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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가공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가장 접하기 쉬운 녹차와 홍차를 비교하여 설명해본다. 녹차와 홍차의 주요 가공 단계를 나눠보면 아래와 같다.
녹차: 채엽–살청–유념–건조(4단계)
홍차: 채엽–위조–유념–산화–건조–분류(6단계)
찻잎을 따는 것을 채엽(採葉)이라고 하며, 건조는 마지막 단계에서 완성된 차가 더 이상 변화 없이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수분을 약 3퍼센트 이하로 낮추는 과정이다. 채엽과 건조는 녹차와 홍차뿐만 아니라 모든 차가 단계상 거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세부로 들어가면 큰 차이가 있다. 홍차의 경우 유념을 포함한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해진 찻잎을 크기에 따라 구분해 등급을 매겨 분류한다.
녹차와 홍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며, 동일한 찻잎으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위조, 살청, 산화’ 과정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각 과정을 알아보되 위조와 산화 부분을 좀더 깊이 있게 다루려 한다.
이른 봄 차나무 줄기에서 새로운 잎이 올라온다. 싹을 포함해 네 장의 크기가 다른 잎으로 모습을 갖추면, 가장 위의 싹 하나와 바로 아래 잎 두 장을 채엽한다. 이것을 파인 플러킹(fine plucking), 즉 고급 찻잎 따기라 하는데, 대체로 녹차와 홍차를 만들 때는 이처럼 세 개의 찻잎을 딴다.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진 플러커(Plucker)들이 이른 아침부터 채엽한 잎을 모아 차 공장으로 가져온다. 공장에서 대략 한번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잔가지나 상한 잎들을 골라내면 가공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다.
녹차에 있는 살청(殺靑, fixation)은 새로 딴 신선한 찻잎에 뜨거운 증기를 쏘이거나, 뜨거운 솥에서 덖거나 하여 찻잎 속에 있는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불활성화시키는 것, 즉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흘러도 찻잎의 녹색이 변함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홍차 탄생에 관한 전설로 흔히 인용되는, 녹차를 실은 배가 유럽으로 가던 중 적도 지방의 높은 온도와 습도로 인해 산화되어 홍차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전설일 뿐이다.
홍차는 채엽한 다음 살청을 거치지 않고 대신 위조 과정을 거친다. 위조는 찻잎을 시들게 하는 것으로, 갓 채엽한 찻잎에는 70~80퍼센트의 수분이 있다. 이 상태에서 바로 유념하면 찻잎이 억세어 유념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찢어지거나 부서진다. 수분 함유량을 60~65퍼센트 수준으로 낮춰 숨을 죽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위조다. 과거에는 햇빛 아래에서 하곤 했지만 오늘날에는 대량생산을 위해 습도, 온도, 공기 순환이 되는 실내에서 주로 한다.
이 위조는 녹차에 없고 홍차에만 있는 아주 특징적인 과정 중 하나이며 홍차의 품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므로 세부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공기가 잘 통하는 큰 창고 같은 건물 내부에 기본적으로는 폭 2미터 내외, 길이 20미터 내외, 지면에서 약 50센티미터 높이의 공간을 두고, 테두리 높이가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뚜껑 없는 큰 직사각형 상자에 바닥은 다양한 재질로 된 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위조대라고 부르며 건물 내부에 몇 개씩 놓여 있다.
이곳에 찻잎을 약 30센티미터 높이로 펼쳐놓고 찻잎이 놓여 있는 망 아래에서 위로 바람이 불도록 한다. 위조는 보통 16~18시간 하지만 기후나 습도 그리고 찻잎의 상태에 따라 유동적이다. 찻잎을 골고루 위조하기 위해 바람의 방향도 바꾸고 몇 시간에 한 번씩 찻잎을 손으로 뒤집어준다. 이를 위해 테두리를 충분히 높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현재 다르질링, 스리랑카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본적인 위조 방법이다.
아삼에서 본 새로운 형태의 위조시설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위조대가 각각 독립되어 사방 위아래가 막힌 방의 형태였다. 즉 컨테이너처럼 생겼고 가로세로 길이도 훨씬 더 길었다. 길이로 한쪽 끝에는 사람 키보다 훨씬 더 큰 대형 팬(fan)이 달려 있어, 다르질링, 스리랑카의 위조대와는 달리 바람의 방향이 위아래가 아닌 방의 길이로 불게 했다.
이 컨테이너처럼 생긴 것 양옆으로 문이 있어 여닫을 수 있지만, 찻잎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을 한쪽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불게 하면 압력이 작용해 수분 증발 비율이 최적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 찻잎을 뒤집을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대규모 위조실에서는 찻잎을 뒤집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뒤집을 때 찻잎이 손상될 수 있기에 매우 효율적인 장치라 여겨진다.
이런 형태의 위조시설은 좀더 많은 양의 찻잎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에너지도 절약된다. 아삼 지역에서 우기 등 습도가 높을 때는 외부에서 덥힌 따뜻한 공기를 투입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위조는 단지 수분 함유량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찻잎의 생화학적 변화도 촉발시킨다. 찻잎을 수확하는 데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음에도 불구하고, 갓 딴 찻잎은 쓴 풀과 같은 맛이 난다. 이 위조 단계에서부터 찻잎 속의 합성물이 농축되면서 찻잎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찻잎을 위조할 때 나는 향은 비할 데 없이 좋다. 스리랑카에서 홍차를 만들고 있는 차 공장에 들어가니 우선은 잔디를 갓 깎은 뒤 나는 것과 비슷한 상쾌한 풀 향기가 나고, 위조실에 가면 신선한 꽃향, 과일 향 같은 것이 살아 있어 우려진 차의 최종 향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내음을 풍긴다. 다소 거칠고 세련되진 않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야생의 향이다. 중요한 것은 위조가 잘된 찻잎일수록 유념이나 산화도 잘된다는 것이다.
