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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수학자의 숫자
김영삼(金泳三), 경남 거제(巨濟) 출생
. 195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총리 장택상(張澤相)의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5·6·7·8 ·9·10·13·14대 의원에 당선됨으로써 9선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사이 민주당 대변인 2번,
민중당 등 야당 원내총무 5번을 역임하고
1974·1979년의 신민당과 1987년의 통일민주당 등 야당총재를 3번 지냈다.
1980년 이후 전두환(全斗煥) 정부에 의해 2년 동안 가택 연금되어 정치활동을 못 하였고,
1983년 5월 18일~6월 9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
5공화국 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1985년 김대중(金大中)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직을 맡았고,
신민당 창당을 주도하여 신한당을 와해시켰다.
그러나 김대중 씨와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시작부터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 왔기 때문 인지는 모르지만
최연소 국회의원의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한 김영삼 씨와
몇 번의 고배를 마시며 좀 늦게 국회의원이 된 김대중,
그리고 최고 학벌과 상고출신의 김대중,
민추협의 공동 의장을 함께 하기는 했지만
그전에 마지막 대통령 직선제에서 김대중씨와 김영삼씨가 경합을 벌여
김대중씨가 승리 하게 되고,
김대중씨가 후보로 나서게 되면서
두 사람에게는 미묘한 관계가 성립 되었다고 할수 있었다.
정치역정을 보면 김대중씨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 왔고,
김영삼씨는 정치 행보를 막으려는 집권당에 의해
가택 연금과 그리고 23일 이라는 혹독한 단식 투쟁으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 민주화 투쟁을 위해 김대중씨의 동교동,
그리고 김영삼씨의 상도동 사람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이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선출마에 대한 의견조율의 실패로
1987년 이후 그들의 동지 관계는 사실상 끝난 듯 보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식한 대통령으로 폄하 되곤 했던 전두환 정권은
두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그리고 6.29 선언 이라는 어쩔수 없는 시대적 상황으로
두 사람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만들기도 했다.
드디어 10말에 이르러 김대중씨는 대선출마를 선언 하며 김영삼씨와 결별 하고 만다.
“아야 우상아이 오늘밤에 손님이 온다는디...
내가 바뻐서 그란께 니가 좀 만나야 쓰겄다.”
김대중씨 대선 출마, 그리고 대선 후보들이 확정된 상태의 충무팀은 무척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 바쁜 와중에 쌍식이 형님한테 전화가 왔고,
그 목소리는 좀 다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떤 손님인데요?”
“내가 지방에만 안내려 가믄 내가 만나야 쓴디...
코피리 성님이 나를 만날라고 서울에 온다고 안하냐?
또 뭔가 보긴 본 모양인디... 니가 서울역에 나가 봐야 할랑갑다.
전번에 목포에서 괴기 쳐묵은 낙원집 이라고 기억 나냐?
아 그 왜 코피리 성님하고 소금구이 먹었던 그 집말이여.”
“예 기억 합니다.”
“그 낙원집 애편네가 나를 찾는다고 그래서 내가 전화를 해본께
코피리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그랬다 안하냐.
이유는 나도 모르겄다.
그것이 내문제가 아니고, 본께 니 문제 때문에 그런것 같응께...
나가서 니가 모시고 접대 좀 해라.”
“혼자 올라옵니까?”
“아니여. 앞 못 보는 봉사가 어치케 혼자 오겄냐?
코피리도 즈그 가시나가 있응께 같이 올것이다.
야튼 긴말은 못하겄고 오늘밤 6시 42분에 서울 도착 하는 열차라 그랑께
그때 니가 좀 나가서 만나 봐라. 그래가꼬 내 문제믄 나한테 연락을 해주고,
그라고 느그들 그 문제 같으믄 뭐 연락까지 할 필요는 없응께 알아서 처리 해블고.
그라고 나도 길게 통화를 못해봐서 그란디...
니가 낙원집에 전화를 해가꼬 뭣땜시 그라는가 한번 알아 봐라.”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머릿속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신통한 점쟁이처럼 남의 일을 잘 예지(叡智)하는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코피리의 서울 방문은 전혀 의외의 사건이 틀림없었다.
