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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1> 변승우 목사님 주일설교 2006.8.20 (정결긍휼은영이 타이핑)
"에스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성경은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말과 계획과 예언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비결 -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
요셉이 꾼 꿈이 이루어진 것은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 모든 위대한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로 되는 것. 어떤 위대한 일이 일어나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셉의 꿈에도,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것에도 초점맞추지 말고 다른 어떤 것에도 초점맞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
과일나무도 열매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과일들이 많다.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지구상에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분은 또한 예수님... 선지자도 사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다.
1.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라 호기심에서 예언을 받고 예언받은 것에서 멈추는 사람이 많다.
예언을 흘러 떠내려보내는 사람이 많다. 예언을 붙잡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14: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 예언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존중한다면 예언도 존중하라. 성경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들. 예언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언도 성경과 마찬가지로 그 말씀을 마음에 지켜야 한다. 마귀가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고,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예언이 선포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언을 운명처럼 생각한다. 예언은 운명이 아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역사하는 분이 아니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의지로 믿음의 훈련을 받고 믿어야 하는 것. 예언은 계획이다.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받는 자에 따라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개인 예언은 조건적. 예언의 말씀을 받는 사람은 그 예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장정만 60만명이 넘는 출애굽 백성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갈 것이란 예언을 주셨지만
두사람을 빼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원망 불평 불순종으로...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시려했다. 사울의 불순종도 사울에 대한 예언을 무효로 만들었다.
예언이 성취되게 하려면 하나님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예언을 받고 난 다음에 삶이 바뀌지 않으면, 깨지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예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예언을 받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개인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므로 권위가 있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성경)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좋은 예언을 받았다고 해서 낮아지고 깨어지고 거룩해지지 않는 것은 기복신앙. 점쟁이한테 점치는 것과 똑같은 것. 회개가 없이는, 거룩이 없이는 모든 예언이 소용없다.
"예레미야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는 어떤 예언도 막아버린다. 예언 받는데만 관심있는 무당같은 신앙은 갖지 말라. 마음을 새롭게 하고 회개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께 초점을 맞추라. 그래야 예언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꿈이 이루어진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예언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좋은 계획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언이 회개, 순종, 거룩, 깨어짐을 대신하진 않는다. 예언을 받고 바르게 반응하라.
2. 예언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기도하라. 모든 예언은 기도제목이다. 듣는데서 멈추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기도하라.
선지자는 꿈꾸고 환상보고 예언만 하는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 눈물의 사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이 느끼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
주님의 입장과 관점에서 울고 기도하는 사람이 진짜 선지자. 구약의 선지자들은 중보기도자.
예언은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고 주신 것.
큰믿음교회는 예언모음집을 펼쳐놓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도록 한다. 교회와 성도의 비전이 하나가 되도록... 장점은 구체적으로 기도하고(진짜 필요한것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예언으로 선포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성령의 감화 속에서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하나님의 약속이므로) => 예언이 지속적으로 성취됨.
받은 예언을 개인기도수첩으로 만들라. 예언이 이루어질때까지 기도하라. 이것은 성경적인 것. 예언은 기도가 있어야 성취된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400년을 보낼것을 예언하셨는데 이스라엘백성은 실제 430년을 거했다.
"출애굽기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예언이 이루어진 것은 30년이 더 지난 후, 이스라엘 자손이 탄식하며 부르짖음으로 인하여...
예언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성취를 보게 된다.
"다니엘 9:2-4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다니엘은 예언을 보고 바로 민족을 위해 회개하고 금식하고 기도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았기때문에... 하나님이 예언하실 때는 '이것이 이루어지길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예레미야 31:8-10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탄원할 때에, 간절히 간구할 때에 예언은 이루어진다.
꿈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아는 데서 온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루신 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온다.
"에스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
<예언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2> 변승우 목사님 주일설교 2006. 8. 20
"디모데전서 1:18-19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회개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거룩과 순종과 주님을 향한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
3. 예언을 무기로 삼아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 ①예언은 강력한 영적무기이다 다윗과 여호사밧같은 왕들은 선지자의 예언을 가지고 전쟁에 참여했다. 예언에 따른 전략과 전술에 따랐다.
예언을 신뢰하며 승리를 확신하며 나아갔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예언으로 선한싸움을 싸우라. 예언은 선한싸움을 승리하게 만드는 강력한 영적 무기.
또하나의 무기는 찬양. 진짜로 찬양하면 강력한 것. 다윗이 찬양하면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것처럼... 기도, 말씀 또한 무기.
예언이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에베소서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가 아닌 레마.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 레마는 살아 역사하는 말씀) 예언은 불이며 방망이. 성령의 검. 영적인 무기.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육의 싸움이 아닌 믿음의 싸움.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우리의 생각.