위조에 필요한 시간은 위조 시점에서 찻잎의 상태나 날씨 등 주위 여건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홍차 생산지와 그들 고유한 방법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정통 차 생산에서는 16시간 전후가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위조 시간이 길수록 최종 완성된 차에서 향이 더 풍부하게 난다. 위조를 하지 않는 녹차의 향은 위조 과정을 거친 홍차의 향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또 향보다는 맛과 강도가 중요한 CTC 홍차 역시 위조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한편 향이 중요한 중국 홍차,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 일부 고지대 스리랑카 홍차는 위조 시간이 좀더 길다.
유념은 우리말로 비비기인데 멍석같이 표면이 다소 거친 곳에 찻잎을 두고 압력을 가해 찻잎에 상처를 내서 내부의 세포막을 부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포액이 흘러나오며 홍차는 이것으로 인해 산화가 촉진된다. 이미 산화효소가 불활성화된 녹차는 나중에 차가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찻잎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 유념 과정을 거친다.
과거에는 손으로 했지만 지금은 일부 고급 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계로 한다. 완성된 찻잎의 모양을 중요시하는 중국의 유명한 녹차는 유념을 통해 그 녹차에 고유한 찻잎의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녹차는 유념을 살청 다음에, 홍차는 위조 다음에 한다. 가볍게 유념한 차는 좀더 감미롭고 부드러운 맛이 나며, 강하게 유념한 것은 압력에 의해 찻잎이 작게 쪼개져 강한 맛이 난다.
손으로 하던 유념을 아삼 시대가 시작된 직후인 1870년대에 영국인이 개발한 기계로 대신하면서 노동력은 줄이는 반면 대량생산을 이뤄냈는데, 그러나 찻잎의 모양은 매력 없이 다 비슷해졌다.
어쨌든 이 기계식 유념기의 발명으로 영국은 아삼에서 이전보다 더 강한 맛의 영국식 홍차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사용한 브리타니아(Britannia)라는 이름의 유념기를 아직도 다르질링에서 쓰고 있는 것을 봤다. 유념에도 채엽한 찻잎의 상태, 만들고자 하는 차의 성격에 따라서 수많은 변수가 있다.
산화 또한 위조 단계와 함께 녹차에는 없는 과정이다. 유념이 끝난 뒤 녹차는 바로 건조 과정을 거쳐 차로 완성된다. 이미 유념 전에 살청 과정을 통해 산화효소가 불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산화 과정이 필요 없다.
반면 홍차는 유념 과정에서 세포막으로부터 흘러나온 액이 산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찻잎을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공간에 펼쳐놓아 외관상으로는 찻잎 색깔이 검정에 가깝게 변해가며, 내적으로는 찻잎의 생화학적 변화가 완성되는 단계다. 이 과정을 오랫동안 발효라고 잘못 이해해온 것이다.(홍차의 성분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산화가 진행되는 상태를 관찰하고 판단하여 차 제조자가 의도하는 홍차를 생산한다. 원하는 수준의 산화가 진행되면 중단하고 건조시켜 더 이상의 산화를 막는다.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는 이 산화 시간을 상대적으로 짧게 한 것으로, 신선한 꽃향이 나며 찻잎에는 푸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홍차가 다양한 맛을 내는 요인 중 하나는 이런 생산 과정에서 티 매니저의 경험과 판단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계로서 건조의 목적은 산화를 포함한 찻잎의 모든 생화학적 효소활동을 중단시켜 더 이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장기간 보관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건조 단계에서는 찻잎의 수분 함량을 보통 3퍼센트 안팎으로 줄인다. 오늘날 대부분의 홍차는 건조기라 불리는 기계 속에서 뜨거운 공기를 쐬며 건조된다. 건조 기간과 온도 등도 최종적인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치므로 세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건조한 다음 높아진 찻잎 온도를 가능한 한 빨리 식혀야 하는데 이 역시 완성된 홍차의 맛과 향의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단계라고 말한 것은, 이 건조 과정이 녹차나 우롱차, 특히 우롱차의 경우 수분 함량을 낮춘다는 목적 외에도 우롱차 특유의 맛과 향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건조된 찻잎은 진동하는 여러 개의 스크린을 위에서부터 통과하면서 크기에 따라 분류된다. 각각의 스크린은 한 등급의 찻잎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아래의 더 작은 스크린으로 내려보낸다. 제일 위에서 걸러지는 홀리프(whole leaf)는 차 고유의 다양한 맛을 지녀 가장 좋은 등급으로 꼽는다. 다음으로 브로큰(broken) 등급은 다소 강한 맛을 낸다. 그다음 등급은 더 잘게 쪼개진 잎으로 패닝(fannings), 더스트(dust)라 불리며 주로 고급 티백 제품에 사용된다. 이렇게 분류된 찻잎은 크기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포장되어 판매된다.
이렇게 녹차는 살청과 유념을 거치고, 홍차는 살청이 없는 대신 긴 위조 과정과 유념, 산화 과정을 거쳐 결국 완전히 다른 모습과 성질을 지닌 완성된 차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홍차를 접한 지 거의 200년이 지날 동안에도 홍차와 녹차를 생산하는 차나무가 서로 다를 거라 여겨온 것이다.
위에서 본 홍차의 가공 과정인 채엽-위조-유념-산화-건조의 단계가 오늘날 정형화된 홍차 가공법으로 정통법(Orthodox Method)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