아마 분명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어떤 암시를 가져 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행동거지가 불편한 소경이 몸소 먼 길을 나들이 할 생각을 했겠느냐 싶었다.
이런 경우 쌍식이 형님과 함께 만나야 하지만 지금 충무팀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쌍식이 형님이 몸을 뺄 수는 없었다.
조금 난감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못 만날 이유는 없었다.
나는 114에 전화를 걸어 목포에 있는 낙원집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그곳에 전화를 했다.
“낙원집 이죠?”
“예. 누구 찾소? 지금은 홀에 손님은 암도 없는디.”
“주인아주머니 계세요?”
“내가 주인인디? 누구요? 나는 첨 들어 보는 목소리인디?”
“예. 안녕 하세요 전번에 쌍식이 형님과 코피리 아저씨와 함께
고기 먹으러 갔던 일행 중 한사람입니다.
쌍식이 형님이 전화가 와서 그렇습니다.
오늘 코피리 아저씨가 오신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옴메 으짜끄나이...거시기 시방 쌍식이 오빠랑 같이 있소?”
“지금 같이 있지는 않지만 함께 생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지방에 잠시 내려가신다고 해서 제가 대신 마중을 나가려고 합니다.
근데 특별히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 궁금해서요.”
“그것을 내가 우쭈꼬 알것소?
그저께 우리집 와가꼬 괴기 먹다가 몸을 부르르 떨드만 갑자기
쌍식이 오빠를 만나야 쓰겄다고 해서..
내가 여기저기 알아본께 호남극장 간판 그리는 간판쟁이가
삐삐 번호를 알켜 줘가꼬 근근히 연락 했소.”
“특별히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그냥 쌍식이 형님만 찾던가요?”
“모르겄소...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우째 송장 치울 일만 생기는가 모르겄다’ 그랍디다.
그랑께 누가 죽을랑 갑소. 코피리 오빠가 빈말을 잘 안하는디... ”
오시면 혼자 오시나요?”
“여자가 있기는 있어라...근디 같이 갈랑가 어짤랑가 그것 까지는 모르겄소.
그라고 그년이 잘 안따라 뎅길라 그라요.
그 잡년이 즈그 서방이 봉사 인것을 겁나게 챙피하게 생각 하는 년이 되가꼬...
“서울 도착 시간이 6시 42분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어저께 표 끊어가꼬 나를 보여 줍디다. 그랑께 내가 그것을 알제.
확실하요 서울 도착이 6시 42분차.
그라고 코피리 오빠 혼자서도 어디든 빨빨 거리고 잘 뎅기요.”
“아 그렇습니까? 여튼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서울서 만나믄 잘 해 주쇼이?
간판쟁이가 알려 주었다던 그 간판쟁이는 아마 김우석 이를 말하는 듯 했다.
서울 가면 잘 해주라는 식당 주인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 혼자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온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면 못 올 것도 없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조금은 난감 했다.
나는 낙원집 주인처럼 고기를 잘라서 냉면 그릇에 담아줄 형편도 아니었고,
특히 그를 혼자 잠을 자게 여관에 던져 놓을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맹인을 어떻게 데리고 다녀야 할지부터가 난감 했다.
어쩌면 쌍식이 형님의 이야기처럼 ‘코피리도 즈그 가시나가 있응께...’
하는 것처럼 다른 보호자가 따라 올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혼자 먼 기차 여행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식당 주인의 말처럼
‘혼자서도 어디든 빨빨 거리고 잘 뎅기요...’ 라는 말이 맞아서
정말 혼자 오기라도 한다면 난감 할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그렇게 무모 하게 오지 않기만을 바랄뿐 이였다.
그러나 혼자 오지 않기를 기대 했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내가 서울역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하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평소에 자기가 다니던 길을 움직이듯
역사의 개찰구 앞까지 걸어 왔었다.
내가 그를 부르기 위해 그의 앞으로 갔을 때 그는 이미 내가 자기 앞에 왔음을 알아 차렸다.
“쌍식이는 안 오고 자네가 나왔어? 기차에서 내리는디..
큰 십자가가 나한테 달려 들드만 역시 자네 였그만...
냄새도 여전 한것 같네...”
“아- 예. 안 우상입니다. 형님은 지방에 출장을 가셔서요.
