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언
나는 6.25 사변이 끝나기 3개월 전 1953년 음력 3월 10일 酉시에 부산에서 아버지 류선영씨와 어머니 박채순 여사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께서는 늦둥이 아들을 낳으신 것이 기뻐서 다음날 바로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하시러 가다가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있던 술사를 보고 문뜩 이름과 사주풀이를 부탁하셨다.
그는 사주와 이름을 보고 3세안에 죽거나 장애자가 될 팔자인데, 잘만 넘기면 장관자리 하나는 해 먹을 인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소 찝찝은 했으나 끝소리 장관을 한다는 소리가 위안과 기쁜 마음이셨단다. 즉 당신은 겨우 군수밖에 못했는데 아들이 장관이 된다니 좋으셨단다. 그런데 자리를 뜨려는 순간, 만약 장애자가 되면 역학을 가르치시오. 명복(名卜)이 될 것이오!
부친께서는 이 말씀을 여러 차례 들려 주셨고, 유학자라 역학이나 무속, 종교를 싫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붓을 잡는 것은 반대하셨지만, 역학을 공부할 때는 묵인하고 도와 주셨다.
맞지 않았으면 좋았을 길거리 도사의 예언은 적중하여 나는 3세를 못 넘기고 사고를 당하여 장애자가 되었다.
생활력이 강하셨던 모친이 미군 물품 장사를 하여 집을 2채나 벌었으나 아들의 장애를 고친다고 정신없이 돌팔이 의원이나 사이비 종교 등에 속아서 집을 모두 날려먹었다.
15세 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의 첫 번째 사부 백두노인(白頭老人)을 만나 역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승은 기인이어서 일제 때 만주에서 잠시 독립운동도 했고, 명마(名馬)를 사들여 조선의 갑부들에게 팔기도 했고, 타짜생활도 하셔서 그 비결을 나에게도 전수해 주셨지만, 백부님과 부친이 유학자라 그 영향에서 성장한 탓인지 노름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19세 때 한국 최초의 성명학 개척자이신 김계홍(金桂鴻) 선생님을 만나 역학의 깊이를 더했으나, 술사가 될 생각은 없어서 소설 창작에 매달려 신춘문예 투고에 심취했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글쟁이 팔자가 아니어선지 번번이 낙방이었다.
도장파는 기술도 배워보았고, 기원이라도 차려서 생계를 하려고 바둑도 두어 보았지만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세를 며칠 앞두고 부친이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 나와 어머니만 달랑 둘 만 남았다. 그동안 모친은 열심히 사셨지만 이미 친정 조카사위에게 사기를 당하여 재산을 모두 날린 상태였다.
생계를 위하여 1973년 4월 1일 서울 신림동 파출소 옆 골목에 [철학원]을 개업하였다. 몇 년 만 하고 전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70세가 된 현재까지도 술사노릇을 하고 있다.
2) 세상의 빛과 그림자.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 살아 순수하였던 나는 술사생활을 하면서 밝은 면도 만났으나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와 인간의 탐욕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70년대의 한국 경제는 발전의 시기였으므로 상담 내용도 사업을<개업>하겠다는 상담과 살림살이가 조금 향상되었으므로 가옥을 늘려서 <이사>하고 싶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면 길(吉)하겠냐는 내용이 주류를 차지했고, 일부 남자들은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본능적으로 호색하여지므로 외도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한 가정불화가 잦아서 <남편외도>가 언제 멎느냐는(지금은 바로 이혼여부를 질문) 어느 정도는 구시대적인 인습이 남아서 가정을 깨고 싶지 않은 여인들의 아릿한 상담이 많았고, 자녀들의 탈선으로 인한 <가출> 때문에 언제 정신을 차릴지 돌아올지 하는 상담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때 일부 여성들에게도 풍기 문란한 풍조가 퍼지려고 움트는 시기여서 “당신 숨겨 놓은 남자 있지!” 하고 맞추면 신기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오히려 “당신 못나게 시리 애인 하나도 못 만들었군!” 해야 잘 맞추는 시절이 되어가고는 있다.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이 나는데 어느 묘한 회사가 있었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씨받이>회사였다. 이 회사의 직원은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기업의 중견 간부이상, 또는 변호사나 의사 등 경제가 탄탄한 사람 중 딸만 2,3명 있으면서 아들이 없는 사람의 정보를 수집한 후 접근하여 “아들을 두고 싶지 않으십니까?”라고 호기심을 부추겨 반응을 보이면 흥정을 하고, 다른 한 팀은 지방을 돌면서 아들을 낳아 본 경험이 있으면서 남편 없이 고생하는 여인들을 섭외하여 끈을 이어주고 있는 회사가 있었다.