"고린도 전서 3-6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믿으면 이루어지고 의심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검인 예언을 통해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자.
②우리는 예언으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예언을 받을 때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린 것. 구원의 문제와 완전히 동일. 예언은 믿고 받아들이면 성취된다. 예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곧바로 전쟁이 시작된다. 사단은 부정적인 생각,상황을 만들어서 우리에게서 예언을 빼앗으려 한다. 또한 무관심을 조장한다. 들을때만 호기심으로 듣고 잊어버리도록... 예언과 그 사람을 격리시키는 것.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사역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예언으로 믿음의 싸움을 싸워 믿음이 파선되지 못하게 하라. 믿음을 지켜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것으로 믿으라!! 이루어질때까지 믿도록 믿음을 지키게 하는 싸움에 예언이 강력한 무기. 원수 마귀와의 싸움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레마. 예언은 일종의 레마. 예언은 의심을 잠재우고 믿음을 일깨운다. 믿음을 활성화시킨다.
우리는 예언을 사용해서 의심과 낙망과 실망감과 절망감과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쌓인 것을 몰아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예언으로 싸워야할 영적 전쟁.
③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가지고 싸워서 승리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는가.
"히브리서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어떻게 아브라함이 승리했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예언을 붙들었기 때문. 갈팡질팡할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붙들면 승리할 수 있게 된다.
바울은 고난과 환란과 핍박속에서 어떻게 기쁨으로 견뎠는가. 아나니아가 그의 부르심이 뭔지를 예언해주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을 그릇이라는 것을 초창기부터 예언해주었기 때문에 박해에 대해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도행전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사도행전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 예언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바울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평안과 담대함을 주었을 것. 바울에 대한 예언들이 바울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담대함을 주었다.
사탄의 공격 앞에서 예언을 무기로 사용한 것. 우리가 원수를 대항할 때의 강력한 무기.
<예언을 무기삼는 방법> -우리는 예언을 녹음하거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녹음하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절반도 기억할 수 없다.
-예언의 내용을 자주 읽고 들으면서 묵상해야 한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믿음이 강화된다. 점점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
예언을 받은데서 멈추지 말고 지혜롭게 사용하라.
-예언의 내용을 입으로 고백하며 믿음으로 선포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담대하게 선포하고 믿게되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믿음의 말이 예언과도 같다. 말이 그럴진대 예언은 어떻겠는가. 예언의 말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할 때 그 예언이 성취된다. 예언을 자꾸 말하고 고백하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의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아 기도하라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과 염려를 허용하지 말고 우리의 영을 믿음으로 채우라!!
결론 : 때로는 예언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착각하게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 인격적으로 아주 문제가 많은 사람(아주 말을 많이 하는)들이 좋은 예언을 받으면
자신이 영적으로 바르고 옳다는 확증으로 받아들인다.
예언은 어떤 개인에 대한 확증이 아니다. 예언은 그 사람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그 사람이 교만하고 악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은 아름다움 것이다. 절대 현재 그 사람의 상태를 확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보여주는 것.
예언은 나 자신이 아니다. 내 상태가 합당하다거나, 내 상태를 하나님이 기뻐하신 다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계획. 내가 교만할 이유가 되지 않는 것... 나의 모습에 탄식하고 슬퍼하고 회개할 일...
예언은 부분적인 것.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말하면서도 죄의 상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언은, 진실하지만 부족한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죄를 꼬치꼬치 말하지 않는다. (아주 극적인 경우, 죄로 인해 죽게 될 경우가 아니라면...) 죄를 자꾸 지적하는 건 예언사역자의 영혼이 잘못된 것. 마귀의 눈으로 죄만 보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예언은 사랑으로 해야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이렇기 때문에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죄가 있음에도 좋은 예언을 받았을 때 죄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착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망신을 주지 않으시는 것 뿐. 좋은 예언을 주신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와 잘못을 묵과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언으로 인해 자기 기만에 빠지면 안된다.
-그래함 쿡, '이렇게 예언하라' 中 '하나님의 자비는 결코 사람의 죄를 묵과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의 삶 속에 숨긴 문제, 죄, 멍에나 불순종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우리가 받은 예언이 모두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서 주님이 우리를 전적으로 인정해서 우리의 죄나 현재 우리의 상태를 묵과하셨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모세가 바로 이런상태에 처해있었다. 그는 매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증거되었다.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그의 손에 문둥병이 발했다.