그래서 제가 연락을 받고 대신 나왔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야 할지 아니면 말로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 나의 형편을 알았는지 그가 먼저 제의를 했다.
“차 가꼬 왔어?”
낭패 였다.
나는 아직도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에 익숙하질 않았고,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특별히 가실 곳이 있으시면 택시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라믄 마포에 있는 서교 호텔 이라고 아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봉사가 호텔에 잔다 그라믄 그것도 병신 육갑 하는짓 이여.
내가 거서 잔다는 것이 아니고 그 뒤편에 가믄 ‘모란장’ 이라고 작은 여관이 있는디
그짝에 나 좀 델다줘봐.
오늘은 거서 자야 쓴께 하는 소리여.
그라고 내 왼쪽에 와가꼬 내 손을 잡고 같이 택시 타는데 가자고.
딴사람들은 봉사 손 잡는 것도 징그럽다 그래 쌌는디... ”
“아 예. 괜찮습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왼편에 서서 그의 손을 잡고 역사를 빠져 나왔다.
계단이 있으면 계단이 있다고 이야기 해 주고 또 계단이 끝나면 끝났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오른손으로 하얀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렇게 늦지 않는 걸음으로 나의 인도에 따라 택시 타는 곳 까지 왔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택시 승강장에 나란히 서서 조금씩 줄어드는 행렬에 우리도 서 있었다.
“내가 지금 가는데가....우리 아들집이여.
서울 올 때는 나는 항상 혼자 올라오는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애편네가 내가 서울에 아들이 있다는걸 알믄 많이 성가셔 진께
내가 걍 혼자 살짝 왔다가 가고 그라그만.
며느리가 착해서 내가 한 번씩 올라 오믄 겁나게 좋아라 하고
그래서 아들 보다는 며느리 냄새 맡으로 한 번씩 오그만.
우리 아들도 효자여..... 목포에 한 달에 한 두 번씩 꼭 내려오네.
낙원집에 그 비싼 소금구이를 워치케 만날 먹겄어?
우리 아들이 올 때 마다 거기 델꼬 간께 한번씩 먹제...”
“다른 애들은 없습니까?”
“큰애 멩글어 진 것도 나한테는 복이제...
그라고 지 앞가림도 못함서 애들만 줄줄이 뽑아 놓으믄 그것은 자석들한테 죄 짓는 것이제.
나는 비록 내가 앞을 못 봐도 하느님이 나한테 아들도 하나 줬고,
그라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만들어 줘서 항상 감사 하게 생각 하고 사네.”
“교회도 다니십니까?”
‘하느님께 감사 한다’는 소리에 지나치는 말로 대꾸를 해 봤다.
“교회를 뎅기는 것은 아니고...막연히 그냥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제.
그라고 며느리가 교회에 뎅긴께 나도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착하고 좋아 보일 뿐이여.
우리 며느리가 그러는디...
예수라는 사람은 쬐깐한 애기들하고, 그라고 과부하고,
그라고 멩탕 없이 눈먼 소경을 무쟈게 불상하게 보고 좋아 했다고 그라드만.
그라고 더러 사람들이 찬송가를 한 번씩 연주해 주라고 그래싸서 한날 교회를 가 봤는디...
그것이 찬송가를 듣고 있으믄 가슴이 찡- 헌것이...
어떤 곡은 봉사 눈구멍에서도 눈물이 나올 만 한 노래도 있드라고..”
코피리의 이야기들은 참 흥미로웠다.
아마 다른 사람들 에게는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만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 였다.
아마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는 그의 아들은 목포에서 동거 하고 있는 여자의 소생은 아닌 듯 했다.
그의 말이 사실 이라면 코피리의 아들은 대단한 효자가 틀림없었다.
낙원집 식당 주인의 이야기로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온다고 했었다.
아마 그의 아들이 목포에 왔다 간다는 이야기도 빈말만은 아닌 듯싶었고,
아버지의 형편을 아는 그의 아들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여자에게
접근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심성이 착한 며느리를 얻어서 잘 살고 있고
그리고 절대음감의 재능을 가진 코피리는 어쩌면 정상적인 평범한 가정의 가장 보다
오히려 더 행복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착한 며느리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 까지 좋게 본다는 그의 말은
그의 며느리의 심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우리가 택시를 타야할 순서가 되자 나는 뒷문을 열고 그를 안쪽에 앉게 하고
나도 그를 따라서 뒷자리에 탔다.
