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식의 ‘뿌리 튼튼한 나무’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휴일 아침,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는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조금 멀어서였는지 모르나 마치 버섯 같은 것이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검은 색 넓은 아스팔트 바닥에 쏟아져내리고 있는 빗발은 뿌연 안개를 이루고 있어 주위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눈을 비비며 창가에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한 어린이가 우산에 갇혀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작은 키에 비해 우산이 너무 커서 몸의 절반을 더 가린 우산 밑으로 파란 책가방 같은 것이 발과 함께 보인다.
자꾸 처지는 책가방과 바람에 흔들리는 우산을 주체하지 못해 어린이의 걸음은 연방 비틀거린다. 질주하는 택시의 물벼락을 고스란히 맞으며 비켜야 하는 모습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나는 이 어린이의 행선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레이 얼마 전에 들은 젊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초등학교의 3학년의 아들을 가진 그 어머니의 고민은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았더니 친구가 없어져서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과외니 뭐니 배우러 가는 곳이 너무 많아 그 시간이 되면 아예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해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장된 이야기로 들려 잘 믿어지지 않았으나,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어머님들의 교육열이 세계 으뜸이라 하는 정평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만큼의 교육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어린이에게는 정서 교육이 필요하다 하니까 피아노를 배우게 하고, 미술학원에 보냄으로써 안심하고 있는 어른들이 많지만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떤 염증이 싹트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 심한 경쟁 속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겨낼 도리가 없으니 남들 하는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즘 일반론이고, 또한 그것으로 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를 이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라는 뚜렷한 영상을 가슴에 품는 멋진 부모님이 점점 많아져서 어린이들의 생활이 지금처럼 자기를 살펴볼 틈도 없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듯한 숨가쁜 나날에서 어서 해방되어야겠다고 말이다.
한 인긴이 형성되기까지는 그 시절, 그 시절에 꼭 경험하고 배워서 지녀야 할 과정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그것을 생략하고 목적지까지 도달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좋은 봄비 오는 휴일어엔 한 포기의 나무와 화초를 자녀와 함께 심어야겠다고 계획하는 부모님이 훨신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온 식구 함께 흙을 만지며 뿌리를 살펴 땅 속 깊이 묻어 주고 그 나무가 자라서 꽃피는 날을 상상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이보더 많은 것을 어디서 가르칠 수 있을까? 틀림없이 그들은 뿌리 튼튼하고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와 같은 한 인간으로 자라 주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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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1930 -)
서울 출신의 아동문학가, 소설가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소설 '하얀길'이 있다. 다수의 문학상 수상