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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03
S#1. 운학루 안방
강숙, 화장대 앞에 무릎 세워 감싸안고 머리 그 위에 파묻었다. 그 뒤에 얼굴이 난감하게 굳어있는 대성이 서 있다.
강숙 : ......
대성 : ......
강숙 : ......
대성 : ......
S#2. 은조와 효선의 방
효선 : (밖에서 문 열며) 언니-
비었다. 휴대폰 꺼내 번호 누르며 도로 문 닫고 나가는 효선.
S#3. 대성의 서재
은조의 휴대폰이 울리고 있다. (요즘 휴대폰 아니고 2002년도식 구식 휴대폰)
효선 : (밖에서 문 열며) 언니-
책상 위에서 혼자 울고 있는 휴대폰. 뿌- 입 내미는 효선. 전화 끊고 문 닫고 나간다.
S#4. 술창고
문 열어보는 기훈. 비었다. 은조의 책상이었던 엎어진 술통과 빈 선반을 보는.
기훈 : ......
S#5. 인서트
퐁... 강물(이나 호수)에 던져지는 돌멩이. 파문.
S#6. 강가(호숫가)
은조, 쭈그리고 앉아서 돌멩이 던진다. 은조 얼굴에 손자국이 벌겋다. 그 위에.
대성(E) : 왜 때렸어요?
S#7. 안방
아까랑 똑같은 자세로.
대성 : (화가 나는 것 참고) 그럴 일이 아니었잖아요?
강숙 :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효선이한테 쌀쌀맞게 구는 거, 벼르구 있었어요.
대성 : 효선이가 은졸 너무 귀찮게 하는가 봅디다.
강숙 : 애가 원래 얼음장 같이 차요. 눈 앞에서 그러니까 화가 나서 나두 모르게 그랬어요.
대성 : 화난다구 화날 때마다 아일 그렇게... 손찌검하며 키웠어요? 민망해 혼났어요. 다신 그러지 말아요. (돌아서 가려는데)
강숙 : (휙 보면서) 눈치 봤어요!!
대성 : ?
강숙 : 당신 딸한테 험하게 구는 내 딸 밉보일까봐 나두 모르게 눈치가 봐 졌다구요.
대성 : ...... (와서 앞에 앉으며) 누가 눈칠 줬다 그래요?
강숙 : 눈치 주지 않아두 저절루 봐져요. 당신은 아니라 그러지만 여전히 당신은 집주인이구 난 애 딸린 사글세방 과부 같아요.
당신 뿐만 아니라 효선이 외삼촌, 그리구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전부, 저것들 어디서 굴러들어온 검부라기냐
그런 눈이라구요. (눈물 뚝뚝 떨어진다)
대성 : (당황) 이, 이봐요.
강숙 : 나한테 이러는 걸 보면 내 딸한텐 어떻게 할지, 가여워두 가엽다 표두 못내구, 내 딸 내 손으루 손찌검하는 심정,
당신은 몰라, 어떻게 알아,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통곡한다)
대성 : (어쩔 줄 모르며) 이봐요, 아 나 원 참, 이봐요 강숙씨. (하며 강숙의 어깨를 건드리는데)
강숙 : (건들지 말라는 듯 저만큼 물러앉아 통곡)
대성 : ......
S#8. 행랑채 마당 부엌
할머니들 포함, 해진과 일꾼들이 모두 모여있다. 대성,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다.
대성 : 내 새사람한테 안주인 대접 안하구 싶은 사람, 당장 이 앞으루 나 서. 퇴직금 두둑하게 챙겨줄테니 지금 당장 때려치라구!
새로 생긴 효선이 언니, 운학루 장녀 대접 안 할 사람 있으면 지금 나서 봐 어디!
사람들, 모두 고개 푹 숙이고 있지만, 어이없고 황당한 얼굴들이다.
해진, 고개 쓱 들면서 대성의 눈치를 보는데, 눈이 딱 마주친다. 얼른 고개 숙이는 해진.
S#9. 안방
강숙, 말짱하게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운 얼굴 티슈로 정리하고 있다. 콧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얼굴이다.
S#10. 강가
해 저물고 있다. 은조, 여전히 돌멩이를 던지며 강물에 파문을 만들고 있다.
은조(N) : 마음 속으로 짐을 백 번도 더 쌌다. 먼저 가방을 꺼내고,
은조, 빈 옆자리를 본다.
(상상) 은조가 보는 자리에 커다란 캐리어가 뿅 생긴다.
은조(N) : 큰 거 필요없어.
(상상) 가방, 작은 캐리어로 바뀐다.
은조(N) : 가방을 열고
(상상) 캐리어가 활짝 펼쳐진다.
은조(N) : 속옷 챙기고
(상상) 브라와 팬티 개어져서 캐리어 안으로 골인.
은조(N) : 두 벌은 있어야겠다.
(상상) 브라 팬티 세트 한 벌 더 골인.
은조(N) : 양말도 두 벌. (양말 골인) 여름옷 한 벌, 겨울옷 한 벌 (한 벌씩 골인). 세면도구(치약 치솔 비누 수건 골인).
심심할 때 읽을 책 한 권 (책 한 권 골인). 다 됐어. (캐리어 닫힌다) 아차차, 까먹을 뻔했다.
(캐리어 다시 열려 펼쳐진다) 내 전 재산 이십 이만 칠천원. (통장과 도장 골인). 다 됐어. 가자. 엄마 없는 곳으로.
효선이 그 계집애도 없는 곳으로. (캐리어 철컥 닫혀서 우뚝 세워진다)
은조, 일어나서 출발, 캐리어 뒤로 눕혀서 막 끌고 가려는데, 그 앞에 서 있는 기훈.
은조, 우뚝 선다. 캐리어 사라진다. 은조가 손에 쥔 것은 그냥 돌멩이다.
기훈 : (웃는다) 한참 찾았잖아.
은조 : ......
기훈 : (와서, 은조의 손에서 돌멩이 찾아 멀리 던져버린다) 가자.
은조 : ......
기훈 : 가자, 배 고프다. (은조 손 잡아 끌고 가는데)
은조 : (홱 뿌리치며) 뭐 하는 짓이야!
기훈 : ...... 아 참 거 짜식 사람 민망하게..... 아 미안하다 미안해. 응?
은조 : (앞서서 돌밭을 휘적휘적 간다)
기훈 : (따라가며) 어디 가 임마? 집에 가는 거 아니지? 너 이 동네 어디가 어딘지두 모르잖아.
내가 작년 여름에 이 동네 들어와서 처음 낮잠 자던 데부터 시작해서, 어디가 어딘지 빠삭하게 꿰구 있거든?
내가 이래뵈두 숨기 전문... (돌밭 돌부리에 발 걸려 휘청-) 어어어 (퍽! 무릎과 손바닥으로 엎어진다)
은조 : (돌아본다)
기훈 : 으으으으 (돌에 찍힌 무릎과 손바닥 문지르며 고통스런 얼굴을 과장해서 은조를 바라본다)
은조 : (동요 없이 무심히 본다)
기훈 : 으으으으으.....
은조 : (그냥 내버려두고 간다)
기훈 : (어이 없어서) ....야!
은조 : (간다)
기훈 : 얌마 너 사람이 다쳤는데 어떻게 그냥 가냐? 나 걷지두 못하겠다구!
은조 : (더 빨리 간다)
기훈 : 허. 야! 너 이러기야?
은조 : (더더 빨리 가다가 휘청-)
기훈 : ?