택시에 타자마자 택시 기사가 코피리를 보고 아는체를 했다.
“목포에서 온 사람들 아니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코피리가 대답을 대신 했다.
“냄새가 본께... 목포 사람 맞는 갑네.”
“목포 극장 뒤에서 피리 부는 아저씨 맞소? 본께 그 아저씨 같은디?”
“그래 맞어. 내가 코피리여.
그라고 우리는 지금 마포 쪽으로 갈랑께 서교 호텔이 뵈믄 이야기 좀 해줘.
서교 호텔 뒤쪽 일방통행길...부탁 하요이.”
택시 기사는 아는 사람을 만난 듯 신이 났다.
“어허-, 내가 오래 살고 볼일이네...여그서 아자씨를 만나브요이. 아저씨 지금 몇 시요?”
항상 그렇듯 사람들, 특히 코피리를 알고 있는 목포 시민들은
그를 보면 한결같이 물어 보는 질문,
그 현재의 시간을 알아맞히는 질문을 그 택시 기사는 하고 있는 것 이였다.
“라디오 빨리 틀어 봐. 13초만 있으믄 7시여-.”
택시 기사는 급하게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올렸다.
시간상의 13초는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와 그리고 택시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라디오의 시보를 기다렸다.
라디오는 소리를 듣는 기계 였지만 나와 택시 기사는 T.V 화면처럼
우리는 라디오를 쳐다보면 그 짧은 몇 초 동안을 침묵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대략 10초정도가 지나자 정말 정확하게 시보가 울렸다
. 짧지만 짧지 않는 시간 이였다.
대단 했다. 아침에 기억한 감각적 시간의 흐름을 하루 종일 기억 하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을 계속 유지 한다는 건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신비함이 있었다.
“아자씨... 진짜 대단하요이. 나도 목포놈 인디...
. 물어 볼때 마다 신기 하드만...”
시간을 알아맞히는 게 신기한 택시 기사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코피리의 이야기 까지 했다.
“내가 다른 기사들 한티, 목포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그라믄 전부 꽁친다고 그라요.
손님만 시간이 된다 그라믄 내가 우리 회사 델꼬 가가꼬 고놈들 앞에서 한번 보여 줘 블겄그만...”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인지 코피리는 그런 칭찬에 그렇게 좋아 하거나 반가워하지 않았다.
다른 장님과 달리 색이 짙은 검은 안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좀 흉측해 보이는 눈이
인상적인 코피리를 목포 사람들은 쉽게 기억 하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목포 사람들에게는 코피리의 시간을 맞추는 이야기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 있었다.
택시가 마포의 서교 호텔의 뒷길로 접어들어 모란장 이라는 여관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택시 요금을 냈고, 잔돈을 내주던 택시 기사는 한마디 하는걸 잊지 않았다.
“저 아저씨가 택시비 내믄 안받을락 했소.
근디 손님이 낸께 받긴 받을라.
목포놈이 코피리 아저씨 한티 돈 받았다 그라믄
그것이 인사가 아닌께 하는 소리요.
이해하쇼. 나도 묵고 살아야 된께...”
돈 받기가 미안 하다는 소리를 택시 기사는 그렇게 표현 했다.
나는 코피리의 손을 잡고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서는 착하다는 그 며느리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오세요? 오신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갑자기 웬일이세요?”
한눈에 봐도 시아버지를 보고 반가워하는 눈치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런걸 눈치라도 챈 듯 코피리가 거들어 주었다.
“아가- 나랑 같이 온 손님이다. 큰애는 어디 갔냐?”
“예. 침대 시트 몇 포 뜨러 동대문 시장에 갔습니다.
아버님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다. 좀 있다 큰애 오믄 같이 먹을란다.
그라고 내가 손님 하고 할 말이 있어서 그랑께 내방으로 좀 모셔다 드려라.”
나는 코피리의 며느리를 따라서 여관 안쪽 조용한 온돌방으로 안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코피리의 손을 잡아 주거나 따로 인도 하지는 않았다.
“아버님은 여기 가끔 오시곤 하시지만, 혼자서도 실수 없이 잘 찾아 들어 오십니다.