두가지 징조가 예언의 말씀을 증거했다. 모세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마침내 애굽으로 향했다.가는 도중에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죽이려고 하셨다. 왜? 모세는 그의 아들을 할례하지 않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자인 모세일지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는 한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할례는 그 언약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불순종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다. 비록 그는 예언적인 말씀을 받았고 목표가 있었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한 상태였다.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의 삶에서 숨겨진 할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예언의 말씀이 죄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주님이 그의 불순종을 용납하신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해서 모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를 많이 본다. 내가 언젠가 함께 사역한 적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삶에 대해 예언한 후 몇개월에서 1년 후에 그가 수년전부터
행한 불경건한 행동 때문에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나와 친분이 두텁고 또 사역을 함께한 주요 사역자들 중에 비도덕적인 행동이나 기만에 빠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와 사귀는 동안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알려주시지 않았다. 되돌아볼때 나는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기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고 사역이 성공적이고 또한 그들의 불경건한 삶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하나님이 그런 일에 개의치 않으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굳어지면 우리는 하나님이 지붕위에 올라서서 외치시게 하는 일만 남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필요를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사건에 노출되었다. 어느 누구도 교회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한 어떤 겸손도
보이지 않았다. 죄악이 노출되었단 사실에 대한 회한은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해주는 것을 거부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야만 우리를 참으시는 게 아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해도 죄와 싸울때, 몸부림 칠 때, 회개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신다. 죄는 죄지만 연약함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우리가 죄와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싸워 이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죄를 폭로하지 않으신다. 죄가 있다고 해서 폭로하는 것은 마귀의 짓. 참소하는 자인 사탄의 짓. 하나님은 죄있다고 폭로하시지 않으신다. 그들이 죄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릴 때, 그들이 죄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둔해지고 굳어질 때,
그들이 더이상 죄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때, 그들이 죄악으로 가득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때,
자기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 처럼 외식하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예언이 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
예언이 죄악을 지적하지 않고 좋은 것들만 얘기하는 것이 우리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는 예언때문에 교만해질 것. 지혜로운 자는 예언을 듣고 회개할 것이다. 죄를 지목하지 않는다 해도 지혜로운 자들은 정말 하나님이 이런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내가 얼마나 정결해져야 하는 지를,
내가 얼마나 변화되어야 할 지를, 내가 얼마나 깨어져야 할지를 알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좋은 예언을 받고 오히려 겸손하여지고 회개하고 몸부림치고 씨름하고 기도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좋은 예언을 자기에 대한 확증으로 여길 것이다. 자기를 인정해줌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교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죄에 대해서 더 문제삼지 않게 되는, 마음이 굳어지고 걍팍해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는 멸망할 것이다.
예언을 자기에 대한 확증으로 생각하지 말라. 자기를 살펴보는 것은 예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언은 부분적인 것. 하나님께 무엇 때문에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지, 씨름하고 있는지 그 죄에 대해 말해야 한다. 부분을 말하는 시간에 무엇때문에 그것을 말해야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야 어떻게 사용하실지 많은 것들을 말씀하실 것. 예언이 내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옳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언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말씀을 통해 자기를 달아보고 말씀을 통해 자기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말씀에 찔림을 받고, 말씀에 빛을 받고 그 속에서 진짜 자기모습을 보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그런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좋은 예언을 받았을 때 그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것. 단순히 좋은 예언을 받았다 해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지자나 예언사역자로부터 놀라운 예언을 받는다. 그리고 그 예언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생각한다. 그래함 쿡의 대답은 '아마 당신이 준비되는 대로. 당신은 계속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실 것입니까?'
예언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약속이 아닌 '너희가 준비되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 이것이 예언. '내가 너에게 이루어 주겠다'가 예언이 아니다. '너희가 준비 되면 내가 이 일을 너희를 통해서 하겠다'가 예언인 것.
예언은 우리가 준비될 때 이루어진다. 예언은 가능성을 선포하는 것이지 필연성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을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언을 받았다고 이게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관심을 갖지 말라.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다.
언제 너희가 변화될 것이냐! 언제나 깨어질 것이냐! 언제나 정결케 될 것이냐! 도대체 언제 겸손해 질 것인가! 언제 욕심을 버리고 언제 자아에서 해방될 것인가! 언제 진실로 그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인가!
우리는 시간을 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태를 재 보신다. 왜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불평들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는게 아니라 우리가 이루지 않는 것.
요셉을 생각해보라. 요셉이 애굽에 팔려갔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허용하셨는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이 성장해야 그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를 준비시키기 위한 학교로 그를 보내신 것.
어느 누구도 변화되지 않으면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언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미혹, 어리석은 것. 예언을 받고 난 후 자기를 보고 점검하고 씨름해야 한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변화되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예언이 이루어진다.
예언은 참고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 우리 자신을 깊이 회개하고 자아를 죽여야 한다.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어떻게 능력과 은사와 기름부음과 축복과 명예와 권세를 감당할 것인가. 우리가 교만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는 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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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받아쓰기 카페에 '예언이 현실이 되려면' 설교 타이핑을 부탁하고 싶었는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요약자료가 있군요~! 설교 요약해주신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