은조 : (퍽 넘어진다. 세게 퍽! 퍽소리 완전 크게 남)
기훈 : ?? (벌떡 일어나 은조에게 가려는데)
은조 : (기훈보다 더 벌떡 일어나 그냥 간다)
기훈 : ..... (따라가면서) 괜찮아? 기다려봐! 너 아플 거 같은데..
은조 : (이미 빠르게 저만큼 가고 있고)
기훈 : 허... (성큼성큼 따라간다)
S#11. 동네 길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걷는 은조 옆을 기훈이 헉헉대며 따르고 있다.
기훈 : 너 걸음이 왜 이렇게 빠르니? 숨차다, 좀 천천히 가자. 안 아파? 어디 좀 봐. 너 넘어질 때 퍽소리 완전 크게 났어.
어디 깨진 거 같은 데 좀 보자구, 엉? (하며 은조의 다리를 보다가 헉 놀란다)
은조의 교복 스커트 아래로, 무릎에서 흐른 피가 종아리를 타고서 질질 흐르고 있다.
기훈, 당황해서 은조의 팔을 잡아 못가게 한다.
기훈 : 너 임마 네 다리 좀 봐! 피가 줄줄 흐르는데 너 이러구두 하나두 안 아프단 말야? 피가 안멈추잖아!! 큰일나려구 이게,
은조 : (팔 빼려고 하면)
기훈 : (버럭) 아 진짜!!
은조 : ?
기훈 : 안 아프냐구!!
은조 : (저도 버럭) 아파. 안 아플리가 있어? 근데 그게 뭐! 아픈 게 뭐가 어떻다구!!
기훈 : (황당해 말문이 막히는) ......
S#12. 인서트
은조 무릎. 무릎 조금 아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 위에 식염수 콸콸 부어진다.
S#13. 읍내 병원 응급실
기훈, 식염수 부어지는 은조의 무릎 보면서 으으으으.... 인상을 잔뜩 찡그리다가, 은조를 본다.
은조는 아프기는커녕 무심해보이기까지.
기훈 : (그런 은조를 보는) ......
의사 : (식염수로 세척한 곳을 붕대로 감으며) 어디에 뭐가 박혔는지 봐야 하니까 엑스레이 먼저 찍어오세요.
은조 : (무심히)......
기훈 : ......
S#14. 운학루
어디 다른 곳에 비해 지저분해보이는 곳. 그 앞에 해진과 일꾼들이 있고, 일꾼들 앞에 강숙이 있다.
강숙 : 다 치워요. 밤새도록이라두 치워야지 이거 뭐 더러워서 사람이 살겠나. 곧 손님들 치를 건데 챙피스러워서 원.
그리구 저기 저 다락에 오래된 거 흉물스런 거 죄 갖다 버리구.
일꾼들 : (서로들 본다)
강숙 : 왜? 왜 대답들을 안 해? 사람 말이 말같지 않아요.
해진 : 버리는 건 형님한테 물어라두 봐야지 어떻게 그냥 버린대요? 물어 보구,
강숙 : 내가 얘기할 거니까 일단 버려요.
해진 : 글쎄 저기 다락에 있는 건 효선이 엄마 물건들인데,
강숙 : 내가 사장님한테 말씀드린다잖아요!
해진 : (찔끔)...
강숙 :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소리없이 해줘요들. 알았어요?
강숙, 안채 쪽으로 간다. 해진, 기막히고 불쾌하고......
S#15. 안채 마당
그쪽에서 안채로 들어오는 강숙. 마루에 앉았다가 쪼르르 강숙에게로 가는.
효선 : 엄마.....
강숙 : 응, 그래 효선아-
효선 : 누구한테 들으신 거예요 그 말?
강숙 : 응?
효선 : 우리반 애들, 언니 놀린 적 없대요.
강숙 : ?
효선 : 하나하나 붙들구 다 물어봤는데, 우리 성 다른 거 아무두 놀리지 않았구, 그리구 언니두 그런 말 한 적 없다는데,
그래서 엄마는 어디서 그런 말씀 들으셨는지 물어볼라구, 아니 여쭤볼라구... (하는데)
강숙 : (효선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효선 : .....
강숙 : (쓰다듬는다)
효선 : ..... (몽글몽글 뭉쳤던 것이 녹작지근하게 풀어지는 마음, 얼굴에 천천히 나타난다)
강숙 : (쓰다듬으며) 내가, 뭘 잘못 알았나봐. 우리 그 일은, 없던 걸루 하자아? 다신 입 밖으루 꺼내지 말자아?
효선 : 네... 그래요.... (히- 웃으며 강숙의 허리를 안는다)
강숙 : 술지게미 또 집어먹으면 그 땐 혼난다 울애기?
효선 : 으응......
S#16. 응급실
은조의 무릎 엑스레이 사진(무릎 아래쪽에 박혀있는 유리조각 사진) 걸려있고 의사, 은조의 무릎을 꿰매고 있다.
기훈, 보고 있다.
기훈 : 선생님, 얘 통각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애가 미련해서 그런가 해두 그건 절대 이해가 안 가는 거죠.
통증을 느끼는 감각에 문제가 있는 거다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빠르지,
은조 : 그 때 그거, 어느 나라 말이야?
기훈 : 응?
은조 : 그 때 밤에, 노래 불렀잖아. 평상에 누워서.
기훈 : 아 그거? (제목 말함)? 스페인 가수 (가수이름말함)의 노랜데, 그거 왜, 좋아? 불러줘?
은조 : 스페인, 멀어?
기훈 : ?
S#17. 동네 길
무릎에 붕대를 한 은조와 기훈이 걷고 있다.
기훈 : 멀지. 마드리드까지 비행기로 열두 시간쯤 날아가야 하니까.
은조(N) : 거기 가서 숨어버리면 아무도 못 찾겠다.
기훈 : 스페인에 가면 바르셀로나에 꼭 가봐야 해. 가우디두 있구,
은조 : 스페인말, 배우기 어려워?
기훈 : ... 얘는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를 않더라? 가우디 건축이 얼마나 기괴하구 재밌냐믄 말야,
은조 : 됐구. 수학 한 시간으루 줄이구 나머지 한 시간은 스페인어 가르쳐 줘.
기훈 : 뭐?
은조 : 주세요. 가르쳐 주세요. 됐죠? 이번주 일요일부터 배울 거구 수학 시간 줄여서 스페인어 배우는 거니까
효선이 아버지한테 과외비 더 받지 마. 알았어? (간다)
기훈 : (스페인어 모른다) 저기,
은조 : (간다)
기훈 : 얌마!.... (죽어가는 소리로) 나 스페인어 모....르는데....
S#18. 안방 앞
은조, 마루 올라와 안방 문을 열다가 우뚝 선다.
은조 : ......
S#19. 안방 안
은조, 마루에서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연 채 굳어서 서 있다.
카메라가 은조의 깨진 무르팍을 지나 안방 안으로 들어오면 강숙, 머리를 벽에 기대고 앉은 채 잠들어있고,
그 아래 효선이, 강숙의 무릎을 베고 티비로 얼굴을 향한 채 잠들어있다. 티비가 혼자서 자그맣게 떠들고 있다.
사이좋은 모녀의 낮잠 자는 모습이다.
은조 : ......
은조, 얼굴 굳어진 채로 문 닫고 사라진다.
강숙, 잠에 빠진 채 얼굴을 긁는다. 효선, 돌아누우며 강숙의 무릎으로 더욱 더 파고든다.
잠시 후 문 열린다. 대성이 들어오다가 강숙 무릎 위의 효선을 본다.
