사랑하셨다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다하셨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준비하시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시면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정성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시고, 야곱의 열두 지파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세울 믿음의 사람들을 불러 약속하시고 예언하시고, 또 부르신 자들을 연단하시고, 기다리시고,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시다가 마지막으로는 독생자까지 주시면서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시간만으로도 기본 몇 천년입니다.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청한 자들을 부르는 어떤 임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도 하나님의 마음일 들어 있습니다.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여기서 임금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하였습니다. 그냥 초청한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하여 모든 것을 갖추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핑게 저 핑계 대고 오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그래도 한번에 포기하지 않고 어찌하던지 찬치에 초청해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청하여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격은 없지만 혼인 예복을 입기만 하면 누구나 잔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그냥 길거리에서 있다가 빈손으로 참석해도 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처음 청함 받은 사람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결국 길거리 사방에 있는 자들이 참석하게 된 자들은 믿음 하나로 구원받게 된 ksk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턱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차별을 두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조건을 보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독생자 아들이란 최고의 선물을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우리 중국 학생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주님이 유학생의 길을 열어주시고 한국에까지 오게 하시고, 목포대학에 와서, 푸른 초장 교회에 와서 목사님과 성경공부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성경 공부도 무료로 해주시고, 성경책도 무료로, 열심히 하라고 장학금도 주시고, 그냥 오기만 하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그리고 김재중 집사님 중영정공에서는 많은 분들도 이리에 참여하며 수고하고 땀 흘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성정을 생각하면 저도 매주 5-6팀 공부를 하며 정성으로 섬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주님은 그렇게 구원의 축복 잔치를 여시고 9년 동안 지속 되이 이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정성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32장 4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정성된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런 정성만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이 없는 것은 형식입니다. 앞에 카스토리에 어떤 형제 질문에 답한 것처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것을 정성을 다해 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가방하나 몇 백만 원짜리 명품에 열광하는지 아십니까? 사치의 문제도 있지만 명품은 한 올 한 올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명품에는 장인의 정신이 깃들여 있습니다. 재료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장인의 손에서 만져져서 나오면 수백 수천 가치로 부활하여 태어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산다는 것입니다. 맛 집의 음식은 땅 끝까지 찾아가서 먹는 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알겠지 않습니까? 내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을 소망을 주고 힘을 주고 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 이십니다. 정성된 마음을 갖고 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명품입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면 서로에게 명품이 됩니다. 하나님의 정성스런 사랑과 인내와 섬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말이나 일이나 사람을 대하거나 정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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