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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묘 및 정려각(용인 향토유적 51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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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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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 150여미터 직전의 길 옆에 정려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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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고 위를 올려다 보면 정려(旌閭)가 걸려 있습니다. |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이희신(李羲臣)이며,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희(尹僖)의 딸이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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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은 도로 위의 위치하고 있습니다. |
1599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평양중군(平壤中軍)을 지냈다. 1623년(인조 1)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올랐으며,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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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 전경. 봉분 뒤에 바로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묘역이 새로 단장된 것을 보면 아마도 도로 때문에 이장한 듯... |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민가를 약탈하는 명나라 모문룡(毛文龍)의 군사를 체포하였다. 정묘호란 때 적에게 포위되자 종제(從弟) 이신(李藎)과 병기고를 불사르고 순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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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옛 석물이 묘비 하나 뿐이라 묘비를 보호한다고... 원래 묘비는 풍상을 겪도록 그대로 두고 새 묘비를 하는 것이 좋았을 듯... |
시호는 강민(剛愍)이며, 아산 현충사에 제향되었다. 정묘호란 때 순국한 공을 인정받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704년(숙종 4) 정려문이 내려졌다. 정려문은 묘소와 함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다. - 디지털용인문화대전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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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 하단에 '덕수이씨 강민공파 봉안묘'라는 큰 봉분은 후손들의 납골당으로 만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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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선생 묘역에서 바라 본 봉안묘 |
▲ 봉안묘에서 바라 본 이완선생 묘역 |
이완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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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부분에 정려각이 있으며, 하단의 빨간선 끝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 묘역으로 오르면 좌측에 이완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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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좌측 중앙의 A 부분에 이완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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