대성, 둘의 모습을 한참 보더니, 조심스럽게 들어와 티비를 끄고 나간다.
S#20. 안방 앞
마루 대성, 나와서 방쪽을 일별한다. 손바닥으로 얼굴 쓸어내리는 대성. 쓸어내리고 나면 좋아죽겠는 얼굴이다.
S#21. 운학루 외경 (밤)
인서트
S#22. 기훈의 방 (밤)
기훈, 인터넷으로 교육방송 켜놓고 스페인어 알파벳 공부하고 있다. 어려운 ‘R' 발음 반복해서 따라하는데, 잘 안된다.
기훈 : 얘네들은 혀에 바퀴를 달구 말하나, 발음이 뭐가 이렇게 달달 굴러? 르, 르르, 르르르, (교재 넘겨보며) 이걸 언제 다하냐.
에라, 첫 시간엔 알파벳만 하자. 알파베또. (동영상 클릭해가며, 발음 열심히 따라해가며)...
(F. O)
S#23. 운학루 부엌
튀겨지고 구워지고 삶아지는 음식들.
부엌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 음식들 지지고 볶느라 정신 없고, 한쪽에서는 잔칫상이 차려지고 있다.
순분이 가마솥 뚜껑을 열면, 펄펄 끓는 미역국.
S#24. 대성의 서재
스페인어 교재 맨 앞장 펼치는 기훈. 자기도 맨 앞장 펼치는 은조. (은조 무릎엔 아직도 붕대)
기훈 : 스페인어는 스페인 뿐만 아니라, 과거 스페인이 식민지로 삼았던 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현재 공용어루
쓰이구 있기 땜에, 앞으루 얼마든지 쓰임새가 많아. 그런 점에서 제2 외국어루 스페인어를 공부 한다는 건,
은조 : 어디가 젤 멀어?
기훈 : 응?
은조 : 남미가 스페인보다 더 멀지? 그 중에서 어디가 젤 먼 끝이냐구.
기훈 : 야, 넌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듣구,
은조 : 됐구. 공부 시작해. 나중에 지도 찾아볼게.
기훈 : 너 정말 사람 말 끝까지 안 들어? 그게 무슨 매너야? 그리구 너 지금은 수업시간인데 왜 반말해?
은조 : 알았어요.
기훈 : 오늘은 스페인어 알파벳을 공부하자. 발음이 영어랑 비슷하면서두 영어랑 다른 게 있으니까 잘,
은조 : 알파벳은 어젯밤에 혼자 공부해뒀으니까 다음꺼 해요.
기훈 : (헉. 당황) ..... 뭐?
은조 : 알파벳은 내가 예습했다구요. 2단원부터 해줘요.
기훈 : .....
은조 : ..... 해‘주세’요. 2단원. (저 혼자 2단원으로 넘기는데)
기훈 : ..... (책 슬그머니 덮으면서) 남미에서 제일 먼 데는 아르헨티나 남쪽 끝 ‘우슈아이아’라는 데야.
(공책에 서둘러 남미 지도 그린다) 여기 남태평양 쪽으로 길다랗구 좁은 나라가 칠레, 그 옆 이만큼이 아르헨티난데,
(우슈아이아에 동그랗게 점 찍는다) 여기가 세상의 끝, 우슈아이아야. 내가 휴학하자마자 배낭 매구
미국 거쳐 멕시코 지나 여기까지 내려왔을 땐 돈두 다 떨어지구 거렁뱅이처럼,
은조 : 얼마나 걸려?
기훈 : ...... 너는 사람 말을 좀 끝까지,
은조 : 가는데 몇 시간이나 걸려? 돈은 얼마나 들구?
기훈 : 가려구? 우슈아이아에 가구 싶은 거야? 왜 가구 싶은 건데?
은조 : 됐어. 공부해. 곧 손님들 들이닥치면 시끄러워져. (책으로 눈)
기훈 : (서둘러) 아르헨티나까진 직항이 없으니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비행기 갈아타구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야하구,
우슈아이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두 삼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데니까.....
바깥이 시끌시끌해진다.
기훈 : 아무래두 오늘은 공부가 힘들겠다. 내일 하자. 근데, 무릎은 괜찮니?
S#25. 운학루 마당
2회에 나왔던 집안 어른들, 잘 차려입고 삼삼오오 운학루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강숙이 문간에서부터 활짝 웃으며 어른들께 인사한다.
대성이 손님들을 보고 대청에서 마당으로 내려선다. 집안 여자어른 한 명이 대성의 손을 잡는다.
어른 : 새 사람 들이구서 맞는 자네 첫 생일 아닌가. 축하하네.
대성 : 예, 고맙습니다.
또다른어른 : (저쪽에서 강숙에게) 오자마자 큰 잔치 치루네. 고생 많았지?
강숙 : 고생은요 뭘.
어른 몇은 강숙을 보며, 또 다른 어른 몇은 대성에게 달려들어 덕담을.
S#26. 효선의 방
효선, 책상 서랍 열고 예쁘게 포장된 것 두 개 꺼내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책상 위에서 은조의 휴대폰이 운다.
효선, 그냥 나가려다 말고, 책상으로 와 휴대폰 집는다.
효선 : (받는) 네, 은조언니 전홥니......
하는데 효선의 손에서 계속 휴대폰이 울고 있다. 효선, 전화기 보면 휴대폰 잠김 상태라 받을 수 없다, 비밀번호 입력하란다.
효선, 주머니에 은조의 휴대폰 넣고 나간다.
S#27. 국도
달리는 트럭.
S#28. 달리는 트럭 안
털보 장씨가 운전을 하고 있다.
장씨, 눈알에서 레이저빔이 나오는 것 같다. 그 무서운 눈에서 순정한 눈물이 후두둑후두둑 쏟아진다.
장씨 : 강숙아----- 강숙아------------
장씨, 강숙아를 부르며 팔을 옆자리로 뻗는다. 장씨의 손에 술병이 잡힌다.
S#29. 털보장씨네 안방
정우, 다급하고 난처한 얼굴, 귀에 수화기 대고 있다. 신호는 가나 받지 않고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멘트 나온다.
정우, 음성메시지 남긴다.
정우 : 누야, 내 정우다. 와 이래 전화를 안받노. 아제가 누야 어매랑 누야 팔아묵은 돈으로 노름하다가 홀랑 털리가,
누야 어매한테 간다꼬 띠 나갔다 아이가. 그래 가가 난장이나 안깔라나 내사 마 가슴이 쿵닥 쿵닥 띠가 똑 죽긋는기라...
누야, 잘 해라..... (문득 그리움에) 니... 내 잊아뿟는갑제.... 개않다. 내가 안잊아뿌모 대제.....내가 안카드나,
니는 내가 책(여기서 ‘삐’-‘녹음되었습니다’ 안내음)임질.....(안내멘 트:저장하시려면 1번, 취소하시려면 2번 누르라는)
.....께.....(1번 누른다는 게 2번 누른다, 멘트:녹음이 취소되었습니다)......머라꼬? 이 가스나가 머라카는데!!!!
S#30. 안채 마당 (밤)
은조, 사잇문 열고 들어서면, 십여 명의 친척만 남아서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강숙, 어른들 사이를 다니며 술을 따르고, 받아마시고 한다. 대성에게도 술을 따르는.
강숙 : 축하해요.
대성, 그런 강숙을 어여쁜 무엇을 보듯이 보고 있다. 그런 대성을 어른들이 다- 쳐다보고 있다. 대성, 얼른 표정 바꾼다.
