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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1-3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태풍 11호 힌남노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기상청에서, 엄청난 태풍이라고 예고하고 있는데, 6일 화요일이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가급적, 외부 활동을 삼가 달라고 예보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이 추석 명절인데, 이번 태풍으로 인하여, 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각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혼내시고, 꾸짖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돌보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찾아도 찾아도,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제목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단 일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러한 사랑이 아닙니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변덕스러운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입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6)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잠잠히 사랑하시며, 웃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가졌던 최후의 만찬 장면을 설명하면서,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라고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겼던 제자가 열두 사도 중에 누구인가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이 있지만,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직접 기록하지 않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았다고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호 1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줄로 우리를 묶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갑”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재판관이 폴리갑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폴리갑은 “86년 동안, 내가 예수님을 섬겼으나,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리신 적이 없으십니다.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하고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났을 때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남은 한 평생,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실컷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던 재물은 얼마 가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기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게 되었을 때,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아들로서 다시 받아 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도 사랑하였고, 집 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도 사랑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속을 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중간에, 단호하게, 사랑의 줄을 끊어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랑의 줄이 헐렁해지면, 다시 당겨 주시고, 약해지면, 다시 강하게 그 사랑의 줄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있니, 내가 너를 버렸구나”
우리를 버리셨다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래다 저래다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감정에 따라 행동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백 마리의 양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을 때, 목자는 그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온 들판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4-6)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찾을 때 까지, 찾고, 또 찾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품을 떠나라고 속삭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지금보다 더 자유가 있고, 더 행복하고, 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아주 달콤한 말로 속삭입니다. 그러한 속삭임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지금보다 더 자유가 있고, 더 행복하고,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인 것처럼,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고생입니다.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내가 내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쉬운 일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힘들고 무거운 짐도 내가 내 혼자 지고 가야 합니다. 고민거리, 걱정거리도, 내가 내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품에 있으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되는데,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내가 다 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달콤한 속삭임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신앙생활하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대놓고, “교회 나가지 말라”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다닌다고,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핍박이나 박해를 받는 경우도 없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핍박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는 핍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죽음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할지라도,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켰을까요? 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참된 평안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참된 평안이 있고, 참된 행복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39절 말씀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줄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혹,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놓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줄이 매어져 있어서,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어딘가를 가고 싶은 데, 하나님과 줄로 매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줄을 살짝 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서는, 세상 살기 힘들어지면,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줄을 살짝 끊어버릴 때는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랑의 줄을 절대로 끊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추석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여진다고 해도, 절대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우리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가장 좋은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이대로 못 본 척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파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연약한 손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사정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형편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이 험한 세상을 버터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외치면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시 34:9-10)
또한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외치면서,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2-5)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그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 단호하게, “아니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나를 위하여, 예수님까지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분이야”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봐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면, 너의 모습이 그게 뭐니”라고 말할 때, “아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오지 않았어”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지금보다도 더 많은 사랑과 은혜를 쏟아 부어주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의 사랑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을 바라보오니, 주님의 은혜를 쏟아 부어 주옵소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가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