아들을 낳으면 사례비가 많았고 만약 딸을 낳으면 사례비가 적었으므로 나한테 자주 와서 A라는 남자는 ㄱ녀, ㄴ녀, ㄷ녀 중 어느 여자와 연결시켜야 아들 낳을 확률이 높은지를 문의하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희한한 상담도 해 본 것이 추억된다.
90년대 중반기 때 모 재벌회사 회장님께 숫처녀를 찾아 바치는‘채홍사’팀이 있었다. 그곳에서 발탁되었었던 모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한 번 더 연결이 될 수 없을까가 그 여인의 바람이었다. 동행했던 사람에게 나중에 왜 그런 질문을 했느냐 물으니 하룻밤 화대가 1000만원이란 거액이라 돈 생각이 나서란다.(세상은 요지경)
어느 정치모임에서 고급 음식점으로 나를 초대했다. 어떤 이의 생년월일시를 주면서 다음 ‘대통령’이 가능하겠냐고 물어본다. 살펴보니 대통령은커녕 동네 반장도 못할 사주라, 솔직히 말했더니 얼굴빛이 변하며 현직 대통령의 아들 중 한명인데 현 대통령은 곧 종신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어서 다음 대통령으로 추대가 될 각본이란다. 하도 기가 차서... 쯧쯧.
3) 자민련의 책사가 되다.
우선 대전, 강원체신청장과 서울 마포구의회 제1대, 제2대 의장을 역임하셨던 松堂 김원태 회장님의 회고록 『흐르는 물과 구르는 돌』에 언급되어 있는 필자에 관한 글이다.
〝불구의 몸이기는 했으나 잘 생긴 얼굴에 앉아서 칠 백리를 꿰뚫어 볼 정도로 역학의 도사였다. 살아온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일을 마치 손바닥에 놓고 보듯 훤하게 알아 맞혔다. 한 예로는 1992년 김일성의 사주를 보고 199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으로 정원식 씨와 조순 씨가 경합을 벌릴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원식 씨가 당선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조순 씨가 당선된다고 장담을 했다. 그의 예언대로 조순 씨가 서울시장이 되었다.〃
그 후 자민련 창당과 관련한 글
나는(김원태) 역학도사 류래웅씨에게 전화를 해서,
〝자유민주연합 창당대회를 3월 29일로 하려고 하는데 아우 생각은 어떤가?〞
〝29일은 안됩니다. 그 이튿날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참 입장이 난처했다. 3월 29일로 전국지구당에 공문을 발송한데다가 장충체육관 정문 앞 설치물도 바꾸려면 상당히 애로 사항이 많다고 집행부는 거절했다. 할 수없이 청구동 JP를 찾아갔다.
〝제가 아는 유명한 도사 한 분이 계시는데 무슨 일이지 창당일자를 3월 30일로 하라고 합니다. 하루 늦추어 30일에 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강력하게 그의 말을 따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JP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하꼬방으로 이사를 하려고 해도 이사 날짜를 잡는데 하물며 만인을 유익하게 하는 원대한 큰 꿈을 가지고 창당하려는데 창당 날자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하고 한참 설명을 했더니, 구자춘씨를 청구동으로 불렀다.
JP는 구자춘씨에게 창당 일을 하루 늦추게 해 보라고 했다. 그는 아주 난색을 표하다가 한 번 연기를 해 보겠다고 했다.
애초에 창당일로 잡았던 3월 29일, 새벽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사람들은 왜 행사를 연기하자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비는 하루 종일 그치지 않고 내리다가 저녁때가 되자 수그러들었다. 다들 나에게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을 했다.
〝김청장 자네 정말 도사네 그려. 누구한테서 귀띔을 받았나?〞
〝도대체 류래웅 씨가 사는 곳이 어딘가?〞하고 물었다.
3월 30일 드디어 자유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다행히 자민련 창당일은 티 없이 맑은 하늘아래 대대적으로 성공리에 치러졌다.
개인 운명을 상담하던 보통 술사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JP의 눈에 들어 자민련 공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서민의 삶에 조언을 주었고, 정치가와 술 마시며 시국도 논해 보았으며, 정보국 고위층과 형 동생하며 노래방도 전전했으며, 방송 신문기자와도 논쟁과 우의를 다져본 나는 태어날 때 군수 아버지를 추월하는 장관이 되는 팔자라고 한 길거리 도사의 예언 이상 오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은퇴는 못했지만 나의 남은 인생은 그간 바빠서 정리 못한 학문을 정립하고,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바치고 싶다.
@ 이 글은 [월간 역학] 2023년 7월호에 실렸던 글임.
첫댓글 선생님 항상 건강하십시요 ~ 그리고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