은조, 마당 한가운데 차려진 잔칫상을 멀리 돌아서 제 방 쪽으로 가는데,
어른들 틈에 섞여있던 효선이 발딱 일어나 “언니!” 하며 상 밑에서 포장한 것 두 개 들고 은조 쪽으로 온다.
효선 : 언니, 아빠 선물 준비 못했지? 내가 언니꺼까지 준비했어. (하나 준다) 카드만 한 장 써.
은조 : 싫어. (간다)
효선 : 언니 그럼 카드 쓰지 말구 선물만 드려.
은조 : 싫어.
효선 : (쫓아가서) 언니 그럼,
은조 : (가만히 서서, 조용하고 무섭게) 니가 내 말을 좀 알아들었음 좋겠는데, 나 건들지 마라.
효선 : 언니.... 무섭게 왜 그래....
은조 : (매섭게 노려보고 가는데)
효선 : 아참 언니 그럼 이거,
은조 : (그냥 간다)
효선 : 언니 전화 자꾸 오는데. 음성메시지두 자꾸 오는 거 같구...
은조 : ?
효선 : (휴대폰 내민다)
은조 : (받고) 남의 꺼 왜 건드려? (하고 방으로)
효선 : (따라가며) 그게 아니구, 방에 이거(선물) 찾으러 갔다가 언니 책상에서 자꾸 진동이 울리길래...
S#31. 아이들 방
은조 들어와 의자에 앉아 휴대폰 여는데, 효선, 쪼르르 따라들어와서 방문 닫고 은조에게로.
은조 : ? 왜 따라와?
효선 : 언니 혼자 심심하잖아.
은조 : (대꾸하기도 싫다. 등 돌리고 휴대폰 음성메시지 듣는다)
효선 : (다가와서) 누구야?
은조 : (듣는 동안 심각해진다)
효선 : 응? 누구야?
은조 : (휴대폰 탁 닫고) .....니 삼촌 어딨니?
효선 : 삼촌? 어떤 삼촌?
은조 : (빽-) 니 엄마 동생 말야!!!
S#32. 운학루 앞 (밤)
어른들이 타고 온 차 앞으로 장씨의 트럭이 와서 선다. 차 안에서 고개 외로 꼬고, 운학루 대문을 바라보는 장씨 ......
S#33. 바깥채 해진의 방 앞 (밤)
해진, 제 방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다. 은조, 마당에 서서 해진을 보고 있다.
은조 : 왜 그까짓게 기억이 안나요? 그 사람한테 여길 가르쳐줬냐구요?
해진 : ...글쎄... 여길 꼭 가르쳐주진 않았는데....
은조 : ?
해진 : 명함은 줬지.
은조 : (숨이 턱 막힌다)....(홱 돌아서 가다가 다시 해진을 보며) 왜요?
해진 : ?
은조 : 여길 가르쳐주면 어떡해요!! 머리가 그렇게 나빠요? (하고 가버린다)
해진 : (가는 은조를 멍하게 보고 있다가) ...안 가르쳐줬다니까 그러네.... 명함만 줬다니까... (하고 방 안으로 사라지며 문 닫는)
S#34. 해진의 방 (밤)
겸상하고 있는 해진과 기훈. 해진, 문 닫고 다시 젓가락 잡으면.
기훈 : 왜요?
해진 : 아이구 난 명함만 줬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릴...
기훈 : .....?
S#35. 대문 앞 (밤)
장씨, 비틀비틀 대문 쪽으로 다가선다. 손가락으로 살짝, 문을 밀어본다. 문이 조금 열린다.
장씨, 들어서려고 다리 하나가 문턱을 넘다 멈칫한다. 강숙의 노래가 새어나오고 있다.
S#36. 안채 마당 (밤)
은조, 뒤채에서 안채로 들어서면, 강숙이 어른들의 강권에 떠밀려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른들, 좋아라 박수치며 노래 감상한다.
은조, 그들을 지나쳐 대문 쪽으로.
S#37. 대문 밖 (밤)
은조 나오면 가느다란 흐느낌에 섞인 남자의 노래소리.
은조, 소리나는 쪽을 보면, 장씨, 담장에 기대앉아 잔뜩 취한 채로 안에서 들려오는 강숙의 노래를 따라서 부르고 있다.
은조, 장씨인 것을 확인한다. 미치겠다.
은조 : 이봐요.
장씨 : 쉿. 아인나, 내가 갈챠준 노랜 기라. (따라부른다)
은조 : (폭발 직전이다, 잇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로) 당장 일어나요.
장씨 : (노래부른다)
은조 : (대문 안쪽을 의식하며, 확하고 장씨의 멱살을 잡는다)
장씨 : (켁켁대는데)
갑자기 대문이 열리고 누가 나온다! 은조, 얼어붙는다. 보면, 기훈이다.
은조 : ......
S#38. 도가의 술창고 (밤)
기훈,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장씨를 창고 안으로 들여온다. 은조, 따라들어온다.
기훈, 장씨를 바닥에 앉힌다. 장씨, 엎어진다.
은조, 벽을 더듬어 불 켜고, 창고문 소리나게 쾅 닫는다. 장씨, 흐물흐물 일어나 앉는다.
기훈 : ...... 나가 있을게. 필요하면 불러.
은조 : ......
기훈 : (나간다)
은조 : (내려다보며) 확 죽여버릴까....
장씨 : 직이.
은조 : 정말 확, 죽여버리구 싶어.
장씨 : 직이. 직이도!
은조 : 미쳤어요?
장씨 : 안미치고 살긋나. 강숙이 없는 내애 이인 셰앵--- 안 미치고 우예 살긋노.
은조 : 죽어요 그럼. 당신 인생에 강숙이는 이제 없으니까.
장씨 : (물끄러미 은조를 올려다본다) 그라지 마라. 내는 니 옴마 사랑했다.
은조 : 돈 몇 푼에 팔아치운 여자 말하는 거예요?
장씨 : 잘난 척 하지 마라. 내가 니 눈앞에 당장 큰 돈 디밀모 니도 그래 댄다.
은조 : 그래서, 돈이 더 필요해요?
장씨 : 그라지 말라캐도! 내는 니 옴마 보고 시프가 온 기제, (밖에서 수상한 소리) 돈 뜯으러 온 기 아이다! (말 마치기도 전에)
은조 : (기겁해서 손으로 장씨의 입을 틀어막는다)
밖에서 대성과 몇몇 어른들의 소리가 들린다. 모두 술에 취한 목소리다.
대성(E) : 고모부님들, 제가 들구 온다니까요.
작은고모부(E) : 아 자네 혼자 가당키나 한가?
큰고모부(E) : 같이 들구 나오세, 얼마나 맛이 들었는지 내가 첫 술을 떠야 한다니까.
어른들 목소리 점점 가까워 온다. 은조, 식은땀 흘린다.
장씨, 뭐라고 말하려고 하면, 은조, 죽어라 그 입을 틀어막는다. 그 바람에 뒤로 밀려 장씨의 등짝이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기훈(E) : 들어가 계세요 사장님!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은조 : ......
대성(E) : 아, 그래줄래?
기훈(E) : 그럼요. 파티장에 주인공이 없으면 파장나잖아요. 얼른 들어가 계세요.
그러마 하고 어른들 물러가는 소리. 은조, 안도의 한숨. 기훈 들어온다.
기훈 : 괜찮아. 가셨어.
은조 : (막았던 장씨의 입에서 손 떼고) ......
기훈 : (술이 가득 든 술통 하나 갖고 나가면서) 이제 본격적으루 술자리가 시작되니까, 여기두 오래는 못 있을 거야.
