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단풍이 들어가는 건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봄의 다리를 건너오느라 여름의 산을 넘어오느라 한편으론 지치고 한편으론 무성해진 나도 단풍이 들어간다 내가 지나온 숲에서 누군가 붙여 둔 표지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 놓아 둔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누군가 걸어 놓은 컵으로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단풍나무처럼 나도 단풍이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 무거운 삶의 이파리들을 정리해야 한다 몇 가지에 골몰하기 위해 몇 가지만 남기고 털어 내야 한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봄꽃을 피우고 건강한 여름 그늘을 엮으려면 이제 나는 낙엽 지는 단풍나무처럼 거추장스러운 이파리들을 버려야 한다 겨울나무처럼 모든 빛깔을 삼킨 채 단순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