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느낌을 돋우기 위해 공원묘지, 세미터리 - 이런 말보다는 차라리 공동묘지라고 불러보자. 미국의 공동묘지 분위기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다들 알 터. 공동묘지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고, 동네마다 작은 공동묘지도 많이 보게 된다. 미국인들에겐 공동묘지가 그리 음산한 곳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미국에 처음 온 한국인들은 아마 도시마다, 마을마다 군데 군데 보이는 공동묘지를 보고 많이 의아해 할 것이다.
나는 LA 한인타운에서만 10년 넘게 살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10분 거리 할리우드 시내에 드넓은 공동묘지가 있는지도 몰랐고, 거기서 매주말 밤에 야외 극장이 오픈된다는 것도 몰랐다. 공동묘지에서의 영화 감상이라∙∙∙호기심 발동 끝에 가봤다. 세상에, 주말에 피크닉 가방 들고, 그 잔디밭 영화관에 모여든 사람들이 족히 2천명은 됐다. 그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고, 저녁을 먹으며 한바탕 즐기다가 밤 11시 노래를 부르며 공동묘지를 빠져 나왔다. 매주말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기괴한 문화 현장을 까마득하게 몰랐다는 것도 겸연쩍지만, 이들이 무덤가에서 벌이는 희한한 축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다시 한번 생각케 했다. 할리우드의 샌타모니카 블러바드와 Van Ness 불러바드 근처 Hollywood Forever Cemetery (6000 Hollywood Blvd., Hollywood)로 함께 떠나보자. 우리가 간 날은 마침 오드리 헵번 주연의 ‘Funny Face’ 란 뮤지컬이 상영됐다. 매주 추억의 명화를 바꿔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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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 매주 토요일이면 공동묘지 입구 바깥쪽에서부터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미리 온 영화 관람객들이다. 바깥에서 이렇게 기다리면서 가져온 와인이나 피크닉 도시락을 먹는다. 보통 시간 때 입장료는 없지만 영화 관람을 위한 입장료는 1인당 10불, 주차료는 5불을 받는다. 영화 시작 시간은 일몰 시간에 따라 약간 바뀌는데 요즘은 매주 토요일 저녁 9시 시작한다. 입장객은 7시 30분부터 들여 보낸다. 7월부터(여름기간동안)는 일요일도 영화상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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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 잠들어 - 공동묘지 곳곳엔 이렇게 사진이 새겨진 비석들이 즐비하다. 이 묘역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장 많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주 토요일 낮 12시에는 할리우드 스타 묘지를 둘러보는 투어도 있다. 1인당 15불. (cemeterytour.com) 입구에서는 스타들의 묘지를 표시한 별도의 지도를 구할 수 있다. 할리우드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찬찬히 음미하며 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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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묘비 - 이 묘역엔 많은 유대인들이 영면해 있고, 그동안 아시안 등 소수계에게는 매우 배타적으로 운영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한인 담당자도 배치되는 등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단다. 묘지 한켠엔 안네 프랑크의 묘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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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상 건물 무덤도 있다 - 이 묘지엔 한인들에겐 낯선, 크립트라 불리는 지상 건물무덤(crypt)이 있다. 지하 매장이 아니라 지상 건물에 작은 공간들을 마련해 여기에 관을 넣는 방식인데, 관리가 완벽하다. 한인들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미국인들에겐 많이 알려진 방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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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전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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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잡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여기서는 가져온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음식 먹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할리우드 보울 피크닉을 연상케 한다. 앉은 뱅이 의자와 담요가 필수품이다. 어떤 이들은 촛불을 가져와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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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서 결혼식도 열린다 - 이곳은 야외 결혼식이 자주 열리는 장소다. 먼쪽으로 보이는 흰색 대리석 구조물은 어느 부자의 개인 무덤이다. 분수 양쪽으로 잔디밭에 약 2천명 수용가능하다고 한다. 공동묘지에서 열리는 결혼식은 어떨까. 동행한 여성 한 분은 “공동묘지에서 결혼을 하면 결혼에서 무덤이 서로 가까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니까, 서로 욕심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잘 살 것 같다, 진작 알았다면 나도 해볼걸 그랬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인들에겐 인기있는 야외 결혼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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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가족 피크닉 - 너무 즐거워 보여서 사진 한장 찍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찍고 나서 보니 한 여성은 오드리 헵번 비스므리하게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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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페이스’가 시작됐다. 화면도 선명하고, 오디오가 장난이 아니다. 한마디로 죽여주는 야외 영화관이었다. 서점 직원 오드리를 잡지 모델로 발탁하기 위해 꼬시는 사진 작가(프레드 아스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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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잔디, 맑은 공기, 팜트리가 시원하게 뻗어 있는 곳에서 영화를 즐기고 있는데 이곳이 어찌 공동묘지란 생각이 들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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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죽여 주고 - 아∙∙∙드디어 사진기자의 꼬임에 빠져 패션 모델로 신데렐라가 된 오드리, 파리에서 사진기자와 진한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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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페스티벌 - 오드리의 잊을 수 없는 저 눈망울,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박수치고, 환호하고, 맘껏 기분을 발산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어울려 묘한 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흥미만점이면서도, 매우 교훈적인 주말 나들이였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 이렇듯 즐겁게 손잡고 놀 수 있다는 것, 느낌이 크다. (정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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