이거 두구 금방 올게. (나간다)
은조 : ......
장씨 : 강숙이 딱 한 번만,
은조 : 이런 거 다 있어요?
장씨 : 머?
은조 : 대궐 같은 집. 이렇게 큰 창고. 고모. 삼촌, 큰아부지. 당숙. 당고모. 귀종조부. 왕고모... 이런 빽, 있어요?
없으면, 만들어와요. 그럼 당신이 보구싶어하는 그 여자, 내가 말려두 당신한테 가요.
장씨 : ......
은조 : 있는 거라군 그저 저번 풍랑에 부서진 통통배 한 척에다, 거둬 기르는 업둥이 하나, 도박빚, 손찌검버릇, 술주정....
몸두 마음두 다 썩었지.
장씨 : ...... 고마해라.
은조 : 왜요? 어린년한테 이런 소리 들으니 자존심은 상하나보죠? 자존심이 있긴 있었어요?
장씨 : (버럭!) 고마해라 가스나!!
은조 : 가져와요. 여기보다 더 훌륭한 거.
장씨 : ......
은조 : 그러기 전엔.... 절대 나타나지 마요.
장씨 : ......
은조 : 안나타나주면.... 울엄마 사랑했단 그 말, 믿을게요.
장씨 : ......
은조 : 지금 사라져요.
장씨 : .....
은조 : 안 그럼 당신, 돈이나 뜯으러 온 저질인 거예요.
장씨 : ...... (비틀비틀 일어서서 은조에게 가까이 간다)
은조 : ...... (초긴장).....
장씨 : (노려본다)
은조 : (마른침을 삼킨다)
장씨 : (나간다)
은조 : ......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는다)
S#39. 운학루 앞 (밤)
안에서 왁자하게 즐거운 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기훈이 대문 열고 서둘러 나온다.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은조가 그 앞에 서 있다.
기훈 : (대문 안을 의식하면서 작은 소리로) 왜?
은조 : 술을 잔뜩 먹구 여기까지 온 거야.
기훈 : 응?
기훈, 저쪽을 본다. 장씨가 트럭 옆에 대짜로 뻗어있다.
은조 : 저대루 가다가 확 뒈져버리게 놔둘까.....
기훈 : ......
은조 : 자꾸 운전대 잡으려구 하는 거, 끌어냈더니.... 뻗어버렸어. 저 인간 좀.... 죽여줄래.....?
S#40. 트럭 안 (밤)
조수석에 장씨 뻗어있고, 기훈, 운전석으로 타면서 문 닫는다. 운전석 창문 앞으로 오는.
은조 : ......
기훈 : 걱정마. 데려다주고 막차 타면, 새벽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은조 : ......
기훈 : 걱정하지 말라구.
은조 : ......
기훈 : (씩 웃고 벨트 매고 시동건다)
은조 : ......
기훈 : 들어가 뭐 좀 먹어, 응?
기훈, 운전해 간다. 은조, 움직여가는 트럭을 멍하게 보고 있다.
S#41. 운학루 마당 (밤)
은조, 기진맥진해 들어오면, 마당은 여전히 잔치 중이고, 거기다 강숙은 속도 모르고 효선과 나란히 서서 이중창을 하고 있다.
가사가 틀렸다고, 음정이 틀렸다고, 까르르 웃는 강숙과 효선.
대성, 둘의 모습이 그저 좋아 지그시 웃고 있고, 어른들도 덩달아 손뼉치며 웃고 있는데,
은조, 강숙과 효선을 일별하더니 제 방쪽으로 간다.
대성, 문득 그런 은조를 본다. 노래 부르고 자리에 앉는 강숙에게.
대성 : (뭐라고 속삭인다)
강숙 : 예?
대성 : (귀에 가까이 대고 뭐라고 한참 속삭인다)
강숙 : ......
S#42. 아이들 방 (밤)
은조, 침대 옆구리에 등을 기대고 발 뻗고 기진해있는데, 방문 열리고 강숙이 들어온다.
은조, 그런 강숙을 올려다본다. 강숙, 버선 벗으며 은조 앞에 퍼질러 앉는다.
강숙 : 같이 좀 어울리구 그럼 어디가 덧나냐? 싸가지없는 년.
은조 : (기막힘) ....
강숙 : (자기 발바닥 주무르며) 효선이 아부지가 너한테 좀 가보라드라. 아무튼 다정두 병이야.
은조 : 나가.
강숙 : ? ...... 뭐?
은조 : 꼴두 보기 싫어! 나가!
강숙 :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가며, 버선으로 은조의 머리를 찰싹 때린다) 이게 근데!
은조 : 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비명이 터지는데)
강숙 : (그 버선으로 은조 입을 틀어막으며) 이게 진짜 미쳤나?
은조 : (그런 강숙을 확 밀쳐버리며, 감정은 최고조, 소리는 최대한 이를 악물고 낮게) 날 여기 왜 데려왔어? 난 없어두 됐잖아!
나 아니어두 엄마 혼자 잘 먹구 잘 살 수 있었잖아!
강숙 : 내가 누굴 위해서 누구 때문에,
은조 : 나 무릎 꿰맨 건 알아? 주인집 아가씨 무릎에 뉘어 재우느라 붕대를 며칠씩이나 붙이구 다녀두 여지껏 몰랐으면서,
뭐? 날 위해서? 나 때문에?
강숙 : 무릎 꼬맸어? (무릎 그제서야 본다) 언제 이랬어?
은조 : (무릎 만지는 강숙의 손을 치워내며) 불여시!
강숙 : 근데 이게 진짜 못 먹을 걸 먹었나....
은조 : 나한테 손 대지 마. 말두 걸지 마. 건드리기만 해 봐. 한 대라두 때리기만 해 봐!
확 일어나 나가버리는 은조. 문 쾅!
S#43. 아이들 방 앞 마루 (밤)
은조 문 쾅 닫고 나오는데 효선이 막 마루로 올라서고 있다.
효선 : 언니, 엄마는?
은조 : .....
효선 : 엄마가 일루 가시길래,
은조 : (대답없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효선 : 언니, 선물은 내가 아빠 드렸어. 언니랑 내가 준비했다구 말씀드..
은조 : 나, 너 싫어.
효선 : (말문이 막히는) ....
은조 : 너두 나 싫지?
효선 : 아니, 나는 언니가,
은조 : 좋을 수가 없어. 좋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좋다 그러니?
효선 : 정말, 좋은데...
은조 : 싫어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잖아? 싫은데 좋아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 너 힘들 거야. 그러니까, 싫어해두 돼.
나 모른 척 해. 응? 나한테까지 애쓰지 말라구.
효선 : (벌써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뚝뚝 떨어진다) 싫으면서 좋아하는 척하는 거 아니야 언니....
정말이야, 믿어줘, 믿어주면 좋겠는데....
은조 : 너는 너를 속이구 있어. 가슴에 손을 얹구 잘 생각해봐.
은조, 효선에게서 등돌려서 가는데, 대성이 마루에 올라서 있다.
은조 : ......
대성 : ......
효선 : ......
은조 : (간다)
대성 : ......
S#44. 대성의 서재 (밤)
은조, 들어와서 휴대폰 건다. 신호음 듣고 있다. 잠시 후
정우(F) : 여보세요?
은조 : 어떤 남자가 장씨 아저씨 데려갈 거거든? 아저씨 내려놓구 그 남자 돌아가면, 나한테 전화해. 알았지? (끊으려는데)
정우(F) : 누야!
은조 : (그 소리에 휴대폰 다시 귀에 댄다) 왜?