아버님은 한번 왔던 곳은 안내 해 드리지 않아도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시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방은 아버님만 쓰시는 방이 돼서 이방도 잘 아세요.
잠깐 앉아 계시면 제가 음료수를 가져 오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손님을 모시고 오시기는 첨입니다.”
방에 들어와 방석을 내 주며 나를 앉게 하고 그녀는 방을 나갔다.
온돌방 이였고 아직 방에 불을 넣지 않아서 인지 바닥은 좀 차가운 편 이였다.
아마 이방은 코피리가 서울에 올라오면 항상 머무는 방 같았다.
손님을 받기 위해 침대나 다른 화려한 장식 같은 거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코피리가 마치 평소에 자기 방에 들어오듯 들어와
아랫목에 깔린 이불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갑자기 와 논께 보일라를 안 넣었는갑네. 쌀랑하네.
편하게 앙거. 오래 잡아 놓지는 않을랑께...”
“예.”
“근디 요새 쌍식이는 뭔일을 하고 돌아 뎅겨?
뭔 소문에는 영삼이를 경호 한다고 그래쌌더만 그것이 참말이여?”
“예. 맞습니다.”
“내가 언젠가... 쌍식이 한티서 무궁화꽃 냄새가 난다고 했드만...
진짜 대통령감을 경호 하는 모양이네..”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될것 같습니까?”
호기심에 내가 물어 봤다.
“그것은 나도 몰라. 아- 이 사람아 나를 무당쯤으로 착각 하고 보지 마랑께 그라네.
나는 걍 내가 봤던 현상만 자네들 한티 이야기 해 주는 것 뿐이제...
앞날을 예측 하고 그런 건 나도 몰라. 그런 것은 사주팔자나 육갑을 집는 사람들이나
신기(神氣)들린 무당이나 점쟁이들 한티 물어 봐야제.
나는 그런거 몰라.”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미안했다.
“그냥 물어 봤습니다. 무궁화꽃 냄새가 난다고 하셔서.”
그러나 그는 손을 공중에 가로로 몇 번 흔들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내가 재미난 이야기 해주까? 우리 같은 맹인들은...
후각이나 다른 감각이 발달 되어 있는디....
내가 제일 궁금 한게...그놈의 색깔이여.
과연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하는 그놈의 색깔이 어떤 건지 궁금해.
나는 모든 걸 같은 색으로 취급을 하는디...
아 물론 좀 어둡고 밝은 정도로 구분을 하기는 하제...
사람들은 눈이 있어서 괜히 보인께,
우리 같은 맹인 입장에서 보믄 씰데없이 눈이 있어서 뭐가 보인께
, 그랑께 그런 색이라는 게 필요 한가 몰라도..
반대로 말이여.... 우리 모두가 나 같은 장님 이라고 생각 해봐.
그라믄 오히려 더 편하게 생활 할지도 몰라.
캄캄한 밤에도 우리끼리는 공부도 할 수 있고, 연주도 할 수 있고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한 일도 우리의 처지에 맞게 개발을 해 두면
얼마든지 맹인들의 사회를 만들 수 있거든.
내가 가끔 내가 아는 한약방에 가서 내가 필요한 약초를 구입해서
내가 직접 탕(湯)을 제조하기도 하는디..
언젠가 밤에 일 끝나고 그 한약방에 가가꼬 약초를 살라고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디
갑자기 이야기 중간에 정전이 되브렀어...
남들은 초를 켜라, 란탄을 찾아라 함서 난리를 쳐 쌌는디...
우리 같은 사람은 정전이 되나 안되나 똑 같거든...
그 컴컴한 곳에서 나는 어디에 감초가 있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하게 보였응께..
냄새로, 그라고 평소에 내가 만져본 그 감각으로, 또 평소에 여닫는 약초 서랍장의 위치로
나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대충 짐작을 했었응께...
만약에 그 순간에 나한티 내가 필요한 약초를 가져가라고 그랬으믄 나는 저울도 필요 없어.
그냥 내가 그 약초의 무게를 손에서 알 수 있응께...
정전이 되었던 그 순간에는 언놈이 봉사고 언놈이 눈뜬 봉사인지 구분이 안되드만...”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