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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옥海玉
- 김동헌
늙은 해녀집 문패 대신
폐선 한 척 널브러져 있다
대벌리 삿갓벌이 앞마당인 우목리牛目里
제주댁이라 불리는 해녀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어느 갯것 하나 싸안지 못하고
이제 사무치는 이름만 남았다
수십 년 세 들어 살던 바닷집
생선가시 같은 파도 내팽개쳐지고
흰 고무신 한 짝으로 남아
마당 어귀 땅에다 내려놓은 닻
빈 마당만 지키는 너덜너덜해진 폐선
아직도 머리를 바다로 향한 걸 보니
떠나간 서방 애태워 기다리기라도 하는 걸까
이름 하나 마른 햇살에 걸어 놓고
되돌이표 없는 장단에 맞춰
바다의 춤사위를 받아내고 있다
마을 남정네들 모두 바다로 내보내고
아침나절이면 잡어雜魚들 길바닥에 부려 놓고
수평선에 눈 박은 기다림
그녀는 앉은 자리 묘墓자릴 만들 모양
살팍살팍
물기를 털어내고 있다
외딴 섬
- 김동헌
죽어서
뭍으로 간
양용호는
섬이 되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을까
수평선에 눈 박은
늙은 해녀
기다림만 남았다
점점이 사라지는 섬 하나
틈새
- 김동헌
서울 특별시, 교대역 뒤, 틈새 하나 있다
하루의 환승역 같은, 오후 네 시와 다섯 시
그 출출함과 허허로움을 채워주고 달래주었던
세상을 한 번 움켜잡아 보려고 악쓰며 버티다
놓아버린 손처럼 퍼져버린 라면이랑, 위아래 눌려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어 본 샌드위치, 신문지
눌러쓰고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었던 아줌마
거대한 것들 속에서 틈은 생겨난다
높은 빌딩과 평수 넓은 사무실 사이에
슬레이트 두 장과 의자 서 너 개만으로도
빈틈을 메우고도 남았던, 식당도 분식점도 아닌
그냥 틈새만으로 불렀던 곳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실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간이역에서 우동 한 그릇을 비워본 사람이라면,
10분의 뜨거운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공간이 틈을 살리는 것 같지만,
틈이 공간을 먹여 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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