S#45. 장씨 방 (밤)
정우 : (유선 전화) 니 인사도 머도 다 짤라묵고 그기 머꼬? 니 잘 지내나? 니 내 안 보고 싶나?
은조(F) : 바빠, 끊어.
정우 : 누야!! 끊지 말라캐도!!
은조(F) : 왜.
정우 : 니 안있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띠기 들으래이. 니는....
(여기서부터 숨도 안쉬고 속사포로) 니는 내 여자다. 사랑한데이. 알라뷰! (해놓고 전화 뚝 끊는다).....
(얼굴 벌개져서 그대로).....고.....고백해뿌 따 아이가! 우, 우야꼬! (부끄러워하며 이불 위로 슬라이딩)
S#46. 서재 (밤)
은조, 전화기 접어넣으면서 픽.... 책상 위에 펼쳐져있는 스페인어 교재. 그리고 기훈이 그려넣었던 남미 지도.
은조, 앉아서 지도가 그려진 공책을 들고 본다. 우슈아이아라고 표시했던 그 지점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은조 : ......
S#47. 아이들 방 (새벽)
효선, 잠들어있고. 은조, 책상 앞에 앉아 시계를 보고 있다. 새벽 네 시쯤. 그 위로
정우(E) : 누야, 아저씨 잘 도착했다.
S#48. 운학루 앞 (새벽)
은조, 대문 열고 나온다. 길은 텅 비었다.
은조 : ......
시간 경과 동이 트려고 한다. 아직도 길은 텅 비어있고, 은조, 집 안으로 들어간다. 대문 살짝 열어놓은 채로.
S#49. 아이들 방 (아침)
아침 햇살 비쳐드는데, 효선은 아직 잠에 빠져있고 은조는 책상 앞에 앉아 시계를 본다. 아침 일곱 시.
은조 : ......
S#50. 인서트
홍회장의 저택 앞.
S#51. 인서트 저택 안
정원 아침 새 운다.
S#52. 저택 안 거실
기훈, 굳은 얼굴로 화려한 거실 한가운데 서 있다.
잠시 후, 복도 끝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안방에서 홍회장이 나온다. 기훈, 미동 없이 서 있다.
홍회장, 기훈에게는 일별도 주지 않고 소파 상석으로 와 앉는다.
기훈 : (미동없이) ......
홍회장 : 물 다오-.
큰며느리(E) : (주방에서) 예 아버님.
잠시 후 화려한 큰며느리가 나타나 홍회장 앞 테이블에 물을 놓고 다시 주방으로 간다. 이 분 역시 기훈에게 일별도 주지 않는다.
홍회장, 물 마시고 컵 내려놓는다.
홍회장 : 와 앉아.
기훈 : 괜찮습니다.
홍회장 : 날더러 널 우러러보며 얘길 하란 거야?
기훈 : ...... (와서 앉는다)
홍회장 : 휴학을 했다구?
기훈 : ...... 예.
홍회장 : 학비는 부족하지 않게 준 걸루 아는데, 그 학비루 등록은 안하구 여행을 다녔다며?
기훈 : ......
홍회장 : 젊은 날 넓은 세상 보구 들어오는 거 나쁘지 않다만,
들어와선 왜 또 복학을 안하구 전국 방방곡곡을 거지꼴루 돌아다닌 거냐?
기훈 : ......
홍회장 : 하필이면 왜 양조장이냐?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듣구 있는 줄 알아?
하는데 갑자기 이층에서 기태의 ‘에이씨!!“ 하는 소리. “너 뭐라는 거야 이 자식!” 하는 기정의 목소리.
우당탕퉁탕 일층으로 내려오는 소리.
홍회장, 이맛살 찌푸리는데, 기태가 씩씩대며 일층으로 내려온다.
기태 : 아부지, 아 형 좀 어떻게 해주세요!
기정 : (따라내려오며) 너 이리 안 와?
홍회장 : (버럭) 뭐하는 짓들이야!!
기태 : 아부지가 저 자식(기훈) 잡아오래서 새벽 댓바람부터 잠두 못자구 데려왔잖아요. 피곤해서 눈 좀 붙이려구 하는데 형이,
기정 : 기태 옷 꼬락서니 좀 보세요 아버지. 제가 하나밖에 없는 아우 때문에 얼굴을 못들구 다녀요.
기훈 : ......
기태 : 아 진짜 아부지두 가만히 계시는데 왜 형이 내 옷을 갖구 난리야?
홍회장 : (벌떡 일어선다) 그만들 못 해!
두 아들 : (움찔) ......
기훈 : ......
S#53. 정원
정원 벤치에 앉은 홍회장과 기훈.
홍회장 : 케이블티빈지 뭔지, 무슨 새 채널이 생겼는데, 그게 아주 망해먹은 채널이야. 세상이 어떻게 되려구 그러는지 원.
기훈 : ......
홍회장 : 유명인사들 뒷조사만 전문적으루 하구 다니는 채널이라는데, 우리 집안 가계도가 프로젝트루 올랐다더구나.
빌어먹을 인간들 같으니라구...
기훈 : .....
홍회장 : 그런데 그 인간들 해석이 또 아주 들어줄만 해. 잘 봐주면 재벌가 자제 밑바닥에서부터 훈련시키는 거구,
삐딱하게 보면 후처 소생 거두지 않는 험악한 인심에 아들 하나 폐인 만들었다는 거구.
하필이 면 왜 양조장엘 들어가서, 술 만드는 내 회사하구 줄을 긋게 만들어.
기훈 : ......
홍회장 : 어느 쪽이라야 더 체면이 덜 구겨지겠니 우리가? 허허...
기훈 : 둘 다 아닌데 무슨 걱정이세요?
홍회장 : ......?
기훈 : 홍주가 가문에 입적돼 있지두 않은 제가 이 집안 자제라는 건 어불성설이구,
그러니까 밑바닥 훈련두, 재벌가 험악한 인심 운운두 맞지 않는 얘기 아닙니까.
홍회장 : 거길 떠나라.
기훈 : 싫습니다.
홍회장 : 당장 학교루 돌아가!
기훈 : 제가 알아서 합니다.
홍회장 : 기훈아!
기훈 : (벌떡 일어선다) 제 인생입니다. 제가 이 집과 무관한 사람이라구 선언하신 분이 누구세요? 이 집안 사람이구 싶었던 적
한번두 없는 저한테 너는 이 집안하구 무관한 사람이란 말씀으루 절 순식간에 거지루 만드셨죠.
제가 이 집안에 권리두 의무두 없는 것처럼, 저 사는 제 인생에..... 아무 권리 없으세요.
기태모(E) : 누구 앞에서 나오는 대루 통통한 소릴 내뱉는 거니?
보면, 홍회장의 사모님이 절에서 돌아오는 차림(승복 비슷한 것)으로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아 정원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정원관리인이 대문을 닫는 모습이 보인다.
기태모 : (기사에게) 나가 기다려.
기사 : (예 하고 사라지면)
기태모 : (기훈 쪽으로 오는) 아무리 보배운 데가 없어두 저한테 해준 게 얼만데,
은혜를 알면 어디 어른 앞에서 얼굴을 빳빳하게 들구,
홍회장 : 당신은 들어가요!
기태모 : 이 집안하구 무관한 사람으루 사는게 니 진심이면 아무두 모르는데, 아무 관련두 없는데 가서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지내야지, 사진 이나 찍혀가면서 시골 양조장에서 술통을 날라?
그게 우리 집안에 대한 시위가 아니라구 가슴에 손을 얹구 맹세할 수 있니 너?
