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은 삼국시대부터 공산(公山).
중악(中岳).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역의 명산(名山)이다.
'중악'이나 '공산'의 명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등의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칭하는 것이고, '중악'이라는 것은 신라 오악(五岳)의
하나로 불리던 명칭이었다
삼국사기」권32. <제사지(祭祀志)>에 기록된 삼산(三山)과 오악(五岳)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는 산악을 신격화하여 호국신군으로 받드는
산악숭배사상으로서 삼산 오악을 두었는데,
이를 대사와 중사로 표현하여 국가 최상의 제전으로 삼았다.
곧 신라의 대사삼산(大祀三山)과 중사오악(中祀五岳)은 국가의 안녕
을 기원하는 동시에 확장되는 신라세력을 상징하는 신라 최고의
호국성신(護國聖神)이었던 것이다.
신라 오악이라는 것은 동쪽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그리고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한다. 이는 곧 팔공산이 통일신라의 중심지적 위치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공산은 신라 호국성신인 오악의
하나로서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되어
온 영산(靈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령스러운 땅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자연히 신라불교의
성지로서 자리매김 되었으며,신라 하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원찰지(圓刹地)로서 원찰 조성과 원탑(願塔)조성 등
융성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이 흐름은 고려시대에서도 계속되어 고려의
초조대장경(初彫大裝經)이 부인사(符仁寺)에 봉안되고, 유가종(瑜伽宗)의
거봉인 홍진국사 혜영(弘眞國師 惠永). 자정국사 자안(慈靜國師 子安)은
동화사(桐華寺) 주지로서 전국의 불교를 관장하는 오교도승통
(五敎都僧統)이 되어 이 땅의 불교를 호령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은해사(銀海寺)가 인종태실수보사찰
(仁宗胎室守譜寺刹)로, 파계사(把溪寺)가 영조(英祖)의 장수를 비는
원찰로서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는 등 팔공산의 법등은 계속 밝혀져 왔다.
이같은 전통으로 이곳에는 현재도 수십개소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팔공산의 불국(佛國)은 영산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방
세력의 거점지였기 때문에 신라. 고려. 조선 등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왕실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각 왕조의
중심적 불교문화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지방 호족적이면서도 중앙왕실적 불국으로서의 팔공산의
불교사(佛敎史)는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 동화사 .은해사 등
도처에 남겨진 불적과 현존하는 사찰들에서 그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맥을 이어온 불교의 역사와 함께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 이같은 불적들을 보노라면,
마치 이 곳에 불교의 모든 사상 형태들이 포함된 듯
이 보인다. 아미타신앙, 미륵신앙, 밀교신앙 등이 시대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었으며, 그러한 사상에 따른 불교예술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래서 시간성을 배제하고 본다면 팔공산은 모든 불교신앙이
집약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팔공산국립공원제공
팔공산 가을빛
우리가 가는 길은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이렇듯 염원들이 간절한 돌탑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온통 단풍들의
색깔로 채색되어 있는 길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염불암의 마애불을 찾아 가는 길은 이렇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래 보지만 입구의 표지석을 보니
염불암에 다 온것 같다
염불암은 팔공산 동화사의 암자로 커다란 자연 암반 두면에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염불암이란 법당 뒤에 있는 큰바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이곳에 암자를 지어 불렀던데서 유래 한 것이다.
동화사 사적명비(同華寺 寺蹟碑銘)에는 신라말 928년(경순왕 2) 영조선사
(靈照禪師)가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사찰사료
(朝鮮寺刹史料)에는 만력(萬曆) 40년 (1612)"에 창건
하였다고 되어 있고 1962년 개축시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 1438,
1768, 1841년에 중창 했다는 기록이 있어 창건 연대는 928년에
가까울 것으로 본다.
염불암 마당에 놓인 시도유형문화재 19호인 청석탑이다
탑신은 어디로 갔을까? 옥개석만 포개져있다
청석탑은 벼루를 만들던 점판암을 다듬어 만들었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극락전 바깥 천정에 그려진 비천상
거대한 암석의 서쪽면에 선각으로 새겨진 높이 4m의 여래좌상이다
두눈은 가늘게 뜨고 있고 코는 조금 두툼하게 표현을 해 두었고
입가의 미소가 잔잔하다 연화좌대위에 넓다란 무릎이
좀 커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남쪽면의 보살상이다 반나의 서쪽 보살상과는 달리 법의는 길게
내려져 있어 무릎을 덥고 있다 보관을 쓴 통통한 얼굴이
어찌 보면 우스꽝스런 모습이기도 하다
눈썹주위와 턱밑에 이끼가 끼어 있어 더욱 자연스런 모습이
매력이 있어 보인다
저 구멍은 무엇일까? 이 바위를 깨어 버릴려고 했을까?
아님 위에 전각을 세웠을까? 전각을 세웠다면 보살의 몸 중심에다가
구멍을 뚫진 않았을 게다
내려오면서 본 팔공산과 염불암
부도암의 부도
산길의 나그네에겐 약수 만큼 몸을 청량하게 해 주는것이 있을까?
가을 절골의 길을 만끽하면서 목을 축여 보시지요
곧 동화사의 모습이 올라 갑니다.
첫댓글 ()()()..석벽에 새겨진 불상을 상세히 보게 되네요... 무심코 지나치던 암자, 석불, 부도, 단청... 그런 것들에 애잔한 마음이 가니 공부한답시고 오락가락한 시간들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올려주신 선과님께 감사드립니다...늘 건강하시고 회향 잘 하시기 발원올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가족들과 케이블카 타고가서 염불암까지 갔다가 108배하고 내려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운동겸, 등산겸, 기도겸해서... 좋은곳이었읍니다. 멋진사진과 친절하신 설명 잘 봤읍니다. 관세음보살........
대단한 사진이네요. 잘 봅니다. 염불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