홍회장 : 들어가라구!
기태모 : 예. 들어갑니다. (들어가며) 들어가요. 보시려거든 저녁때나 보시지 아침부터 이게 무슨..... (사라진다)
기훈 : (모멸감으로 얼굴 굳어지는)...
홍회장 : ...... 우리 집안 얘길 광고루 만들어 티비에 내보낼 순 없다. 거길 나와라.
기훈 : 저랑 상관 없는 얘깁니다. 안녕히 계세요.
기훈, 홍회장에게 꾸벅 허리 굽혀 인사하고 터벅터벅 대문을 향한다.
홍회장 : ...... 아침을 먹구 가련?
기훈 : (기막혀 웃음이 나온다. 대답 없이 그냥 간다)
홍회장 : ......
S#54. 저택 앞
정원관리인이 문 열어주면 기훈, 안에서 나온다.
으리으리한 동네를 걸어서 점점 홍회장의 집에서 멀어지는 기훈 ......
S#55. 은조와 효선의 교실
쉬는 시간. 애들 떠드는데, 효선, 교실 구석에 가서 어디론가 휴대폰으로 전화하고 있다.
효선 : ...... 여보세요? 삼촌? 기훈오빠 들어왔어?
은조 : (자기 자리에서 책 보고 있다가 그 소리에 어깨가 긴장한다)
효선 : .... 연락두 없구?
은조 : ......
효선 : 전화가 안되니까 그렇지! 삼촌, 기훈오빠 오면, 나한테 문자 좀 해줘. 응?
은조 : ......
효선 : (은조에게로 오는) 언니, 기훈오빠 아직... (하다가, 싸늘한 은조의 등을 보고는 그냥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간다)
은조 : ......
S#56. 산소
공원묘원 같은 곳이 아니고 그냥 산허리의, 봉분과 비석만 있는 초라한 산소다.
기훈, 봉분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중얼중얼 하고 있다. 무덤 앞에 소주병 반쯤 비워진 채 놓여있고.
기훈 : .....엄마, 나 그냥 확 그 사람들, 눈 좀 뒤집어지게 해버릴까? 못 할 것도 없잖아. 케이블 채널인지 뭔지에서
홍주가 얘기 만들때, 내가 확 인터뷰 해버릴까? 홍주가 홍한석회장의 후처소생 홍기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며, 갖은 구박과 학대로 얼룩졌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확 다 불어버릴까?
...... 아니면, 그렇게 안하는 댓가루 뭘 좀 두둑하게 받아내버릴까? 뭘 받아낼까 엄마? 엄마, 그 집안 선산에 한 번
갔다오구 나서, 거기 참 좋더라 그랬었지? 엄마, 거기루 이사시켜줄까? 정말 확.... 그래버릴까?...... 휴우........
기훈, 돌아누우며 손 뻗어 소주병 잡아 입으로 가져간다.
S#57. 은조와 효선의 방 (밤)
효선, 잠들어있고, 은조, 누운 채로 눈 말똥말똥 뜨고 있다. 살그머니 일어나는 은조.
S#58. 운학루 마당 (밤)
은조, 신발 신고 마당으로 나온다. 대문으로 살금살금.....
대문 빗장 열고, 문 살짝 열어놓고, 돌아서서 마당으로. 문득 서는 은조. 대문 쪽을 휙 돌아보는 은조 ......
S#59. 운학루 앞 (밤)
은조, 안에서 나온다. 담장 끄트머리에, 담장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기훈.
은조 : ......
기훈 : (은조를 본다)
은조(N) : ...... 왔다.
기훈 : ...... (활짝 웃는다)
은조(N) : 웃는다......
기훈 : 은조야-.
은조 : .....
기훈 : (손으로 까딱, 오라고) 와....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기훈 : 일루 좀 와......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기훈 : 짜식이 또 말 안듣구.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기훈 : (저는 뚜벅뚜벅 걷지만 사실 취해서 휘청휘청하며 은조 쪽으로 온다)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기훈 : 은조야......
은조 : ......
기훈 : 나, 배고파 은조야.....
은조 : ......
기훈 : 배고파.... 배고파 죽겠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은조 : .......
기훈 : (뚝뚝뚝뚝....)
S#60. 부엌 (밤)
은조, 소반에 밥상을 차린다. 나물 담고, 김치 썰고, 국 푸고......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S#61. 행랑채 (밤)
은조, 밥상 들고 행랑채로 들어선다. 기훈의 방으로.
은조(N) : 은조야, 하고 불렀다.
S#62. 기훈의 방(밤)
은조, 밥상 들고 들어오면,
기훈, 침대에 구겨지듯 엎어져서 잠들어있다, 양말은 한 쪽만 벗고, 나머지 한 쪽은 발에 반쯤 걸쳐져 있다.
은조, 밥상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내가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기훈을 본다. 기훈, 코를 곤다.
은조, 밥상 들고 나가려다가, 마음 바꾸고 다시 돌아서서 밥상 내려놓는다. 기훈쪽으로 가는.
은조 : 밥 먹어.
기훈 : (드르렁)
은조 : (한 쪽 발에 반쯤 걸쳐진 양말을 본다) .... (벗길까 말까)... (엄지와 검지로 발에 닿지 않고 양말만 어떻게 벗겨보려는데)
기훈 : (돌아눕는다)
은조 : (화들짝 돌아서 나가버린다)
S#63. 행랑채 (밤)
은조, 기훈의 방에서 튀어나온다. 안채로 총알처럼 사라지는 은조.
S#64. 안채 마당 (밤)
안채로 들어와 평상에 털퍽 앉는 은조 ...... 문득 무릎을 내려다본다. 붕대 감겨있다.
은조, 붕대를 푼다. 상처는 아주 작아져있다. 자국을 만져보는 은조 ...... (F. O)
S#65. 운학루 대문 앞 (아침)
학교 가는 길의 동수, 운학루 대문 앞을 얼쩡거린다. 몰래 대문 안을 들여다보는 동수.
그 때 갑자기 안에서
대성(E) : (버럭!) 너 뭐하는 놈이야!!
동수, 화들짝 놀라 가방 떨어뜨린다. 얼른 가방 집어들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동수.
S#66. 안채 마당
기훈, 대성에게 야단맞고 있다.
기훈 : 죄송합니다 사장님,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대성 : 연락두 못할 사정이란 게 대체 뭐야!
기훈 : (꾸벅)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은조와 효선이 책가방 들고 나온다. 효선, 뽀르르 대성 앞으로 간다.
효선 : 아빠, 잘못했다잖아. 용서해주세요. 응? 응? 응?
기훈 : (그런 효선 때문에 푹 웃어버린다)
효선 : (기훈의 팔짱을 샥 끼면서) 언니랑 내 과외선생님이잖아. 너무 무섭게 야단치지 마세요. 응? 응? 응? 응? 응?
은조(N) : 우웩.
은조, 휭하니 대문 밖으로. 기훈, 그런 은조를 일별하고.....
S#67. 학교 가는 길
효선, 종종대며 뛴다. 은조의 모습을 찾는다. 은조가 저- 앞에 가고 있다.
달리는 효선. 가까이 와서 은조 옆에서 걷는 효선.
효선 : (소심하게) 언니.
은조 : (본다)
효선 : 나, 다음주에 콩쿨 가는 거 알지?
은조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효선 : 아, 내가 말 안했구나.... 나, 무용하는 건 알아?
은조 : .....
효선 : 있지, 아빠랑 엄마는 두 분이 어디 같이 가실 데가 있다구, 나 보러 못 오신대. 삼촌두 바쁘구, 기훈 오빤 모르겠구....
그러니까, 언니가 나 보러 오면 안 돼?
은조 : 안 돼.
효선 : 으응....
은조 : .....
효선 : 그래두 뭐... 괜찮아. 동수가 와준댔어.
은조 : .....
효선 : 언니, 동수가 요새 갑자기 나한테 친절해졌어. 마음을 바꿨나봐. 콩쿨에 오라구 그랬더니, 누가누가 올 거냐구 그러더라?
잘 모르겠다 그랬더니, 아무튼 오는 방향으루 하겠대. 잘 됐지?
은조 : 후....
효선 : (얼른) 그 한숨소리 나 뭔지 알아. 지겹다는 거지? 아는데 언니. 내가 아무리아무리 생각해봐두,
내가 나를 속인다는 게 뭔지를 모르겠어. 언니, 나는 진짜 언니가 좋거든? 근데 언니는 나를 싫어한다며?
그럼 언닌 나를 계속 싫어해. 난 그냥 언닐 좋아할 거야. 난 언니가 나를 싫어해두 날 좋아해달라구 하지 않을 거니까,
언니두 내가 언니를 억지루 싫어해야 한다구 말하지 마. 난 언니가 기뻐하는 일이 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언닐 싫어하라는 말만 빼구. 내가 이렇게 떠드는 것도 싫어 죽겠지? 싫어해. 난 괜찮아. (중간에 은조가 말을 끊을까봐
쉴 새 없이 여기까지 떠들어놓고) 어! 동수다! 동수야--!!
저 앞에 가는 동수를 향해 달려가는 효선. 뒤쳐져서 가면서 그런 효선을 보는 은조.
S#68. 교실
방과 후 빈 교실.
은조, 혼자 남아 스페인어 교재 읽고 있다. 그 위에
기훈(E) : 은조야- (담벼락에서 부르던 목소리)
은조, 책장 한 페이지 넘긴다.
기훈(E) : 은조야-
은조, 책장 탁 덮고 책가방 챙긴다.
S#69. 강가 (호숫가)
은조, 돌밭 위의 평평한 길을 걸어서 집에 돌아가고 있다.
문득 멈추는 은조. 은조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 반가움이 스쳐간다. 저기 물쪽에 기훈이 앉아있다.
그러다 금세 얼굴이 굳는 은조. 기훈이 웬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 거다.
예쁜 여자, 기훈의 가슴을 치며 장난치고, 기훈, 큰 소리로 유쾌하게 웃는다.
은조 : ......
은조, 천천히 그들 뒤를 지나쳐간다. 기훈, 은조를 보지 못한다.
은조 : (가면서) ......
S#70. 운학루 앞
은조 걸어오다 멈춘다. 동수가 궁둥이를 뒤로 빼고 대문 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손에는 꽃다발까지 들었다.
은조, 대문으로 다가가는데, 동수, 염탐을 포기하고 뒤돌아선다. 은조를 보고 헉 하고 놀라는 동수.
은조 : ?
동수, 슬금슬금 담벼락을 따라 옆으로 가더니, 꽃다발 툭 떨어뜨리고, 떨어뜨리자 제풀에 또 놀라고,
주우려다가, 그냥 잽싸게 달아나버린다.
은조, 픽하고는 그냥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S#71. 운학루 마당
은조 들어서면, 평상 위에 강숙과 효선이 있다.
효선, 발 하나를 강숙의 다리 위에 처억 얹어놓고, 강숙은 효선의 발톱을 깎아주고 있다.
은조 : ......
효선 : 언니 왔어? (해놓고 움찔하며) 아야...
강숙 : (놀라서) 어머나, 살 찝었니? 살 찝혔어?
효선 : 아뇨. 괜찮아요.
강숙 : 미안해, 조심조심 할게에?
효선 : 네.
강숙 : (은조는 쳐다보지도 않고, 효선의 발톱을 깎는 것에 열중한다)....
은조 : (보고, 자기 방으로)....
S#72. 은조와 효선의 방
은조, 방으로 들어오면 방 한가운데 웬 케잌이 차려져 있다.
은조 : ?
효선이 오는 소리.
효선 : (문 열며) 짜잔- 써프라이즈!
은조 : ... 뭐야?
효선 : 내일 언니 방 도배 끝나. 오늘밤이 우리 동침 마지막 밤이라, 환송회 해주려구. (케잌 앞에 앉는다) 앉아 언니!
은조 : (기막히고, 짜증난다)
효선 : 아, 기훈오빠두 불러야겠다. 잠깐 있어봐 언니? (일어나는데)
은조 : 너,
효선 : 응?
은조 : 너 내가 그렇게 좋으면, 내가 달라는 거 다 줄 수 있어?
효선 :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뭐가 갖구 싶은데? 말만 해. 별두 달두 따 다줄게.
은조 : 내가 뭘 가져두 참을 수 있어?
효선 : 언니가 뭘 가져두 참을 수 있어.
은조 : 내가 뭘 가져두 끝까지 네가 나를 좋아할 수 있어?
효선 : 그럴 수 있어.
은조 : 정말이야?
효선 : 정말이라니까?
S#73. 대문 앞
은조 나온다. 동수가 떨어뜨린 꽃다발, 아직도 그대로 있다.
은조(N) : 왜 그런 장난이 치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무엇엔가 잔뜩 화가 나 있는 것 같은데,
딱히 무엇 때문인지 집어낼 수가 없었다.
꽃다발을 줍는 은조. 저기 골목 끝에서 기훈이 오고 있다. 기훈의 손에 커다란 종이백이 들려있고.
은조, 기훈을 보더니, 휙 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기훈 : ?
S#74. 은조와 효선의 방
은조 : (꽃다발 보여주며) 정말이야. 동수가 나랑 사귀구 싶다면서 준 거야.
효선 : (굳어있다).....
은조 : 왜? 내가 뭘 가져두 된다며?
효선 : (꽃다발을 보는) ......
은조 : 역시, 안되는 거지? 날 좋아한다는 거, 니가 니 마음을 속이구 있는 거였다는 거, 이제 알겠니?
효선 :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 정말... 동수가 줬어?
은조 : 그렇다니까?
효선 : ....... 이 카드 좀... 봐도 돼?
은조 : ?
은조(N) : 카, 카드?
은조 : 카드?
효선 : (이미 꽃다발 속에서 작은 카드 뽑아내고 있다)
은조(N) : 큰일났다, 저런 게 있었다....
효선 : (봉투 열고 있다)
은조 : 시, 싫어 카드는!
효선 : (이미 펼쳐서 읽고 있다)....
은조 : (당황해서).....
효선 : ....... (눈물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한다)
은조 : ?
효선 : (카드 툭 떨어뜨리고, 울면서 방문 열고 뛰쳐나간다)
은조 : ??
은조, 케잌 위에 꽂혀버린 카드를 집어든다. 읽는다.
카드내용 - 송은조. 네가 좋다. 너랑 사귀고 싶다. 사귀자. 잘해줄게. -김동수-
은조, 어이없어서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은조 : 아....미치겠네 진짜.....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린다. 효선이다.
은조, 차마 효선을 보지 못하고 딴청을 피우는데 효선의 얼굴이 서늘하다 못해 싸늘하다.
효선 : 거지...
은조 : (잘 못들었다) 뭐라구?
효선 : ......
은조 : 뭐라 그랬어?
효선 : (이제까지와는 다른 효선이가 되어서) 거.지....... 꺼져!
놀라는 은조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